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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모리(Morrie Schwartz)는 미치(Mitch Albom, 작가)의 스승이다.
대학 졸업 후 한 번도 찾아 뵙지 못하고, '열심히' 살아가던 미치는, 중년의 어느 날 TV를 보다가 자신의 스승이었던 노교수 모리가 루게릭 병에 걸린 걸 알게 된다. 특별했던 모리를 회상하며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들과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다시 찾은 자신의 노은사와 일주일에 한 번, 화요일마다 만나서 '인생'을 이야기한다. 그러는 중에 미치는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족, 보여지는 모습과 내면의 문화에 대해 한 번식 돌아보게 된다.
모리는 자신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사람들과의 깊이 있는 나눔을 좋아했고, 서로에게 의미 있는 한 사람이 되고자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나누며' 맞춰가길 원했다.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늘 일관된 모습으로 삶을 살 수 있었던 건, 자신만의 문화를 지킬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제대로 된 문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굳이 그것을 따르려고 애쓰지는 말게. 그것 보단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하게'
'스스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라는 뜻이야. 물론 사회의 규칙을 모두 다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야. 예를 들면 나는 벌거벗은 채 돌아다니지도 않고, 신호등이 빨간 불일 때는 반드시 멈춘다네. 작은 것들은 순종할 수 있지. 하지만, 어떻게 생각할 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길지 등 줄기가 큰 것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네. 다른 사람이-혹은 사회가-우리 대신 그런 사항을 결정하게 내버려둘 순 없지.'
자신만의 '문화'를 지키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겼던 건, '달아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자기가 사는 곳에서 자기의 문화를 창조하려고 노력해야지.'하는 그의 말 속에 해답이 있다. 자신의 문화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것은 홀로 외로이 살아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과의 능동적인 관계 속에서 진정한 자신의 문화를 일굴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회적 동물.. '자네가 사랑하고 자네를 사랑하는 작은 공동체를 세우란 말일세.' 사람은 사랑할 사람과 사랑 받을 사람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란 생각이 든다. 보여지는 모습은 다양하고, 다른 것처럼 보여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다들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모리는 그것을 알았고, 내면의 필요에 부응하는 삶을 살았기에 행복했을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면서도, 일관된 모습일 수 있었던 것을 보면서,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지금 나의 삶의 양식 중에서 죽음 앞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얼만큼일까 생각하였다.
죽을 때가 되면 사람이 변한다고 한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 숙연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조용하게.. 행복하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그 가운데에서 또한 삶을 즐길 수 있었던 사람_. 모리를 대하면서, 그가 죽음만을 앞에 두고 남겼던 말을 음미하며, 나 또한 조금 더 일찍 죽음을 준비하면, 좀 더 진지한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죽기 전에 자신을 용서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도 용서하라.'
'자기 상황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상황에도 마음을 쓸 때 바로 그게 진정한 사랑이지.'
나의 문화를 창조하고 그것을 누리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 받으며 살고 싶다. 나를 고집하고, 고립된 세계에 갖혀 지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 나를 지켜내며 함께 어울려 사는 것.. 이것이 내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 얻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