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불안, 애쓴 노력이 모두 수포가 되는 삶의 무의미가 엄습할 때 우리는 삶을 향한 역겨움을 느낀다. 장 폴사르트르(Jean-Paul Sartre)식으로 표현하면 두려움과 불안과혼돈과 황량함과 삭막함의 부조리에서 ‘구토‘가 일어난다. - P48

히브리어를 포함해 고대 언어에서는 도덕적 선악과 실용적이득과 불이익을 같은 단어로 썼다는 데에 새삼스레 주목해 보았다. 이를 근거로 ‘선악과‘는 ‘이로운 것과 해로운것‘을 알게 하는 나무를 뜻한다고 해석하면 어떨까? 그 열매를 먹으면 자신에게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을 가려내는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이 지식은 신-인간-자연의 조화로운 관계에서 ‘나의이익과 불이익‘을 먼저 계산하게 하고, 이를 통해 자기의이익을 증대하며, 결국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는 자기 몰입적 이기성을 만들어 낸다. - P96

자기 몰입적 이기성이 개입하면 이 모든 관계는 파탄 날 뿐만 아니라 자기 몰입적 이기성을 지녔다고전제하는 상대방 앞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앞서 말했듯 이것은 수치심과 연관된다. 수치심은 자기의 잘못이나 연약함을 숨기려는 감정적 전략이며,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기 몰입적 이기성을 충족하고자 할 때 생기는 도덕적 자책이다. 따라서 자기 몰입적 이기성은 수치심이라는 자기 비하와이에 대한 반동으로 형성되는 교만을낳는다. 자기 비하와 교만은 상반된 현상이 아니다. 현대심리학의 용어를 빌리면 그것은 건강한 자아존중감의 부재에서 온다. 자기 비하와 수치심은 실제보다 낮은 자기 평가에서, 반대로 교만은 과도한 자기방어와 보상 심리에서 비롯된다. - P97

니체는고통을 삶의 전제로 수용한다. 니체의 인간은 고통을 당하더라도 자신을 죄인으로 간주하거나 다른 이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자 하는 노력 대신 그것을 통해 심오해지고 이전의 나와는 다른 변화를 만들고자한다. 욥은 인과응보의 논리에 매이지 않고, 그곳에서 벗어나 부유함과 고통의 조건을 넘어 삶을 긍정한다. "주님의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욥은 니체가 바랐던위버멘쉬(Übermensch), 곧 초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 P130

욥은 고통으로 점철된 듯한 삶의 이유를 묻는다. 이에 대한 답은 전능하고 책임적으로 우주를운영하는 신의 현현이었다. - P162

데이비드 베일리(David Bailly)는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로 알려진 네덜란드의 황금기인 바로크 시대에 활동하던 화가다. 그는 주로 초상화와 정물화를 그렸는데, 특히 ‘바니타스(vanitas)‘라는 특정한 장르를 그렸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바니타스와 ‘온트베이트(Ontbijt)‘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었다. 온트베이트는 네덜란드어로 ‘아침 식사‘를 뜻하는데, 아침 식사 테이블의 음식과 식기를 그린 정물화다. 빵,
치즈, 과일, 잔, 접시, 나이프 등이 주로 그림의 소재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별것 아닐 수 있지만 그 당시 잘 차려진아침 식사는 일상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이었다. 온트베이트 정물화에는 정돈된 삶의 기쁨이 드러난다. 반면 바니타스는 삶의 덧없음을 성찰하는 그림이다. - P176

바니타스는 히브리어 ‘헤벨(ms)‘의 번역이다. 이것은우리가 읽을 《전도서》를 이끌어가는 핵심 주제다. - P179

‘헤벨‘은 크게 세 가지로 번역된다.
첫째는 방금 소개한대로 ‘헛되다‘이다. ‘헛됨‘은 꼽을 만한 보람이나 의미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 히브리어 헤벨의 용례를 살피면 그 단어는 ‘숨‘이나 ‘수증기‘ 등을 표현한다. 들숨과 날숨, 물이 증발하는 현상을 묘사하기 위해 헤벨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 있다고 말하는 순간 사라지거나, 있어 보았자 잠시 관찰되는것이 바로 헤벨이다.

셋째. 어처구니없다. 부조리하다 - P180

지혜는 자신의 삶을 ‘작품‘으로 지어가려는 사람이 간절히 요청하는 삶의 기술이다. 한마디로 지혜는 우리 삶을작품으로 만드는 기술이다. - P225

<잠언>은 혼돈에 맞서 질서 있는 삶을 사는 지혜를 말한다.
이것은 삶의 의미와 관련이 있다. <욥기》는 압도하는 고통속에서도 위엄을 잃지 않는 삶의 지혜를 가르친다. 이것은삶의 품격과 연결된다. 《전도서>는 헤벨의 조건 속에서 삶을 꾸려갈 지혜를 알려준다. 덧없는 삶을 향유하는 것이다. - P169

부활은 온전히 신과 더불어 사는 삶이고, 이를 위해 인간은 신의 형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활활 타는 불에가까이 갈 수 없듯, 불에 비견할 수 없이 압도적 경외의 대상인 신에게 인간은 쉽게 접근할 수 없다. 유대교 전통에서심지어 천상의 존재인 천사들도 신 앞에서는 그의 영광을감당하지 못해 얼굴을 가린다. 하여 부활의 삶은 ‘하늘에속한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고 나서야 가능하다.(고전 15:49) - P229

‘열두 지파‘는 이스라엘의신 야웨와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을 뜻한다.

예루살렘에 터 잡고 사는 열두 지파 중 한 지파인 유대지파에 속한 유대인들에게 ‘열두 지파‘는 언젠가는 회복되어야 할 영광스러운 신의 백성을 뜻하는 말이었다. - P242

괴테는 "한 사람에 대한 최악의 평가는 현재의 그로 그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혜는 가능성과 희망으로 상대방과 일을 바라보는 능력이다.

온순한 지혜는 자신의 뜻을 관찰하려는 고집을 피우기보다 신의 뜻에 자신을 조정하려 한다

순결. 도덕적 올곧음
부드러운; 유순한; 사려깊은. 상대방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언행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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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대상을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행위의 본질이다. ‘성실integrity‘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전체, 완전, 완성 등을 의미하는 명사인 ‘완integer‘이다. 성실하게 생각하고 궁극적으로 성실하게 행동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주복잡한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유와 여러 가지 측면들을 통합하여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 P69

신은 실제로 우리에게 그의 마음을 줄 것이다. 충분히 의식적인마음이 되면 우리는 신의 마음에 맞추어 생각할수 있다. 그러므로의식의 발전은 무엇보다 신의 마음과 일치하기 위해서 무의식을향해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다. 새로운 진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우리가 의식적으로 그것을 진실한 것으로 다시 인지하기 때문이다. 무의식 속에서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을 새로이 알아보게 되는것이다. 이때 우리는 신이 인간에게 나누어주는 지혜를 알게 된다. - P117

문화적인 세뇌를 받은 많은 사람들은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들은 자기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주어야만 한다고 느낀다. 역설적인 사실은많은 경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즉 끊임없이 무엇을 해주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본래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때로는 더 큰사랑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 P203

품위 있게 죽음을 맞는다는 것은 죽음을 배움의 기회로 삼는선택이며, 영혼의 진정한 존엄성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육체적 소멸의 과정을 정화의 과정으로 맞는 것이다. - P220

내가 필요로 했던 도움을 주었던 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틀에 박힌 조언도 하지 않았으며,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은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비움(공허)을 실천하고자 했던 바로 그분이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할애했으며, 나의 입장이 되려고 노력했고, 나를 위해 자신을 베풀고, 희생시켰던 바로 그분이었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사람은 바로 그분이었다. 나를 치유한 사람도 그분이었다.
세상에는 간단하고 손쉬운 문제 해결법은 없다. 온갖 인생의 경험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의 공허와 무지의 고뇌를 견뎌야만 한다. - P225

이 베리건 신부에게 아무런 가시적인 성과도 없는데 어떻게 수십년간 이 일을 해올 수 있었는지 물었다고 말했다. 그 신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결과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지금쯤 이 자리에 없겠지요.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결과가 아닙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 뿐, 결과는 하느님께 맡깁니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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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1 달란트 받은자들의 이야기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던 신자들은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한달란트 받은자는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당신도 하나님을 제대로 믿을 수 없기에, 좋은 분이지만 나에게는 좋은 분이라 생각할 수 없어서 움츠려들고 온전히 주를 따르기 어렵다고 생각해 본적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염려가 찾아오면, 수갑 채워 연행하자.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도록 허락하지 말자. 이 사고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믿음으로 거부해야 한다. 우리는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생각을 통제함으로써 믿음의 삶을 지켜낼수 있다. - P31

‘염려‘라는 행위를 ‘기도‘라는 행위로 대체해야 한다. 염려목록이 있는가? 그것이 기도 목록이 되게 하라.
냉정하게 생각하자. 내가 염려하는 문제를 계속 염려할것인지, 아니면 기도할 것인지. 내가 통제할 것인지, 대체 불가능한 전능자에게 의탁할 것인지. 염려 혹은 기도, 둘 중 하나만 하겠다고 결단하라. - P37

이 문제와 씨름하면서 내 영혼이 느끼는 피로와 좌절이나를 낙심에 빠트린다. 이럴 때마다 한 가지를 기억하자. 하나님께서는 당신 인생의 고통을 낭비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 가운데 새겨진 주님의 은밀한 계획을 발견하라. 이를 위해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가 하나님의 응답을 얻고, 그분의 약속을 성취할 수 있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 P80

우리가 고통의 이유를 찾기 위해 그저 자기 결핍을 들여다보고 매만지기만 해서는 안 된다. 고통 속에 주저앉아 머물지 말고 일어나 걸어 나오라. 그리고 주님 앞으로 가라. 그분앞에서 정직하게 울고 흐느끼다가 비춰주시는 빛을 따라 다시 걸어가라. 그 길 끝에 새로운 시간대는 열리게 되어있다. - P83

우리도 삶의 문제를 통해 주님을, 주님의 마음을, 주님의필요를 발견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민감한 영역이있다. 자신의 독특한 경험, 과거의 상처, 결핍, 연약함, 장애등이다. 이것은 어떤 대상을 향한 민감함으로, 또 어떤 영역에 대한 책임감으로 작용할수 있다. 아픔이 이유가 되서 사명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각자에게 장착된 민감함이 고유한 재능이 될 수 있다. 그것으로 우리는 이 시대가운데서 하나님의 필요를 깨닫고 그분을 섬길 수 있다. - P88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브니엘"이란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이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에게조차 잊히고 지워졌던 자신을 보았고, 하나님의얼굴도 보았다. 이 둘은 언제나 같이 간다. - P124

야곱이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자신을 찾았을 때, 결코 해결할 수 없던 문제가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시간이 해결할수 없던 일, 누구도 설득할 수 없던 마음, 20년의 가면, 20년의 방황, 20년의 앙금이 모두 한 번에 해결되었다. - P125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에 이 무게를 얹으신 이유는 우리를 그저 고통스럽게 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생의 풍파가 우리를 휩쓸고 가지 않도록, 우리가 축복에 눈멀지 않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인생의 무게는 영적인 근력을 만들고, 우리의 무릎을 꺾어서 주님 앞에 엎드리게 한다. 눈물은 약이 되어서 우리의영적인 시야를 선명하게 밝혀준다. - P144

이미 일어난 상실조차도, 지울 수 없는 실패조차도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서 주님이 어떻게 완성하며 빚어가시는지,
그 완벽한 경륜 안에서 우리 인생이 어떻게 새로워지는지,
그 창조적 역사를 믿음으로 구하라. - P171

나는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왜 이 일이 일어났을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이때 필요한 믿음이 무엇인가‘를 의식하려고 노력한다. 이때 하나님을 의식하며 그분 앞에서 할 수있는 최선은 결코 그분을 향해 이유를 따져 묻는 태도가 아니라, 그분 앞에 드릴 나의 최선을 찾는 태도다. - P173

하나님께서 우리의 "왜?"라는 질문에 침묵하실 때, 또 우리가 인생의 난제에 봉착했을 때 이 점을 꼭 기억하라. 인생에는 ‘다른 차원에서 보는 것‘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문제가있다는 것을. 더 높은 차원의 세상에서만 설명할 수 있는 고통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 P204

인생의 비극 안에는 피해 갈 수 없는 슬픔과 근심이 있지만, 우리의 비극을 끌어안으신 예수님 안에 있을 때, 동시에우리는 기뻐할 수 있는 존재다. 우리의 고통과 눈물 속에,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써 누리는 설명하기 힘든 기쁨, 세상이이해할 수 없는 평안이 함께 있어야 한다. 경제적 손 - P216

당신은 기억을 어떻게 체에 거르는가? 공허와 무지와 부패에 빠져 망가지고 버려지고 홀로된 당신의 영혼이 하나님앞에 나아와 구속의 은혜 안에서 그분을 예배하는 시간,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사와 기쁨이 당신의 삶을 지배하지 않는다면 기억을 재배치해야 한다. 기억과 망각을 다스려야 한다. 기억할 것을 기억하고, 망각할 것을 망각하도록. - P227

결핍이 문제였을까? 그렇다면 이제 해결이 된 것일까?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시험을 통해 진정한 갈망과 욕구를 배웠어야 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해 주리고, 하나님으로 인해 배부르는법을 배웠어야 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은혜와 축복을 음미하는 영혼의 태도와 근성을 배웠어야 했다.
우리는 광야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이 훈련장에서 우리가 어떤 자질과 태도를 배워야 하는지, 어떤 욕구와 반응을 익혀야 하는지 말이다. - P242

삶은 복잡하지만 선택은 단순하다. 생각을 최소화하고 헌신을 극대화하자. 최선을 결정하고 단순하게 몰입하자 - P264

마음의 샘에 십자가를 던져라. 마음이 쓴물이 아니라 단물을 내게 하라. 이제 고쳐 쓸 시간이다. 다시 쓸 시간이다.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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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치유란 온전해지거나 성스러워지는 하나의 과정이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정의하자면, 나는 갈수록 의식화되어가는 끊임없는 과정을 영적인 치유라고 생각한다. 무신론자인 프로이트도무의식적인 것을 의식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 심리치유(정신치유)의 목적이라고 했다. 한편 융은 자신의 그림자Shadow를 만나기 거부하는 데서 인간의 악이 비롯된다고 했다. 여기서 그림자는우리가 알아차리거나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계속 의식의 양탄자밑으로 밀어 넣으려는 우리 자신의 일면을 말한다. 실제로 악에 대한 더 나은 정의 중에는 ‘호전적 무지‘라는 것도 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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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에 따르면, 고대 세계에서 동성 간 강간은 승자가포로가 된 적들의 복종을 강요하는 전통적인 방법이었다. 고대 문화에서 남성에게 가장 부끄러운 경험은 여성처럼 취급당하는 것이었고, 남성을 강간하는 것이 가장 난폭한 처우였다. 남성 성기에 의한 관통은 정복의 상징이며, 그러한 성행위를 통해 상대를 피정복자로 만들고 자신은 정복자라고인식하는 것이 말하자면 남자다움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남성 성기 관통으로 인해 정복당한 남자는 남자다움을 빼앗겨여자 같은 이가 되어 진짜 남자가 아니라는 모욕을 받으며 살아간다.따라서 여기서는 동성애가 아니라 남성 세계에서의 힘의 과시, 폭력이 훨씬 더 중요한 주제로 부각된다. - P225

오직 삽입 성행위만이 진정한 성행위이고, 남성 간 삽입 성행위는 남자가 여자 역할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상화된 만물의 질서, 즉 창조질서를 어지럽힌다. 따라서 이민족과 분리되어 그들만의 구별된 방식을 유지해야 하는 하느님의 선택된백성에게 그런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이것이 레위기의 이금지규정에 깔린 기본적인 생각이다. 이렇게 보면 동성애와관련한 오늘날의 윤리적 질문에 레위기의 이 규정을 들이대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완전히 번지수가 틀린 것이다. 레위기는 동성애가 아니라 남성 간 삽입 성행위를 문제삼고 있다. - P273

고린도는 로마제국에 속한 아가야(그리스) 지역의 수도였고, 로마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기원전 1세기에 재건된, 온갓 인종과 계급이 뒤섞여 살던 시끌벅적한 도시였다. 로마는다른 신도시들의 경우 대부분 퇴역 군인들을 이주시켰지만,
고린도는 정책적으로 해방노예들을 이주시켰다. 그리고 이들이 고린도의 문화적 에토스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 P281

바울은 당시 널리 행해지고 있던 소년애를 자제심을 결여한 남자들이 노예와 가난한 소년을 성적으로 이용하는 경제적 착취이며 폭력적 행위라고 비난하고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녀는 고대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 횡행했던 소년애를 성적 형태의 사회경제적 착취의 전형으로보고 그 예들을 자세히 언급했다. - P308

앞서 언급했듯이 로마서는 49년 로마에서 추방당했다가 54년 귀환한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갈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바울은 이러한 민족 간 갈등에 개입해야 한다고 느꼈고, 이 편지에서 화해의 메시지를전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의 구원에서 유대인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구원사에서 유대인들의 특별한 위치에 대해 언급했을 것이다. 바울은 개인적으로 로마 공동체와특별한 인연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담담하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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