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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심장 열린책들 세계문학 213
미하일 불가꼬프 지음, 정연호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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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불가꼬프 [개의 심장], [악마의 서사시]

 


 “차라리 나를 이 자리에서 쏴 죽여 줘. 그러나 단, 아무 신분증이라도 좋으니 하나만 만들어 줘. 그러면 네 손에 입이라도 맞추마.”

 - 악마의 서사시- 중, 298p


  미하일 불가꼬프의 책은 이번에 처음 접했다. -개의 심장-과 -악마의 서사시- 두 편, 20세기 냉전의 주인공이었던 ‘소련’ 한복판에 살았던 작가의 글이라니 더욱 관심이 생겼다. 마침 [카탈로니아 전기]나 [중국의 붉은 별] 등 르포들을 보며 내가 20세기 초에 얼마나 관심이 없었는지 새삼 깨닫고 있던 차였다. 게다가 공산 혁명 한복판에서 혁명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환상의 힘을 빌어 풀어 나가다니 기대를 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죽 읽은 소설은 우리나라 70, 80년대 소설들을 연상시켰다. 분단이데올로기와 독재로 유발된 사회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는 수많은 소설들. 최인훈의 [크리스마스 캐럴] 이나 남정현의 [허허선생] 시리즈,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등. 모두 뒤틀린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환상 기법을 차용한 소설들이다. 이 환상이 암시하는 대상과의 거리는 소설마다 제각각이다. 아주 적나라하게 비판 대상을 노출시키는 소설도 있는가 하면 중간에 렌즈를 끼워놓아 의도적으로 익명성을 만들어내는 소설들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건 환상이 이 소설들 속에서 날카로운 메스의 역할을 해냈다는 거다.

 

  불가꼬프의 두 소설은 한없이 적나라했다.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날선 갈고리들로 뒤덮어 풍자 대상을 한껏 찍어내는 식이랄까. 특히 첫 소설 [개의 심장]이 그러했다. 화상을 입고 죽어가던 떠돌이 개 샤릭은 인간의 뇌와 생식기를 이식받은 개 인간으로 거듭난다. 그 결과는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 샤릭은 개의 본능과 인간의 지식을 맞물려 더없이 추한 존재로 ‘변신’해 간다. 나는 소설을 읽기 전 막연히 ‘개인간’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리라 생각했다. 정작 책 표지를 펼치자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내용은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불가꼬프는 이 소설을 통해 소련 공산 혁명에 대한 자신의 결론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샤릭이 개인간으로 거듭나는 실험 자체가 소련 혁명의 축소판이다. ‘인민을 위한’ 혁명이 그 누구보다도 브루주아적인 인텔리의 수술실 안에서, 무자비하고도 무책임하게 벌어졌다. 배곯고 무지한 인민은 그저 그 실험에 이용당한 것뿐이다. 그 결과 그가 설령 개일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인간에 가까운, 개인간이라 해도 말이다. 샤릭이 스스로 샤리꼬프라 명명하고 인간으로서 독립하려 할수록 그가 역겨운 존재라는 것만 두드러진다. 그의 무례하고 무절제한 행동때문에 이식수술과 실험을 한 의사의 집안은 난장판이 되고 만다. 이 개인간이 특히 밉살스러운 순간은 공산 혁명 이론에 대해 얻어들은 것을 주워섬길 때다. 무지와 폭력욕이 이론의 탈을 쓰고 불쑥불쑥 휘둘러진다. 이야말로 불가꼬프가 보는 소련 혁명의 실체인 것이다.


  이어지는 소설 [악마의 서사시]는 이 샤리꼬프적인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보여주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실직한 성냥관리 공무원이다. 소설은 주인공이 겪는 일을 순차적으로 보여주지만, 거기에는 어떤 맥락도 없다. 모든 사건들이 밑도 끝도 없이 정면충돌한다. 작가가 독자들을 위해 만드는 플롯이라는 게 없다. 이 사건들의 유일한 공통점이란 불가꼬프가 살던 소련 사회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 모음이라는 것이다. 마치 일간지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모든 사건들을 한 사람에게 퍼부은 것만 같다.


  실제로 주인공은(즉 당시 소련을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은, 더 나아가 현대 사회에 소속되어 있는 우리들도) 그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과 연루 되어 있는 게 맞을 것이다. 다만 자각하지 못할 뿐. [악마의 서사시]는 과감하게 그 모든 파편들을 의식 위로 끌어올렸다. 주인공은 모래폭풍에 휘말리듯 어처구니 없는 일에 계속 휘말린다. 이 모래폭풍은 가면 갈수록 거세어질뿐 절대로 누그러들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국 누구나 주인공처럼 외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뭐라도 좋으니 내 신분만 보장해줘.’ 감상 첫 부분에 인용해 놓은 문구다.


  100년 가까이 전 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날이 서 있는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건 진심으로 부러운 일이다. 책을 덮으며, 환상 역시 현실의 필요에서 온다는 사실을 곱씹었다. 이야말로 소설가만이 할 수 있는 문제제기 방법 아닌지.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작품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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