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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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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투르다는 죄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의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을 읽고-

 

 

 

 

 

하마를 구하라

 

하마들은 무슨 죄가 있었을까? 동물들에게는 아무 죄도 없다고, 리카르도는 말한다. 하마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살해당해야 했을까, 인간 세상은 그들의 덩치와 그 덩치를 감당하지 못하는 구조물들을 보라며, 결국 그들의 행동은 오로지 우리 안에서만 허용가능하며 관람 가능한 형태로만 승인할 수 있다고 간접적으로 주장해왔다. 뉴스에서 부호의 죽음이 환기한 것은 버려진 동물원과 덩달아 버려진 동물들이었다. 동물들은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선택되었고 버려졌다. 그것들은 사람들을 위협하되 어떤 해도 가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어떤 위협의 의도가 있었을까? 세상이 그것들을 적으로, 위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지극히 자족적인 기준에 의해서다.

리카르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는 누군가를 해치고 싶어하는 의도 따윈 없었다. 그가 해친 것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쏜 총이 누군가의 얼굴에 맞았다는 것, 그 하나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 꿈이 그가 지키려고 했던 세상을 짓밟아버렸다. 아바디아 대위 역시 마찬가지다. 죽은 그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사망자들을 만들었다. 리카르도의 아버지는 아바디아 대위에 대한 원망보다는 기계와 기계를 완벽하게 조종할 줄 안다고 믿는 인간들을 저주했다. 만사는 인간의 마음대로 흘러갈 수 없다. 무엇이든, 빈틈이 있다. 하마 역시 마찬가지다. 부자들의 동네에 하마를 구하라는 선심쓰는 플래카드가 걸렸을지언정 진짜로 하마를 구하려는 사람은 없다. 하마는 그의 의도와 달리 사살될 뿐이다. 거리에서 총을 맞고, 천천히 쓰러지면서.

''는 그 질문에 같이 꿰뚫렸다. 부모는 그에게 리카르도가 왜 총에 맞았는지, 그는 왜 같이 맞아야 했는지 캐묻지만 그는 대답할 수 없다. 부모는 그에게 세상 만사가 어떤 법칙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노라고 말한다. 그가 원망할 상대라고는 무력하게 죽어야 했던 하마밖에 없었다. 법학을 전공했던 그에게 세상은 법과 철칙, 판결과 선고로 명료하게 이루어진 법정과 같았다. 다만 그가 리카르도에게 끌렸던 것은, ''의 특이점, 바로 법정 이후의 존재에게 끌린다는 것이다. 그 매혹은 그를 안정의 세계에서 불안정의 세계로 내모는 역할을 한다. 그는 '아우라'의 세상에서 아우라의 박탈을 경험한다. 그는 이제 법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안티고네의 행동이 법적으로 정당한가? 만약 그랬더라면 안티고네의 이야기는 비극이 아니라 법정의 한 사례로 축소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한 편의 비극으로 남았다.

  

오렌지색 블랙박스

 

''는 질문들을 들춰보면서 수많은 것들을 깨닫는다. 블랙박스는 외양 때문에 블랙박스가 아니었다. '965'의 비밀들, 그 하나로는 완전하지 않은 조각들을 끌어모은 채-완성된 비밀이 아니라 여전히 산산조각난 채로-비밀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블랙박스인 셈이다. 하지만 그 블랙박스를 열고, 테이프를 꺼냈을 때 리카르도가 마주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는 무엇을? 그는 콘수에게서 그 테이프를 받아 들었고 리카르도가 어떤 절망을 느꼈을지 조금은 알지만 전부 알지는 못한다. 리카르도가 마주한 현실도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서평에서 어떤 확측도 하지 못한다. 리카르도와 엘레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상 마야와 ''의 추측에 불과하다. 이야기를 들려줄 이들은 죽었고 우리는 그 뒤에서 그 이야기들을 그럴듯하게 꿰맨다. 이야기는 너무 쉽게 신파로 치닫거나 어떤 비극의 전조를 내포한다. 마이크 바비에리와 엘레나는 어떤 관계였을까, 리카르도와 엘레나는 단 한번도 서로를 떠나려고 생각한 적이 없었을까. 마야가 기억하던 리카르도에게 또다른 모습이 있지 않았을까? 그 기나긴 시간, 일레인이 '수명이 다해 죽은' 리카르도를 다시 받아들이기로, 엘레나로 되돌아가기로 마음 먹고 단숨에 비행기를 타겠다고 결심한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추락한 잔해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침묵하는 시체들 뿐이다. 조종사가 다급히 위로, 위로를 외쳤을 때 엘레나는 평온한 대신 다른 기분이었을 수 있다. 그녀는 점점 다시 가라앉는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 가라앉는 기분이란 리카르도와의 재회, 몇십년 전의 그녀로 기억하는 리카르도와 몇십년 전의 그로 기억하는 엘레나의 만남, 그게 설령 무엇이든 간에 기억의 간극은 그들에게 그들이 당했던 비극을 다시 한번 마주하게 할 뿐이다. 서로가 없이 마주해 왔던 불안들, 불행, 방황, 원망들.

리카르도가 엘레나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었던 사진은, 결국 그들이 다시 만나도 헤어질 수 있다는 어떤 암시이자 서글픈 배려였다. ''는 리카르도가 왜 그 사진을 굳이 찍었는지 알 수 없다. 아니, 그는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리카르도와 엘레나의 사랑이 결국 미완으로 끝났지만, 그들은 서로를 바라고 있었다는 것이 그와 마야의 미래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바램과 달리 아우라와 레티시아는 떠난다. 사라졌다.

 

 

전락

 

누가 평화봉사단을 원하는가? 엘레나는 평화봉사단으로서 어떤 이상을 실현하기를 원했다. 그녀가 리카르도에게 끌린 이유는, 그에게 끝끝내 매혹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리카르도는 하늘을 알고 있다. 다만 그녀의 이상주의적인 측면보다 리카르도는, 마이크 바비에리에 더 가깝다. 바비에리는 리카르도에게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그들이 이 세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상기시킨다. 마리화나의 합법화라는 어불성설의 미래, 엘레나가 그에게 설복당한 것은 그녀 또한 그런 지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리카르도는 비행기에서 격추되는 대신 세상으로부터 격추된다. 세상은 그들을 주저없이 내리꽂고 파멸하게 만들었다. 엘레나가 탄 비행기가 격추하는 것은 결국 이 세상에서는 어떤 이상성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평화봉사단은 무엇에 봉사하는가? 평화, 평화. 그 어중간한 말들. ''는 엘레나와 리카르도의 이야기가 어떤 각도에서든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그가 마야에게 아우라와 레티시아의 이야기를 숨기는 것은 바로 전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 또한 리카르도의 질문에 함께 꿰뚫렸고, 리카르도가 원했던 이상과 그 격추를 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 또한 리카르도의 운명에 따라갈 순 없다.

하지만 세상은 불안하고, 아우라는 그에게 상처 받은 이상 되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알려준다. 그는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다. 그저 더이상 놓치지 않으려고, 태연한 척 가장하면서 살아야 한다. 아우라는 그에게 불안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 또한 너무나도 불안하다고, 서로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깨달음은 너무 늦고, 희극보다 비극이 더 많다는 것은 비극이 우세하다는 것이 아니라 애석하게도 비극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연성의 승리, 그게 소설의 뒷표지에 실린 추천사처럼 사회가 원인일지 아니면 어떤 인간들의 이상과 꿈이 자만과 전락으로 끝나야 하는 우연 같은 필연의 법칙일는지는, 우리는 끝끝내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을 애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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