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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평점 :
풍경이란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다. ㄴ이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면서 그를 평온하고 흥분시켰던 음악의 세계에 끼어들기 위해 애썼던 것도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다. ㄷ이 사금파리 밥을 먹으며 죽어갔던 여자애가 되면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악착같이 애썼던 것도 하나의 몸짓이다. ㄱ이 물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고 싶어서,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안정된 삶을 꾸미려고 했던 것도 하나의 몸짓이다. 서글프게도 하나의 몸짓들에 불과하고, 그 몸짓은 보잘것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ㄴ은 베이스 기타를 부수고, ㄷ은 끊임없이 도망친다. ㄱ은 자신이 생각했던 물이 어항에 불과했다는 걸, 결국에는 누군가의 시선 아래에서 끊임없이 헤엄치고 파닥거리면서 스스로를 기만해야만 한다는 걸 깨닫는다.
ㄱ, ㄴ, ㄷ 세 명은 어떠한 고유명사도 갖지 못하고, 그저 추상적인 기호로만 남는다. 그들은 실패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삶에 있어서 어떠한 빛나는 순간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누군가의 탓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서글프고 초라하다. 거기가 자신의 자리라고 오해했고, 껴줄 것이라고 섣부른 희망을 품었다. 그들이 품은 희망이 간절했던 만큼 절망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고, 바닥으로 내팽개쳐지는 건 처절하리만치 참혹했다.
어쩌면 그래서 그 ‘풍경’이 가능했던 게 아닐까. 무언가 하나만 부각시킨다면 그림은 인물화나 다른 주제를 담은 그림이 되기 쉽다. 그림을 칭할 때, 가장 부담을 덜 느끼고 그 앞에서 편히 느낄 수 있는 그림이 있다면 바로 풍경화일 것이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자신이 그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아름답거나 슬프다고 최소한의 감정적 판단만 내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절망한 자들이고, 그래서 그들은 ‘셋’이서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ㄷ이 둘을 보며 ‘치사하다’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서로를 받아들인다. 그 ‘치사함’을 느껴본 이들이기 때문에.
하지만 풍경화란 아주 짤막한 한순간을 담는다. 모네의 그림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인 그는 빛이 풀잎 위에서 빛나는 순간을,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모든 것들의 소리를 화폭에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전의 풍경화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풍경을 그리려고 애썼고, 그 풍경은 사실 ‘인위적인 몸짓’에 불과했다. 누구도 풍경을 온전하게 잡아 놓을 수 없다. 셋은 서로가 이루는 풍경에 안주하고 싶었지만, 그 풍경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지 못했다. 그들이 본래 의심이 많다기보다는, 그들이 풍경에 느꼈던 행복이 너무나도 절실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 행복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더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셋은 둘이 자신을 따돌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동시에 어느 한 명이 빠져나가 이 풍경이 깨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급급해 했다.
그래서 ㄱ은 ㄷ이 ㄴ을 밀어 넣을 때,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척했다. 우물이 완성되는 순간 ㄴ이 떠난다면, 그들의 풍경은 깨져버린다. 그녀는 우물을 파서 그 끝을 보려고 했던 ㄴ을 내심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ㄴ은 어떻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죽은 화자로 과거를 끊임없이 회상하며 바라보는 존재일 뿐이다. 세 명 다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들이 이루었던 ‘소소한 풍경’을 되새기면서, 그 힘으로 현재를 살아간다. 그들은 과거 속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실에서는 ‘살인의 풍경’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그 ‘소소’가, ‘사랑의 풍경’이다. 사랑을 증명하는, 끝내 그 누구도 포기할 수 없어 ‘밀어버려야 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