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 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5
박민아.선유정.정원 지음 / 한국문학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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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굉장히 흥미로운 과학 서적을 읽었다.

과학을 융합이라는 주제 하에 인문학과 어떻게 연결을 시키려고 한 것인지 궁금했는데, 읽다 보니 이 책은 과학의 역사와 과학자들의 역사, 그리고 과학의 뿌리가 결코 인문학과 멀리 있지 않음을 알려준다.

아마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들의 이름과 행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으나 그런 행적이 어떤 역사, 배경, 상황에 맞물리며 움직여 지금에 이르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방식을 사용해 전방위적인 모습을 모두 보여준다. 

과학이 과학이라는 이름이 아니던 시절부터, 그런 시기에도 과학이 과학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고군분투와 시대적 상황이나 종교, 정치적 핍박 속에서 과학자들의 역할 등이 잘 드러나 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무래도 이 책이 지루하지 않은 과학사를 읽는 기분을 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고 굵직한 사건이나 인물 위주로 움직이는 것 같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일종의 과학사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부터 영화 인터스텔라까지. 그런데 그 중에 서양과 동양의 입장, 고대에서 과학을 다루던 사상과 현재로 오기까지 무수히 바뀌던 관념까지. 그리고 과학이 어떻게 인류의 역사와 함께 움직이는지 보여준다.

또, 이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제일 먼저 흥미를 가졌던 부분은 익숙히 접했던 챕터들이다. 특히 나는 소설 속 주인공인 셜록 홈즈의 화학 실험에 대한 이야기나, 셜록이 즐겨 쓰던 추리법, 그리고 셜록의 배경이 되는 영국의 시대에 쓰던 골상학 같은 것이 굉장히 재미있다. 그게 이 책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과학사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도 보여지지만 전체를 과학사처럼 배열하지 않았다. 익숙한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에 대한 부분, 문학 작품 셜록 홈즈와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부분, 대항해시대,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인터스텔라, 과학의 명암을 정확하게 보여주어 의도하지 않은 잔혹한 역사로의 개입까지도. 읽는 내내 과학자들만의 행적을 쫓은 것 같은데 읽고 난 지금은 오히려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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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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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를 사람들이 읽기 시작할 때 나는 표지만 보고 할아버지 이야기를 왜 읽을까 생각했었다. 불과 얼마 전에 읽은 소설도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것이었기에 또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소개글에서 줄거리의 일부를 보게 되었고, 나는 <오베라는 남자>를 읽고 싶어졌다.



"난 고양이랑 그리 잘 지내는 사람도 아냐."

"대체 내가 왜 그런 말을 해야 하는데?"

"'해야 한다' 따위는 여기 없어. 난 빌어먹을 운송 서비스 따위가 아니라고!"

위의 말들은 오베의 말투 일부다. 오베는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부정도 많이 하고, 남들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것도 응당 해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게다가 말투는 직설적이고 까칠하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오베의 고집과 말투에 못 이겨 그를 그저 까칠한 동네의 할아버지라든가 심술쟁이 할아버지라고 여길만도 하다.



그러나 오베는 스스로도 모를 정도로, 사실은 섬세하고 다정한 속내가 있는 사람이다.

저 세 문장의 말을 내뱉었을 때 오베는 고양이와 잘 지내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추위에 얼어죽을 뻔한 고양이를 구해줬으며, 부드럽게 말하지 않고 직설적이지만 짧은 위로를 해줄줄 알고, 또한 해야 한다는 말에 강하게 부정하면서도 임산부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 준다.

오베는 그런 사람이다. 겉으로 보기엔 퉁명스럽고 주차 위반을 하나 안 하나 원칙을 고수하며 동네를 돌지만, 실제로는 그 원칙들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를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다.

그 고집이 유별나게 센 고집이지만 말이다.



오베를 읽고 많이 울었던 이유는 이런 사람이 세상에 많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는 원칙을 말했고, 그 원칙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 확실했다. 

원칙이 무너진 세상은 혼란을 자초하게 될 것이라는 말도 맞다. 오베의 원칙이 그저 주정차 시간이 24 시간이 경과했는데도 차를 뺐는지 확인하는 것이나 거주 구역에 차량 통행 금지 같은 것들이라도 말이다. 누군가는 지켜야 하고 누군가는 피해 가는 원칙 같은 것은 없다고, 오베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확실하게 지켜야 될 약속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했다. 

오베는 남에게 불필요한 것은 모두 받지 않았고, 적당한 선이라는 기준을 모르게 자신의 것을 베풀고자 하는 아내가 있었다. 그러나 오베는 아내를 막아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걸 막는 사람들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탄원서를 쓸 줄 아는 남자였다.



남에게 받을 선을 지키고, 자신의 것을 더 베풀 줄 아는 남자는,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고 고집 센 원칙주의자 <오베라는 남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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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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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고집불통에 까칠, 그러나 오베는 그런 편견을 뒤집어쓴 할아버지라고만 불리기엔 너무나 멋진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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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 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3
미우라 시온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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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았다. 마사와 겐, 두 노인은 내가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만 전혀 만날 수 없는 캐릭터라는 것이. 
그리고 유쾌했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재기발랄함이 노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에서 나타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역시 그 부분은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의 작가다운 모습 같았다.

주인공은 구니마사인 '마사'와 겐지로인 '겐'이라는 73세의 노인들. 그리고 그들의 오랜 우정과 그들의 가까운 이웃이자 겐지로의 제자인 뎃페의 이야기가 함께 잘 어울어져 있다.
전쟁 직후 Y동네에서 73살이 되도록 이웃에 살고 있고 구니마사와 겐지로는 우리 동네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노인들이었다. 어떤 노인들이 저렇게 유쾌하고 발랄한 우정을 보여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나, 그게 환상을 넘나들어 '이건 아니잖아' 하는 생각을 불러내지도 않는다. 

사실 그 둘 중에서도 더 주인공은 구니마사일 거라고 생각이 든다. 구니마사는 안타까운 현재의 중장년층과 노년층을 대표해도 될만한 인물이다. 번듯한 직장에 평범한 아내를 맞이해 두 딸을 두고 열심히 일을 했는데, 노년에 이르자마자 아내는 딸의 집으로 가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나 구니마사도 왜 아내에게 돌아오지 않느냐고 묻지 못하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깨달아가는 시간, 가정에 조금쯤 무심했던 시간 등을 알아가며 화해의 방법을 찾아가는 게 구니마사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구니마사와 달리 겐지로는 정말 흔하지 않은 캐릭터이자 현실에는 전혀 없을 것 같은 캐릭터이다.
겐지로는 쓰마미 간자시라는 일본 전통 공예의 명인이자 뎃페의 사부, 아이도 없고 아내와도 사별했으며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이는 취미가 있다. 특이한 노인 캐릭터다. 현실에선 쉽게 찾을 수 없는.

그런데 이 둘이 펼치는 그 일상적인 이야기가 참 재미있다. 현실을 고대로 반영한 것 같은 노인 구니마사와 현실에는 절대 없을 것 같은 노인 겐지로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부인 없이 밥반찬 해먹으며 쓸쓸함을 느끼고 요통을 겪으며 겐지로를 내심 부러워하며 살아가는 구니마사나 희희낙락 태평하게 지내는 것 같지만 명인이라는 이름 앞에 늘 진지한 겐지로의 이야기는 유쾌하다. 어울리지 않기에 더 그렇다고나 할까.

가끔 내용 중에 묵직한 부분들이 치고 지나갈 때에야 아 이 노인들도 사실 생의 끄트머리에 서서 현재 자기의 하루를 퍼덕퍼덕 살아가고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용 중에 그런 부분이 있다. 

구니마사에게 겐지로가 하는 말이다.
"매사 '건실'하게만 살 수가 있냐? 그런 거 어차피 불가능해. 도착점도 정답도 없으니까 좋은 거잖아."

저 '건실'이라는 단어는 일벌처럼 부지런히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었지만, 노년에 혼자 남겨진 구니마사에게 적당히 어울리고 위로가 되는 말일지 모르겠다.
인생이란 저 말처럼 도착점도 정답도 없다. 정확히 언제 끝날지 알 수도 없는 것이고. 또 '건실'한다는 단어가 주는 어폐가 구니마사의 삶을 통해 보여지고 되돌아 온다. 과연 어떤 삶이 '건실'한 삶이란 걸까. 어떻게 살아야 '건실'하게 살았다고 가족, 친구, 이웃, 사회에게서 들을 수 있는 걸까. 
그렇게 고민할 때 겐지로는 말해준다. 도착점도 정답도 없으니까 좋은 거라고. 정해진 답 같은 인생은 없다. 그게 구니마사와 겐지로, 뎃페와 마미의 삶에서 보여주는 일종의 예시라고 느껴진다. 
그 아래 그에 대한 답처럼 한 부분이 또 나열되어 있다.

'도착점도 정답도 없으니까 끝도 없다. 그저 행복을 찾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자신이 해온 일들이 있을 뿐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서 죽는 날까지 묵묵히 사는 것, 그 시간을 영원이라 부르는 건지도 모른다.'

이 발췌문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 누구나 똑같이 행복을 찾고, 그것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일을 하고 그것을 돌이켜보면서 현재를 사는 것. 인간은 과거와 추억 속에서 현재를 걸어간다는 그 의미가 마음에 깊이 와 닿는다.
그것을 73세의 서로 다른 노인들이 공감하며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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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래빗 시리즈 전집
베아트릭스 포터 지음,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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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불 속에서 빠져나가기가 싫은 날이 있다. 특히 비가 오거나 매우 흐린 날, 또는 피곤에 휩싸이고 무기력한 날에 그렇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이불을 돌돌 감고 있어도 심심한 기분이 들어 뭔가를 하고 싶어질 때, 그럴 때 손에 잡기에 좋은 책이다. 이불 속에 폭 파묻혀 엎드려서 읽을 수 있는 책, 대충 설렁 설렁 책장을 하나씩 넘겨도 쉽게 눈에 들어오고 뭔가 마음 한 켠에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책. 그런 책이 '피터래빗 시리즈 전집'이다.

피터래빗이라는 이름은 참 많이 들어 봤다. 학용품에 워낙 많이 쓰이는 토끼 그림이어서 어릴 때부터 봤는데, 그 피터래빗이 이렇게 이야기가 있는 책이라는 것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피터래빗이 하나의 토끼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있는 아기 토끼라는 것도 아예 모르고 있었다. 이 '피터래빗 시리즈 전집'을 받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궁금했던 점 중에 타샤 튜더의 그림을 본 적이 있어서 그것과 비슷할까 하는 부분도 있었다. 타샤 튜더가 그린 동물 그림들이 굉장히 아기자기 했던 게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아트릭스의 그림체는 타샤 튜더의 그림보다는 좀 더 사실적이고 느껴졌다. 아기자기 하다기 보다는 조금 더 어리숙하고 사실적인 동물들의 표정이 잘 드러난다고 느껴졌다.

이 책의 목차에 여러 동물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제목이 '피터래빗 시리즈 전집'이지만 갖가지 동물이 나오고 그 동물들과 삽화가 재미있게 어울어져 있다. 토끼만 나오는 이야기, 혹은 토끼 가족과 이웃 토끼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했던 생각은 첫 번째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틀렸구나 하고 알았다. 

동화이기에 흥미로운 부분은 가족 구성원이 나오는 이야기의 경우에는(피터래빗 이야기, 새뮤얼 위스커스 이야기 등) 인간의 가족처럼 부모는 끝없이 걱정을 하고, 아이들은 장난을 치며 속을 썩이는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점이다. 동화이기에 가능한, 인간의 습성과 동물의 습성을 교묘하게 결합한 부분들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첫 번째 이야기인 피터래빗 이야기는 엄마 말을 안 듣고 인간인 맥그레거 아저씨의 농장에 간 피터래빗이 혼쭐나는 이야기라면, 새뮤얼 위스커스 이야기에서는 쥐에게 꽁꽁 묶여 새끼 고양이 롤리 폴리 푸딩이 될 위기에 처한-역시 엄마 말을 안 듣고 장난만 치다가 혼쭐이 난 톰 키튼 고양이의 이야기이다. 둘 다 엄마 말을 안 들어서 혼난다. 그리고 전체적인 이야기에서 부모가 등장하는 모든 구성은 이와 비슷하다. 엄마들은 걱정을 하고, 아이들은 장난을 치거나 위험한 모험을 일삼으며 또한 그래서 혼쭐이 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읽다보면 아마 말 안 듣고 어릴 때의 치기어린 모험을 했다가 혼쭐이 났던 일들도 생각이 나고, 그런 장난이나 호기심에 했던 어떤 일들이 들키지 않고 잘 넘어갔던 일도 생각이 났다. 

엄마, 아빠 몰래 동생 분유통 꺼내서 분유 한 숟가락씩 퍼먹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모두 몰랐다며 한참 웃었다. '피터래빗 시리즈 전집'을 읽다 보면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아주 오래된 어린 시절의 추억 하나 꺼내보는 기분. 당시에는 못말린다며 혀를 찰 정도로 어리숙하고 허튼 장난일지 몰라도 그 일이 지나고 나면 굉장히 웃기고 귀여웠던 하나의 일화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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