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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래빗 시리즈 전집
베아트릭스 포터 지음,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5년 7월
평점 :
가끔 이불 속에서 빠져나가기가 싫은 날이 있다. 특히 비가 오거나 매우 흐린 날, 또는 피곤에 휩싸이고 무기력한 날에 그렇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이불을 돌돌 감고 있어도 심심한 기분이 들어 뭔가를 하고 싶어질 때, 그럴 때 손에 잡기에 좋은 책이다. 이불 속에 폭 파묻혀 엎드려서 읽을 수 있는 책, 대충 설렁 설렁 책장을 하나씩 넘겨도 쉽게 눈에 들어오고 뭔가 마음 한 켠에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책. 그런 책이 '피터래빗 시리즈 전집'이다.
피터래빗이라는 이름은 참 많이 들어 봤다. 학용품에 워낙 많이 쓰이는 토끼 그림이어서 어릴 때부터 봤는데, 그 피터래빗이 이렇게 이야기가 있는 책이라는 것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피터래빗이 하나의 토끼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있는 아기 토끼라는 것도 아예 모르고 있었다. 이 '피터래빗 시리즈 전집'을 받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궁금했던 점 중에 타샤 튜더의 그림을 본 적이 있어서 그것과 비슷할까 하는 부분도 있었다. 타샤 튜더가 그린 동물 그림들이 굉장히 아기자기 했던 게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아트릭스의 그림체는 타샤 튜더의 그림보다는 좀 더 사실적이고 느껴졌다. 아기자기 하다기 보다는 조금 더 어리숙하고 사실적인 동물들의 표정이 잘 드러난다고 느껴졌다.
이 책의 목차에 여러 동물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제목이 '피터래빗 시리즈 전집'이지만 갖가지 동물이 나오고 그 동물들과 삽화가 재미있게 어울어져 있다. 토끼만 나오는 이야기, 혹은 토끼 가족과 이웃 토끼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했던 생각은 첫 번째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틀렸구나 하고 알았다.
동화이기에 흥미로운 부분은 가족 구성원이 나오는 이야기의 경우에는(피터래빗 이야기, 새뮤얼 위스커스 이야기 등) 인간의 가족처럼 부모는 끝없이 걱정을 하고, 아이들은 장난을 치며 속을 썩이는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점이다. 동화이기에 가능한, 인간의 습성과 동물의 습성을 교묘하게 결합한 부분들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첫 번째 이야기인 피터래빗 이야기는 엄마 말을 안 듣고 인간인 맥그레거 아저씨의 농장에 간 피터래빗이 혼쭐나는 이야기라면, 새뮤얼 위스커스 이야기에서는 쥐에게 꽁꽁 묶여 새끼 고양이 롤리 폴리 푸딩이 될 위기에 처한-역시 엄마 말을 안 듣고 장난만 치다가 혼쭐이 난 톰 키튼 고양이의 이야기이다. 둘 다 엄마 말을 안 들어서 혼난다. 그리고 전체적인 이야기에서 부모가 등장하는 모든 구성은 이와 비슷하다. 엄마들은 걱정을 하고, 아이들은 장난을 치거나 위험한 모험을 일삼으며 또한 그래서 혼쭐이 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읽다보면 아마 말 안 듣고 어릴 때의 치기어린 모험을 했다가 혼쭐이 났던 일들도 생각이 나고, 그런 장난이나 호기심에 했던 어떤 일들이 들키지 않고 잘 넘어갔던 일도 생각이 났다.
엄마, 아빠 몰래 동생 분유통 꺼내서 분유 한 숟가락씩 퍼먹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모두 몰랐다며 한참 웃었다. '피터래빗 시리즈 전집'을 읽다 보면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아주 오래된 어린 시절의 추억 하나 꺼내보는 기분. 당시에는 못말린다며 혀를 찰 정도로 어리숙하고 허튼 장난일지 몰라도 그 일이 지나고 나면 굉장히 웃기고 귀여웠던 하나의 일화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