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었던 폴 오스터 작품들 중에 환상적 요소가 제일 적게 들어간 덤덤한 소설이다. 그렇다고 해서 폴 오스터 특유의 일상적인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음. 마치 평화로운 대낮의 카페에서 지인이 차분하게 들려주는 자기의 놀라운 이야기를 입 떡 벌리고 듣는 기분...
100% 미국인 중년 남성의 시각임을 숨기지 않고 필터링 없이 막 뱉는 듯한 블랙유머들이 가득하다. PC함에 민감한 사람들은 별로 유쾌하게 읽지는 못할 듯. 나도 민감한 편이지만 그러려니 하고 읽었다. 탁월한 비꼬기 실력에 감탄이 나온다. 조금 덜 날이 서있는 움베르토 에코 느낌이었음
끝도 없이 냉소적인 소설을 읽을 때는 작가의 가치관이 나랑 꼭 닮아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결말까지 가는 내내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다. 이 책의 경우엔 한 번을 덮지 못하고 유쾌하게 읽어내려갔으니 나에게는 전자에 속한다. 다만 이런 식의 서술방식이 불쾌하게 느껴진다면 잘 안 맞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