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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스 문학과지성 시인선 566
이수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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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이수명 시는 전진한다. 여기서 전진한다는 것은 전위를 추구하거나 서정을 수호하는 방식처럼 일차원적인 층위가 아니다. 시의 지척을 넓힌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이수명 시의 배후에는, 시의 지척을 넓히려는 의도가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여느 시인들이 쉽게 빠져드는 자기 연민의 늪이나 감상성의 무저갱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는 것 또한 이수명 시의 강점이다. 시의 휘장과 후광을 손쉽게 가져와 사유 없이 너저분한 감정을 늘어놓는 것은, 중견에 접어드는 시인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이다. 그러나 이수명 시에서는 그런 혐의가 없다. 도리어 자신을 건조시키는 것처럼, 그리하여 자신을 시에서 지워내는 데 성공하려는 것처럼, 이수명은 시에서 무엇도 추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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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싸우듯이
정지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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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지루하다, 쓸데없는 지식이 너무 많이 나온다, 서사의 맥을 못 잡겠다 등의 반응을 보이는 건 오산의 결과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소설에서 읽히는 기존의 서사에 길들여져 있다는 이유로, 그것과 다른 방식을 비판하는 것 논거가 턱없이 모자란 것이다. '소설'과 '책'이 가진 능동적 자유를 모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출간 당시에도 이미 그렇게 읽었지만 다시 읽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정지돈은 지식으로 유희하여 소설의 근본적인 의미, 즉 허구의 서사를 이행한다. 지식을 유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장 탈-현대적(Post-Modern)이면서 가장 당대적(Contemporary)이다. 지식이 그리 대단한 것도 그렇다고 그렇게 깎아내릴 만한 것도 아닌, 그냥 지식 그 자체임을 알고 있는 것이 이 소설의 주된 태도이다. 그러므로 지식을 가지고 허구의 서사를 형성해낸다는 것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으면, 이러한 이야기의 무의미성을 향유할 수 있다.

첨언하자면 정지돈 소설을 읽은 이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는 좋은 점이 있다. 내가 잘 이해 안 되니 별로다, 라는 철부지 같은 불평이나 재미없다 혹은 지루하다 같은 주관적인 척도를 운운하는 반응을 보면 된다. '나'를 절대 기준으로 놓고 판단을 이행하는 파쇼적인 나르시시즘. 이거야말로 위험한 독서의 태도이고, 그 자신이 지식을 얼마나 신격화하는지를 자백하는 것임을, 정지돈 소설 이후에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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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일러스트 특별판 - 반지 원정대 + 두 개의 탑 + 왕의 귀환 톨킨 문학선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김보원 외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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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이 한 세계를 창조한다는 위대한 경이. 그것을 오롯이 담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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