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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싸우듯이
정지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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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지루하다, 쓸데없는 지식이 너무 많이 나온다, 서사의 맥을 못 잡겠다 등의 반응을 보이는 건 오산의 결과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소설에서 읽히는 기존의 서사에 길들여져 있다는 이유로, 그것과 다른 방식을 비판하는 것 논거가 턱없이 모자란 것이다. '소설'과 '책'이 가진 능동적 자유를 모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출간 당시에도 이미 그렇게 읽었지만 다시 읽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정지돈은 지식으로 유희하여 소설의 근본적인 의미, 즉 허구의 서사를 이행한다. 지식을 유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장 탈-현대적(Post-Modern)이면서 가장 당대적(Contemporary)이다. 지식이 그리 대단한 것도 그렇다고 그렇게 깎아내릴 만한 것도 아닌, 그냥 지식 그 자체임을 알고 있는 것이 이 소설의 주된 태도이다. 그러므로 지식을 가지고 허구의 서사를 형성해낸다는 것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으면, 이러한 이야기의 무의미성을 향유할 수 있다.

첨언하자면 정지돈 소설을 읽은 이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는 좋은 점이 있다. 내가 잘 이해 안 되니 별로다, 라는 철부지 같은 불평이나 재미없다 혹은 지루하다 같은 주관적인 척도를 운운하는 반응을 보면 된다. '나'를 절대 기준으로 놓고 판단을 이행하는 파쇼적인 나르시시즘. 이거야말로 위험한 독서의 태도이고, 그 자신이 지식을 얼마나 신격화하는지를 자백하는 것임을, 정지돈 소설 이후에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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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일러스트 특별판 - 반지 원정대 + 두 개의 탑 + 왕의 귀환 톨킨 문학선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김보원 외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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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이 한 세계를 창조한다는 위대한 경이. 그것을 오롯이 담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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