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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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산문집, 그러니까 에세이이다. 에세이는 비평이 아니다. 에세이로 비평을 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에세이라고 무조건 비평일 순 없다는 뜻이다. 둘은 다르지만 가까워질 수 있고 같아질 수도 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신형철은 그런 경우를 모색해온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모색이 성공했다고 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그의 고심은 이해한다. 비평이 비평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방향을 찾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그의 모색이, 모색조차 시도하지 않는 안일한 웅크림일 수 있고, 그 웅크림이 신중해 보이기보다는 우유부단해 보일 수 있다. 창작의 경우, 문학은 올바르거나 착하려고 하는 일이 아니다. 비평은 올바르거나 착해야 할까? 당연히 그건 아닐 것이다. 문학은 사람들이 올바르다고 착하다고 믿는 것들에 의문을 던지고 그 속을 파헤치는 쪽이고, 사람들이 올바르고 착하다고 믿는 말과 행동으로 저질러 버리는 악을 들춰 내는 쪽이니까.(이 말은 당연히 올바르고 착하게 살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렇게 말하자면 신형철의 이 책은 문학의 본령을, 비평의 본령을 잘 준수하려다가 그 본령에서 굴러 떨어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앎의 깊이가 얕아져 가면서 대중지식인이 되어 가는 모습을 볼 때의 안타까움이란. 물론 그는 처음부터 비평가라기보다 에세이스트에 가까웠다. 비평은 텍스트의 충실한 해제여야 하는데, 그의 비평은 텍스트보다 텍스트를 다루는 자의 텍스트가 컨텍스트 이상으로 역류하는 경우였으니까. 이제 그가 글에서 지적인 무언가를 꺼낸다 해도, 새로운 담론을 제시한다 해도, 지금까지 해 왔던 두께와 깊이와 넓이보다 더 두껍고 깊고 넓지 않은 한 자신만의 문학/비평을 내세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에세이라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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