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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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불륜을 다루고 있고 아니 에르노 스스로 겪은 일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소설이 불륜을 다루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불륜을 다룬다고 해서 작가가 불륜을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불륜을 옹호/반대하는 인물이 나온다고 해서 작가가 불륜을 옹호/반대하는 게 아니니까. 기본적으로 '소설 속 등장인물=작가'라고 착각하는 건 사람들이 요즘 흔히 저지르는 착각과 오판 가운데 하나다. 물론 에르노의 경우, 등장인물과 작가가 같아 보이는 착시가 이루어질 수 있다. 오토픽션이기 때문에. 에르노는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은 소설로 쓰지 않는다는 식으로까지 말했다. 작가로서 자신의 상상력이 얼마나 빈곤한지를 잘 보여주는 고백인데, 그 고백은 스스럼없이 했다는 점에서 아니 에르노의 좋은 점을 볼 수 있다. 에르노는 문학적으로 으레 갖는 '잘 써야겠다'에 대한 자의식이 없다. 프랑스 작가 중에선 드문 장점이다.

불륜을 다룬 소설이고 또한 그게 작가의 진짜 경험이기 때문에 이 소설은 잘못되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잘못되었다. 안티페미니즘을 넘어서 백래시 수준의 망언. 도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예술의 한 방식이니까. 도덕과 윤리는 전혀 다른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우리가 올바르고 선하다고 믿는 것들을 행위할 때 저지르는 그릇되고 악한 무언가를 포착하는 게 예술이다. 올바르고 선하다고 믿는 걸 주제 삼아서 소설을 쓰면, 그냥 도덕교과서고.

이 소설의 의의는 무엇보다 오토픽션에 대한 것이다. 이 소설로 인해서 불륜 상대였던 남자의 가족들은 크게 상처받았고 에르노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이런 걸 한국 사회와 문단에서 보면 어떻게 할지 상상되지 않나? 김봉곤 사태에서 보듯, 그이를 욕하며 자기 자신이 올바르고 선하다고 믿는 입장에 도취되기 급급할 것이다. 오토픽션으로 누구에게 상처 줄 수 있다, 여성이 여성에게조차도.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그걸로 글을 못 쓰게 한다느니, 그 사람 글을 안 읽겠다느니 하는 파시즘적인 폭력으로 대응할 순 없다는 거지. 에르노 사태에 침묵하면서 김봉곤 사태에 게거품 물었던 사람들은 이 책 읽으면서 오토픽션의 의미와 창작의 의미, 그리고 문학과 예술이 지닌 기본적인 성질로서의 '허구'에 대해 면밀히 사유해봐야 한다. 물론 그런 걸 사유할 줄 모르니 그렇게 이율배반적으로 굴겠지만서도.

그럼에도 이 소설에 대해 별이 다섯 개에서 두 개나 모자란 것은, 순전히 아니 에르노가 보여준 수사학의 밀도와 사유의 깊이가 얕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천대당할 수준은 아니고 범용한 유럽-프랑스 여성 작가의 그것이라는 것. 여성으로서도, 그래서 유감이다. 여성 작가로서 보여줄 수 있는 힘이 보이지 않으므로. 불륜을 다뤄서 별로라는 헛다리 짚는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어차피 아니 에르노는, 기본적으로 과대평가된 작가이다. 누군가는 노벨문학상 받기 전까지 아니 에르노가 과소평가됐다고 했는데, 천만에. 노벨문학상으로 더 과대평가됐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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