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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축제 2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5월30일에
염소의 축제를 기념한다.
-도미니카의 메렝게, <염소를 죽였네>
책을 들춰보던 중에 차례 다음에, 문득 이런 메시지가 나와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염소의 축제를 기념하면서 염소를 죽였다.’
말이 되는 것도 같고, 말이 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 글귀.
‘염소, 축제, 도대체 무슨 의미지...?’ 속으로 궁금증이 일어났다.
아무튼 이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메시지가 나를 책 속으로 인도하였다.
마치 <The Phantom Of The Opera(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이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크리스틴’을 자신만의 지하세계로 인도하듯이 말이다.
메시지의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손에 책을 들었다. 그리고는 읽었다.
“아무나 죽이는 건 안 돼. 그러나 독재자를 제거하는 건 괜찮아.”
안토니오와 살바도르는 ‘염소’를 죽이겠다는 동일한 목적을 확인하고 서로 화해했다.
첫 번째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작품에서 ‘염소’란 단어의 존재가 처음으로 등장하였는데, ‘염소’는 도미니카의 독재자 트루히요를 암살한 이들이 그를 가르킨 별명이었던 것이다.
두 가지 의미를 가진 ‘염소의 축제’
‘염소’는 생명력과 번식력이 강한 동물이다. 즉 트루히요의 지나친 성욕과 그의 뛰어난 능력을 압축하여 염소라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축제’는 ‘아주 큰 파티’를 뜻하는 말로, 다시 말하면 ‘독재자의 죽음을 의미하는 유혈축제’를 뜻한다. 또, 하나의 ‘염소의 축제’는 달리 ‘독재자 트루히요의 축제’라는 말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다. 즉, 트루히요만의 비밀스러운 은밀한 행사를 뜻한다.
도미니카의 메렝게, <염소를 죽였네>
메렝게는 독재시절 대표적인 음악의 장르였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도미니카 민중들은 그의 죽음을 축하하는 노래를 독재자의 메렝게 장르로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염소를 죽였네>노래의 제목으로 트루히요 암살이라는 주제를 예시하고 있다.
작품은 ‘우라니아’라는 여인이 산토도밍고를 떠났다가 35년 만에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현재의 그녀는 외향적으로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면은 치유하기에 너무나도 큰 상처(트루히요에게 강간을 당한 일)를 지니고 있었다.
살아 있는 제물..
그녀는 그녀 아버지의 출세욕에 의해 염소(트루히요)의 성욕을 해소 해 주기 위해 바쳐진 살아 있는 제물이었다. 가장 사랑받고 아름다워야 할 시기에 더럽고 추잡한 정치적 거래의 희생양가 된 그녀... 자신의 출세를 위해 딸을 바친 아버지를 원망하고 증오하면서 그녀는 트루히요시(산토도밍고)를 떠나 미국에서 명문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다.
이곳 도미니카 공화국에 한 지도자가 있다. 그는 독재자이다. 그는 공포와 폭력으로 국민들을 탄압했다. 나라 안의 모든 것이 자신의 소유로 여겨 마음대로 했고, 국가의 뿌리가 되고, 근간이 되는 백성들을 함부로 대했다. 암살자들인 안토니오와 살바도르의 말처럼 그는 인간의 탈을 뒤집어 쓴 짐승(염소) 이였던 것이다. 이 인간 염소는 자기가 보호하고 지켜주어야 할 백성들의 아내와 딸을 강간했고, 심지어는 14살짜리 어린 여자아이까지도 성적 쾌락의 대상으로 삼아 자신의 성욕을 풀었다.
독재는 여성에게 특히 잔인하다.
트루히요에게 있어 섹스는 권력과 남성성, 그리고 남성우월주의 사회의 최고가지를 보여주는 상징 중 하나.
트루히요에게 강간당한 14살짜리 어린 여자아이가 바로 ‘우라니아’였다. 14살의 나이에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너무나도 큰 상처와 시련을 입은 것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라는 인간이 자신의 손녀뻘 되는 여자아이를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는 트루히요는 이미 인간이길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비인간이자 악마였던 것이다.
무려 30년이라는 세월동안 한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무소불위의 독재자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
그가 정권을 잡기 시작한 1930년대부터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가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었다. 그는 능히 물을 포도주로 만들고, 빵을 수없이 늘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고문, 실종, 납치, 살해, 처형, 테러, 음모, 모함, 중상모략, 강간
항거할 수 없는 절대 권력을 지닌 독재자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예전 북한에도 이와 비슷한 인물이 있었다.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모래로 쌀을 만드는 위대한 영도자. 독재자의 모습은 세계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어떤 공통점이 있는 듯 하다.
사람들 사이에 ‘트루히요는 절대로 땀을 흘리지 않는다’는 것은 신화였다. 사람들이 말하길 “그는 가장 혹독한 여름철에도 모직 군복을 입고 벨벳으로 만든 삼각모자를 쓰고 장갑을 낀다. 그래도 그의 이마에서는 땀 한 방울 볼 수 없다.” 그는 자기가 원하지 않을 때면 땀을 흘리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 특히 운동을 하고 있을 때 그의 육체는 땀을 흘렸다. 그가 허락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뉴스 방송은 다섯 시에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동생 페탄이 그가 일어나는 시각에 맞추어 네 시로 뉴스를 앞당기자 나머지 방송국도 그대로 따랐다. 방송국들은 그가 면도를 하고 목욕을 하고 옷을 입으면서 라디오를 듣는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지극 정성을 떨었던 것이다.
우라니아는 나약한 약자, 트루히요는 잔인한 강자로 대변된다.
우라니아의 분노와 수치심, 치욕은 도미니카 여성 모두의 치욕이고 수모였던 것이다. 트루히요는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 가장 모범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할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란 것은 눈 씻고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 없는 파렴치한 악마의 화신이었다.
사실 작품에서 우라니아는 요사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로 이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주인공이다. 요사는 우라니아를 통해서 잔인하기 그지없던 독재기간 동안 자유를 억압당하고 침묵을 지켜야만 했던 탄압받은 모든 여성들의 상징이며, 독재자에 의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치욕을 당하고 타락해야 했던 도미니카 국민 전체를 대표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 염소(트루히요)는 1961년 5월 30일 산크리스토발로 향하던 중 자신의 시보레 차에서 안토니오, 아마디토, 임베르트, 살바도르, 토니 등등 7인에 의해 고속도로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다. 국민들의 그의 죽음을 축제로 인식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욕심과 국민들의 불신, 도덕성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30년 나라를 공포로 다스렸던 통치자의 허망한 말로이다.
“부귀(富貴)는 누구나가 다 원하는 것이지만, 정도(正道)로써 얻어 것이 아니라면 누리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은 2500년 전 공자께서 하신 말씀이다.
맹자는 군왕(君王)이 갖추어야 할 덕목 가운데 하나로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는 말을 했다. 백성들과 더불어 함께 즐기는 즐거움이야 말로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뜻이다.
정도(正道), 여민동락(與民同樂)
둘 다 위정자(爲政者)가 되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그런데 염소의 축제에 등장하는 독재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독재자들은 절대 여민동락(與民同樂)할 수 없다. 부귀를 그 어느 누구에게도 나눠 줄 마음이 없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이 세상과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듯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대다수의 독재자, 폭군들은 그 종말이 비참하다. 그건 이미 수 천년의 역사가 다 증명을 했다.
정치(政治)는 바르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그들의 어려움을 들어주어 아무런 어려움 없이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보살펴주고 다독거려줘서 그들의 믿음을 얻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백성들 위에 군림하여 그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것이 정치가 아니다.
첫 페이지, 첫 단락에서 ‘우라니아’라는 여성을 처음 대면하게 되었고, 이어서 염소 트루히요, 그리고 암살단 안토니오와 그의 동지들까지 모두 만나게 되었다.
이들을 만나고 나서
‘삶의 문제...? 인간의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삶인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정답이 없는 어려운 문제이고, 평생을 고민해야 할 숙제이다.
그리고 이 작품, 과연 노벨문학상을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는 작품이었다.
예전에 <톰 소여의 모험>과 <삼총사>를 읽고 나서 이 책들 원서로 읽어 보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번역본 보다는 원서로 읽으면 번역자가 아닌 저자의 의도를 가장 극명하게 살필 수 있고, 특히 그가 작품을 쓰면서 단어의 취사선택에 있어서 어떤 생각을 했고, 무엇을 드러내기 위해 이러한 어휘를 사용했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알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 작품 또한 번역서와 원서를 비교해 가면서 함께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작품의 배경이 된 곳 산토도밍고(Santo Domingo)...
카리브 해의 낭만 휴양지.
유네스코에 등록될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이라 한다.
마음 같아서는... <염소의 축제>를 들고 이곳을 직접 방문해서 그들의 자취를 쫓아가보며 작품의 세계에 빠져 보고 싶다.
산토도밍고는 1936~1961년까지 대통령의 이름을 따 트루히요시라고 불렸으나, 그가 암살됨으로써 독재체제가 붕괴되자 옛 이름인 산토도밍고로 환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