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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과 친해지는 법
방현희 지음 / 답(도서출판) / 2016년 9월
평점 :
한국 소설 : 불운과 친해지는 법
2001년에 등단한 방현희의 신작 장편 소설 '불운과 친해지는 법'!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져 가는 요즘. 한 때는 오지랖 넓은 분들이 참견도 많이 했다지만, 이제 누구나 혼밥, 혼술 등을 즐기며 그 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시대가 왔다. 또한 마트 등에서도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적은 양 채소 등을 팔며 이러한 시류에 발맞춰 가고 있다.
누군가를 먹여주고 싶을 때까지만 함께 살면 돼, 누군가를 위해 돈을 벌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를 위해 밥을 해주고 싶지도 않다는 건, 둘이 함께 살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 p. 102
그래도 어느날 뭔가 기쁜 일이 있고, 혹은 슬픈 일이 있을 때 따스이 옆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형진'이 생계를 위해서 그러한 사람들을 겨냥한 함께 밥을 해 먹고 사는 '집밥 먹는 셰어 하우스'를 연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렇게 셰어 하우스에는 인턴인 활발한 민규, 가족과 갈등을 빚고 꿈을 찾아 나온 뮤지션 정우, 밤 근무하는 수의사 호준, 그리고 해외여행이 낙인 혜진과 경비행기 조종하며 조종사의 꿈을 키워가는 수진 자매가 입주하게 된다. 이 여섯 명의 사람들은 처음엔 서로가 많이 낯설었지만 활발한 민규를 위주로 점차 섞여들어가게 된다. 그러던 중, 밤마다 뭔지 모를 것의 소리나 기척을 느끼는 형진. 어딘가 제각각 사연들을 가지고 있는 입주자들은 문제를 일으키며 점점 형진을 불편하게 만들어가는데. 과연 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빚어내게 될까.
몰이해가 고통스러운 것은 그것이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빚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그 몰이해 속에서 구출해준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정우였던 것이다. 정우니까, 수진은 더욱 울음을 그칠 수 없는 것일 테다. - p. 264
형진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것을 고민하며 여자들의 애정을 위해 자신의 위치를 끌어올리고 싶어하는 단순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인간이다. 그는 처음에 자매에게 호기심을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각각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알자 처음엔 자신을 좀 더 돋보이고 싶어한다. 그리고는 곧 자신의 바깥의 욕실을 따로 지으며 알게된 여자, 지우에게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된다. 그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 소설은 애정에 관해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게끔 이성에 대한 호감, 감정 전개, 실연, 그리고 마음 맞은 두 사람이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집 밖에 형진이 지은 '쿨 하우스'는 이러한 세입자들이 감정을 내보이기도 하고, 다른 세입자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감추기도 하는 장소로 이용되며 전개에 도움을 준다.
앙코르와트를 지은 어떤 왕은 다른 세계를 보러 가는 대신 자기의 세계를 크고 넓고 육중하게 만들었다. 이집트의 왕 역시 피라미드를 짓는 대신 로마로 여행을 가고 핀란드로 오로라를 보러 갈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새로운 욕망이 생겨날 깨마다 자기 왕궁에 왕궁 하나를 덧붙였지. 그것이 자기의 세계를 키우는 것이었지. 그러나 지금은 다른 세계를 자기의 발로 밟고 다니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세상이 된 거야. - p. 111
어느 운 나쁜 인간에게는 자기의 선택과 전혀 상관없이, 그래서 운이 나쁘다는 거겠지, 슈뢰딩거의 상자 같은 게 주어졌나 보다. 힘들게 살다가 가까스로 운의 흐름이 상승세를 탄다 싶으니까 그것이 들썩거리는 거다. - p. 119
슈뢰딩거의 상자를 열었어. 이런 순간을 누구도 아닌 내가 겪는 거야. - p. 266
크고 작은 '불운'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챕터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불운'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셰어하우스에 들어왔다고, 따로 나가 살 돈이 없다고 해서 내버릴 수 없는 '애완동물'과 같은 문제점으로 시작해 '가정사'나 '생모'와 같은 굵직한 문제들까지 제각각이다. 그 '불운'으로 인해 그들은 각자 다른 세입자들에게 이해해 달라고 그리고 함께해 달라고 빌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결국 그 소란스러웠던 '불운들'로 인한 소동들은 소설이 끝나면서 모두 대충 일단락이 맺어진다.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했을 법한 일들도 서로에게 기대고, 도움과 조언을 받아가며 서로에게 의지처가 되어간다. 그를 위해 그들은 서로를 위해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낯선 사람들이었을 그들은 가족이 되어간다.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아마도 크고 작은 불운들은 계속해서 일어나겠지. 그래도 그들은 서로에게 기대며 앞으로도 불운들을 잘 해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