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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겨스 - 미국의 우주 경쟁을 승리로 이끈, 천재 흑인 여성 수학자들의 이야기
마고 리 셰털리 지음, 고정아 옮김 / 동아엠앤비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외국 에세이 : 히든 피겨스
가장 최근에 본 영화가 '히든피겨스'였다. 3월 23일 개봉예정인 이 영화가 2월 9일에 최초 시사회로 용산 CGV에서 선보였었는데 운 좋게 보러가게 된 것이다. 원래는 공연을 참 좋아해서 영화를 이 시간대에 보러 가는 일은 드물었는데, 이 작품과 인연이 될 까닭인지 이 날은 일정이 없어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 가게 되었고, 오랜만에 퍽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제 8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 여우조연상, 각색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한 이 작품은 NASA 프로젝트의 알려지지 않은 천재들의 실화를 담은 작품이다. '천재성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엔 한계가 없다.'는 카피문구로 알려진 영화. 이 작품는 1961년에 차별받은 흑인 여성들이 그런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입지를 다져간 이야기를 담았다.
그 시절의 그녀의 업무 규칙 가운데에는 어떤 화장실에 "유색인"이라고 적혀 있는지 알아 두는 것도 있었다. - p. 14
인종 통합 사회의 전문직으로 살아온 나조차 응접실과 회의실들에서 다른 흑인 여자를 보지 못한 경험이 매우 많기에, 인종 분리 정책이 맹위를 떨치던 남부의 일터에서 흑인 여성이 상사에게 자신의 계산이 사람을 달에 보낼 수 있다고 장담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약간은 짐작할 수 있다. 이 여자들의 여정이 내 여정의 무대가 되었다. - p. 14
그런 영화의 원작이 된 이 동명 외국 에세이인 '히든 피겨스' 또한 차별받는 '흑인' '여성' 과학자들에 관해 다루고 있다. 영화와 다른 점은 NASA와 관련된 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부의 총괄기구인 NASA에 편입되기 전의 랭글리 연구소에서부터 영화의 주인공 외의 많은 그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 그리고 책이다보니 한정된 시간 안에 이야기를 담을 필요가 없어 더 포괄적인 사회적 차별에 관한 이야기까지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꼭 나사의 우주선 발사와 관련된 실화를 다룬 것 뿐 아니라 그 시대의 배경과 인종 분리 정책, 그리고 그 정책의 백인들에게까지 불합리한 점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예를 들어 언급 하고 있다. 여자라는 포괄적 범위 안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교통과 관련된 복잡한 인종 분리 법률 때문에 출근길은 더욱 격전지가 되곤 했다. 백인은 버스 앞문으로 출입하고 앞쪽의 백인 구역에 앉았다. 흑인은 뒷문으로 타서 '유색' 선 뒷쪽에 자리를 잡아야 했고, 백인 좌석이 다 차면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그런데 뒷문에는 차장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로 흑인들은 대부분 앞문으로 탄 뒤 백인들을 뚫고서 흑인 구역으로 가야 했다. 그런 뒤 다시 앞쪽으로 비집고 나와서 버스를 내렸다. 그리고 백인이 드물게도 차장이 두 명 있는 버스를 탔다가 버스 뒷쪽으로 가게 되면, 앞문까지 비집고 나가서 내려야 했다. 백인의 뒷문 출입이 법으로 금지됐기 때문이다. 인종 분리 법률이 흑인과 백인을 분리해서 마찰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해도, 실제 효과는 오히려 반대였다. - p. 58
이런 차별이 가장 심화된 곳이 바로 군대와 과학이라는 말을 들어봤다. 현 시대에도 굳이 자격제한이 따로 없음에도 남중-남고-군대-공대 태크를 타서 모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남성 주위 사회인데 시대 배경상 인종차별까지 고려한다면 얼마나 버티기 힘든 곳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런 실력이 아니라 우선 태어난 피로 기대수준이 달랐던 시대에 얼마나 많은 흑인 여성들이 자신들의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는지에 대해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나와있다. 도로시 본, 메리 젝슨, 캐서린 존슨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 시대 동급의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이 직책, 봉급 등에서 얼마나 많이 차이가 났는지, 그 불평등한 사회 차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여자들은 지성을 낫처럼 휘둘러서 낮은 기대 수준이라는 잡초를 제거해야 했다. (중략) 연구 보고서 작성을 위해 특정 엔지니어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여자들도 최종 결과물에 이름을 싣는 일은 드물었다. 엔지니어들은 컴퓨터들에게도 자신들과 같은 인정 욕망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들은 어쨌건 여자였으니까. - p. 125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관한 문제는 언제나 대두되고 있다. 한 단어에 갇혀있는 사람들도 힘든데 인종, 성별까지 중첩된 차별을 이겨내고자 아둥바둥한 그들의 이야기가 억울하면서도 그 차별을 위해 노력한 그들이 참 눈부시다. 저자인 마고 리 셰털리 또한 책에서 역사에서 언급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말하는 부담이 있다고 했는데, 이러한 이야기가 5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밝혀지다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노력으로 인해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영화의 흥행과 함께 각광받게 되었으니 놀라운 성공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이런 두각을 드러내는 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알려지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노고가 영원히 기억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