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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17년 5월
평점 :
중국 소설 : 형제1
모든 가치관과 도덕이 무너지고, ‘돈’으로 표상되는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는 현대 중국 사회의 초상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중국 소설 '형제'를 읽게 되었다. 11년 전 중국 출간 당시 엄청난 논란의 작품이 되었다고 하는 이 소설은 '허삼관 매혈기'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 위화의 신작 장편 소설로 총 2권으로 된 시리즈물이다. 첫 권엔 형, 뒷 권엔 제라고 적혀 형제의 한 이야기를 다른 시점으로 각 권에서 상세히 다루는건가 싶었는데 중국 근현대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두 인물의 생애를 다룬 작품이었다.
1권에서는 형제의 유, 소년기를 그리고 2권에서는 둘의 장성한 시기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1권에서는 형제의 이야기보다 격동의 시대에 따른 어른들의 위치 변화가 눈에 띈다. '이광두'와 '송강'은 성이 다른 것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재혼으로 만나게 된 피가 섞이지 않은 형제다. 이광두와 송강은 서로의 아버지를 어느정도 빼닮았는데, 이광두의 아버지는 화장실에서 여자들의 엉덩이를 훔쳐보다가 똥통에 빠져 죽은 자이며 송강의 아버지는 중학교 교사로 강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이다.
이광두의 친부는 그녀에게 한과 치욕을 주었지만, 송범평은 사랑과 존엄을 주었다. - p. 245
이광두의 아버지가 치욕스러운 죽음을 당하고 이광수의 어머니 '이란'는 수치로 자결을 생각하지만, 당시 뱃속에 이광수가 있었기에 인내하며 부끄러운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런 와중에 그녀를 많이 도와준 '송범평'과 재혼을 하게 된다. 그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로 인해 '이란'은 점점 자존감을 회복하게 된다.
하지만 모든 소설엔 갈등이 있는 법. 모택동(마오쩌둥) 주석의 주도 하에 중국에선 공산통치가 시작된다. 그는 토지개혁을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부유한 지주들, 즉 땅을 소유하고 있고 소작인을 거느린 자들이 대량 숙청이 되었다. 문화 대혁명 시대가 도래한다. 많은 사람이 죄가 있든 없든 그저 지주라는 것 하나만으로 재산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일은 도처에서 일어났고, 한번 낙인이 찍히면 '지주'라는 말만으로 폭력의 대상이 되어 누구보다도 낮은 위치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송범평의 아버지는 지주였다. 송범평은 점점 고통속에서 살아가게 되고, 이광두와 송강은 '새끼지주'라는 말을 들으며 숱한 폭력에 노출된다.
한편 어머니인 '이란'은 병을 갖게되어 송범평의 누이가 있는 지역으로 치료받으러 갔기에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송범평은 갇혀서 폭력을 당하면서도 그녀가 이런 상황을 모르게 하기 위해 편지를 지속적으로 보냈고,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중학생에게 폭력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본 형제가 치욕을 느끼지 않도록 그들 자신을 강하게 여길 수 있도록 교육했으며 아이들이 굶지 않고 자신 스스로를 돌볼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이런 이상적인 남자가 또 있을까. 억울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밝은 성정을 잃지 않고 자신의 가족을 위하는 모습이 눈물겨웠다. 중국사회는 40년만에 시대가 뒤바뀌었는데,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한 가정의 상황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비극적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형제가 함께 이런 상황을 겪으며 피가 섞이지 않았음에도 얼마나 끈끈한 정을 형성해가는지, 그럼에도 어떤 갈등을 겪게 되는지, 어떤 사랑을 하는지 등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격동의 시기를 겪고 나면, 그 시대에 감히 할 수 없었던 말들을 다룬 이른바 '상흔문학'이 나오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는 그리하여 일제강점기, 근현대사를 다룬 이야기가 많으며 세계로 보면 세계대전으로 고통받은 많은 이야기가 각종 컨텐츠로 쏟아져 나왔었고, 또 나오고 있다. 중국에서는 바로 모 주석이 집권했던 문화대혁명 시기를 다룬 문학이 많다. 이 작품도 그렇다. 이웃나라임에도 중국이라고 하면 넓은 대륙, 많은 사람들이라는 단편적인 인상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소설을 통해 근현대 중국 사회에 대해 알게 될 수 있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계급성분, 양식표, 기름표, 의복표라는 단어들이 낯설면서도 그렇기에 새롭고 눈에 박힌다. 읽고나니 양춘면과 삼선탕면이 먹고싶어지는 흥미진진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