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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미 배드 미 ㅣ 미드나잇 스릴러
알리 랜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영미 스릴러 소설 : 굿 미 배드 미
원래도 좋아하지만 여름에는 특히 스릴러 소설을 많이 읽게 된다. 이 시기에 출판된 책이 많기도 하고. 이번 여름도 스릴러 소설을 자주 읽고 있는데 그 중에 특히 눈에 띄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이 '굿 미 배드 미'. 앞으로 더 감탄할만한 작품을 만나지 않는다면 올 여름에 읽은 책들 중 개인적으로 베스트 스릴러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위로 여덟 계단. 그리고 또 네 계단. 문은 오른쪽에 있다. 놀이방. 엄마는 그렇게 불렀다. 사악한 게임을 벌이고 승자는 단 한 명뿐인 곳. 내 차례가 아닐 때면 엄마는 내게 지켜보라고 했다. 벽에 난 작은 구멍으로. 그리고 나중에 물었다. 애니, 뭘 봤니? 뭘 봤어? - p. 10
저자인 알리 랜드는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아동 살해범 로즈마리 웨이트와 그녀의 딸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파리 대왕' 등의 문학 작품을 가미해 집필했다고 하는데 저자 본인이 정신 의학을 전공하고 청소년과 성인 정신 건강 분야에 종사해서 그런지 심리 스릴러 묘사가 참 대단하다. '굿 미 배드 미'가 알리 랜드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놀라울 따름이다.
신고한 걸 용서해, 엄마. 내가 경찰에 알렸어. - p. 11
나는 다시 이야기했다. 그리고 또 했다. 같은 이야기지만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달랐다. 그들에게 모두 말했다. 말하자면, 전부는 아니고 거의 다. - p. 12
열 다섯 살 애니는 아홉 명의 소년소녀들을 살해한 자신의 엄마를 경찰에 신고한다. 보통 작품을 접할 때 초반 진입이 힘든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처음 신고하는 장면부터 시작해 서서히 사실들이 드러나는 장면들이 참 흡입력이 대단하다. 애니의 엄마는 폭력과 분노가 아닌 온화하게 사람들을 조종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자신에게 맡기도록 꾀어내 위로 여덟 계단. 또 네 계단. 그리고 오른 쪽에 있는 문의 '놀이방'으로 아이를 한 명 가두고 놀고 난 뒤 살해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딸인 애니가 벽에 난 구멍으로 지켜보게 만든 후 아이가 죽으면 뒷처리를 맡긴다. 그리고 나면 다시 다른 아이를 데려온다.
엄마의 학대에 무력해져 작은 도우미가 된 애니는 어느 날 9번째로 데려온 아이가 자신이 아는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하지만 결국 그 아이가 죽어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애니는 밀리가 된 뒤 임시로 양부모 심리학자 마이크와 부인 사스키아, 딸 피비가 있는 집안에 맡겨진다.
잠을 이룰 수 없을 때면 양 대신 남은 재판 일수를 세어보았다. 엄마와 나의 싸움. 모두와 엄마의 싸움. 12주 뒤 월요일. 88일 남았다. 순서대로 세고 거꾸로도 셌다. 눈물이 날 때까지 숫자를 세고 눈물이 멈출 때까지 또 세며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사이 엄마를 그리워했다. - pp. 21 - 22
재판을 받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 엄마다. 나는 그 점만 기억하면 된다. - p. 69
항상 엄마가 이겼다. 하지만 이제 엄마가 아니라 가발 쓴 남자가 판사다. 그리고 열두 명이 더 있다. 이번에는 엄마가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그들이 한다. - p. 274
이야기는 재판 전후로 굿 미 밀리가 되고싶어하는 배드 미 애니의 심리를 상세하게 보여준다. 사랑과 폭력이 함께하면 혼란을 느낀다는 책의 내용처럼 애니는 엄마를 신고하고 나서도 엄마의 환청과 환각을 보며 엄마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은 위탁 가정의 딸 피비의 악의를 받아내며 자신은 사랑받기 힘든 사람이라고 스스로 되뇌며 더욱 잦은 빈도를 보인다.
사이코패스의 뇌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 나는 내게 주어진 확률을 생각해보았다. 80퍼센트가 유전이고 20퍼센트는 환경적 요인이다. 그러니 나는, 100퍼센트다. - p. 104
내 실체가 대중 앞에 드러났다. 어깨를 움츠렸다. (중략) 하지만 그들은 내가 엄마를 얼마나 닮았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뉴스에 엄마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재판이 열리면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한층 더. 어디를 가도 엄마가 보이겠지. 어디를 가도 내가 있겠지. - p. 59
피비 또한 모래성같은 가정에서 엄마의 사랑을 삐뚤어진 모습으로 갈구하는 묘사로 인해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느낌을 받으며 이야기를 한층 더 슬퍼진다. 착한 나인 밀리로 받아들여지고 싶었지만 마음을 준 단 한 친구에게 한 번 외면받고, 의지하게 된 선생님과 위탁가정 모두 자신을 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절감한 애니는 결국 계속 감춰왔던 자신의 비밀을 독자들에게 슬그머니 보여준다.
난 항상 엄마에게 애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밀리야. 내 안의 샴쌍둥이가 전쟁을 벌였다. 착한 나. 나쁜 나. - p. 322
하지만 내 심장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모양이라는 말은 엄마가 맞았다고 말해줄 것이다. 신기하게 뒤틀린 형태니까. 엄마가 만든 형태다. 내가 살려고 그렇게 뒤틀었다. - p. 399
엄마가 한 짓, 엄마가 내게 시킨 짓이 내 가슴을 산산조각 냈다. 엄마가 날 슬프게 했어. 엄마가 날. 엄마가 그랬다고. 바로 엄마가. 내게. 그래서 난 아주 많은 비밀을 갖게 되었다. 난 내가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감응성 정신병. 밀접한 두 사람이 유사한 정신 장애를 지니는 것. 부정당하고. 거짓말하고. 엄마, 난 내가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줄 알았어. 그런데 난 그냥 엄마와 똑같아. 조금 나을 뿐이지. 더 이상 착한 척하는 데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잡히지 않는 것에 흥미가 생길 뿐. - pp. 400-401
자격이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을 보여주는 '굿 미 배드 미'. 마지막 결말까지 참 잔혹하고 슬픈 이야기였다. 엄마와 다르기만을 바라며 엄마에게서의 독립을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엄마를 그리워하고 누군가에게 자신을 온전히 인정받고 싶어하며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이 혼란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눈치 빠른 아이는 태생이 그렇거나 그런 환경에서 자란 것. 두 가지 경우라고 하는데 애니가 자신과 접촉하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빠르게 눈치채고 분석하는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놓을 수 없던 충격적이고 강렬한 작품이었다. 여름에 읽을 도서로 강력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