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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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 : 달의 영휴


 

  올해 7월 일본 제 157회 나오키상 수상작으로 발표된 사토 쇼고의 일본소설 달의 영휴를 보았다. '달이 차고 기울 듯 당신에게 돌아올게'라는 문구로 의미심장함을 보여준 소설이기도 했는데 일본에서는 굉장히 각광받고 있는 소설로 많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로 34년째 글을 쓰고 있는 사토 쇼고가 오랜 구상 끝에 낸 작품이라고.


  달의 영휴. 달이 뜨고 지는 것을 하나의 순환하는 과정으로 보고 사람의 죽음과 탄생을 이에 비유한 작가는 '오사나이'와 '루리'의 첫 대면 혹은 재회라고 할 수 있는 장면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것이 현재로 둘은 과거의 오사나이 딸인 '루리', 그리고 그의 아내의 과거를 회상하듯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킨다.


칠보의 하나. 청색의보석. 루리도 하리도 빛을 비추면 빛난다. - p. 134


  오사나이의 딸 '루리'와 현재 만난 여배우 미도리자카 유이의 딸 '루리' 사이에는 과연 어떤 접점이 있을까. 이를 생각하며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 사건이랄지, 이야기에 얽혀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사나이와 루리가 공통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미스미도 사건의 징검다리 중 한 인물이다. 이 인물은 마사키 루리와 연결되어 있는데, 이 루리가 모든 이야기의 첫 단추나 다름이 없다.


잘못이라는 것도, 정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도 본인은 알았다. 알면서도 허위의 그 이미지를 미스미는 놓지 않아따. 루리 씨의 죽음을 자살로 해석하는 것. 죽음을 선택한 그녀로부터 '쓰이지 않은 유서'로서 메세지를 받았다는 것. 마지막 밤에 남겨진 말. 나는 달처럼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 - pp. 187-188


  마사키 루리와 미스미의 사랑이 모든 사건의 단초가 되고,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보고 싶다는 집념으로 나무처럼 자식을 생산하는 순환과정에서 벗어나 달이 차고 기우는 듯한 달의 영휴의 과정과 같이 루리는 계속해서 다른 루리로 나타난다. 마사키 루리에서 오사나이 루리로, 그리고 고누마 노조미인 루리로, 그리고 마지막인 미도리자카 루리로. 이 과정에서 고누마 노조미였을 때는 마사키 루리였을 적 남편을 만나 그가 쇠락하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도 하고, 오사나이 루리였을 때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강한 영감을 남기기도 한다.


  루리의 생이라는 큰 줄기 안에서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도 함께 보여지는데다가 과거와 현재의 불규칙적인 전개로 인해 불편할 만도 하지만 이야기를 이해하는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그들의 대화는 점차 퍼즐처럼 맞춰져 루리 뿐만 아니라 다른 전생자에 대한 이야기 또한 암시한다. 사고로 허망하게 떠나버린 애틋한 사람을 위한 이야기같기도 한 사토 쇼고의 일본소설 달의 영휴. 긴장감이 가득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끝까지 집중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여운있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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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5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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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 :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제1회 미시마 유키오상 수상작이자 파격적인 언어와 신랄한 상상력으로 문단의 이단아라고 불리는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소설. 절판이 되어 구하지 못하게 되자 전무후무한 헌책방 순례 열풍을 일으켰던 문제작이라는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야구가 사라진 세상에서 야구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괴짜들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들의 모음집이다.


책상 위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해보겠다. 그 일이란 책꽂이에서 몇 권의 책을 꺼내 주의 깊게 읽다가 야구에 관한 중요한 기록이 있으면 그것을 공책에 만년필로 옮겨 적는 것이다. - p 15


야구 자체를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오히려 야구에서 파생된 2차 창작품인 야구소설은 굉장히 즐기는 편이기 때문에 일본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해서 굉장히 기대가 많았다. 야구가 사라진 세상에서 야구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니 이 또한 얼마나 흥미로운 소재란 말인가. 쉽게 읽어보지 못할 소재인데다 일본의 야구 열정도 대단하다고 들어왔는데 거기에 집착이라는 단어까지 봤으니 진짜 대단한 열정소설 하나 나왔구나 싶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주의해. 귀를 기울여. 이 세상에서 야구와 관계없는 건 하나도 없어. 나는 귀를 기울이고 눈을 크게 떴다. 아아, 얼마나 나는 무지했던가. 이 세계는 이렇게나 야구로 가득 차 있었는데. - p. 111


이상의 작품을 읽었을 때 당시 사람들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음에도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고민하게 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책을 다 읽고 느낀 감정은 그저 난해함 뿐.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모조리 읽었음에도 내가 소화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 이건가. 뭐가 재미있는지 명확하게 이야기하지도 못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자꾸 찾게 되는 이 아리송함을 즐기는 건가 생각이 들더라.


사랑은 사라져도, 야구는 남는다. - p. 221


많은 괴짜들이 등장해 야구라는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야구에 관한 기록을 찾아 모으고 프란츠 카프카가 포수라고 하는 등 여러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 이야기는 야구를 잘 알아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주 많다. 야구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야구 소설이라기보다는 야구를 소재로 한 언어유희 소설에 가깝다. 그러므로 야구를 전혀 모른다고 해도 상관 없이 볼 수 있다. 어차피 우리가 알고 있는 야구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가 아니니까. 책을 읽고나니 저자가 말한 '많은 책방에서 이 작품이 스포츠 코너에 있는 것을 보았지만 불평할 생각은 없다'라는 말에 피식 웃게 된다. 파격적인 언어 해체와 전위적인 언어유희, 난해함 등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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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밀리언 특별판) - 20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8.0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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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처세술 :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에이트포인트에서 멋진 책이 재출간되었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라는 책으로 20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를 특별기념해 재밌고 독특한 일러스트를 함께 담아 리커버 특별판으로 만든 작품! 협상 노하우가 담긴 책으로 2012년 상반기를 휩쓴 직장인 필독도서 1위에 빛나는 책이라고 한다. 한 수강생의 강의스케치가 수록되어 더욱 특별한 특별판! MBA 과정 중 가장 가치있는 수업이라는 평이 자자했다는데 다이아몬드의 은퇴로 들을 수 없는 강의를 책으로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해서 즐겁게 책을 들게 되었다.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사람이 중요하다.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요인은 무엇일까! 스튜어트 다이아몬드는 모든 협상에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요구, 협상에 성공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라고 이야기한다. 한 쪽만 기분좋은 것이 아니고 양쪽 모두 감정이든, 이익이든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다이아몬드의 협상법은 실상을 알고 나면 그리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본인 스스로가 말했다시피 복잡하지 않은 그 협상법은 상대를 설득하는 일련의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게 작용한다고 한다. 협상은 절대 상대방을 이기려 들어서는 안 된다. 협상에 임하는 태도가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래서 다이아몬드는 기분나쁘고 컨디션이 별로일 때는 아예 협상을 시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솔직함'이다. 솔직하게 말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 자체가 협상 전략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태도가 공격적일 경우가 있다면 미리 상대방에게 양해하는 편이 좋다고 말하고 있다.


나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성공사례를 만들어보자.
이런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를 읽은 후 나 또한 성공사례를 만들고 싶어 근질근질해졌다. 때마침 얼마 전 카톡에서 친구가 공연을 한다는 것을 알리며 최근 스윙댄스라는 취미가 생겼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일종의 동호회 개념으로도 볼 수 있고 강의 개념으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7주차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하던데 다이어트를 지속하고 있는 나에게 굉장히 흥미로운 취미였다! 최근 내 가장 시간을 많이 들이는 취미인 공연에 점차 시들해져가고 있던 참이라 어쩐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스윙댄스. 예전에 스피닝 등 활동적인 운동이 질리지 않고 잘 맞았던 경험 덕분에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남녀가 서로의 허리를 잡는 등 스킨십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남자친구가 싫어할 것이 확실했다. 유일한 해결책은 함께 하는 것이었는데, 아쉽게도 남자친구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활동적인 무언가를 하는 것을 질색하는 성격. 그러나 같은 취미를 가지고 싶기도 했고 스윙댄스를 배워보기도 하고 싶던 나는 이 책의 협상법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나는 '상대의 표준'을 이용하기로 했다. 상대의 표준이란 다이아몬드의 정의에 따르면 '객관적인 표준'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정한 표준'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이 예전에 한 말이나 약속 등을 말하는 것으로 이 표준을 근거로 협상을 제시하면 공적인 협상도 한결 수월하게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웬만해서는 나의 제안을 잘 받아주지만, 오히려 가장 가깝기 때문에 자신의 '선'을 넘었을 경우에 단호하게 거절할 공산이 큰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양쪽이 모두 수긍하는 표준을 활용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남자친구가 '같이 다이어트를 하자'고 했던 것을 이용해 차분히 설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 말을 바로 꺼내면 단칼에 거절당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타이밍도 함께 궁리해야 했다. 다이아몬드가 말한 '프레이밍'을 활용해야 했다. '프레이밍'이란 협상에 관한 제안을 제시할 때의 표현방법을 말한다. 어떻게 협상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엔 신기하다는 듯 친구가 보내온 영상을 보여줬다. 상대방이 이 영상에 대해 얼마만큼의 선호가 있는지를 알아야했고, 또 싫어한다면 어느 정도로 싫어하는지를 알아야 제안을 어떻게 할 지 대책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상을 보여준 후의 반응은 예상대로 미적지근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해야 한다'는 제안을 처음부터 제시하기보다는 그 친구의 '다이어트 효과'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그러자 남자친구는 운동법보다는 그 효과에 좀 혹한 기색이었다. 한 달 전부터 함께 다이어트 중인데 정체기 중인데다가, 또 추운 겨울이라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 제한되었다는 계절적 타이밍이 의도치 않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연습은 홀에서 하는 것이며 일주일에 1번만 나가도 되고, 3일 모두 나가도 된다는 운동법을 어필했다. 공연은 원하는 사람만 하는거라 안 해도 된다는 것 까지도! 그랬더니 슬슬 남자친구도 내가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할 생각이라는 걸 눈치챈 기색이었다. 한참 전에 '댄스 다이어트 하자!'고 했을 때는 그런거 싫다며 인상까지 찌푸리던 사람이 이번엔 자신의 성향을 이해하고 고심해서 내가 접근하자 본인이 스스로 '생각 좀 해보자'라고 말을 했다. 큰 진척이었다.


이 상황에서 생각하지 말고 지금 등록하자고 바로 말하면 오히려 협상 자체가 엎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여기서 한 발 물러서서 며칠 잠자코 있다가 재협상을 시도해보았다. 장소와 시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내가 보던 공연을 줄여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사람 많은 곳은 싫어하는 건 알지만 단 7주간의 과정이니 추운 겨울동안만 같이 해보고 적성에 맞으면 다음 단계로 또 등록하자고 솔직하게 말해보았다. 같이 다이어트를 하는 상황에서 정체기가 온 상황을 언급하며 정체기를 빠르게 넘어가고 싶다는 우리 둘의 욕심을 언급했음은 물론이다. 그 결과 나는 드디어! 긍정적인 대답을 얻게 되었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대답을 유도했는데 다른 결과를 얻어낸 것은 역시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배려와 상대방도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언급하는 등의 접근하는 방식,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신뢰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였다.


협상이라고 하면 굉장히 어려운 일처럼 들리지만 사실 일상에서도 협상은 늘 이루어지고 있다. 시장 안에서의 가격 흥정, 아이를 달래는 법, 친구와의 갈등, 연인과의 다툼, 더 나아가 회사에서의 제안, 동아리 신설 등!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한번도 협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갈등이 싫다며 포기하는 일이 잦은 사람이라면 꼭! 이 책을 보는 것을 권한다. 어쩌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책! '단 하루도 이 책에서 배운 것을 사용하지 않은 날이 없다'는 이 책을 자연스럽게 협상의 성공률을 높이고 싶은 모든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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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거탑 - 소설 방송국 기업소설 시리즈 4
이마이 아키라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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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 소설 : 유리거탑




지난 9월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에서 나온 기업소설시리즈 중 '플리태넘 타운'이라는 일본 기업소설을 아주 인상깊게 읽은 바가 있다. 그 때 기업소설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에서 그 전에 나온 '유리거탑'으로 다시 한 번 기업소설에 입문하게 되었다. '유리거탑'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소설은 NHK의 '프로젝트X 도전자들'이라는 실제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한 저자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실화 속 도전자들의 이야기. 실제 있었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국내에도 2002년에 '프로젝트 X의 도전자들'이라는 이름으로 도서가 나온 적도 있었다. 프로젝트 X는 엄청난 드라마도 아니고 엄청난 리더나 혁신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어려운 시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 온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였기에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과 감성을 울린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이면에는 그 사람들의 땀과 노력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마이 아키라와 디렉터들이 있었다.


스 씨, 부탁합니다. 나 좀 도와주십시오.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 이번에 찍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만한 게 사막 저 편에 있습니다! - p. 13


소설 유리거탑에는 그런 이마이 아키라의 소설 속 분신이나 다름 없는 '니시 사토루'가 있다. 지난 이마이 아키라의 노력과 업적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소설의 첫 부분에서는 실제 이마이 아키라가 일본 문화청 예술작품상을 수상하게 만들었던 걸프전에 대한 '타이스 소령의 증언'을 취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가 취재 거절을 전면에 내세운 노부부를 어떻게 촬영할 수 있었는지, 또 타이스 소령(소설 속 더든)에 대한 다큐는 어떻게 찍을 수 있었는지 놀라울정도의 열정으로 생생하게 묘사한다.


꿈은 이루어진다. 운명은 노력하는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역경 속에서도 길은 반드시 열린다. - p. 303


니시 사토루는 당연한 수순과도 같이 이마이 아키라처럼 문부성에서 주최하는 예술제 대상을 타고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예술제 금메달 수상 디렉터가 된다. 그런 니시 사토루는 '사라진 에이즈 보고서'와 같이 많은 작품을 만들고, 수많은 상을 거머쥔 채로 디렉터에서 프로듀서로 전향하게 한다. 본인과 같은 열정을 가진 디렉터들과 함께 열정을 무기로 내세워 한편한편 전력을 다해 만들어낸 챌린지X의 작품들. 처음에는 한자리수로 전혀 보잘 것 없는 시청률을 보였으나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은 입소문을 타고 두 자리수 대로 진입하더니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이루어낸다.


그렇게 챌린지X는 여러 분야와 얽혀 제2의 수익까지 창출하게 되고 전일본TV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는다. 프로듀서인 니시 사토루 또한 그 인기를 함께 거머쥐며 최단기간에 이그젝티브 프로듀서까지 올라가는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된다. 소설 속 전일본TV의 회장에게 눈길을 끌어 그의 라인으로 승승장구하며 야망과 꿈을 불태우는 니시 사토루.


저 멀리 전일본TV협회 빌딩이 보였다. 전에 이 테라스에서 저 빌딩의 정점을 향해 야심을 불태웠던 날이 떠올랐다. 빌딩은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빛났다. 저 탑에 살면 예리한 유리 파편에 마음을 베인다. 유리에 비친 애처롭고 일그러진 자신이 보였다. 한번 탑을 떠나면 다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유리 갑옷에 몸을 감싸고 타자를 거부한다. 니시는 테라스에서 바라본 유리 탑이 산산이 부서지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빚어낸 아시아의 괴물은 결코 스러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간절한 소망과 온갖 추문까지 전부 집어 삼키고도 끄떡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니시 사토루는 미동도 없이 우뚝 솟은 유리 거탑을 노려보았다. - p. 406


그의 도전과 열정에 대한 이야기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자 이번엔 그를 음험하게 적대하는 세력들이 불쑥불쑥 복선으로 등장한다. 원래 같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홀로 치고 올라가면 주위가 그를 끄집어 내린다는 말이 있듯 혼자 저 위까지 올라가자 그의 성공을 질시하는 무리들이 그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공작을 하기 시작한다.


기업문화에 정치란 빠질 수 없는 필요악이다. 그리고 니시 사토루는 그런 음험한 정치의 세계에 대처하기엔 너무나 대쪽같고 물정을 몰랐다. 회장라인이었던 니시 사토루가 라인이 무너지고 나자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빠져든다. 그는 챌린지X라도 지키고자 했지만 한번 파멸의 길로 들어서자 그것마저도 요원한 일이 되고야 마는데...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람들의 감동스토리를 전하던 니시 사토루.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은 그 신념을 지키지 못하고 자신을 잃고 점차 건강까지 나빠진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결국 이마이 아키라의 내부고발 소설과 다름이 없다. 니시 사토루의 대부분은 본인의 이야기이며 소설 속 전일본TV란 NHK를 대체하는 말이다. 걸프전의 더든은 타이슨 소령이며 그 외에도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을 여러 부분에서 눈치챌 수 있다. 거대 기업에서 이런 부조리는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일까. 회사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하는 직원들이 한 사람을 추락시키기 위해 벌이는 음험하고 어두운 이야기가 읽는 내내 소름끼치게 만든다. 순수했던 열정은 공작으로 인해 허무하게 스러지고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그 프로그램을 만들던 사람 역시도 엉망진창으로 망가져간다.


또한 언론이 무언가를 무너뜨리기 위해 사실을 어떻게 은폐하고 어떤 식으로 정보를 날조하는지 무섭도록 현실감있게 눈 앞에 묘사가 되어 보여진다. 인간만이 정치를 한다는데 어떻게 이렇게 누군가에게 가혹한지. 그 것의 원인이 실수도, 무능도 아닌 그저 그 사람에 대한 시기와 질투라는 점이 더욱 씁쓸하고 또 안타까워진다. 아이드카(attention(주목), interest(흥미), desire(욕망), conviction(확신), action(행동)의 5단계를 거치는 소비자의 구매 심리 과정)와 같은 용어도 알 수 있던 굉장히 인상적인 기업소설 '유리거탑'. 현실과 픽션을 적절하게 섞어 몰입력이 대단했다. 기업 속 부조리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강력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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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집
소피 골드스타인 지음, 곽세라 옮김 / 팩토리나인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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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래픽노블 만화 : 여자들의 집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최고의 그래픽 노블에 수여하는 '이그나츠 어워드' 수상작이라는 '여자들의 집'을 보았다. 작년 여름, 프랑스 소설이었던 '남자를 포기한 여자들이 사는 집'이라는 책을 보았더란다. 그 책은 남자들에게 상처를 받았으나 결국 사랑을 원하던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그 책과 비슷하려나 싶어 읽게 된 이 책은 한 남성 외계인과 4명의 여자들의 질투, 배신, 집착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느 우주 행성인 미개척 행성 마푸에 수녀, 혹은 절제가 미덕인 사회에서 살아온 것 같은 네 여자가 도착한다. 그들은 '제국은 가족이다', '우리는 봉사하러 온 것이다', '전통은 힘이다', '노동이 곧 목적이다' 라는 식의 말로 교육을 받아온 듯한 여성들이다.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식민지 개척을 하러 행성에 도착한 여자들은 거기서 4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 남성 외계인, 자일 딘을 만나게 된다.

 

마푸에서 이전에 왔던 개척팀들은 모두 연락이 끊겨 행성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 그녀들은 이 곳에서 7년이나 살았다는 그에게 정보를 어느정도 의존하며 생활을 하게 된다. 제국이 내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녀들은 외계인들을 교육시키려고 노력한다. 외계인들 중 수컷은 굉장히 폭력적이고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에 그들이 교육시키려고 하는 외계인들은 자일 딘처럼 눈이 4개인 여성 외계인들이다. 네 여성은 그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이런 저런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여성들만 있는 곳에 있는 단 개체의 남성. 그것도 금욕적인 세계에서 살아온 여성들이라니 이미 굉장히 흥미로운 설정이다. 당연히(?) 그들 중 한 여성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게 바로 리브카. 성에 억압적인 것으로 보이는 제국에서 살아온 여성 답지 않게 리브카는 굉장히 욕망 충실형 여성이며 그래서 자일 딘에게 굉장히 호감을 가지고 그를 유혹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자일 딘은 모푸 병에 걸린 시라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이 설정은 제국에서 25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미푸에 갇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그들에게 감정을 폭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다.


한편 어딘가 수상쩍어보이는 자일 딘은 원주민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있었다. 그런 자일을 발견한 시라이는 리브카처럼 그에게 어느 종류의 호감을 느끼고 있던 만큼 복잡미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렇게 셋이 묘한 감정을 자아내는 중 원주민들에게 일종의 모성애를 느끼고 있던 키지 또한 안 좋은 쪽으로 변화하게 된다. 시라이를 지키기 위한 자일의 영역표시가 키지가 애정을 가지고 돌보던 자자를 변화시켰기 때문. 이 모든 상황은 안 좋은 타이밍을 맞아 폭발적으로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굉장히 술술 읽히며 폭력적 학대와 방관, 그 안에서의 일그러진 모성애, 남성과 여성, 지배와 피지배, 사랑과 욕망, 질투, 등과 관련된 다양한 종류의 충격적 결말을 보여주고 있는 사이코섹슈얼 스릴러 '여자들의 집'. 만화와 소설의 경계에 서 있는 어른들의 만화라는 그래픽 노블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철학적인 만화였다. 읽는 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놀라웠던 강렬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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