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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기생충 - Novel Engine POP
미아키 스가루 지음, 시온 그림, 현정수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 그 겨울, 그는 너무 늦은 첫사랑을 경험했다. 상대는 열살 남짓 어린 소녀였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실업 중인 청년과 벌레를 사랑하는 등교 거부 소녀.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 된 것이 없었고, 그렇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사랑이었다. - p. 6
세상엔 참 재미있는 소재가 많습니다. 그렇게 많은 작품을 접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새로운 소재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삶이 흥미로운지 모르겠어요. 미아키 스가루의 일본소설 사랑하는 기생충이 그렇습니다. 소재가 기생충인데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해괴한가요? 기생충을 사랑한다는 건지, 아니면 사랑을 하는 기생충을 이야기 한다는 건지. 그런데 왜 표지에는 여자아이가 그려져있는지.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그야 말로 물음표만 가득했는데요. 뭐.. 좀 오글거리려나 싶었는데 예상외로 반전에 반전이 이어져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 그는 보건실의 나날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슬슬 꿈에서 깨어나도 좋을 무렵이다. 천천히라도 괜찮다. 조금씩이라도 괜찮으니 이 벌레 먹은 세상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 p. 279
이 기생충이 실재하는지는 모릅니다만 어쨌든 미아키 스가루의 사랑하는 기생충에는 쌍자흡충이라는 기생충이 있습니다. 얘는 자웅동체이지만 자가수정하지 않고 파트너를 찾아 교접하는 요상한 개체입니다. 그것도 파트너를 따지지 않고 태어나서 처음 본 상대와 결합하고 두 번 다시 서로를 놓지 않으며 억지로 떼어놓으면 죽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지면 24시간 안에 눈알을 버려 장님이 된다고 하죠. 너무나 해괴하고 로맨틱하지 않나요? 이 개체는 잉어에 기생하는데 잉어는 일본어로 사랑과 발음이 같다고 해요. 사랑에 기생한다는 말이 되어버리죠. 그야말로 사랑에 이상하게 작용하는 셈입니다. 근데 이 기생충이 사람에게 기생한다면..?
○ 인간은 머리만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사랑하거나, 귀로 사랑하거나, 손끝으로 사랑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벌레'로 사랑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다. 그 누구도 불평하지 못할 것이다. - p. 327
주인공인 코사카는 결핍된 인물입니다. 어렸을 적 엄마에게 학대같은 교육을 받고, 마지막 1달 간은 이상하게 맹목적인 애정을 받았죠. 그리고 그 다음 엄마는 자살해버립니다. 그 뒤로 결벽증이 생겨 타인과 접촉을 할 수 없게 되었어요. 아주 심한 상태로 직장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이직을 반복하고 있죠. 그런 어느 날 한 멀웨어를 접합니다. 멀웨어 쉽게 말하자면 컴퓨터 바이러스 같은 건데요. 세상이 종말된다는 멀웨어를 받은 코사카는 이상하게 위안을 받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신도 이런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죠. 근데 이 쪽에 재능이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멀웨어를 만드는 것이 삶의 보람이 되었을 무렵, 그 사실을 안 인물에게 협박을 받는거죠.
○ 하지만 벚꽃잎이 흩날리는 연못을 헤엄치는 동안, 그 모든 일이 점점 상관없어졌다. 백조는 마지막에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독점했으니까 잘됐다고 생각했다. - p. 338
그렇게 만나게 된 사나기. 사나기는 시선공포증이 있는 인물입니다. 그 때문에 등교 거부를 하고 이상하게 기생충에 집착하죠. 결벽증과 시선공포증으로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는 두 사람이 만나, 이상하게도 서로의 증상이 완화되어갑니다. 게다가 서로 이끌리죠.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냥 뭐 매력도 모르겠고, 왜 증상이 나아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사랑이 만병해결책 같은 소설적 장치이거니, 생각하고 있으면 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니 읽는 입장에서는 반전에 반전이 계속 나오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구요. 의외로 굉장히 모든 것이 세심하게 짜여져 흥미진진하던 미아키 스가루의 일본소설 사랑하는 기생충! 영화로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