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진 새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가로지를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오늘 새가 팩스기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몹시 기뻤습니다!
감사합니다! 라이너 쿤체.

천 마디를 갈음하는 위로의 말이었습니다. 시인 스스로가 어려서부터 몹시 병약했고, "남들과 발맞추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분입니다. 지금도 작은 체구에, 불면 꺼질 듯 몸이 가벼우신데 그 남


시는 메타포를 통해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는 것이 있지요. 사람의 마음속을 오가는 것, 시인은 그얽힘, 착종을 들여다보고 헤아리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젊은, 그러나 깊어진 눈길로 더 자신을 들여다보던 즈음의 어느 밤, 어스름한 달빛 속을 거닐며 시인은씁니다.

달에게

너 다시 수풀과 골짜기를 채우는구나
고요히 안개의 광휘로
너 마침내 다시 한번
나의 영혼마저 모두 풀어놓는구나

너 나의 벌판 위로 펼치는구나
어루만지며 네 눈길을
친구의 눈처럼 온화하게
내 운명 위로
기쁨의 시간이며 슬펐던 시간
그 모든 여운을 나의 마음은 느낀다
나는 거닌다 기쁨과 고통 사이
고독 속을
흘러라, 흘러라, 강물아!
결코 나 즐거워지지 않으리니
그렇게 장난도 입맞춤도 사라진다
사랑의 맹세 또한 그러하리.
하지만 나 한 번 소유하였더라
그토록 값진 것을!
고통 속에서도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을!
철철 흘러라, 강아, 골짜기를 따라

그침도 멈춤도 없이
철철 흘러라, 내 노래에다
선율을 넣어다오
네가 겨울 저녁
성난 듯 넘치거나
봄의 찬란함 에워싸고
어린 꽃봉오리 솟거든.
행복하여라. 세상 앞에서
증오 없이 자신을 닫는 이
한 친구를 가슴에 안은 이
더불어 즐기는 이
사람들이 알지 못해도
혹은 유의하지 못해도
가슴의 미로를 지나며
어둠 속에서 오가는 것
그것을 더불어 즐기는 이.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읽어나가던 시 한가운데서 부딪쳤던 한 구절의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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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 있음과 호기심

괴테는 긴 생애 동안 참 많은 일을 했고, 그 일에는대개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언제나 열려 있었고,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직된 가운데서 나의 안녕을 찾진 않겠다.
전율은 인간의 최상의 부분,
세상이 제아무리 인간에게 그런 느낌을 쉽사리 안 줄지라도
감동되었을 때, 엄청난 것을 가장 깊이 느끼지.

위의 인용은 『파우스트의 한 부분인데요, "전율은 인간의 최상의 부분Das Schaudern ist der Menschheitbestes Tell"이란 말이 나옵니다. 굳어지지 않겠다는 파우스트의 생각이 드러날뿐더러 괴테 자신에게도 매우 중요한 단언이 담긴 구절입니다. 

는 것, 즉 놀라며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고 받아들일수 있는 열려 있음을 인간이 지닌 ‘최상의 부분으로보는 것이지요. 괴테는 이를 파우스트가 가진 추동력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어떤 나이든, 어떤 상황에서든 괴테에게는 세상과사람과 사물에 대해서 전율을 느낄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유연하게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았고, 삶의 어느 시기든 자기 자신을 넘어섰고, 그럼으로써 세계문학사에도 새로운 한 시기가 열렸습니다.

『파우스트』 큰 사람이 남긴 큰 선물

가끔 강연을 나가면 질의응답 시간에 파우스트를읽어도 무슨 말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잘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네, 파우스트는 이해하기 쉬운 책이 아닙니다. 짧은 시간 동안 내용을 전달하려고 하니 제가 늘 쉽게 쉽게 이야기해보려 하지만, 누군가 60년 동안 쓴 작품을 내가 단사흘 만에 다 이해해보겠다 하는 게 좀 어불성설이기도 하지요.

‘무엇을‘보다 ‘어떻게‘

눈앞이 캄캄하던 젊은 날,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하는가는 생각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다만 어떻게 하느냐가 좀더 중요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굳이 새로 다른 일을 시작하지 않고, 하던 일을 묵묵히 계속, 성심껏 해왔습니다.
당연히 어느 정도 헤매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무엇을 하면 좋을지, 그게 득이 될지 주변을 두리번거릴 시간에 하나를 꾸준히 잘 해보는 방법도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제가 늘 비유하는데요, 산에 올라가는 것과 비슷합

더 쉬운 일은 없어요. 어떤 일을 해도 산 하나를 넘는 고비는 있는 것인데, 우리가 산을 넘으려면 저 산이 좀 쉬울까, 이 산이 좀 쉬울까 하고 둘러보면 안 될 일이고요. 어떻게든 바로 이 눈앞에 있는 산등성이를꼭 넘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힘든 것이거든요. 
그래서 이거 할까 저거 할까, 이게 더 좋을까 저게 더 좋을까 너무 재는 것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것을 믿고, 쭉 가보기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일을해도 힘든 점은 있으니 산 하나 정도 오르는 공은 들여야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힘이 부칠 때 적어도이건 내가 좋아서 택한 것이라는 마음가짐이라도 있어야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도돌이표를 하나 치자면, 무엇보다도 바르게살아야 됩니다. 여기저기서 수도 없이 이야기했습니다.
바르게 살면 큰일날 것 같고, 무슨 수를 써야지만 손해 안 볼 것 같지요? 아닙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도 살아지고, 작은 결단들에서 언제나 선한 결단 쪽을 택해서 묵묵히 가노라면 그것이 쌓여 마지막에는 무엇이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생각합니다.

제가 소망하는 건 다만,
제 존재에 가치를 두는 참 많은
친구들에게 차후에도기쁨이 되고 유익하게 살겠다는 것뿐
더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괴테의 말입니다. 제 말 아니고요. 이 글을 읽었을때, 마치 마음을 들킨 것 같았습니다. 스스로는 정리를 못 하는 말을 괴테가 이렇게 선명하게 정리해두었네요. 이제 와서 찾을 명리나 개인적 소망 같은 것은없습니다. 괴테 전집』은 혼자 읽기가 워낙 아까워서좀 전하고 싶어서, 남겨두고 싶어서 무리하고 있고요.
아직 갈 길이 멀다보니 하늘에서 거기까지는 좀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이든 귀하게 여기는 일여기저기서 괴테에 대해 강연을 하다보면, 많은 분들이 어떻게 하면 바르게 살 수 있는지 제게 묻곤 합니다.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살 수 있을까요? 사실 저

베푼다는 게 굉장한 것이 아닙니다. 
옆사람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질 때 사회가 그만큼 더 융화되는 것이고 작은 것이라도 누군가에게 나누어줄 때,
그리고 진정한 마음으로 사랑할 때 스스로가 오히려풍요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괴테가 내리게 한 결론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2"리벤 벨트Lieben belebt."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사랑이 살린다"라는 뜻입니다. "belebt"는 죽어 있는 걸 살리는 것인데, 괴테의 그 많은 말 중에서 단 두 단어인이 문장이 참 중요해 보여 제가 자주 이야기합니다. 그방대한 『파우스트』를 다 읽은 후에 결국 남는 것도 사랑이란 단어입니다. 독일 사람들이 공자를 번역할 때인을 사랑이라고 번역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다른 단어가 없을까 하고 제가 열심히 생각해봤는데, 또 『논어』도 다시 읽어보았는데 정말 사랑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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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ㅣ 페미니스트 크리틱 1
김은실.권김현영.김신현경 외 지음, 김은실 엮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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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재구성, 여성의 변화 그리고 저출산이리스 라디쉬(Iris Radisch)는 "지금 이 세상에서 젊은 여성들에게 아이를낳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지 않는 세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호소가 충분히 가식적임을깨닫게 될 거라고 충고한다. 15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여성과 남성의 생활 세계가 서로 근접하지 못하는 전근대적인 가족을 고수하는한편으로 육아의 어려움을 과소평가하며, 무한 경쟁 속에서 물질적 이익을 최상의 가치로 두는 한편으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시장 중심의경쟁 시대에 노출되면서 유교적 전통에 기반을 둔 가부장적 가족의 권위가 약화되고 개인의 인식과 생활 방식, 가족 형태 등이 매우 다양해졌다. 특히 국제결혼이나 이혼, 동거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30대의 동거 수용도는 2014년에 60퍼센트를 넘어섰다. 2015년에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27.2퍼센트로 가구 유형별 비율에서 가장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한 부모 가족, 다문화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가족도 늘어나고 있다." 또한 자발적 무자녀 가족을 선택하는 부부들을 종종 볼 수 있으며, 미혼의 상태에서 임신이나 출산을 하는 여성들과 혼자 아이를 키우는 남성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결혼과 상관없이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싶어 하는 여성들의 수도 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비혼자끼리 생활공동체를 꾸려서 함께 살기도 하고따로 살면서 공동체 관계망을 유지하기도 한다. 기존의 혈연 및 혼인

관계를 뛰어넘어 동거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동반자 관계의 권리를•보장하는 생활동반자법19 제정이 추진되고 있는 것도 가족 구성의 변화를 반영한다.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가족의 형태도 바뀌고 있다. 이전•에는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가족의 탄생‘을 다루었으나 최근에는 그 자리가 ‘졸혼‘, 1인 가구, ‘돌싱‘ 같은 새로운 가족으로채워지고 있다. 다양한 선택이 가능해진 오늘날, 더 이상 결혼은 과거처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지속되는 ‘자연적인 조건‘이 아니다. 결혼을 통해 얻게 되는혜택이 상대적으로 적은 여성의 경우 결혼과 가족에 거는 기대가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 결혼을 기피하는 경향은 결혼 연령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결혼과 출산 선택의 기피는 여성들의 성 평등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으로, 성 평등 수준에 민감한 여성들의 경우사회 전반에 걸쳐 성 평등주의적 재조직화가 일어나기 전에는 쉽게 출산 거부 결정을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대다수 여성이 가부장적 가족 질서 속에서 결혼하고, 결혼하면 거의 예외 없이 출산했던실질적인 ‘가족 출산‘ 시대가 가족과 여성의 동시적인 변화에 직면해서저물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사회의 압축적 근대성이 낳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가족에게 강도 높게 부과된 역할 요구와 통제로 ‘가족 피로’가 누적됨에 따른 불가피한 반응이다.  즉, 만혼과 저출산, 별거와 이혼의 증가등 다양한 ‘탈가족적‘ 징후를 가족 역할의 과부화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가족 형태에 대한 인식 변화의 이면에 있는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현재 우리 사회의 가족은 전근대, 근대, 탈근대 가족의 특성과

기능을 모두 섞어놓은 것 같다. 근대 이전의 전통적 가족주의, 유교적가족주의 시스템의 물적·규범적 토대가 약화되었으나 여전히 부계제가 남아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부부와 자녀가 주축이 된 근대 핵가족 중심의 정서적·물적 지원과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압축적 조합이 ‘순기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근대 핵가족에서 나타나는 부모와 자녀의 강한 유대감이 자녀의 결혼 지연이나 독립을 유예하는 결과를 낳고 있으며, 자녀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엄청난 교육열과 사교육 부담을 증가시켜 가족의 물적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공고한 ‘정상가족‘ 규범은 동거나 혼외 출산에 대한 금기로 이어지면서 가족 구성의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과 남성에 대한 문화적 인식의 차이, 가족 안에서가사와 육아의 일차 책임자로 여성을 설정하는 성 역할 규범 등이 여전히 작동하는 현실은 여성이 직장과 가정을 양립시키기 어렵게 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일·가정 양립 지표‘에 따르면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52.1 퍼센트로 나타났으며, 미성년 자녀를 둔 여성 취업자 비율(고용률)이 55.2퍼센트를 차지하여 기혼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가 점점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이한 점은 30대 여성보다 40~50대 기혼 여성들의 고용률이 높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이는30대 여성들이 여전히 출산과 육아 때문에 경력 단절을 겪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고용률에서 젠더 격차는 30대의 경우 남성이 90.6퍼센트, 여성이 60.3퍼센트로 30퍼센트까지 차이를 보인다.  또한 여성의 고용률은 자녀의 연령과 비례하는데, 특히 6세 이하 자녀를 가진 기혼여성의 경우 고용률은 44.9퍼센트로 급격하게 낮아진다.

결국 육아의 부담이 20~30대 여성들에게 맡겨져 있으며, 특히 초기육아의 경우 전적으로 여성의 책임으로 전가됨으로써 궁극적으로 취업의장애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이 직장과 가정을 양•립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제도에서도 정작 당사자인 여성에게 돌아가는 육아 부담의 해소와 경제적 자립 기회 보장 등의혜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대거 참여하면서 2인 소득자 가족 모델이 확대되고 있는데도 가사와 육아라는 여성의 가족 내 성 역할은 아직도 남성1인 생계 부양자 모델에 비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가족 안에서 성평등은 아직도 아득한 일이고, 가사노동과 육아의 책임이 여전히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독박 육아‘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고있을 뿐이다. 심지어 성인 중심의 공간이 만들어내는 양육에 대한 비하, 즉 ‘맘충‘, ‘노키즈존‘ 등 양육 적대적인 문화도 팽배하다. 여성들은이러한 현실을 자신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한 이후에 직면하게 될 부담이자 위험으로 간주한다. ‘82년생 김지영‘이 출산과 양육으로 겪는 우을 증상에 다수의 여성들이 공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더구나 무한 경쟁의 시대에 경제적 독립과 자아실현의 꿈도 요원할만큼 삶이 팍팍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여성들의 경우, 이러한 결혼과 출산에 달라붙은 위험으로 인해 결혼을 주저하거나 포기하게 된다. 저출산은 바로 여성들로 하여금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만드는, 또 기꺼이 아이를 낳을 만한 사회적·문화적 여건이 안 보이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갖게 되는 심리적·경제적 · 관계적 불안에 다름 아니다.

양육의 공적 가치

그렇다면 양육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Nancy Folbre)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그들의 계발된 능력과 자질로 우리 모두가 이득을 본다는 의미에서 아이를 ‘공공재‘로 개념화한다. 
아이에게 들이는 돈이나 시간, 사랑 등은 부모만이 아니라 아이 자신, 사회, 국가 모두에게 이득을 준다는 것이다. 즉, 폴브레는 타인에 대한 돌봄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지만 사회가 그 비용을 제대로평가하고 분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공재‘로서의 아이라는 관점은 양육을 공적 영역으로 위치시킨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그동안 개인과 가족으로 전가된 양육에 대한 책임을 국가로 이동시킨다. 즉, 양육이 아이들을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아이 중심의 양육 시스템 구축과 아이를 키우기 위한 최적의 조건에대한 국가의 개입 의무와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공적 권리로서 위치한다.
이러한 관점은 양육을 경제적 해법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성 경험에 대한 적극적인 의미 부여로 볼 수 있다. 모성 경험을 공적 영역에서 논의될 수 있는 권리의 언어로 위치시키는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성의 삶에서 경제활동이 불가피해졌고,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가사, 육아 노동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노동시장 지속여부 또한 돌봄 노동의 사회화와 결정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유럽에서도 1980년대 급격한 출산율 하락이 개인의 출산 결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 때문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이를 공공의 관점에서 해결

하고자 노력했다. 그들은 양성평등에 기반을 둔 휴가 제도, 공보육 제도의 정비, 육아의 사회화 등의 출산과 양육 제도를 정비하면서 출산율반등을 가져왔다. 32물론 국가가 양육에 개입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국가의 개입이 곧 여성들의 일차적 책임을 공유하거나 대체하는 것인한 양육 주체의 또 다른 쪽인 남성들을 소환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정희진의 주장대로 육아가 언제나 여성·국가·사회의 일이 되고 있는현실에서 국가보다는 남성의 인식과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 33 일·가정양립 정책의 주요 테마인 ‘아빠 육아‘는 남성은 경제활동, 여성은 육아라는 전통적인 성별 분업에서 진일보하고 있으나 여전히 남성은 육아책임자가 아니라 협조자로서 육아를 돕는 역할에 머물고 있어 가족 내성별 권력관계의 변화로 이어지기에는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
출산 정책의 비전은 지속발전 사회가 이루어질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지만, 그것은 출산율 제고를 통한 아이의 수 늘리기만으로 달성되지않는다. 그것은 양육을 공적인 가치로 인정하고, 양육이 여성만 부담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남성 역시 공동 양육자로서 책임을 지는 사회 시스템이 구축될 때 비로소 확보될 수 있다.
무엇보다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 더는 양육 전담자로서 자신을 정체화할 수 없는, 전통적 가족 규범의 모순을 간파한채 비혼을 선택하는 이들을 둘러싼 가족. 직장 · 연애·성·결혼·출산·•규범 등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맥락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여성들이 갖는 불안과 위험 요인들을 풀어내기 위해 젠더와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새로운 아젠다와 정책이 만

들어져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저출산은 ‘문제‘가 아니라 
변화에 대한 요구이자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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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ㅣ 페미니스트 크리틱 1
김은실.권김현영.김신현경 외 지음, 김은실 엮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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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트러져 있던 수많은 논쟁을 한곳에서 정리한 느낌
그러나그 오랜 논쟁은 더 복잡해지고 자본과 권력과 부도덕의 자양분을 먹어치우며 다른 차원의 논란을 키우며 변화하고 있다...
희석하고 눈을 가리는 비겁한 사건들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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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지하철역에 내리고 보니 역사가 생각보다 조용했다. 나는 사람들이 줄었나 보다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역사 안에는 몸을 녹이며 조는 사람들과 얼어붙은 얼굴로 숨을 쌕쌕대며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처럼 손에 휴지며 간식거리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도있었다. 사람이 적은 것은 아닌데, 왜 조용하지? 그들이 대부분 혼자였기 때문이다. 일행이 많은 팀도 두세 명밖에 되지 않았다. 단체가 동원된 것이 아니라 각자 참여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조용할수밖에. 그렇다면 바깥은?

출구를 나서서 나는 깜짝 놀랐다. 끝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참가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조용할까? 무대에서 말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쌀 한 톨도 흘리지 않으려는 모양새로, 사람들은 남의 말을 귀담아 듣고있었다. 광화문에서처럼 온갖 깃발이 휘날렸다. 

문득 앞으로 어린이들은 다양한 깃발이 소리치는 세상에서 살겠구나 싶어 마음 한구석에 불빛이 켜졌다. 어떤 미래는 벌써 와 있었다.
그날 우리는 늦게라도 찾아간 덕에 경찰 버스가 길을 열 - P-1

고, 전봉준 투쟁단과 시민들이 남태령 고개를 넘는 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 
"차 빼라!"가 "이겼다!"가 되는 순간에 거기 있었다. 

동학농민군은 신식 무기가 없어서 우금치를 넘지 못했지만, 그 정신을 이어받은 전봉준 투쟁단은 남태령을 넘었다. 우리는 행진을 하면서 트랙터나 트럭에서 손을 내민 농민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중노년 여성 농민이 울며 사람들과 악수하는 구간을 지나고는 조금 울었다. 누가 볼까 봐, 조금만 울었다. 

마침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으므로, 자연스럽게 작가의 수상 강연문이 떠올랐다.
과거와 현재,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를 돕고 구원한다는 걸 알았다. 이 연결이 영원하리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남태령을 지킨 사람들은 동학농민군의 과거를 밝히고,
그분들이 구해 주셔서 고개를 넘었다. 
비로소 언어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다. 그건 ‘이야기‘였다. 우리에게 이야기가 있었다. 크고 거칠고, 아름답고 섬세한 역사와 이야기가 남태령에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했다. - P-1

우리에게 언어가 없었다면, 언덕이 광장이 되는 기적적인 풍경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남태령에서 밤을 새우신 분들은 더 외로우셨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단 나는, 일평생 가장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을 경험했다고 여기 적어 둔다.
그다음 광화문 집회에는 나도 팻말을 만들어 들고 갔다.
두꺼운 종이 앞뒤로 "어린이 시민에게 온전한 공화국을" "어린이가 보고 있다 민주 정의 실현하라" 구호를 적었다. 
깃발은 아니지만, 또 쑥스럽기도 했지만, 구호를 외칠 때나 걸어다닐 때 팻말이 잘 보이도록 신경을 썼다. 광장에 어린이도 왔다는 것, 광장의 결과에 어린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어린이‘라는 낱말을 제일 잘 알아보는 이는 어린이들이다. 기분 탓인지, 주변에 어린이들이 알짱거렸다.
그래서 다음에는 사탕과 초콜릿을 작은 봉투에 담아, 만나는 어린이마다 한 봉지씩 나누어 주었다. 나로서는 굉장히 용기가 필요했는데 광장의 기운으로 눈 딱 감고 했다.
몇몇 어른들은 내게 동의를 구하고 팻말 사진을 찍었다.
조금 특이한 팻말이라는 것이다. 그중 한 분은 국회의원이 - P-1

었고, 한 분은 할아버지, 또 한 분은 공공운수노조 점퍼를 입은 분이었다. 특히 노조 분은 정말 놀랐다는 듯이 "이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서......" 하며 다급히 사진을 찍으셨다.
나는 간식 봉지를 드렸다. 그분은 정말 깜짝! 놀라며, 펄쩍!
뛰며 사양하셨다.
"어린이 주려고 가져오셨을 텐데..."
‘애들‘이 아니라 ‘어린이‘라고 하셔서 좋았다.
"어린이한테 관심 있는 어른한테도 드려요"
그러고는 도망쳤다.

몇 번이고 말했지만, 그림책의 ‘언어‘는 그림이다. 
문자는 아니지만 그림책의 그림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글자를 모르는 인간도 그림은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그림책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다. 그림에 이야기가 담겨 있고, 문자를 몰라도 읽을 수 있는 게 바로 그림책이다.
이런 그림책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니 10년 뒤가 될지 내일이 될지 모르는 미래에도 그림책은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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