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리치는 거짓말, 비밀, 침묵에 관하여」On Lies, Secrets, and Silence 라는 에세이선집을 냈다. 앞에서 인용했던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 대한 비평이 이 책에 실려 있었다. 책의 다른 글에서 리치는 이렇게 말했다.
페미니즘의 침묵 깨기 덕분에 인생이 바뀐 여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뇌세포에 흐릿하고 의심스러운 윤곽으로 담겨 있을 뿐차마 꺼내 물을 순 없었던 어떤 질문이 계기가 되어 불현듯 어떤 여자, 오래전 죽은 여자, 그 삶과 경험을 그저 어렴풋이 상상만 해볼 수 있는 여자가 남긴 어떤 문장이나 글귀나 이미지를갑자기 이해하게 되었던 경험이 있었다는 것을 돌이켜 떠올릴수 있을 것이다.
여자들은 한때는 물을 수 없었던 질문들을 이제는 물었다. 1980년 리치는 「의무적 이성애와 레즈비언의 존재Compulsory Heterosexuality and Lesbian Existence라는 기념비적 에세이를 평론 목록에 더했다. 이 글에서 리치는 전체 여성 중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이들의 정체성과 활동이 간과되거나 배제되고 있다고, 그 때문에 모든 사람의 삶의 가능성과 이해의 가능성마저 왜곡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마녀, 독신녀, 비혼주의자, 미혼 여성, 자율적 과부, 그리고/혹은 레즈비언으로서 그동안 다양한 수준으로협력을 해오지 않았던 여성들의 역사를 무시했다. 하지만 바로 그 역사야말로 페미니스트들이 배울 것이 너무나 많은 이야기, 전체적으로 침묵이 너무 두껍게 덮여 있는 이야기이다." 
리치는 훌륭한 탐험가였다.
리치는 이성애가 규범으로 통용되는 상황에 의문을 제기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이성애자로 태어난다는 가정은 많은 여성에게 이론적·정치적 장애물로 기능한다. (…)이성애를 일종의 관습으로서 점검하기를 거부하는 것은자본주의라는 경제 체제나 인종차별적 카스트 제도가 다양한 힘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리치는 레즈비언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침묵시켜왔는지를 말하고, 이성애는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강제되고, 관리되고, 조직되고, 선전되고, 힘으로 유지되어야 했던 것" 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마치 물리적 도시가 건설되는 것처럼, 여러 사업과 노동과 결정과 욕망이 누적됨으로써 새로운 생각과 가능성의 도시가 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도시에 여자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페미니즘은 인식에 따르는 기쁨과 분노, -그리고 설령 끔찍한 내용일지라도 인식했을 때 얻게 되는 힘으로 가득했다.

1993년 철학자 레이 랭턴Rae Langton은 탁월하고 엄밀한 에세이 말하는 행위와 말할 수 없는 행위」Speech Acts and Unspeakable Acts에서 이주제를 다루었다. 
랭턴의 탐구와 분석은 포르노그래피를 넘어선 영역에까지 빛을 비춘다. 랭턴은 우선 논쟁의 초점을 재설정하여,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이 하는 일, 말이 품은 힘에 주목한다. 
그가 지적하듯이 우리는 언어를 써서
결혼하고, 투표하고, 평결하고, 명령한다. 
혹은, 우리에게 그럴 힘이 없을 때는, 하지 못한다. 주인이 노예에게 "먹을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는 건 명령이지만, 노예가 같은말을 하는 것은 호소다. 

랭턴은 포르노그래피가 그저 오락만은 아니며 지침의
‘로도 권위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자아이들과 젊은남자들 중 많은 비율이 남자의 만족을 권리로 여기지만 
여자의 권리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를 인용하고, 
데이트 강간 통계와 고통스러워하는 여자를 에로틱하게 느끼는 남자들에 관한 통계를 나열하며, 이런 현상들이 모두 포르노 문화와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 주었다. 
랭턴은 침묵을 세 종류로 나누었다. 
첫번째는협박이나 패배에 따라오는 문자 그대로의 침묵이다. 
두번째는 말하는 사람은 있지만 듣는 사람이 없는 경우, 반응이 없는 경우다. 
마지막으로 랭턴은 이렇게 말했다. "포르노그래피는 여성이 자신의 말로 무언가를 하지 못하도록 막음으로써 여성을 침묵시킨다."
이 세번째 종류의 침묵은 "누군가 입을 열었을 때, 말을뱉었을 때, 그러나 (・・・ ) 그 말로 의도했던 행동을 수행하는데는 실패했을 때 생겨난다." 
그 행동이란 금지하는 것, 싫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실제로 누군가의 말하는 행위를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바꿈으로써 (・・・) 그를 침묵시킬수 있다. (・・・) 
가령 ‘싫다‘는 말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모두 이 단어로 어떤 일을 해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요컨대 포르노그래피는 남자뿐 아니라 여자에게도 지침으로 작용하고, 그 지침이 그들로 하여금 여성의 목소리를 못 듣도록,
심지어 자기자신의 목소리도 못 듣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침묵은 여러 갈래의 길로 움직인다.
가끔 나는 포르노란 남성의 특권을 더욱더 강화하고 여성이 획득한 힘에 대한 복수 행위를 쉼 없이 상연함으로써 남자들에게 보상을 안기는 평행우주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몇년 전, 샘 벤저민 Sam Benjamin은 주류 포르노의 수도라고 불리는 샌퍼낸도밸리에서 신출내기 감독으로 일했던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게 명시적으로 주어진 임무는 여자들을 확실히 발가벗기는 것이었지만, 감독으로서내 진짜 책임은 여자들을 확실히 벌주는 것이었다.") 
요즘의 무수한 포르노들은 무수히 다양한 형태를 띠며, 그중에는 분명 예외도 많다. 하지만 주류 포르노들은 대체로 에로스의 힘을 보여주기보다는 힘의 성애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성애로 묘사되는 행위 가운데 많은 부분은 사실 남성적 승리에 대한 동성애적 매혹이다. 그것은 여성이 끊임없이 패배하는 모습에서 흥분을 느끼는 스포츠에 가깝다.

온라인에서 여성을 침묵시키려는 최근의 이런 움직임은 끝나러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그것은 반발이다. 
지금까지 전진한 것들을 뒤로 물리려는 시도, 지금까지 들린 목소리들을 도로 침묵시키려는 시도다.
세상에는 늘 말해지지 않았지만 말해져야 할 것들이 있을 테고,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언어와 의지를 찾으려고애쓰는 여자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매일 세상을발명하고, 그 세상을 만나는 자아를 발명하고, 그 세상 속에서 타인을 위한 공간을 열어주거나 닫아버린다. 침묵은 늘 깨지고 있고, 찰랑찰랑 밀려온 파도가 발자국과 모래성과 물에 씻긴 조개껍데기와 해초를 덮는 것처럼 다시 차오르기도 한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그동안 젠더에 대한 생각을 고쳐 쓰고 침묵을 깰 권리에 도전함으로써 세상을 다시 써은 페미니즘의 위대한 경험은 놀랍도록 성공적이었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수천년 된 사회적틀을 바로잡는 일은 한 세대나 몇십년의 작업으로 될 일이 아니다. 그것은 기나긴 시간을 들여야 하고 종종 전투에도휘말려야 하는 창조와 파괴의 과정이다. 그것은 참으로 사소한 일상의 몸짓과 대화뿐 아니라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규모에서 법 - 신념 ·정치·문화를 바꾸는 일까지 포함하는작업이고, 가끔은 전자가 누적되어 후자가 이루어진다.
세상의 모든 것을 그 진정한 이름으로 부르는 일, 힘닿는 데까지 진실을 말하는 일, 어떻게 우리가 여기까지 왔는지를 아는 일, 특히 과거에 침묵당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일, 수많은 이야기가 서로 들어맞거나 갈라지는모습을 바라보는 일, 혹시 우리가 가진 특권이 있다면 그것을 사용해서 특권을 없애거나 그 범위를 넓히는 일. 이모든 일이 우리가 각자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만든다.

나는 『걷기의 인문학』에서 젊은 여자였을 때 겪었던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처참한 발견은 집 밖에서는 사실상 내게 삶,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가 없다는 것, 세상에는 그저 내 젠더때문에 나를 미워하고 해치고 싶어하는 낯선 이가 많다는 것,
섹스가 너무 쉽게 폭력이 된다는 것, 이것을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문제로 여기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시절 사람들이 내게 해준 조언은 이 상황이 잘못되었으니 바뀌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내 생활을 바꾸거나 제한하라는 거였다.
예나 지금이나 이것은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고방식이다.

공공 공간을 (혹은 남자들을 바꿔서 여자들이 괴롭힘 당하지 않고 길을 걸을 권리를 찾아주자고 말하는 대신에 여자들에게 공공 공간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바꾸라고 말하는 것, 심지어 그냥 포기하고 집 안에만 있으라고 말하는것 말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공격당한 경우라면 거의 모든상황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여자를 비난하는데, 그것은 남

(바로 이 과정에서 억울해하는 남자들이 반복해서 옮는 표현인 "모든 남자가 다 그렇진 않아" (Not all men)가 예를 들어 "모든 남자가 다 강간힘은 아니야" 처럼 쓰인다 #yesallwomen (여자들은 다.
겪는다)으로 예를 들어 ‘여자들은 다 어떤 식으로든 강간에 대처해야 해" 처럼 쓰인다 변형되었다.)많은 남자들은 이때 소셜미디어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여자들의 말을 귀담아듣고서 여자들이 오래 견뎌온 현실을 일생 처음 깨달았다.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남자들이 등장한 것은 2014년에 새롭고 혁명적인 변화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신호였다. 이것은 결정적이다.
왜냐하면 여자들을 위해서 세상을 바꾸는 것은 달리 말해 오래전부터 여성혐오적 행동을 자랑스레 뽐낼 만한 것으로 여겨온 일부 남자들이 받아들이고 칭송하는 가치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남자들은 공개적으로 글을 써서, 자신은 여자들이 어떤 적의와 위험을 매일 접하고 살아가는지 처음 알았으며 이제야 그것을 접하고는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페미니즘은 여자들의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백인이 아닌 사람들이 백인들의참여를 끌어들이지 않고는 인종차별을 다룰 수 없는 것처럼, 여자들은 남자들을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성차별을 완화할 수 없다.

부족했기 때문에, 아니면 가해자가 피해자의 목소리와 신뢰도를 지우거나 피해자를 겁줘서 침묵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제 일부 가해자들은 규칙이 어느 정도는 벌써 바뀌었다는 사실에 확연히 당황한 모습이다.
경청되고, 신뢰받고, 존중받을 자격을 얻는 문제는 그동안 너무 많은 여자를 침묵시켰다. 그래서 너무 많은 경우에 여자들의 목소리는 영영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비록지금 이 사연들은 알려졌지만, 우리는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 사연들이 얼마나 더 많을지도 기억해야 한다. 과거 여러 세대의 여자들처럼 이미 죽어서 조용해진 피해자도 있을 것이고, 아직 과감히 목소리를 낼 공간을 못 찾은 피해자도 있을 것이고, 입을 열었지만 조롱과 망신만 당하거나 입을 열었다는 이유로 공격당한 피해자도 있을 것이다. 
드코테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한달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논하는 대화가 크게 변한 시기였습니다.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에게 버겁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무척 고무적인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리기를, 이것이 우리에게 절실한 변화의 시작이기를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은 불확실성에 직면할 용기를 낼 때 성장합니다.
우리의 무지를 편견으로 가리지 않을 때,
우리 마음대로 앞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참아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가장 현명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문학의 과거와 현재는 침묵들로 인해 어둡다. 어떤 것은 위대한 작가로 인정받는 이들의 오랜 침묵이고, 어떤 것은 숨은 침묵이고, 어떤 것은 한 작품만 내놓은 뒤 출간을 그만두는 침묵이고, 어떤 것은 아예책의 형태에 도달하지 못하는 침묵이다." 이것은 곧 침묵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는 뜻이다. 무엇이 말해지고 무엇이말해지지 않는가를 둘러싼 침묵이 있는가 하면, 누가 말하는가 혹은 누가 말하도록 허락되는가를 둘러싼 침묵도 있다는 뜻이다.
올슨은 진짜 주제로 다가가기까지 시간을 들인다. 우선자신의 자격을 입증해보여야 한다는 듯이, 남성 작가들의위대한 작품들에 대한 지식과 관심을 펼쳐 보인다. 올슨은그다음에야 비로소 문학에서 여성의 침묵이라는 주제를꺼내어, 작가로서 경력을 일군 여자들은 대부분 아이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창작에는 자기자신과 자기 목소리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침묵은 현실적인 침묵 -장문의 글이라는 언어의 성을 짓는 데 쏟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밖에도 여성들의 경험과 관련된 침묵은 여러 종류가 있었다. 책의 후반은 "여담,
부적, 발굴, 출처"를 폭넓게 수집한 컬렉션으로, 여성을 침묵시키는 

내 침묵들은 나를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의 침묵은 여러분을 보호하지 못할 겁니다. 나는 한마디 한마디 말할 때마다. 내가 지금도 여전히 찾고 있는 진실을 말하려고 시도할 때마다 다른 여성들과 접촉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넘어 모두가 원하는 세상에 어울리는 언어를 찾아보았습니다. 바로 그 여성들의 관심과 보살핌이 내게 힘을 주었습니다.
로드는 침묵을 깨는 것이 용감한 행위일 뿐 아니라 창조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여러분이 아직 찾지 못한 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말할 필요가 있는 말은 무엇입니까?
(・・・)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건 각자 어떤 식으로든 언어에, 언어의 힘에, 우리에게 불리하게 사용되어온 언어를 되찾는 일에 헌신한다는 공통점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피임을 아주 잘한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이모나고모가 되는 걸 좋아하지만 또한 고독을 사랑한다. 불행하고 불친절한 사람들 손에서 자랐기에, 그들의 양육 방식을되풀이하고 싶은 생각도, 내가 이따금 나를 낳은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을 나에게 느낄지도 모르는 인간을 탄생시키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지구는 제1세계 인구를 지금보다 더 많이 부양할 수 없는 형편이고 미래는 몹시 불확실하다. 그리고 나는 책을 쓰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내가 작업하는 방식대로라면 이것은 퍽 버거운 직업이다. 내가 아이를 절대로 갖지 말아야지 하고 원칙을 세운 건 아니었다. 상황이 달랐더라면 아이를 가졌을 수도 있고 만일 그랬더라도 좋았을 것이다. 지금 좋은 것처럼. - P17

내 인생의 목표 중 하나는 진실로 랍비처럼 문답할 줄 아는 자가 되는 것, 닫힌 질문에 열린 질문으로 답할 줄 아는 것, 내 내면에 대한 권한을 스스로 가짐으로써 다가오는 침입자에 맞서서 훌륭한 문지기가 되는 것, 최소한 "왜 그런 걸 묻죠?"라고 재깍 되물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 경험상 이런 되물음은 불친절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늘 좋은 선택이고, 닫힌 질문은대체로 불친절한 편이다. 하지만 출산에 대해서 추궁당했던 날 나는 급습당한 처지였기 때문에 (더구나 시차 때문에무진장 피곤했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채 이런 의문만을 남기고 강연을 마치고 말았다. 대체 왜그런 나쁜 질문은 어김없이 던져지고야 말까?
어쩌면 우리가 자기자신에게도 잘못된 질문을 던지도록 배워온 것이 한가지 원인일지 모른다.  - P19


나는 내가 삶에서 하고자 했던 일을 해냈다. 그리고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은 어머니나 저 인터뷰어가 가정했던 일이 아니었다. 나는 책을 쓰고 싶었고, 너그럽고 명석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고 싶었고, 근사한 모험을 경험하고 싶었다. 남자들도 낭만, 짧은 연애, 장기적인 관계—그모험의 일부였지만, 머나먼 사막, 극지방 바다, 높은 산 정상, 봉기와 재난도, 그리고 생각과 자료와 기록과 인생을탐험하는 것도 모험이었다.
사회가 제공하는 충만을 위한 처방은 도리어 막대한 불행을 일으키는 듯하다. 그 처방을 실천할 능력이나 의향이없어 낙인 찍힌 사람들에게도, 처방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물론 세상에는 규격화된 삶 속에서 행복한 사람들도 있다.  - P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략) 연구자들은 긴 다리를 빼곤 먹을 게 별로 없는 수컷에 비해 상대적으로로 흐벅진 몸매를 지닌 암컷들이 너무 자주포식동물에 잡혀 먹히는 바람에아빠들이 어쩔 수 없이 자식 양육을 떠맡은 것으로 추정한다. 
인간 사회도그렇지만 급해져야 아빠들이 나선다. - P22

그런데 나는 착각했다.
평소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말과 행동을 해둔다면가끔은 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여겼다.
아무리 백번 사랑을 표현해도 단 한 번의 말실수로아이들의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걸 몰랐다.
모르는 게 어디 그뿐이었을까.
아이들이 싫어하고 괴로워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게관계 유지에 중요하다는 것도,
완벽한 부모가 되고 싶다는 욕망보다는괜찮은 부모로 살겠다는 겸손과 성실이아이와의 관계에 훨씬 더 좋은 덕목이라는 것도 몰랐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 P24

아이들을 대할 때 아빠의 말투는 달라야 한다.
사랑하는 아이의 말에는 의무적으로라도기분 좋게 응해야 한다.
아이의 말에 대한 대답은무조건 사랑과 배려를 가득 담아야 한다.
자상한 아빠로 아이의 추억에 남을절호의 기회를 놓쳐선 곤란하기 때문이다.
발달심리학자인 ‘다이애나 바움린드(Diana Baumrind)‘의 이야기다.
그는 부모의 양육 방식을 네 가지로 구분했다.
권위적, 독재적, 관용적, 방임적이 그것인데최악의 방법은 독재적 양육 방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그랬다. 독재자였다.
요구 사항은 터무니없이 많으면서아이들의 행동에 대한 반응은 형편없었다.
복종을 미덕으로 여기면서아이의 표현을 무시했던 것이다. - P59

아빠의 선택만 옳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감성을 아빠의 지성보다 우선해야 한다.
사랑이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고그것을 주는 것이니까.
사실 내가 지닌 지식 혹은 지성은 ‘과거에 머문 지식‘이다.
구닥다리의 경험일 수밖에 없다. 아들은 다르다.
지금 또는 앞으로 지녀야 할 지성과 감성을 함께 갖고 있다.
아빠라면 아이들 저마다의 다름과 감성을 이해해줘야 한다.
아빠의 지성을 정답이라고 여기면서 강요하는 말투는 잘못되었다. - P72

우리 자녀들도 살아가며고난과 역경을 겪고 이겨내는 경험을 해야 할 때가 온다.
그때 자기 존재에 의문이 생기면 곤란하다.
‘스스로 믿는 힘이 없으면 작은 고난에도 쉽게 무너진다.
누군가를 존중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존중해야흔들려도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자기를 낳아준 아빠가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한다면아이도 자기 자신을 존중하기 힘들 것이다.
부모가 아이를, 아이가 부모를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부터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존중할 수 없다.
"아빠는 괜찮은 사람이다. 너희를 보호하고 사랑할 수 있다"라고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알려줘야 한다.
아빠가 자기 자신을 존중하면아이들도 자신을 귀하게 여길 것이다. - P119

"내가 모르는 너의 생각이 있겠지? 몰랐다면 미안해."
이런 말들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아이들은 곧 성인이 된다.
그때는 자신이 뭐가 될지, 무엇을 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 결정을 누군가의 손에 맡기지 않게 하려면우선 아빠의 말투와 행동부터 달라져야 한다.
그것이 곧 닥쳐올, 냉혹하고 잔인한 세상과 맞짱 뜰아이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줄 테니까. - P187

프랑스 부모의 말투에서 찾았다.
프랑스 부모들은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칭얼대면
"농(non, 안돼)!"이라고 하면서 부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대신 "아탕(attend, 기다려!" 이라며 기다림을 권했다.
이런 문화에는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며모두를 위한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걸어릴 적부터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포함되어 있다.
세상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아이들도 이를 알아야 한다.
문제를 피해 다니면 행복을 만나기도 힘든 법이다.
행복은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P1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