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대법원은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을 허가하지 않았다.
당시 대법원은 성별정정을 막는 것이 아동을 차별로부터 보호해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가족관계를 드러내야 하는 불합리한 제도나, 이렇게 드러나는 가족 형태를 이유로 차별하는 사회를 문제삼지 않고서 말이다.
이 지점에서 2022년의 대법원은 달랐다. 가족관계등록부의문제는 "개인의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정정과 관련된 내용을불법적으로 외부에 노출하는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유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 있다면
"차별하는 쪽의 편견과 몰이해를 바로잡기 위해 법률적·제도적으로 노력해야 할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여겼다. 미성년 자녀의 복리는 여전히 중요한 고려 요소이지만 판단의 방향이 달랐다. 신청인의 성별정정을 인정함으로써 "부모로서 안정적으로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고 부양할 수 있는 사회적·경제적 토대를마련"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부합한다고보았다. 2022년 대법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개인의 가족생활은 사회적 관계의 시작이자 핵심을 이루는것으로서 국가는 이를 보장하여야 한다(헌법 제36조 제1항). 성전환자 또한 전체 법질서 안에서 가족을 이루는 구성원으로

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아야 하고, 국가는 성전환자의 이러한 권리를 보호하여야 한다.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것이그의 가족관계에 변화를 가져오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이는부 또는 모의 성전환이라는 사실의 발생에 따라 부모의 권리와 의무가 실현되는 모습이 그에 맞게 변화하는 자연스러운과정일 따름이다. 이렇게 형성되는 부모자녀 관계와 가족질서또한 전체 법질서 내에서 똑같이 존중받고 보호되어야 한다.
성전환자가 이혼하여 혼인 중에 있지 않다거나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정정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이러한 점이 달라지지않는다.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도 여전히 그의 부 또는 모로서 그에 따르는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수행하여야 하며이를 할 수 있다. 12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정한다. 조금 늦었지만 한국의 대법원 헌법상 국가
"가 보장해야 할 "가족생활"이 남들에게 드러나는 특정한 가족형태가 아니라 실질적인 가족관계여야 함을 인정했다. 정상가족ㅣ외관을 지키려던 공고한 가족각본에 이렇게 균열이 생겼다.
185

전한 생존방식일 수 있다. 이런 불평등한 현실에 눈감으며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는 사회는 부조리하다.
그 결과는 무엇보다 아동에게 영향을 미친다. 가족각본은 아동에게 불평등하고 가혹한 사회를 만든다. 이 말이 의아하게 들릴 수 있다. 앞서 본 것처럼 2011년 대법원은 사회적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라며 ‘동성혼의 외관‘이드러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2015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오히려 정반대로,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동성결혼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성결혼만 인정하면 동성커플의 자녀가 "자신의 가족이 어딘가 부족하다는 낙인"을 겪게 되므로, 아동이 해를 입지 않게 동등한 가족지위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아동들이 가족 배경을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차별을겪는다. 아동이 겪는 온갖 놀림과 괴롭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족 형태, 가족소득, 가족 구성원의 특징 등 가족에 관한 이유때문인 경우들이 많다. 가족의 상황이 아동들 사이에 권력관계를 만든다. 흔히 그렇게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다며 운명으로 받아들이곤 하지만, 이는 가장 부정의한 불평등이기도 하다. 어느가족에게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누구는 존중을 받는 반면 누구는무시를 당하고, 누구는 풍족한 기회를 얻는 반면 누구는 생존어렵다면, 벌거벗은 아기 때부터 우리의 몸에 계급이 새겨져 있

다는 뜻인 거다."
182장에서 나눈 혼외출생자 이야기나 3장에서 나눈 ‘혼혈인한센인, 장애인 등의 이야기는 부도덕하거나 열등한 어떤 특정한 사람들의 불행이 아니라, 가족각본이 만들어낸 불평등의 결과였다. 한부모가족, 입양가족, 재혼가족, 이주배경가족, 조손가족, 비혼가족, 동성커플가족, 트랜스젠더가족 등 모든 가족은 가족의 ‘위기‘나 ‘해체‘, 혹은 ‘붕괴‘의 결과가 아니라 다양한 삶의양식이다. 그런데 가족각본이 이러한 삶을 열등하고 비정상적이라고 규정하여 낙인을 새기고 차별을 정당화한다. 국가가 특정가족 형태를 ‘건강가정‘이라고 명명하며 ‘만들어내는‘ 이 불평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2022년의 대법원이 가족각본에 흠집을 내며 만들어낸균열이 특히 의미가 있다. 앞에 발췌한 결정문에서 보듯, 대법원은 헌법 제36조 제1항이 보장하는 ‘가족생활에 대한 권리가 모든 사람의 권리임을 확인했다. 설령 가족관계에 변화가 있더라도 "이렇게 형성되는 부모자녀 관계와 가족질서 또한 전체 법질서 내에서 똑같이 존중받고 보호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존엄하고 평등한 가족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모든 개인에게 인정되는만큼, 수많은 사람들을 배제하는 불평등한 가족질서는 타당하지않다. 누구나 다양한 모습으로 가족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고 국

터섹스(간성, intersex)나, 태어났을 때 지정된 성별과 다른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트랜스젠더, 이성애 규범을 벗어난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등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은, 결국 고정된 성역할 규범을 유지하겠다는 의지였다."
한국이 가족각본에 포획된 사이, 지난 20년 동안 세계는 많이변했다. 영국은 교회법을 따라 1533 년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도입한 뒤 식민지배로 전세계에 전파한 역사가 있는데,
2003년 이를 최종 폐기하고 2013년 동성결혼을 법제화한다. 미국은 동성 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을 연방대법원이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이 2003년인데, 2015년 연방대법원이 동성커플의 혼인할 권리를 인정하면서 모든 주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나치에 의한 대규모 동성애자 학살의 역사를가진 독일은 당시 근거 법령이었던 형법 조항을 1960년대에제하였고, 2017년 민법을 개정하여 동성결혼을 제도화한다."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20여년이 지나는 사이 34개 국가(2023년 5월 기준)가 동성결혼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결혼 외의 공동생활을 보호하는 제도도 개발되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프랑스는 1999년 연대계약을 도입했다. 연대계약은법률혼과 달리 상대방의 가족과 인척관계를 형성시키지 않으면

서 법률혼과 동일하게 상호부양과 협조의 의무를 부여하며, 한사람이 사망하더라도 남은 사람이 살던 곳에서 계속 살도록 거주권을 인정하는 등 공동생활을 보호한다. 연대계약은 처음부터 동성커플과 이성커플 모두를 위해 설계되었고, 공식적으로계약을 체결하는 신고절차를 통해 성립된다. 프랑스는 다른 한편으로 1999년 당사자 사이의 자유로운 공동생활인 ‘동거‘를 민법에 규정하면서 동성커플을 포함했고, 2013년부터는 동성결혼을 인정한다. 이로써 프랑스에서는 동성과 이성의 커플 모두 법률혼, 연대계약, 동거 중 하나를 선택하여 가족을 구성할 수 있게하였다.23독일의 경우 2001년 등록된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Gesetz über dic Eingetragene Lebenspartnerschaft 을 제정했다. 동성커플을 보호하려는 취지가 있었지만 동성커플만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이성커플의 혼인과 구별하려는 의도가 담긴 제도였다. ‘이등지위‘
를 부여한 차별이라는 비판이 따랐다. 결국 독일은 2017년 법률혼에 동성커플이 포함되도록 혼인을 ‘개방‘하면서 생활동반자제도는 중단하기로 한다. 반면, 영국은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먼저 2004년 동성커플을 위해 동반자관계법 Civil Partnership Act 을 제정했다. 2013년이 되어 동성결혼을 법제화했는데 이때 동반자관계법을 폐지하지 않았다. 대신 이성커플도 동반자관계를 맺을

198이 있다. 2023년 4월 용혜인 의원은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생활동반자관계‘는 두 사람 사이의 계약에 가까워서 상대방 가족과의 인척관계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결혼처럼 동거 ·부양·협조의 의무, 일상가사에 관한대리권과 채무에 대한 연대책임 등을 부여하고 공동입양을 가능하게 한다. 아울러 사회보험 연금수급,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 배우자출산휴가와 돌봄휴직 사용, 소득세 인적공제, 가정폭력으로부터의 보호 등이 가능하게끔 관련된 다른 법들을 개정하도록 했다. 이어 5월 장혜영 의원은 동명의 생활동반자법안과 함께,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민법 개정안(혼인평등법), 결혼과 무관하게 출산을 지원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안(비혼출산지원법) 등 ‘가족구성권 3법‘을 대표 발의했다. 새로운 가족에 대한 논의를 국회가 진전시키기를 기대해본다.
다만, 이런 기대가 얼마나 희망적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책에서 이야기 나누었듯 국가는 오랫동안 가족생활에 대한 헌법적 책무를 개인의 도덕 문제로 돌리면서 제도적 개선 노력을 피했다. 한국사회가 가족의 해체와 붕괴를 논하며 개인의 책임을탓하는 사이, 가족생활을 보장해야 할 국가의 책임은 은폐되었다. 대신 가족은 국가경제를 위해 인력을 공급하는 단위로 여겨지곤 했다. 저출생을 위기라 말하면서도 사람을 노동력으로서의

‘인구‘로 여기고, "출산은 애국"이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정도로 사회는 사람을 도구화하는 데 익숙해졌다. 이제 가족정책과 인구정책을 같은 것이라고 여기는 정부의 무감각함 속에서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야 할 이유는 더 사라진다.
‘장경섭은 ‘가족도덕‘의 회복을 강조하는 정치적 기조의 이면에, 국가가 사회보장 책임을 축소하면서 이를 합리화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한국의 공공부문 지출 수준은 낮은 편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문 지출의 비중은 프랑스 31.6퍼센트, 독일26.7퍼센트, 일본 24.9퍼센트, 스웨덴 23.7퍼센트, 영국 22.1퍼센트 등이고, OECD 평균이 21.1퍼센트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공공부문 지출은 GDP의 14.8퍼센트에 불과하다." 한국은 사회보장에 필요한 비용을 아끼고 가족에게 돌봄의 책임을 맡김으로써, 노동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렇게 기업 역시 오랜 시간 돌봄의 책임을 피하며 이익을 누렸다. 돌봄을 ‘사적인 가족의 문제로 분리시키고 여성의 보이지않는 노동에 의지한 결과, 기업은 돌봄에 관해 신경쓰지 않고 노동자의 노동력을 한껏 사용할 수 있었다. 기업은 돌봄의 책임과무관하다는 생각에서, 여성을 결혼과 육아를 이유로 차별하고남성에게 과도한 노동시간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국가의 ‘가족

‘정책‘은 여전히 가족이 공동생활을 위한 시간을 갖도록 제도를마련하는 일보다, 아동을 돌봄 기관에 맡김으로써 국가와 기업이 노동력을 확보하게 만드는 데 집중되어 있다. 돌봄을 국가와 기업을 포함한 모두의 책임이자 개인의 권리로 인식하고 함.
께 연대하게 될 때, 비로소 불평등한 돌봄의 시간도 재배치될 수있을 것이다.
어려운 문제다. 다양한 가족의 현실과 변화에 따라 제도를 개선하고 설계하며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는 일은 수많은 사람들의연구와 아이디어가 요구되는 엄청난 프로젝트다. 그런데 다른제도들도 그렇다. 변화하는 사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안을찾는 일을 우리는 ‘정책‘이라고 부른다. 적어도 한가지는 분명하다.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구호에 동조하며 기존의 가족질서를 고수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성별이 사람의 인생을 규정하던 시대를 넘어가고 있고, 부조리한 가족각본을 벗어나 모두의 존엄하고 평등한 가족생활을 보장하는 정책이필요하다.

며 살아왔다.
그리하여 마치 가족이나 기업이나 매한가지인 것처럼, 경제가어려우면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가족부터 무너지는 현상을 계속해서 겪어왔다. 사람의 노동력을 최대한으로 뽑아내 이윤을 창출하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산업사회는 가족이 서로를 돌볼 몸을 빼앗으며 그 책임을 가족에게 돌려왔다. 지하철에서 만난 ‘가족 없는‘ 아동들도, 이제 결혼 밖에서 삶을 계획하는 청년들도이 사회가 정답이라 믿어온 가족제도는 서열을 낳는 경제적평등과 오차가 거의 없는 체제임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가족의해체를 우려하며 ‘비정상‘ 가족을 가려내는 정책은 필연적으로불평등을 가속화하고, 결국 그 불평등이 사람이 태어날 수 없는환경을 만들고 있다.
이 와중에 결혼제도 안으로 진입하려는 성소수자의 행보가이상하게 보일 법하다. 이 책에서는 동성결혼 때문에 기존의 가족제도가 흔들릴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사실 정반대의 우려도 제기된다. 가족의 의미를 새로 써야 하는이 시대에, 동성결혼을 요구하는 주장이 기존의 가족담론을 다시금 유지시키는 건 아닌지 염려하는 것이다. 동성커플이 결혼한다고 이성커플의 결혼이 달라지지는 않을 테니, 결혼을 둘러싼 문제들은 그대로 남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

었듯이, 가족이란 제도와 관습 안에서 성소수자의 존재가 던지는 화두는 더욱 본질적이다. 익숙한 가족각본을 잠시 내려두고 사회가 함께 질문하게 만드니 말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우리는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가족을 꾸리는가?
이 책을 쓰며 인용한 문헌들에서 보듯, 이미 수많은 연구자와활동가들이 가족제도를 비판적으로 연구해왔다. 놀랍도록 풍부한 연구들을 감탄하며 읽고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가족제도에대한 논의는 왜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지 못하는가? 가족생활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사회에서 경제, 국방, 교육 등 다른 의제보다 가족을 덜 중요하게 다루는 관념 자체가 말해주는 현실이 있다. 가족은 여전히국가를 위해 유용한 인력을 생산하는 수단이며, 헌법이 요구하는 가족생활의 보장은 아직도 국가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
합계출산율 1명 미만의 시대는 이토록 부조리하고 불평등한사회에 아이를 낳으라는 불가능한 요구와 함께 계속되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의 저출생이 국가적 위기라면, ‘인구‘가 줄어서가아니다. 웬만해서는 사람이 태어나 살 수 있는 땅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돌봄의 공동체가 시간과 마음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구정책은 가족정책이 아닌데, 이 두가지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사회

를 또 반복하며 우리 삶의 시간은 흘러간다. 그래서 묻고 싶다.
이제 우리, 가족각본을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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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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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사회가 보여주는
이런저런 문제의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여준다.

가족각본을 힘겹게 살아가는 역할자로서
숨막히게 반복하여 말하고
말하고 말했던 내용이
차분하게 정리되어 나온 지면을 마주하며
내 뒤에 이어지는
다음 세대와
후배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그대들에게 지혜와 힘과 안목을
드리고 싶다.
이 책을 널리 퍼뜨리자.
함께 읽자.
그리고 사랑스럽게 지금 여기서부터
우리가 하나하나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누고
함께 쭈욱 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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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법에서 외국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혼혈아동은 한국 국척을 가질 수가 없었다. 1948년 제정된 국적법은 부계혈통주의를 채택해서, 아버지가 한국인이어야 자식이 한국인이 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불분명하면 모계혈통으로 국적을 취득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혼혈아동의 경우 아버지가 외국인인 것이 분명한이상 그러기도 어려웠다." 부 또는 모 중 한명만 한국인이어도국적을 취득하게 부모양계혈통주의로 바뀐 건 약 50년이 지난1998년 6월이다."
당시 신분등록체계가 호주제를 따랐다는 점도 문제였다. 호주제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의 출생.혼인 사망 등의신분변동을 기록"15 하는 제도였다. 호주는 남성이어야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호주와의 관계에 따라 신분이 등록된다. 가령 여성이 결혼을 하면 남편이 호주로 있는 호적에 입적되고 아버지가 호주로 있는 호적에서는 삭제된다. 자식은 아버지의 호적에입적되고, 호주가 사망하면 아들이 우선적으로 호주를 계승한다.
이렇게 부계혈통주의를 따르는 호주제에서 아버지가 외국인이면 곤란에 처한다. 자식은 부의 성과 본을 따라 신분등록이 되는데, 혼혈아동은 부의 호적에 입적할 수 없었다. 한국인 어머니가 자녀를 외가 친척의 호적에 입적시켜 국적을 갖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아동은 아예 호적이 없었다고 한다." 

법이 해외입양일 수밖에 없었을까.
당시 대통령인 이승만은 반공과 통일을 목표로 단일민족의혈통과 공동운명을 강조하는 ‘일민주의 이념을 세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대통령 자신의 부인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여성이었다. 부계혈통 가부장제에서 아내가 외국인인 것은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국적법에서 ‘대한민국의국민의 처가 된 자‘는 자동적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혼혈‘을 모두 해외로 보내려고 할 정도로 ‘순혈‘을 강조하면서도남성의 피만을 고려하는 부조화가 그때 한국사회에서는 이상하지 않았나보다.
하필 해외입양이란 방법을 찾은 것도 가부장제 질서에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보아서였을 것이다. 모든 것이 남성을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에서 남편 없는 여성이 자식을 키우며 살아갈 방법이 거의 없다는 걸 국가도 잘 알고 있었다. 남편 없이도 여성이 독립적으로 일하면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바꾸거나, 아니면 국가가 비용을 감당해서 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동을 해외로 내보낼 수 있다면 고민을일거에 해결할 수 있었다. 가부장제 질서를 건드리지 않고, 사회보장 비용을 들이지도 않으면서, 심지어 입양을 통한 외화수익도 얻었다. 

경우가 대부분일 테다. 아이가 불행한 인생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면 부모가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는 게 ‘이기적‘이라고 여기게되는 거다. 근데 이런 표현은 장애인 부모가 아니라도 종종 듣는다. 비혼 여성이 자녀를 출산하겠다고 말하면, 아빠 없이 자랄 아이를 생각하라며 사람들이 말리는 소리를 듣지 않던가. 여기서권리를 내세우면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가난한 처지에 자녀를여럿 낳아도 자녀를 생각지 않는 이기적인 결정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다. 즉, 어떤 상황에서 출산은 종종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사회적으로 평가받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기적이지 않은 출산을 할 수 있을까? 앞에 언급한 몇가지 비난을 바탕으로 역으로 유추해보자. 일단 비장애인이어야 하고, 남녀가 결혼을 한 상태여야 하며, 돈이 어느정도 있는 환경에서, 적정한 수의 자녀를 낳아야 한다. 적정한 자녀수를 인구대체율(현 인구 수준을 유지하는 합계출산율)인 2.1명을고려해 대략 정리해보자면, ‘중산층 이상의 결혼한 비장애 이성부부와 자녀 2명으로 구성된 가족‘ 정도면 이기적이라는 비난을받지 않을 것 같다. 말하자면 ‘출산의 자격‘이랄까,
한국사회에 암묵적으로 이런 식의 ‘출산의 자격‘이 있다는 건 익숙하지만 이상하기도 하다. 2장에서도 언급했지만, 출산은 분명 아이를 낳고 키우는 양육자의 일이고 사생활의 영역인데, 

것임을 기정사실화한다. 그리하여 실제로 닥치는 불행은 오롯이 출산을 ‘선택‘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결국 그렇게 차별을 보존하고 전승하며 어떤 집단의 미래를 영구적으로 불행하게 만드는 행위에 (의도치 않게 ‘가담‘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어떤사람들을 이 땅에 오지 못하게 막는 행위는 얼마나 폭력적인가?
뒤집어 생각하면, 아동의 인생을 생각해 부모가 출산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은, 사회가 변화를 도모하지는 않겠다는 변명일수 있다. 반대로, 부모가 출산에 대한 결정을 자유롭게 내릴 수있는 사회는 이미 아동에게도 좋은 사회일 것이다. 태어나는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사회라면, 이미 불합리한차별이 없는 세상이란 뜻일 테니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출산을 막을 것이 아니라 출생으로 등장하는 예측 불가한 구성원을위해 변화하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임신·출산이 국가적 ‘수단‘이 아니라 국가가 보장해야할 개인의 ‘권리‘임을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 개인은 임신·출산에 관해 자유롭고 책임 있게 결정할 권리를 지니며, 국가는 모든 사람이 이 권리를 향유하고 건강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할 의무가 있다. 이를 ‘재생산 권리‘ reproductive rights 라고 한다. 1994년 카이로에서 열린 ‘유엔 인구 및 개발에 관한 국제회의‘UNICPD에서채택된 행동강령은 재생산 권리를 이렇게 정의한다.

재생산 권리는) 모든 커플과 개인이 자유롭고 책임 있게자녀의 수와 터울을 결정하고 이를 위한 정보와 수단을 이용할 기본적인 권리와, 최상의 성과 재생산 건강을 유지할 권리를 인정하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 또한, (…) 차별, 강요, 폭력없이 재생산에 관련된 의사결정을 내릴 권리를 포함한다. 50재생산 권리가 단순히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국가의 강압이 없더라도 개인이 내린 선택의 결과가 여전히 차별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산전검사를 통해 태아에게 장애를 발견한 경우의 선택에 대해 생각해보자. 누군가 태아의 장애를 이유로 임신중지를 결정할 때, 그 ‘선택‘을 하기까지 주변으로부터가족이 짊어질 고통에 관해 얼마나 많은 ‘조언‘을 듣는지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은 현실의 차별과 불평등을 고려해 재생산에관해 조언하고 결정을 내릴 뿐이겠지만, 우생학적 질서가 그러한 ‘선택‘을 통해 유지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까?
2017년 2월 대법원은 강제적인 불임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의피해를 입은 한센인들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내렸다. 본인이 원하지 않은 수술을 국가가 강제해 개인의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고 이로써 가족을 구

성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했다고 아래와 같이인정했다.
(한센인들에게 시행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한센인들의 임신과 출산을 사실상 금지함으로써 자손을 낳고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물론이거니와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및 자기결정권,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52당시 정부 측은 한센인들이 수술에 동의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동의‘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동의는 "자유롭고 진정한 의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사회적 편견과차별, 열악한 사회·교육·경제적 여건 등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동의는 사실상 공권력에 의한 강제라고 보았다.
해외에서는 과거의 트랜스젠더 강제불임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소식이 들려온다. 얼마 전 스웨덴 의회는 1972년부터 2013년까지 원치 않게 불임수술을 받아야 했던 트랜스젠더약 600~700명에게 국가가 배상하도록 결정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1985년부터 2014년까지 공문서상의 성별정정을 위해 강제불임을 요구했던 과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피해를

더 낮게 집계된다. 그래서 2022년 기준 세계 99위였다."
경제적 격차는 임금격차로 더욱 명료하게 나타난다. OECD가발표하는 성별임금격차 Gender Wage Gap에서 한국은 1996년 OECD가입 이래 27년째 1위다. 그런데 순위만큼이나 임금격차의 수준이 독보적이다. 최근 OECD 자료를 보면, 회원국 44개국 중벨기에, 콜롬비아, 노르웨이 등 5개국의 성별임금격차가 5퍼센트미만이다. 이어 아르헨티나, 스웨덴, 뉴질랜드 등 16개국이 10퍼센트 미만, 프랑스, 멕시코, 미국 등 18개국이 10퍼센트대 그리고 일본, 이스라엘 등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4개국이 20퍼센트대 중반 이하다.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31.2퍼센트였다(2022년기준) 33한국의 성별임금격차의 원인으로는, 결혼·출산·양육 등으로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이 주요하게 지적되어왔다. 통계적으로 보면 여성의 고용률이 20대 후반에는 OECD 평균보다도 높은데,
30대에 경력단절로 급격하게 하락했다가, 40대에 반등하는 M
‘자형 곡선‘을 그린다. 게다가 여성의 일은 남성보다 비정규직과저임금노동이 많다. 2021년 기준으로 여성 노동자 중 비정규직비율은 50퍼센트에 가깝고(여성 47.4퍼센트, 남성 31.0퍼센트), 저임금노동자 비율도 높았다(여성 22.1퍼센트, 남성 11.1퍼센트), 여성 비직종과율이 높은 직종의 노동가치가 저평가되기도 하고, 같은

스웨덴의 성교육은 성을 죄악시하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감정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했다. 성을 둘러싼 긴장을 없애야 상대방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성을 피해야 할 위험한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삶의 요소로 보고 접근했다. 모든 개인에게성은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고 여겼다. 성을 결혼과 결부시키지않은 스웨덴 모델을 두고 누군가는 비도덕적이고 문란하다고 했다. 하지만 스웨덴 모델에서 생각하는 ‘도덕‘은 달랐다. 스웨덴모델은 결혼 전 성관계에 낙인찍지 않는 것, 성적 행동을 특정한틀에 맞추도록 강요하지 않는 것, 성을 개인의 권리로서 보장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12한국 정부도 스웨덴 모델을 소개하려고 시도한 일이 있다.
2019년 여성가족부는 ‘나다움어린이책‘ 사업을 통해 성교육을위한 도서 134종을 선정해 일부 초등학교에 배포했다. 그중에는 1971년 덴마크에서 발간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Sudan farman et barnm와 2001년 스웨덴에서 발간된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Karleckboken 이란 책이 포함되어 있었다. 각각 덴마크 문화부 아동도서상과 스웨덴의 아동문학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 등을 수상한 책으로, 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사랑은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며, 세상에는 다양한 사랑과 삶의 양식이 있다고 알려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13

어대사전』에 따르면 풍기"란 "풍속이나 풍습에 대한 기율"
로서, "특히 남녀가 교제할 때의 절도"라고 한다. 여기서 ‘풍속‘.
은 "옛날부터 그 사회에 전해오는 생활 전반에 걸친 습관 따위를이르는 말이고, ‘풍습‘은 풍속과 습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며, ‘기율‘이란 "도덕상으로 여러 사람에게 행위의 표준이 될 만한 질서"로 정의된다. 대략 정리하면, ‘옛날부터 전해오는 생활습관에 대한 도덕적 표준 질서‘를 ‘풍기‘라고 할 수 있겠다.
왜 학교가 ‘옛날부터 전해오는 생활 습관에 대한 도덕적 표준 질서‘를 지켜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지켜야 하는 질서란 것이 가족질서를 지키기 위한 성규범과 겹치는 점도 희한하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성적 교제를 삼가고 얌전하게 옷차림을 갖추며 행실을 조신하게 해야 한다는 가족윤리가 학교에서도적용된다. 학생이 이 규범을 어기면 학교의 위신이 떨어지고 명예가 훼손된다는 논리도, 그래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결론까지같다.
이상한 일이다. 학교는 학생의 결혼 가능성이나 가족의 위신과 이해관계가 없다. 학교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기술을 배우고, 개인의 재능을 발견하고 잠재력을 개발하며, 공동체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민주시민의 소양을 갖도록 학생을 교육하는 기관이 아니던가. 그런데 왜 학교는 가족윤리를 수호하

각본을 벗어난 삶은 망신으로 귀결된다는 공포를 성교육을 통해 심어주면서, 민주화의 역사적 격동 속에서도 ‘전통적 가족제도를 유지해왔다.
유네스코는 성교육의 국제적 표준으로 ‘포괄적 성교육‘comprehensive sexuality oducation을 제시한다. 포괄적 성교육도 ‘가족‘
을 다루지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기존의 가족질서를 따르라고 압박하는 대신, "다양한 연애, 결혼, 양육"이 "사회, 종교, 문화, 법률에 의해 형성되는 맥락을 교육한다. 고정된 성역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역할과 성규범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지 이해하게 한다. 이념의 주입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를 촉진하는 것을목적으로 하는 학술적 접근이다. 학교가 이런 성교육을 실천하는 일이 어렵다면, 학교의 목적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온도를 중심으로써,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안전한 완충지대가생기게끔 장치를 설계한 것이다. 국가가 앞장서서 사회보장제도를 만들면서, 가족끼리 책임지고 알아서 생존하라는 의미로 부과하던 부양의무의 범위도 줄였다. 영국의 경우 1601년부터 3백번넘게 친족 간 부양의무를 규정하고 있었는데, 복지국가를 구하면서 1948년부터는 부양의 범위를 배우자와 16세 미만자반면 한국은 복지국가를 표방하면서도 가족에 대한 의존도를이라는 노력에 인색했다. 경제적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운 사람에게 기초적인 수준의 생활을 지원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운영하면서도, 국가는 가족의 부양의무를 우선해왔다. 즉, 소위 "가족부양 우선의 원칙"이라고 하여, 우선적으로 부양의무자‘로 정해진 가족의 보호를 받고, 부양의무자의 보호를 받을 수없을 때 기초생활보장급여를 받도록 규정한다. 다만 이때의 ‘부양의무자‘를 민법보다는 좁혀 "1촌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 즉부모, 자식, 며느리, 사위 등으로 정했다."
이런 제도가 가족 간 불평등을 얼마나 해소할 수 있을까? 가족부양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 안에서 국가의 지원을 받는 일은, 마치 가족의 실패를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는 것과같다. 가족이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끊임없이 증명해

야 국가의 지원을 받을 자격을 얻기 때문이다." ‘가족의 실패‘가사회보장의 전제요건이 되면서, 사회복지제도는 마치 가족이 없는 자들을 위한 낙오된 세계인 것처럼 만들어졌다. 한국전쟁 후의 ‘고아‘와 ‘미망인 ‘부터 오늘날의 장애인, 노숙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복지시설에서 집단적으로 생활한다. 이들은 가족이없다는 이유로 시설에 오고, 또 시설에 있기에 자유로이 가족을형성할 수 없는 덫에 빠진다.28
‘있는 자‘가 가족제도를 통해 계층을 세습하는 동안, ‘없는자‘는 가족생활 자체가 어려운 상태가 된다. 누가 자신의 삶과무관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사회가 급변하고 가족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시대에, 축적된 재산이 얼마나 많아야 가족이라는 ‘소박한 행복‘을 꿈꿀 수 있을까? 그래서 더더욱 누군가는 좋은 스펙의 결혼을 쫓아 자구책을 찾기도 하겠지만, 그러는 동안 가족 불평등은 더 심각해진다. 어떤 상품에 이정도의 중대한 결함이 있다면, 불매운동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은 것 아닌가?
나의 가족은 누구인가2013년 10월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여성 은하(가명)씨

와 어머니를 달리 보지 않는다. 그나마 이 사건은 대중의 주목을받아서인지 법원이 아버지의 기여분을 인정해 각각 60 대 40의비율로 부와 모에게 재산상속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와 같이 기여분을 인정하는 건 드문 일이다. 34은하씨와 해주씨처럼 혈족이 아닌 관계는 이들이 아무리 서로를 돌보며 공동생활을 했다 해도 법에서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다. 한국에서 혈족이 아닌 사람이 법적으로 가족이 되는 방법은 결혼과 입양뿐인데, 이런 사이에서 입양으로 부모-자식 관계를 맺기도 애매하고 동성결혼은 인정되지 않는다. 기사 내용만으로 두 사람이 레즈비언커플이었는지 여부를 알 수도 없다. 설령 두 사람 사이에 로맨틱한 감정이 있었는지 영영 알 수 없더라도, 함께 보낸 40년의 세월이 무의미하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가족‘이란 관계를 실제의 공동생활과 무관하게 법이 기계적으로 정해놓아도 되는 걸까? 혈족이 아닌 사람들이 가족이 되는 다른 제도적 방안을 고안할 수는 없을까?
하필 ‘결혼‘이 사회적으로 뜨거운 쟁점이 되는 이유는, 혈족이아닌 사람들이 만나 가족을 이룰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제도이기때문이다. 모든 낭만을 빼고 건조하게 말하면, 결혼은 당사자들사이의 계약이자 사회가 공동생활 단위라고 인정하고 존중하는법적 관계다. 물론 관습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훨씬 많은 욕망이

170결혼에 붙어 있기는 하다.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것, 자손을 낳아 가문을 잇는 것, 집안일을 할 사람을 얻는 것, 결혼 배의 성적 행동을 규제하는 것 등 앞장들에서 보아온 무수한 욕망이 결혼이라는 제도 뒤에 숨어 있다. 하지만 이런 겹겹의 욕망을벗기고 나면, 가장 본질적인 결혼의 의미로서, 계약당사자들이인생의 동반자가 되는 연대체라는 관계가 남는다.
결혼으로 가족이 ‘된다‘는 건, 그 당사자들 사이에 권리와 의무가 생긴다는 뜻이다. 동거하며 서로를 부양하고 협조해야 한다. 서로를 대신해 공동생활에 관한 일을 처리할 수 있고(일상가사대리권), 이로 인해 생긴 채무에 대한 책임도 공동으로 진다(일상가사채무 연대책임)." 결혼 중에 협력해 모은 재산은 명의와 상관없이 공동재산이 되어 둘이 헤어질 때 나누어야 하며, 이때가사노동을 분담한 기여도 인정된다" 서로에게 수술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 등 의료적인 결정을 내리는 보호자 역할도 하고, 배우자로서 사회보장급여를 받고 상대방이 사망하면 유족으로서장례를 치른다."
이런 법적 보호를 위해 동성 간 관계도 결혼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확한 파악은 어렵지만 이미 한국사회에는 파트너와 동거 중인 성소수자가 많다. 2021년 청년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연구에 참여

라고 보면 어떤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한 돌봄의 공동체를 국가와 사회가존중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일까? 혈족 안에서 사람의 순서를 매기고 부양의 의무를 부과해 생존을 담보해온 지금까지의 가족은 사람을 타고난 운명에 순응케 하며 권위적인 통제에 의지해체제를 유지한 경직된 ‘질서‘였다. 하지만 이제 자유와 평등을근본적 가치로 지향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에게 더 어울리는 가족의 이상은 자율적이고 평등한 공동체가 아닐까. 우리가 인권을 쟁취한 모든 순간을 통해 경험하였듯이, 강요된 의무와 위계적 압박이 사라질 때 사람들은 더 행복하게 서로를 돌보는 길을 찾아갈 것임을 믿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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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견고한 각본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각본에 따라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딸 또는 아들로서의 역할을 기대받고, 성인이 되면서 아내와 남편, 어머니와 아버지, 며느리와 사위 등의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가족각본은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우리는 정해진 각본대로 따르는 걸 평범한 삶이라고 여기고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익숙하고 당연하게, 때때로 버겁게 정해진역할을 수행하느라 가족각본이 어떻게 쓰여 있는지 살피지 못한다. 다만 간혹 혼란을 경유해 가족각본의 실체가 감지된다. 가령 ‘성소수자‘ 혹은 ‘퀴어‘quest라고 불리는 인물이 무대에 등장하는 거다. 이 낯선 인물의 등장이 가족각본에 당연하게 정해져있는 역할을 꼬이게‘ 만든다. 그때

동성애로 고통받지 않고 타락하지 않은 일류 국가를만들자"는 ‘한국적인 반대‘가 제기된 것이었다"
실제로 동성애에 대한 한국의 수용도는 다른 소위 선진국과비교해 매우 낮다. 세계 각국의 동성애 수용도를 1점(절대 정당화될 수 없음)부터 10점 (언제나 정당화될 수 있음)으로 주기적으로 측정하는 조사가 있다. 최근의 조사 결과(2017~22년)에서 한국의동성애 수용도는 3.2점이었다. 2001년 3점이었는데 20여년 동안 겨우 0.2점 증가했다. 이에 비해 네덜란드는 9점으로 거의 완전 수용에 가깝고, 덴마크 8.8점, 영국 7.9점, 프랑스 6.8점, 미국6.2점 등이었다. 일본은 2000년에 4점이었던 데서 6.7점으로 상승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의 평균은 6점으로, 한국은 이 중 30위다.
OECD 평균이 한국에 비해 높기는 하지만 아직 10점의 절반을 조금 넘긴 것을 보면, 동성애를 낯설고 불편하게 느끼는 감정이 한국사회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의 광장에서 등장한 ‘며느리‘로 시작하는 이 구호는 상당히 독특하고 괴이한 측면이 있다. 동성애를 반대하며 내세울 수 있었던 구호 중왜 하필 ‘며느리가 남자라니‘가 선택되었을까? 신문 광고나 사설에서 다른 반대의 이유도 제기되었지만, 가장 크게 각인된 구호는 단연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문구였다.

시부모에게 효도하기, 집안을 화목하게 이끌기, 친척들을 아끼고 섬기기, 집안 제사 받들기, 정성을 다해 손님 대접하기, 가사노동에 힘쓰기, 살림살이에 근검절약하기 등, 집안밖의 사람을 만족스럽게 대접하고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며 행사를 주관하면서도 비용을 절약해야 하는 고도의 능력이 필요한역할이다.

이 정도 범위와 강도의 업무를 담당하는 역할이라면 회사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를 가질까? 직원을 관리하면서 고객을 응대하고 예산도 총괄하며 행사도 주최하는 수준이니, 공공기관이나시민단체로 치면 사무처장 정도일 것 같고, 기업으로 치면 전무이사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소규모의 사업장이라면 사장님이거나 적어도 실무 최고관리자가 될 법한 역할이다.

며느리가 가족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중요해서 그런지, 며느리설화를 보면 며느리 때문에 집안 전체가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내용이 많다. 대표적인 며느리 설화로 채집되는 명당을 망친 며느리이야기가 그러하다. 

사위 고르기 설화에서 도전과제는 ‘거짓말 세마디를 성공하기‘
다. 심판자인 아버지는 응시자의 말에 무조건 ‘거짓말이 아니다‘
라며 족족 탈락시킨다. 그러다 한 응시자가 ‘선대에 빌려줬던 돈을 환수하러 왔다"고 말하자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이라고 인정하여 사위를 삼는다.

며느리 고르기 설화의 도전과제는 좀더 무겁고 현실적이다.
‘쌀 서말로 세 식구와 석달을 지내기‘에 성공해야 하는 과제다.
설화에서는 한 응시자가 쌀로 잔뜩 밥과 떡을 해 먹은 후, 남종에게 나무를 하게 시키고 여종과 자신은 길쌈을 하고 나물을 캐어시장에 내다 팔아 재산을 증식해 며느리로 발탁된다. 이 과제를수행하는 기간이 설화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는데, 길게는 일년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예능으로 치면 ‘사위 고르기‘는 단발성 순발력 테스트에 가깝고, 며느리 고르기‘는 장기전인 서바이벌 리얼리티쇼에 가깝다.
설화 속에서 좋은 사윗감은 재치가 있는 사람인 데 비해, 좋은 며느릿감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활능력, 영리함,
리더십, 경제적 수완 등 다방면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니 ‘며느리‘를 ‘아들의 아내‘라고 정의하는 것은 그 의미의 절반도 표현하지 못하는 듯하다. 전통적인 의미의 며느리는단순히 아들의 아내로서의 지위가 아니라 집안 전체에서 특수한

가족제도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가(집‘가‘)제도가 이식되며 호주제로법제화되었고, 호주제는 2005년에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으로 폐지되었다."
 호주제는 호주승계 순위를 
아들딸(미혼)-처-어머니-며느리 순으로 정하는 등 남성을 중심으로 가족구성원을 종속적으로 배열한 가족제도로서, 헌법이 요구하는 평등한 가족관계에 부합하지 않았다. 
정작 한국에 호주제를 도입시킨 일본은 1947년에 이를 폐지했으니, 한국의 호주제는 폐지되기까지 꽤 오랫동안 세계에서 유일한 가족제도였다고 기록된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가족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물론 예전과비교하자면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결혼은 집안의 결합으로 여겨지고, 결혼을 통해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관념도 남아 있는 듯하다. 
아직도 때마다 찾아오는 명절은 가족갈등이 촉발되는 위기가 된다. 수신지 작가의 웹툰 며느라기』(2017) 나 선호빈 감독의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2018)와 같은 작품들이 며느리에 대한 기대를 비판하고 그에 저항하며 호응을 얻는다. 
전통적인 가족질서를 둘러싼 긴장이 곳곳에서 치열하게 격돌하고 있다.
며느리에 대한 기대는 결혼이민자 가족에게서 더욱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듯하다. 결혼이민자 가족에 대한 연구들을 살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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