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마음은나를 붕 뜨게 하기도.
한없이 추락하게 하기도 하는역동성을 띤 반면좋아하는 마음은온몸과 마음의긴장을 풀리게 해주는안정성이 있다.

실망은 결국상대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다.
무언가를 바란, 기대를 한,
또는 속단하고 추측한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다.

선을 긋는 건,
여리고 약한 혹은못나고 부족한 내 어딘가에누군가 닿았을 때
‘나의 이곳은 이렇게 생겼어‘라고고백하는 행위다.

사람들에게는저마다의 감정서랍이 있다.
상황에 대한 기억은흐릿해질지라도,
그때 느낀 감정들은어딘가에 저장이 된다.

나의 관점을 의심하면또 다른 관점으로어떤 것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확실히나의 세계를 확장하거나견고히 해주었다.

주는 자가 받는 이를 오랫동안 세심히 지켜봐온 시간이 선물 받는 이의 만족도를 좌지우지하듯, 조언도 그렇다.
듣는 이의 성향과 아픈 곳을 헤아려가장 고운 말이 되어 나올때야 ‘조언‘이지,
뱉어야 시원한 말은 조언이 아니다.

행위는 정신을 지배하기에,
눈물을 참는 게 습관이 되면나 스스로 ‘나는 지금 힘든 게 아니다‘라고속이는 것도 가능해진다.

분노가 주로 외부 자극에 뿌리를 둔다면
용기는 내 안에 쌓인 결심들이 모여 탄생한다.

사랑과 행복은
비처럼 내려오는 감정들이다.
나의 의지로써가 아니라
누군가 갑자기 연
커튼 너머 햇살처럼
쏟아져 내린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파도를 타듯 자연스러울 때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 육체가 약해지는 데에는 분명.
조금 더 신중해지고 조금 더 내려놓으라는 뜻이있을지도 모른다.

꿈은 어딘가에서 날아온 꽃씨처럼
소리, 소문 없이 피어났을 때 비로소 꿈이다.

유난스럽다고
지적받은 적이 있다면
그 부분이 바로
당신을 빛나게 해줄
무언가일 것이다.

나의 인생을 극으로 본다면
작가는 나고 주인공도 나다.
걱정에 빠진 내 인생의 주인공인 나를 위해
작가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음 회차로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것뿐이다.

모두에게, 모든 곳에서
온전한 나로서만 존재한다는 건
아주 이기적이어야 가능하다.
배려하기에, 사랑하기에,
책임이 있기에,
히스토리가 있기에
우리는 종종 다른 모습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부분에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의 ‘벽‘에서 뒤돌아봐야
알 수 있는 나만의 가능성이 있다.
즉 한계에 부딪힌다는 건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도 된다.

결정

여러분들은 무언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어떤 편이세요? 저의 경우는 결정이 너무 어려울 땐, 아예 단순한 선택을 하게끔 만드는 케이스인데요. 예를 들어 뭘 골라야 할 때 아예 선택지를 많이 주지않아요. 심지어는 가장 많은 고민을 겪는 단계가 결혼할 때 드레스 같은 거 고르고 그럴 때인데, 저는 처음 들어간 데서 한두 번째입어본 걸 그냥 골랐고요. 집을 볼 때도 여러 군데를 보면서 다니면 저는 결정을 못해요. 그래서 그냥 뭐 이정도면 나는 감사히 살거 같고 마음에 든다 하고 결정해요. 최대한 비용에 맞춰서 최선인 것을 고르고 첫 번째 봤을 때 문제가 없으면 다음 옵션을 보지않으려고 합니다. 나름 저의 팁입니다. 너무 이거 때문에 고민 많으신 분들은 이런 식으로 시간을 단축해보셔도 좋을 거 같아요.

사랑

저는 유년기에 아버지의 부재 속에 자란 케이스였어요. 그것이 커다란 아픔이나 상처를 남기진 않았지만, 그로 인한 연애의 불안정함이 있었어요. 상대가 조금이라도 아이 같은 모습이 보이면 질접한다든지, 굉장히 어른스럽길 바라곤 했죠. 그런데 제가 자각을하면서부터 그런 문제가 많이 없어지고 ‘아, 내가 연애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어떤 문제가 연애를 통해 지속해서 같은 문제로 발현되고 있었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하라고 이야기하는 건달콤하고 좋아서가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자기의 내면을 방치되어 있던 모습들을 다 끄집어낼 수 있는 행위가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에요. 어떤 형태로의 사랑이든 마찬가지예요. 로맨스이든 아니든 사랑은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똑바로 마주볼 수 있게 하는행동이라고 생각해요.

통증

통증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하지만 종류와 상관없이 대부분통증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상태가 호전되는데요. 꼭 아픔에아픔을 더해야만 낫는 통증이 있죠. 바로 ‘근육통‘입니다. 통증이아주 심한 부위를 만지면 너무 아프기도 하지만 묘한 시원함이 느껴지기도 해요. 그렇게 실컷 주무르고 나면 거짓말처럼 고통이 사라집니다.
우리 마음에도 근육이 있죠. 그렇다면 내 마음의 통증도 근육통과 비슷한 게 아닐까요?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그 아픔을 즐겨보는 겁니다. 실컷 앓고 나면 조금은 시원해질지도 모르니까요. 여러분들은 근육통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저는 운동을해서 근육통이 생기면 너무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그 아픈 부위를 일부러 계속 스트레칭하고 누르면서 통증을 확인하고 내가 어제 운동을 했음에 뿌듯함을 느끼고요. 너무 심할 때 운동을 하면풀리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도 통증이 통증을 이겨내는 거 같고요. 또 어떤 분들은 마음의 통증도 왔을 때 내심 반가워하는 분이

포기하는 용기

과감히 다 놓을 수 있는 선택만큼 용기가 필요한 게 없더라고요.
왜, 사실 그거를 밀고 나가는 것보다 다시 곰곰이 생각하고 누구의 조언을 들어서 그걸 괴감히 철회하는 게 더 어렵더라고요. ‘내가 질러놓은 게 있는데‘ 하면서 그냥 달려가는데 ‘아, 그래, 나 지금이 선택 올바른 게 아닐 수도 있어‘ 하면서 확접을 수 있는 것또한 용기거든요.

행복

저는 항상 행복은 막 까먹는 스낵처럼 굉장히 사소한 것에서 느껴야지만 그것이 진짜 행복이고, 사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은 훈련이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 나 지금 행복한 거 같아!" 하면서 그 행복한 순간을 온몸으로 기억하려고해요. 나중에 기억이나고 안 나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잠깐 지나가다 날씨가 너무 좋은 날, 내가 너무 좋아하는 노래가 우연히 어딘가에서 나오고 있을 때, 그 순간이 엄청난 행복이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어디선가 커피를 사서 마셨는데, 이름 모를 카페였는데 내 입맛에 딱맞는 라떼를 만났을 때도 ‘아, 이거 진짜 오늘 지금, 이 순간 잊지말아야 해!‘라며 피부에 저장하듯 그 순간을 저장하는 습관이 있어요.
요즘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분들은 당장 그런 사소한 쪽지 같은행복 있잖아요. 그런 걸 따서 야금야금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있어요. 저도 그런 거 같아요. 제가 어느 순간 봄이 왔을 때덜 설레게 되어 좀 서운한 마음이 들었는데 가을은 아직 타거든요. 쓸쓸하고 알싸한 기분이 느껴지면 ‘아, 다행이다. 나 아직 감성이 살아 있구나‘ 하게 되더라고요.

나무늘보의 생존법

세상에서 가장 느린 동물로 알려진 나무늘보는 하루에 18시간 동안 나무 위에서 잠을 잡니다. 움직임도 느리고 근육 양이 탁월하게 적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이동하는 일이 없죠. 이렇게 게으른 나무늘보가 야생에서 살아남은 비결은 뭘까요? 비결은 단순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배변할 빼고는 절대로 나무 아래로 내려오지않는 것. 즉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않는 게 나무늘보의 생존 전략인 셈인 거죠. 옆 사람의 속도에 맞춰 빠르게 살지 않아도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죠. 혼자 고립되면 고립될수록 그것이 생존 무기가 되는 나무늘보의 세계가끔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나무늘보처럼 느리게, 느리게 살고 싶어집니다.

완벽의 비결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의 창업자인 에드윈 캣멀, 누군가가 "매번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비결이 뭔가요?"라고 그에게물었습니다. 그 대답은 의외였어요.
"어떤 작품이든 시작할 땐 다 형편없죠. 매일 하는 회의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도 사실 대부분은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괜찮아요.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내고 수정하면서 더 분명한 형태로진화하니까요."
실제로 픽사에서는 처음 나온 작품의 초안을 대부분 버린대요. 가장 먼저 떠오른 아이디어들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흔한 것들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그에게 배웁니다. 결국, 완벽한 결과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건 하늘에서 떨어진 능력이 아닌 열정과 끈기라는걸요.

설렘

처음에 상대를 만났을 때 설렘 때문에 생기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있어요. 그 사람 때문에 너무 중요한 걸 포기하기도 하고 후회도 하는 바보 같은 일이 일어나는 시즌이 있죠. 그건 물론 축제에서 불꽃 터지는 순간처럼 가장 화려한 때이죠. 그렇지만 사실 계속해서 그런 설렘이 이루어진다는 건 우리 인간의 구조 특성상 불가능한 거거든요. 설렘은 결국 긴장감에서 오는 거고, 긴장감이라는 건 서로 모르는 데에서 서로를 예측할 수 없음에서 오는 불안에 기인하는 거니까요.
거꾸로 말하자면 계속해서 불안한 사이여야지만 설렘이 있는 거거든요. 그게 동전의 양면인 거 같아요. 설렘은 뒤돌아봤을 때 너무 아름답고 순수하고 촉촉한 거 같은데, 막상 진행 중일 때는 좋은 날도 있지만 고통스러운 날들도 많아요. 왜냐하면 모든 게 불확실하고, 저 사람 마음을 모르겠고, 오늘 마음 내일 마음이 다른것처럼 느껴지니까요. 그러다보니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 없어요.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것을 ‘설렘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

에 너무 깃발을 찍어놓고 있는 거 같은데 제 생각엔 그런 것들은사랑의 일부분인 것 같아요. 사랑은 계속 변해가면서 다양한 단계의 얼굴을 보여주는 거 같더라고요. 설렘이라는 것은 지나고 보면앞면만 생각나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 같지만, 그 뒷면은 수없이불안한 밤들, 입맛이 떨어졌던 저녁 식사들, 이런 게 분명히 있을거예요.

약한 모습

상대방을 간파하는 거 같은 제일 쉬운 말이 뭐냐면 "사실 마음 많이 약하지?"와 같은 말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대개 어떻게 알았냐며 놀라곤 하죠. 이처럼 누구나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약한 모습을 한 부분씩은 가지고 있다는 말이겠죠.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나에대해 얼마나 약한지 모르는 한편, 우리는 스스로가 얼마나 강한지 가끔 잊어버리는 거 같아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

올해 12살이 된 전이수 어린이는 8살 겨울방학에 첫 동화책을 그린 꼬마 화가입니다. 전이수 어린이가 10살에 그린 한 그림 속에는 사자와 사슴이 다정하게 뛰어놀고 있는데요. 그림을 그린 이유에 관해 물었더니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이건 사랑이라는 제목의 그림이에요. 원래 사자는 사슴을 잡아먹잖아요. 그럼 이 그림은 불가능한 거겠죠? 그런데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거 같아요."
10살 어린이의 눈에 비친 사랑이란 그런 거겠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 사랑이란 이름으로 수없이 계산기를 두드리던 어른들의 모습이 조금은 부끄러워집니다.

조심성

제가 50대 이상의 어른들을 보면서 뭔가 근사하다고 느끼는 부분들이 있었는데요. 그게 의외로 좀 수줍어하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수치심이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더라고요. 그게 생각보다 나이가들면서 약간 무뎌지는 부분이잖아요. 눈치라는 게 조심성이기도하니까, 뭔가 남들 시선을 너무 걱정해서도 안 되겠지만, 적당한조심성은 생명력 있는 어른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거같아요.

낭만

저는 낭만이란 단어가 뭔가 질감이 굉장히 예전 것이어서 ‘아무도 가지 않는 다방‘ 같은 낡은 단어로 여겨져서 속상했었어요. 근데 낭만은 내 감정에 충실하고 내 행복에 더 충실한 단어예요. ‘세상이 보기에 어떻고 나의 역할은 이래야 하고 이런 거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져서 나만의 세상을 그려나가라는 의미더라고요.
문득문득 환기하지 않으면 ‘이 단어의 원래 뜻이 뭐였지?" 하게 되는 너무나 좋은 단어들이 있어요. 낭만 또한 그런 단어인 거 같습니다.

후회

가장 최근에 한 후회, 어떤 게 있으세요? 작게는 어제 골랐던 저녁메뉴부터 크게는 나의 인생을 뒤흔드는 일까지 우리는 하루에도참 많은 선택을 하고, 또 그 선택에는 대부분 후회라는 이름이 뒤따라오죠. 특히 후회는 많은 선택권이 있을수록 더 커집니다. 내가 선택하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과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뒤섞여 자꾸만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거든요. 하지만요. 한 작가의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반드시 한 가지를 결정해야 할 때 본능적으로 최선을 다해 선택한다고 합니다. 돌아보면 후회밖에 없는 그선택도 ‘그때는 제일 나은 선택이었다‘는 거죠. 혹시 후회로 가득한 밤을 보내고 있다면 잠시 멈춰볼까요? 그땐 그게 최선이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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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는 것과도 같다. 더 끓일 의지는 없지만, 그렇다고바로 식지는 못한다. 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이때, 흔들리는 동공으로 잔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미안한 줄 알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등등이 단골 대사다. 물론, 이 말을 하지 않는다면 베스트다.

그러나 사과를 하는 입장에서 사과를 받는 태도에 점수를매길 권한은 없다.

사과를 받은 사람 쪽에서 필요한 겸연쩍은 시간이란 게있다. 마지못해 내민 손을 잡아주고, 다시 웃으며 이야기 나누기까지 떼는 한 걸음 한 걸음은 몹시도 무겁다. 이 무거운 발걸음을 기다려주는 것까지가, 진짜 사과다.

소중한 관계를 이어가는 비법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잘 화해하는 거라고 대답한다. 호시절에 잘해주는 건 쉽고도 당연한 일이다. 소중한 관계일수록, 거리가 가깝고 가까울수록, 갈등이 생길 확률은 높다. 그러니 이 갈등을 어떻게어루만져 다음 단계로 가는지가 중요하다. 잘 마무리된 다툼만큼 관계를 돈독히 해주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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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사람은 다수일 수 있다. 
아마도 이 차이가 ‘좋아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마음보다 덜 특별하다는 오해의 원천일 수 있겠다.

내가 ‘좋다‘는 마음을 귀하게 보는 데는 
이 감정이 가진
실시간성과 일상적임에 있다. 
우리가 ‘좋다‘는 말을 언제 하는지 떠올려보면 실시간성이라는 말이 무언지 이해가 갈것이다. 친구랑 공원에 앉아 기분 좋은 바람을 맞을 때, 마음에 쏙 드는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다 문득 뱉게 되는 말.
‘좋다!‘

사랑하는 마음은 나를 붕 뜨게 하기도 한없이 추락하게하기도 하는 역동성을 띤 반면 좋아하는 마음은 온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리게 해주는 안정성이 있다.
사랑하는 마음과 좋아하는 마음에 부등호를 붙일 생각은없다. 이 둘은 맞닿아 있는 듯 완벽하게 다른 세계를 빚어내는 감정이며 그저 ‘좋아한다‘는 마음이 얼마나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지 잊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기대‘의 반대 의미는 무얼까.
 ‘오해‘, ‘편견‘쯤되겠다. 둘 다 사적인 시각에서 비롯되지만, 기대에는 애정이 그 시작점에 관여를 하고 오해와 편견에는 그에 반대되는 감정이 관여했다는 차이만 있다. 
때로 기대는 실망을 낳고 오해나 편견이 호감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오래된 관계는 이 두 감정이 교차 반복되다가 찾은 평균점 같은 것이 아닐까.

내가 오래오래 지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저 말이었던 것 같다. 

실망시키는 데 두려움이 없기를 바란다는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높은 확률로 당신을 실망시킬 테지만 우리 평균점을 찾아가보지 않겠냐는 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인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인 소수와의 관계는 견고한 것이다.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고서는, 나는 누군가와 진실로 가까울 자신이 없다. 우리, 마음껏 실망하자. 그리고 자유롭게 도란거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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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대답을 들어도, 나의 의문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무슨 백성들의 뜻을 말하는 거지? 우리 같은 백성들?
아니면 우리 하인들 같은 백성들?
둘째언니가 중얼거렸다.
"황제가 안 계시다니 너무 이상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는 2천 년이 넘도록 항상 황제가 계셨잖아요."
"세상은 바뀔 수 있단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서 옥팔찌를 가지고 놀고 있는 남동생을 힐끗 보았다.
"우리 아들은 황제가 없는 나라에서 자라게 되겠구나."
아버지는 감회 어린 목소리로 읊조리며 팔을 뻗어 남동생의 턱 밑을 간질였다.
나는 아버지 말씀이 맞기를 원했다. 세상이 변한다면,
어쩌면 여자아이들도 더이상 전족을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나는 혁명이 무엇인지 몰라도, 무조건 지지하고 싶었다.
혁명에 대한 흥분 때문에, 나는 어머니가 전족에 대해까맣게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씩 마음을 놓기 시작했다.

제임스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둘째언니와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했다. 제임스는 어떤 편견도 없이 동정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제임스는 어쩌다가 위너 씨 가족의 보모가 되었는지 다시 물었다. 비록 제임스를 알게 된 지 2주일밖에 안 되었지만, 나는 제임스에게 신뢰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내 사연을 전부 아는 사람은 길버슨 선생님뿐이었다. 워너 씨부부조차도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우리 가족, 아버지와 할머니, 큰아버지에 대해서 제임스 추에게 술술 털어놓고 있었다. 그 남자에게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 심지어 파혼당한 일까지 이야기했다.
"이게 제 이야기예요. 이제 제가 왜 미국으로 가는 배를타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아셨겠지요."
나는 말을 맺었다. 제임스는 한동안 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당신처럼 용감한 사람은 처음 만나 봅니다."
처음에 나는 제임스가 나를 놀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194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저는 혁명적이거나 뭐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화뮬란처럼 여전사도 아니고요."
"당신은 혁명가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싸운 싸움을 존경합니다. 인습과의 싸움을 말이죠."
내가 물었다.
"그럼 당신은 인습에 맞서 싸운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않으시나요?"
큰아버지는 전통을 지키는 것만이 우리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옛것을 지킬 뿐만 아니라, 새것을 알기도 해야 한다고 믿었다.
제임스가 말했다.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전통도 있지요."
그 목소리가 어찌나 확고하던지, 나는 왠지 제임스의 인생에도 뭔가 그런 일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어쨌든 제임스가 아버지와 같은 생각이라는 사실이 기뺐다. 나는 제임스가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고 그에 대해서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나는 우리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이제 당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세요. 당신은 어쩌다가 미국이어 1OF

한웨이가 소리쳤다.
"적어도 난징으로 돌아올 수는 있었지 않소! 그런데 당신은 미국에 그냥 남았소! 당신이 그 동안 겪은 고생을 생각하면 난 견딜 수가 없단 말이오!"
한웨이의 말이 맞았다. 나는 무척 힘든 일을 해야만 했다. 차이나타운에 사는 어떤 여자들은 전족을 하고 부유한사업가와 결혼해서 이층 방 안에 갇힌 채 편안하게 살았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런 인생을 살아야만 했다면 난 미쳐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다른 인생을 선택했다.
제임스와 식당을 시작했을 때, 처음 2 년 동안은 그야말로 허리가 휘도록 힘든 일을 해야만 했다. 제임스가 힘들것이라고 미리 경고해 주었지만, 일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고단했다.
상황이 조금 나아진 것은 최근 들어서였다. 제임스와 나는 도와줄 사람을 쓸 만한 여유가 생겼고, 이따금 동물원에 가거나 페리호를 타고 이스트 베이로 놀러 갈 틈도 났다. 나는 심지어 한가롭게 자리에 앉아 손님들과 지나간시절에 대해 수다를 떨곤 했다.
나는 한웨이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일에 시달린 내 손을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내 손끝은 다시는 가늘고 섬세해지

지 않을 것이다. 내 손과 대조되게 한웨이의 손은 여전히곱고 부드러웠다. 날마다 수북이 쌓인 접시를 닦기는커녕,
자기 양말 한 짝 빨아 본 적이 없는 그런 손이었다.
문득 이제 우리 가족들과 다시 연락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가족들에게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상세히알려주고 싶었다.
"한웨이, 우리 어머니께 내 편지 좀 전해 줄래요? 그리고 이 식당에 대해서도 어머니께 말씀드려 주겠어요?"
"나는 내가 겪은 힘든 일들이 자랑스러워요. 왜냐하면나는 내 두 발로 씩씩하게 서서, 내 남편이 이 식당을 성공시키는 걸 도와주었거든요."
나는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아버지라면 나를 무척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나는 유쾌하게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내 커다란 발로 씩씩하게 서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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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 나라에까지 퍼지고 있었다. 한편 이곳 캠프장의 사람들과는서로 벽을 쌓고 사는 느낌이었다. 링고와 친구가 된 개를 키우는
"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과 그다지 가깝게 지내지않고 있었다. 캠프장에서는 철저히 익명의 상태로 사람들과 별교류 없이 지냈지만, 이메일과 페이스북에는 메시지가 넘쳐나고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접한 수천 명의 사람들로부터 온 것이었다. 도무지 실감나지 않았다.
우리는 메시지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읽었다. 코네티컷Connecticut에 사는 주부는 어머니 이야기를 읽고 덕분에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고 감사 편지를 보내왔다. 암 병동에서 일하는 어떤 간호사는 말기 암노년 환자들이 침습적이며 고통스럽고 힘든 수술과 치료를 받는대신 어머니처럼 평화롭게 말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좋겠다고 편지를 보내왔다. 그 간호사는 노년 환자들이 치료를받으면 얼마간 더 살 수는 있겠지만 여생의 즐거움은 상실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어떤 이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고 온 가족이 함께 2주 동안 1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대장정의 여행길에 오르기로 계획을 세웠다며 "살아 있는 동안 온전히 삶을 느끼고 싶어서요."라고 했다.
호주 서부 퍼스에 사는 남자는 우리에게 진심 어린 축복의 메시지를 보냈고, 아르헨티나에 사는 사람은 우리에게 큰 포옹을 선사했다. 또 최근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며 어머니를 ‘할머니164

라고 불러도 되겠냐고 묻는 메시지도 있었다. 이런 메시지들이끝없이 도착했다.
사람들이 보낸 뭉클한 편지를 읽을 때마다 우리는 마음이 벅차올라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응원해주었고, 응원의 목소리는 새로운 에너지의 원천이 되있다.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이면도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두려움과 상실감, 희망을 토로했다. 환자를 돌보면서 느끼는 어려움, 병을 진단받고 찾아온 괴로움, 후회, 회한 같은 것을 우리에게 하소연하며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내밀한 감정을 쏟아부었다. 꿈에 그리던 여행을 실행에 옮기거나,
최근 세상을 떠난 부모님과 진정으로 화해하거나,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의 의미에 대해, 질병과 나이 듦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대해 전 세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의 장 한가운데 놓이게 된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날것 그대로 마주할 때마다 어떻게 마음을 열어야 하는지 그때그때 배우고 있었다. 처음부터 잘했던것은 아니었다. 초반에는 정신없고 겁이 났다.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관심을 가져주자 책임감 같은 게 생기면서 동시에 이러다가 우리 자신을 잃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어머니가 좋아할 만한 여행지와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경로를 검색했다. 항상 식사는 잘하고 계신지, 잠자리는 편안하신지 걱정이 앞섰다. 어머니가 원기 왕성하고 기분이 좋은 날은 소풍이나산책을 갔고, 그렇지 않은 날은 그냥 한곳에 머물며 책을 읽거나퍼즐을 풀었다. 모든 것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의사 결정이 이루어졌다. 어머니의 기분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우리의 하루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지치고 힘들어 우울해지면, 또는 지금까지 우리가 그렇게 애써서 성취한 자유를 포기하기로 한 결정이 과연 잘한 것이었는지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순간이면, 우리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그들은우리에게 응원단 같은 존재였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것만 같을 때, 그들 덕분에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불던 2월의 어느 날 아침, 나는 플로리다 세인트오거스틴비치에서 우리가 보는 몇 안되는 뉴스 가운데 하나인GNN " 에 메일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우리 페이스북에 좋아요를누른 사람들이 520명이나 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이에 고무되어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것이다. GNN이라면 우리의 이야기를 뉴스로 다룰 것이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소식이 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 Good News Network: 좋은 소식 네트워크

의했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며 이제 막 시작하려는 새로운 모험에 대해 설렘과 긴장을 함께 나누었다.
인터뷰 질문,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상실감에 빠진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어머니의 답, "매일 기도하세요. 하나님이 돌봐주실 겁니다."
인터뷰 질문, "긍정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조언 한마디 부탁합니다."
곱씹고 고민하는 스타일이 아닌 어머니의 즉각적인 답, "그냥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거예요. 그러면 돼요."
인터뷰 질문, "살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을 때 어떻게극복합니까?"
포트마이어스비치에서 만난 릭과 조가 떠오른 듯한 어머니의답, "서로 이야기를 나누세요. 정말 큰 도움이 돼요."
나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어머니의 답변과 함께 많은 사진을첨부하여 GNN에 이메일을 보냈다.
그다음 일요일, 휴대폰에 이메일이 왔다는 알람이 울렸다. 이메일은 GNN에서 온 것이었는데 어머니의 이야기를 드라이빙미스 노마Driving Miss Norma」라는 제목으로 올렸으며, 기사가 우리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었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컴퓨터를 켜고 GNN 뉴스를 확인했다. GNN에서 올린 우리 기사는 훌륭했다. 우리의 시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본 우리이야기를 읽는 것은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후로 우리를170

였다. 세상에, 어떻게 우리 어머니가 아기 판다보다 인기가 많을수 있는 거지?
치솟는 숫자를 보며 우리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팀과나는 어느 순간부터는 설렘보다는 두려움을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5년 전, 팀과 나는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여러 가지 뉴스를 수동적으로 흡수하며 휘둘리는 삶이 싫어 일반 대중 매체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우리들이 선택한 것만을 받아들이며 우리 중심의 삶을 살고 싶었다. 테러 소식, 총기 사용 폭력 사건, 정치 스캔들 등 온갖 부정적 뉴스가 도를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뉴스는 우리의 신경을 갉아먹고 우리의 사고에까지 영향을끼쳤다. 그래서 TV 뉴스를 보지 않았고 신문과 잡지를 모두 끊었으며, 페이스북의 경우 뉴스가 들어오는 경로를 차단해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바로 그 뉴스가 되었다. 게다가 수백 명에달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 그네들의 인생에 들어오라고 부르고 있었다.
‘내가 너무 대답했어. 나 때문에 우리 세 사람 인생이 무너지고 있어.‘
나는 좋아요가 하나 더 추가될 때마다 이렇게 후회했다. 나 때문에 우리 가족이 사생활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나에 대한 팀과어머니의 신뢰는 사라졌다. 나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괴물을 키운 셈이었다. 자는 동안 들리는 심장 소리에도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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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본인이 TV 방송에 나왔던 사실에 대해서 그리고 거리에서 사람들이 엄마를 알아봤던 것에 대해서 한 마디도 쓰지 않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질병의 고통과 같은 내용도 기록하지 않았다. 대신 엄마는 삶에 대해, 그리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소한일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었다. 튼튼한 휠체어와 그 휠체어를 밀어주는 사람, 엄마 염소와 아기 염소의 모습, 쿠키와 페퍼민트 패티, 아주 멋진 파마를 한 날, 비누를 선물로 준 산타 이야기, 여러친구들, 가족, 또 링고와 같이 즐겼던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 기록했다.
엄마는 항상 즐거움이 즐거움을 가져다주고, 사랑이 사랑을낳고, 평화가 평화를 불러온다고 생각했다. 미소를 지을 때마다,
수줍어할 때마다, 그리고 지도상의 한 점을 지날 때마다 우리는엄마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함께여행하면서 엄마를 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엄마는 나에게 인생에 대해서 "Yes!" 라고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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