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방법을 택했다. 
재능으로 이길 수 없다면, 그저 끈기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뛰어난 사람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다면 
최소한그들과 같은 위치에 닿을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무조건 꾸준히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한 유일한 전략이었다.

피곤해도 그냥 한다.
재미없어도 그냥 한다.
하기 싫어도 그냥 한다.

사실 성공의 본질은 굉장히 단순하다. 
누구나 시작할 수는 있지만 끝까지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이 포기할 때 혼자서라도 계속하면, 
재능이 없어도 언젠가는 사람들 눈에 띄게 된다.
끝까지 하면 결국 재능 있는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을 이기지는 못할지 몰라도, 최소한 경쟁에서 완전히 뒤처지지는 않는다.
- P-1

그 말 듣고 시간을 흘려보내다가는 어느 순간들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가버린다.

내 인생이 정말 망가지고,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와보면 알게 된다. 그렇게 쉬라고 말했던 사람들 중 

단 한 명도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것을 
오히려 그들은 철저히 자기 인생만 챙기고, 내인생이 망가져도 아무 상관하지 않는다. 

남에게 해주는 말은 그냥 편안하고, 듣기 좋게 만들어진 말일뿐이다.

정말 중요한 건 내 현실이다. 

내 상황이 절박하고 급하다면 절대 편한 말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주변에서 아무리 괜찮다고 위로하며 쉬라고 말해도 결국 내 현실을 책임져야 할 사람은 나뿐이다.

남들의 괜찮다는 말에 마음 놓았다가는 어느 순간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추락하게 된다.
내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상황이 급하면 급한 대로 살아야 한다. 
힘들어도 지금은 견뎌야 한다. - P44

회사에서 무시당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저 사람은어차피 여기서 나갈 용기도 없고, 능력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준비가 철저한사람의 자신감과 여유가 느껴지면, 더 이상 쉽게 무시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조직에서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회사를 떠날 수 있는 완벽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무작정 그만두지 말고, 치밀하게 자신을 준비한 뒤에 결정해야 한다. 
그러면 그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 P-1

나는 예전에 사업을 접고, 인생이 크게 흔들렸을때 누워서 악플 4만 개를 찾아다니며 다 읽었다. 무시하려 해도 결국은 다 보게 됐다. 자책감, 무력감,
불안함이 한 덩어리처럼 얽혔다.

그때 알았다. 감정은 무시할수록 커진다는 걸. 감정은 없애야 할 게 아니라, 내 상태를 점검하게 해주는 신호였다. 

감정을 가이드로 활용할 때는 세 가지단계가 필요하다.
첫째, 감정을 없애려 하지 말고 관찰하고 말을 걸 - P-1

어라. 그 감정이 더 커지는 행동은 멈추고, 줄어드는행동은 계속해야 한다. 나는 그때 수영을 했다. 물속에 있는 동안은 휴대폰도 없고, 소리도 끊겼다. 그시간만큼은 불안도, 자책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생각도 멈췄다.
핵심은 내 마음에 잠깐 정지를 걸 수 있는 시간을찾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감정은 점점 작아지고, 결국은 나를 돕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둘째,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감정 속에서 진짜하기 싫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분리해 보는 것이다.
사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은 실제로 모든 걸 하기 싫다는 뜻이 아니다. 그 말 안에는 단순히 기운이 없거나, 설명할 의욕이 없는 상태가 섞여있다.
그래서 이 감정을 하나로 뭉뚱그리지 말고, 분해해서 봐야 한다. 분명 해야 할 것도 있고, 하고 싶은것도 있다. 단지 지금 그걸 구분하지 않고 있을 뿐 - P-1

이다.

셋째, ‘작은 확실함‘을 쌓는 것이다. 당장 회사 그만두고, 한순간에 아는 인연 다 끊겠다는 소리 하지마라. 지금 당신이 해야 할 건 인생을 뒤집는 결심이아니다. 천만원을 벌겠다는 목표도 아니다.
작고, 확실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다. 예를 들어, 지금 씻는 게 힘들면 욕실까지 가는 것이라도해야 한다.
지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현실 안의 선택을 해야한다. 욕구와 현실의 방향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사소해 보여도, 하고 싶은 일을 잠깐이라도 하면 감정이 줄어드는 걸 느낄 수 있다. 욕구와 현실이 충돌하면 피로와 무기력만 쌓인다.
욕구와 현실을 일치시키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것은 맞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해야 한다. 내가 진짜로 할 수 있는 것부터. 그걸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가? - P-1

오히려 부자가 되고 나니 자연스럽게 그런 아침이 찾아왔다.

중요한 건 여유 자체가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였다. 

30억 원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는 나 스스로를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깎고 단련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모든 족쇄는 내가 스스로 채운것이었다.

돈이 생기고 나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내가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어날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었다.

실험을 통해 내 최적의 출근 시간이 10시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에 맞춰 내 일정을 조정했다. 

전화를 받는 대신 전화를 거는 사람이 되었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화하는 것을 피하기 시작했다. 
이는단순히 아침 시간이 여유로워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모든 결정과 행동을 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 P-1

부자들이 아침 운동을 하고 명상하고 커피를 마시고 여유를 가지는 것은 돈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 패턴에 맞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새벽형인간만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부자들도 많았다. 인간은 각자의 생체 리듬이다를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내 생체 리듬, 내 패턴을 이해하고 그것에 맞게 스스로 삶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남이 정한 시간표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고 내게맞는 시간과 리듬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진짜 여유를 만들어주는 힘이었다.

남이 짜준 시간표를 따라가기보다 자신의 상태를 체크하고 자신만의 시간표를 만들어야 한다. 
시간표를 그대로 따라가는 사람은 자신의 리듬을 무시하게 되고, 결국에는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내가 나를 아는 것, 그리고 내가 선택하는 것. 그것이 진짜 성장이고 성공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 P-1

귀찮아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연한 게으름이 올라와도 일단 그곳으로 가야 했다.


중요한 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로가는 것 자체를 목표로 설정한 것이다.

"지금 당장 그곳으로 간다. 거기 가서 생각하자"
이렇게 결정했더니 미루는 습관이 놀라울 정도로 사라졌다.

결국 일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복잡한 과정을최소화해야 한다. 

시작이 복잡할수록 핑계가 많아지고, 
핑계가 많아질수록 습관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핑계가 피어날 틈조차 없도록 완벽하게 단순한환경을 만들어라.


단 하나의 선택지만 남겨라. 

미루고 싶을 때, 그공간으로 떠나는 것 외에는 어떤 핑계도 남겨두지말라. 
핑계가 자라나기 전에 무조건 그곳으로 떠나는 습관이 생기면, 더 이상 미루는 일은 없을 것이다. - P-1

신뢰의 요소
1. 약속의 빈도
2. 전문성
3. 이익의 일치
4. 일관성
5. 경청 - P-1

값싼 물건이 결국가장 비싼 소비가 된다

소비를 줄이려고 무작정 값싼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대부분 실패한다. 싼물건을 산다고 해서 소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비가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산 물건은 오래 쓰지 못하고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또 다른 값싼 물건을 사게 된다. 이런 식으로 소비가 계속 중복되어 결국에는 더 많은 돈을 쓰게 된다. 진짜 소비를 줄이고 싶다면, 다음의 다섯 가지 원칙을 꼭 실천해야 한다.
첫 번째 반드시 필요한 물건의 리스트를 정확하 - P-1

게 만들어라. 우리는 막상 어떤 것이 필요한지 정확히 모르고 지낼 때가 많다. 필요 없는 물건을 충동적으로 사지 않으려면 내가 진짜로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리스트에 적혀 있지 않은 것은 절대 사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하면불필요한 소비는 현저히 줄어든다.

두 번째, 물건을 다 쓸 때까지 절대로 새로 사지마라. 아직 쓰던 물건이 남아 있는데도 새로운 것을사는 순간 낭비는 시작된다. 비슷한 물건이 집 안에계속 늘어나면 결국 모든 물건이 중복 소비로 이어져 쓸데없이 돈만 많이 들게 된다. 반드시 내가 가진물건을 끝까지 다 쓴 후, 새 물건을 사야 한다.

세 번째, 물건을 다 쓰고 난 후에는 가장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구입하라. 약간 비싸더라도 제대로된 제품을 사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더 경제적이다. 처음에는 돈이 많이 드는 것 같지만, 결국 만족감이 높아 다시 다른 제품을 사지 않아도 되기 때문 - P-1

이다. 소비를 진짜로 줄이는 사람은 싸구려가 아니라 한 번에 제대로 된 물건을 고른다.

네 번째, 새로운 물건을 하나 추가할 때는 반드시기존의 물건을 하나 처분하라. 새 물건을 살 때마다기존 물건을 그대로 두고 추가로만 사들이면, 내 삶은 끝없이 물건으로 가득 차게 된다. 결국 소비 습관을 통제하지 못하고 계속 소비의 악순환에 빠지게된다. 새 물건을 하나 살 때마다 이전 물건을 하나 버리거나 처분해야 한다. 그래야만 무한정 늘어나는소비를 멈출 수 있다.

다섯 번째, 절대로 할부로 물건을 사지 마라. 할부는 실제로 내가 버는 돈과 내가 쓸 수 있는 돈의 차이를 크게 착각하게 만든다. 할부로 사면 당장은 부담이 적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미래의 소비를미리 당겨쓰는 것뿐이다. 내 수중의 현금으로 살 수없는 것은 원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소비가 아닌것이다. 현금이 없다면 살 자격이 아직 안 되는 것이 - P-1

라 생각하고, 반드시 현금을 모은 뒤에 사야 한다.
이 다섯 가지 원칙을 철저히 지키면 처음에는 소비 속도가 느려진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진정한 내소비 속도다. 이 원칙들을 정확히 지키는 것만으로도, 내 삶에서 무의미한 소비는 완벽히 사라지고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소비만 남게 된다. 결국 이 습관이 나를 경제적 이득과 진정한 만족으로 안내하게될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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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편지

아버님 어머님께.

4월이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이곳의 개나리는 쌀알만한 꽃봉오리를 달고서 벌써 2주째 태연자약하게 봄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꽃을 피울 기온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자연의 섭리를 체득하고 있는 생명에게서 기다림의 여유를 배웁니다.
어머님 편지 21시까지 잘 받았습니다. 2년 반 동안 172통의 어머님 편지를 받았습니다. 깊은 사랑의 무게를 느끼게 됩니다. 1968년도 늦가을, 부산중학교 입시를 앞두고 깨알 같은 펜글씨로 ‘부중입학‘이라는 기원을 노트표지 가득히 채우시던 일이 생각나는군요. 그제나 저제나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아버님 어머님의 사랑과 정성과 염려와 기도가 큰 뒷받침이 되었음을 징역살이를 정리하며 새삼 느끼 - P-1

게 됩니다. 172통의 편지가 말해주듯이 지속적인 관심과 염려 덕분에 알찬 생활을 이제 마무리하고 건강한 모습으로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월 면회 시에, 출소하면 바로 하향하여 계속 부산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그 자리에서도 간략히 답변드렸지만 그후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함께 살자고요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며 자식이 위험한 지경에 처하는 것을 피하게 하려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부모님의 염려와 희망 모두를 잘 이해할수 있으며 되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 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제가 서울이나 인천에서 어떤 장사를 하는 처지였다면 저는 부산에서 함께 살기 위해 가게를 처분하고업종을 바꿔서라도 내려갔을 것입니다. 제가 의사라면 병원을 옮겨 부산에서 개업하며 부모님을 모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의 처지에서 부산에 내려가 산다는 것은 제가 그동안 젊음과 정열을 바쳐가며 노력해왔던 일, 바로 저의 직업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자식된 도리를 다하면서 동시에 한 인격체로서 자신의 인생함로를 분명히 해나가는 두가지 일을 조화시켜 둘 다 이뤄낼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날 제가 드린 답변도 바로 이런 취지에서였습니다. 물론 저는 형식적으로 도 - P-1

리를 지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과 화목하게 오래오래 동고동락하며 생활하는 것은 그 실현 여부를 떠나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희망이라 생각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바로 부산에 내려와 살자는 말씀을 들으며 다른 한편으론 큰 아픔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수십년간 자신의 정열과 노력을 다 바쳐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축한 피아니스트가 당장 피아노 치는 일을 그만두고 시골에 내려와 농사를 지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자신의 음악세계에 대한 이해도 실성한 일이지만, 37살 먹은 피아니스트에게 직업을 바꾸라는 얘기는 걸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 나이가 될 때까지 해온 일을 아주 고는 일이라 규정하는 것과 다를 바 있습니다. 이제까지 헛살았으니 이제부터 다른 일하며 바로 살라는 얘기입니다. 바로 저를 체포한 수사관들이 그랬습니다. 검사도 그렇고 유죄를 선고한 판사 역시 그랬습니다 정치범이 한경
명도 없다는 노태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모두 저에게 해주한일 그만두고 만일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실제로 검사는 반성문을 쓰면 바로 내보내주겠다고 얘기했었죠. 제가 한 일이 정당하고 올바르다고 믿기에 저는 반성문 쓰기를 거부하고 대신 2년 6개월의 징역살이는 택했습니다. 
그간의 징역생활을 여유있고 안정된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운동하면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단 한순간도 - P-1

후회하거나 신세를 한탄하는 일이 없이 꿋꿋하고 낙천적으로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가족·친지들의 따뜻한 사랑과 격려도 도움이 되었지만 그 바탕에는 무엇보다도 제가 한 일에 대한 확신, 그 정당함에 대한 자부심 이런 것들이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은 하루를살아도 지옥을 경험한 것처럼 싫어하는 징역살이를 웃으며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남달리 인내심이 강해서 참은것이 아닙니다. 이만한 고생은 오래전부터 각오했던 일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겪는 일이기에 고생이 고생으로 느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영광스런 일, 보람된 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아버님 어머님!
인간이 인간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을 근절시켜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 그런사회운동, 정치운동을 펼치는 것이 바로 저의 직업입니다.
이것은 무슨 이상한 사상에 물든 결과가 아닙니다. 의롭게살아야 한다. 불의와 싸우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개인의출세나 영달보다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살아야 한다.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옳은 일을 위해 싸우는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은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제가 초등학교에서부터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개근상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하면서 - P-1

배운 내용이며 또 그것을 실천하고자 노력해온 것들입니다. 간혹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어머님께서 그리 간절하게 제가 좋은 학교에 입학하길 원하실 때 어머님께선 제가 그 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셨습니까? 저는 지금도 잊지 않습니다. 바로 20년 전 1972년 2월,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시는 어머님을 뒤로 하고 정든 집을떠났습니다. 그날 기차가 낙동강변을 거슬러 올라갈 때 붉은 태양이 강물을 비추며 서쪽으로 지고 있었습니다. 그 태양을 보며 저는 맹세했습니다. "객지타향에 가더라도 한눈팔지 않고 이를 악물고 열심히 노력하여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어 사회에 기여하겠다"고,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볼 때 보다 더 열심히 살지 못한 점들이 반성되고부모님을 보다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점이 가슴 아픕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학교에서 배운 대로, 또 제가 다짐한 대로 정도만은 곧게 걸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계속이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편하게 사는 길들도있다지만 저는 그런 인생의 길에선 아무런 살 의욕을 느끼지 못합니다. 비록 힘든 길이긴 하지만 그간의 노력으로 저는 일정한 역량을 쌓았고 또 남달리 이런 일에 재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볼 때는 고생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부모님께서도 염려하시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다른 사람이 보는 것보다는 덜 힘들며 무엇보다도 의롭고 - P-1

보람된 일이며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처럼 오랫동안 마음먹고 노력해왔으며 또 재질을 가진 사람들이 앞장서서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학생들이 오직 정의감 하나 갖고 앞뒤 가리지 않고 화염병을 던지거나 밀가루를 뒤집어씌우는 것과는 질이 다릅니다. 현실적 조건에 맞춰 합리적이고 현명한 방법을 찾아나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직업과 그것에 대한 저의 생각을 널리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먼 길에서 돌아온 아들을 불을 끄고 글씨를 쓰게 한 후 아직 멀었다며 바로 쫓아낸 한석봉의 어머님처럼 
제가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 불의와 타협하지는 않는지, 성실하게 일하는지를 관심을 갖고 채찍질해주시기 바랍니다. 

훗날 후손들에게 ‘아무것도 물려주지 못했으나 이 나라와 민중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살아왔다‘는 자부심을 남겨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부모님의 이해와 격려는 제가 이 세상에서 뜻을 펴고 또 사회에기여하는 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저 역시 자식된 도리를 다하면서 또 저의 직분을 다하는데 진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맹장 아래 약졸 없듯이 강한 부모 밑에 약한 자식 없을 것입니다. 보다 강하게이 험한 세파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타의에 의해 강제된 징역생활이었지만 인생에 유 - P-1

익한 시간으로 활용함으로써 결국 승리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지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승리한 사람들답게 웃는 얼굴로 만나기 바랍니다. 또 늘 화목한 분위기를 유지하도록 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하룻밤을 꼬박 새우게 되는데 아버님께선 이곳까지 안 오셨으면 합니다. 제가 찾아가서 뵙는게 도리일 듯싶습니다. 어머님께선 멀미 예방약으로 ‘귀밑에‘
(붙이는 약 이름)를 이용하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1992년 3월 25일
회찬 올림 - P-1

우리는 직장 동료입니다

여러분 만나 뵙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이전 17대 국회 때 현역 의원 중에 제가 제일 먼저 제안했는데, 그때도 함께하셨던 분 계십니까? 한분 계시네요.
그리고 19대 때는 본청 귀빈식당에 한번 모셔야겠다. 해서 그곳에서도 식사를 같이 했었습니다.
이런 행사는 저희가 사진 몇 장 찍으려고 형식적으로 하는것은 아닙니다.

 저희 정의당 의원들은 여러분과 같은 공간,
국회라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들입니다.

비록 맡은 바 업무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국민을 위해 한공간에서 일하는 동료라는 의식을 저희는 늘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20대 국회가 시작되는 오늘 첫 행사로 여러분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은 여러분이 늘 직장 동료라는 점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 P-1

우리나라 곳곳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여러분과 같은 처지의 많은 분들이 저희가 누구보다도 먼저 생각하고 대변해야 하는 분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다소 어색하고, 다소 불편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저희의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심과 진심이 잘 통하기를 바라고 저희가 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옆에서 같이 깨우쳐주시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이 일하는 동안 겪는 여러 문제에 대해서 저희가 저희 일로 생각하고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원래 쓰던, 여러분들의 노조가 쓰던 공간이 잘 유지되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도록 또 저희가 노력할 것이고요. 혹 일이 잘 안 되면, 저희 사무실 같이 씁시다. 
그냥 공동으로 저희 정의당이 국회에 있는 한 여러분들이 외로워 - P-1

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원내대표로서 약속드리겠습니다. 
오늘 식사 맛있게 하시고, 종종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5.30, 
국회 청소 노동자와의 오찬 간담회 인사말 - P-1

고(故) 노회찬 의원의 20대 국회의 첫 공식 일정은
다름 아닌 국회 청소 노동자들과의 식사 자리였습니다. 
"우리는 직장 동료입니다‘라는 담담한 한마디에는 그가 꿈꾼 정치의 많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매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면 청소 노동자들에게 장미꽃을 건넸고, 
국회사무처가 휴게 공간을 비워달라고 요구하자
"그럼 저희 사무실 같이 씁시다"라고 손 내밀던 사람이었습니다.

2018년 7월 27일, 그의 국회 영결식 날, 작업복을 입은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국회 앞 운구차 길목에 조용히 도열했습니다. 
평소 자신들을 진심으로 대해주었던 단 한 사람의 정치인을 보내며, 이들은 고개를 숙인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존중했던 노회찬이라는 이름이 왜 그토록 오래 가슴에 남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이 인사말을 책에 싣는 이유는, 정치가 누구 곁에서 시작해야 하고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이 글은 20대 국회의원 노회찬 의원의 ‘처음‘이었고, 또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마지막‘이기도 합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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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니다. 언니네트워크에서 비혼이나 가족구성권에 관한 운동을 해왔어요. 2019년부터 회원으로 있다가 운영위원이된 건 2~3년이 되었네요.

운영위원은 어떤 역할을 하나?
언니네트워크는 연말에 운영회의에서 운영위원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이나 사업 아이디어를 함께 공유해요.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면, 회원총회 자리에서 사업을 공유하고 기획단을 꾸리죠. <탈가부장:례식>도 그렇게준비한 사업이고요. 운영위원은 물론 기획단원들도 다 자기 본업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럼에도 각자가 하고 싶은이야기도 있고 재미도 있고 해서 자주 모여 사업을 하는 거같아요.

<탈가부장:례식>이 사업으로 채택된 이유는?
2022년에 유난히 장례식에 갈 일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장례에 관한 대화를 나눌 일도 많았는데, 우리가은 장례식들이 참 공허하다는 인상을 받았던 거 같아요. 
고인을 애도하는 시간은 정작 부족하지 않나? 장례식만으로 충분히 서로 마음을 나누고 위로할 수 있나? 하는 고민도 하고요. 
그동안 언니네트워크는 다양성이나 가족 구성권 같은 키워드를 가지고 활동해왔는데,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인해 성소수자의 네트워크가 단절되고, 관계를 상실하는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꼭 퀴어 커플이 아니더라도, 친구와 같이 사는 사람, 혼 - P-1

자 살더라도 퀴어 커뮤니티와 연결되어 있음으로써 일상을 지탱해왔던 사람들이 ‘원가족‘ 혹은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서로 단절된 거죠. 
그러면서 법적 가족에 갇힌 관계와 단절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고, 
장례와 애도라는 주제로 그런 이야기들을 더 폭넓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장례를 어떻게 꾸리면 덜 차별적이고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을까? 거기서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사업을 준비하며 조금 더 신경을 쓴 부분이 있다면?
꼭 결혼이 아니어도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여러 양태가 있다고 생각해요. 성소수자냐 아니냐를 떠나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만나고 헤어지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최대한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게끔 할 수 있을까. 

나의 관계나 정체성이 어떻게 취약함이 되지 않게끔 할 수 있을까. 혹은 취약하더라도 행복할 수있게끔 할 수 있을까. 이런 걸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 고민이 전시에는 어떻게 반영되었나?
전시에는 실제 애도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추모 공간이 있었어요. 그 공간을 아무런 조건 없이 프라이빗하게 쓸 수있도록 신청을 받고 운영했어요. 현실의 장례식장은 애도에 집중하기 어려운 장소잖아요. 
나와 고인의 관계를 밝히는 데도 긴장이 돌고, 상주나 가족의 역할이 있고. 전시에서 대안적 애도 공간을 제시해보고 싶었어요. 언니네트워크 소모임에 합창단이 있었는데, 그 시기에 합창단원으로 - P-1

오래 활동했던 회원이 돌아가셨었어요. 합창단분들이 전시공간에서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분을 사랑하는 분들이 모여, 그분이 생전에 아끼던 물건을 가지고 와서 시간을 보내다 가셨어요.

전시 기획에 앞서 네 차례의 워크숍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전시회를 하기에 앞서, 기획단이랑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기억에 남는 건 3강이었는데, ‘나의 죽음 시나리오 쓰기‘라고 해서, 자기가 원하는 장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어요. 일단 사람들이 공간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이 와서, 그 점도 놀라웠고,
다들 이야기 나누는 걸 너무 즐거워하셔서 진행자가 이야기를 멈추지 못하고 계속 시간이 연장되는 거예요. 
어떤 분은 내가 고른 사진으로 영정을 하고 싶은데, 너무 마음에 드는 사진이 많아서 디스플레이를 설치해서 영정 사진을 전시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가 즐겁게 기억에 남아요. 

우리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구나. 그런데 이야기할 만한 공간이 마땅하지 않았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즐겁다니.
<탈가부장:례식> 전시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놀라웠던 게, 그 전시회를 갤러리에서 열었는데, 1층은 전시 공간이지만 2층은 갤러리 사무실이란 말이에요. 이례적으로 사무실 분들도 내려와서 전시를 구경하셨어요. 보통 퀴어-페미 - P-1

니스트 행사를 하면 우리끼리 만나게 되는데, 다른 사람들이 와서 즐겁게 보고 간 게 의미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내가 기대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금의 장례와 애도문화에 답답함과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그걸 피부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조금 더 다른 것들을 해볼 수 있는 동력이 된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장례를 상상하는 건 즐겁지만, 현실의 장례는 내 뜻대로만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맞아요. 유언장에 아무리 내가 원하는 장례를 쓴다고 해도,
그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이 장례를 치러주는 사람들의 의지에 달린 거니까. 나는 죽어서 내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으니. 

결국엔 내가 맺어온 관계들이 장례를 통해 드러나게 되는데, 그 관계가 현재 한국에서는 법이나 행정적 부분들을 통해 제약되니까.

 법적 가족이 아닌 자가 들어갈 자리가 없죠.

전시를 마치고 ‘친구사이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로부터 탈가부장:례‘ 관련 강연 요청을 받은 적이 있는데, 질의응답 때 한 분이 그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자기가 커밍아웃을 한지 얼마 안 됐고, 부모님 반응이 너무 안 좋아서 내가 이 가족들이랑 내 남은 삶을 끝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자기가 죽으면 가족들이 내 장례를 치러줄 텐데. 그러면 가족들은 내가 성소수자인 걸 숨기고 싶을 거고, 내 장례가 어떤 모습일지 고민이다. 
그런 이야기를 나눠주셨는데 많이 와 닿더라고요. 단지 성 정체 - P-1

성 문제만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마지막 자리에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서 그 장례를 치러주는 사람들에 의해 ‘진짜 나‘는 사라질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유언장을 쓰는 거 같아요. 
매년 쓰고 있어요.

처음 유언장을 썼을 때는 좀 편지처럼 쓰게 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 생각을 하고 쓰게 되니까 되게 디테일하게 제가 요구하고 있더라고요. 그 후로 매년 쓰는데, 바뀌지 않는 게 있어요. 7년 된 동성 파트너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 저의 많은 부분을 양도하고 싶고 위임하고 싶다는 의사를 늘 밝히는 거예요. 내가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을 때, 그 친구에겐 장례에 관한 권리가 하나도 없는 거에요 저랑 법적으로 혼인한 관계도 아니거니와 그래서 유언장에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되더라고요.


<탈가부장례식> 전시 후속으로 더 해보고 싶은 사업이 있나?
전시 때 장례업계에서 일하는 분들이 명함을 많이 놓고 가셨어요. 그렇게 연결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고, 장레지도사가 성소수자, 퀴어한 관계에 대한 이해와 배경지식을 갖춘다면 퀴어 친화적인 장례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게 ‘실무자를 위한 평등한 장례‘ 매뉴얼이나 워크북 같은 것을 만들어 장례학과나 상조회사에 배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 P-1

좋은 아이디어 같다. 매뉴얼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나?

큼직한 걸 이야기하기보다는, 장례와 애도에 조금 더 평등한 모습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사소하지만 많은 것을 바꿔놓을 팁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요. 
예를 들면, 언니네트워크에서 내는 잡지 (《어페미니스트)가 있어요. 가족구성권을 다룬 호가 있는데,
그 안에 <병원에서 장례까지 살아남아라, 김 인생 씨>라는글이 있어요. 
거기에 보면, "그 사람이 여자처럼 보인다고그 사람의 상복을 무조건 한복 치마로 준비하지 마라, 치마를 입을 건지 정장 바지를 입을 건지 물어봐라."
 "운구할 사람을 구할 때, ‘운구할 남자‘가 아니라 운구할 사람‘이라 불러라." 
이런 내용이 있어요. 
실무자인 장례지도사에게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그만큼 존중하고 존중받는 장례를 치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본인의 장례는 어떠하길 바라나?

저는 세부적인 걸 떠올린 적은 없지만, 확실히 바라는 건,
우선 제가 뀨뀨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지 꽤 되었잖아요. 본명이 아닌 활동명 뀨뀨 아는 친구들도 많고, 그래서 장례가 진행된다면 위패에 제 활동명을 같이 적어줬으면 하는마음이 있어요. 
그다음에는 제 파트너가 원하는 방식으로 제 장례를 치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있고요. - P-1

나는 흔들리지 않는 나의 세계가 두렵다. 
그 두려움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문화학자 임기호는 이런 말을 했다. 
"외면과 허무 사이의 선택을 거부하고 죽음 양식을 선택하는 것이 인간이며, 
이 선택에서 삶을 위해 투쟁하는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반드시 오는 죽음을 외면하거나, 
어차피 오는 죽음을 허무로 비껴가지 않은 인간은 죽음 양식을 선택해 왔다. 그것이 문화가 되었다. 

선택하고 투쟁하여 살아가는 존재 앞에서 ‘닮지 않음‘은 아무런 이유도 되지 못한다. 삶의 위계도, 죽음의 서열도 소용없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투쟁하는 존재이다. 

내가 만난 장례지도사들이 ‘고생했다‘며 연신 주검을 매만지는 건 이 때문이다. 
이들은 살아가기 위해 해온 투쟁의 고단함을 안다. 

김민정 시인은 지인의 생일 카드에 이런 말을 적어주었다고 한다.
"죽기 위해 태어나느라 애썼어."
우리는 모두 애써 살아온 존재이기에 애도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읽는 동안, 당신과 내가 떠올리지 못한 참사와 죽음, 그리고 전쟁과 학살. 그 모든 죽음에 우리가 가닿기를, 그리하여 안부를 물을 수 있기를.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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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과 애도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 역시 그와 대화를나누는 사이, 내가 왜 무연고 사망자 장례에 조문을 가고자 했는지 알게 되었다.

내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런 순간에도 사회가 나를 잊지 않고 장례를 치러줄 거라는 믿음을 만들고 싶은 거예요. 연대감이죠. 위패 하나 드는 게 큰일은 아니지만, 사회적 메시지를 계속 내는 거죠. 당신의 장례를 함께 책임지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혼자가 아니고 당신 혼자가 아니고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인기척을 끊임없이 내는 거예요. 그 인기척이 저에겐 위패를 드는 거고요.

나는 혼자가 아니고 싶었다. 그래서 타인의 장례에 간다.

공영장례, 다른 국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유럽 복지국가에선 장례 제도가 국가의 복지 개념 안에 존재한다.
스웨덴의 경우, 누구라도 사망하면 "유산으로 충당하지못한 시신 운구비, 장례식장 사용료, 시신 안치비, 화장 비용, 25년간의 묘지 이용"‘을 국가가 지원한다. 이 비용은장례세 (Begravningsavgift)라는 명목으로 국민 세금으로 충당된다. 장례법에 따라, 스웨덴 지자체들은 공공 매장지를 관 - P287

리하고 장례 관련 업무를 규정한다. (다만 루터교가 국교인 나라답게 장례의 실질적인 수행은 교회의 몫이다. 2500여 개소의 공공교회가 공공묘지를 관리한다.)

유럽의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공동묘지를 관리하고, 주민들에게 의무적으로 공동묘지를 분양하는 국가가 다수이다.
가족묘지를 제외하곤 모두가 3평 남짓 되는 땅에 묻힌다.

자리를 정할 수도 없다. 
순서대로 묻힌다. 
재산 여부나 직위와 무관한 일이다. 
묘지를 복지 시설로 규정해 그 관리 비용은 국가가 제공한다.


일본의 경우, 국민건강보험과 후기고령자의료제도(75세이상을 피보험자로 하는 의료 제도)에서 장제비 지원을 규정하고 있다. 
이때의 지원 대상은 피보험자 모두이며, 재산등을 기준으로 지급 대상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보편적 복지에 가까운 형태를 띤다는 것이 특징이다. - P288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에게 닥쳐올 일을 미리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장례는 결혼이나 돌잔치처럼 피할 수 있는 의례도 아니다.
타인의 장례건 나의 장례건, 장례는 분명 인생에 들이닥친다.

평생 치마를 입지 않았으며 성별화된 옷을 거부해온 이의 마지막 옷이 치마가 된다. 
그를 평생 갈등하게 하고 숨게 하고 존재하게 하고 드러내게 만든 육신이 맨몸으로 안치대에 놓인다. 
그를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의 시선 아래, 
반평생 다른 생명의 살을 먹지 않은 비건 생활자의 제사상에 초식동물과 물살이 (물고기)가 올라간다. 

친족 성폭력 사건으로 가족과 의절한 이의 장례식 상주 자리에 그 가족이 앉는다.

그간 이런 일은 아주 예외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장례인들이 이야기하는 ‘별의별‘ 일 중 하나였다. 

유난이거나 별종이거나 불행한 일. 
콩가루 집안이라고 뒤에서 수군거릴만한 일. 

내가 장례를두려워했던 이유에는 이 수군거림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일상에서 나는 잘만 감추면 무난한 딸처럼 보일 수 있는데, 장례식장은 그 숨김이 통하지 않는 장소다. 가족 관계는 장례식장 부고 알림판에 뜨고, 직장은 화환과 일회용품 용기와 수저에 박힌 회사 로고에서 드러나고, 
모아둔 자산은 대관하는 장례식장과 빈소의 크기로 드러난다. 

가족의 불화마저 빈소에서 울고불고하는 소란 속에서 드러난다. 
마치 시험 등수를 복도에 붙여두는 잔인한 교사처럼 장례는 타인의 기준대로 매긴 채점표를 훤히 공개한다.

나를 숨길 곳이 없다.

그 성적표는 나를 설명해주지 못하지만 무시할 수도 없다. 
본연의 내가 환대받지 못할 장소에서 나를 드러내는 일은 두렵다. 
동시에 어기대고 싶어진다. 
지금의 장례 문화에서 ‘환대‘받을 수 있 - P292

"위로의 하나님, 우리의 벗 ○○님을 추모하고자 우리가 이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의 벗 ○○님이 이제는 차별과 혐오가 없는 평화의 나라에서, 경계도 구분 짓기도 없는 바로 그 나라에서 주와 함께 안식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제목부터 그 성격이 명확한 전시도 하나 소개한다. 
<탈가부장: 레식>, 2023년 10월에 서울에서 열렸다. "죽음과 장례에 관련된 차별이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지를 알아보고 "평등한 장례식의 구체적인 모습을 함께 상상해 보고자 기획했다는 전시는 장례식장에서 들은 차별적인 말
("영정 사진 드실 남자분 안계세요?"
부터 "꽃장식은 3호 이상은 하셔야 보기 좋아요"까지)이 적힌 흰 무명길을 헤치고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현실의 장사법에서 차별적 요소를 살펴보고, 분투의 장이었던 장례 경험을 육성으로 듣는시간을 지나, 추모의 공간이 펼쳐진다.

"추모 공간을 희거나 까맣게만 채우지 않게 하려고 애썼어요.
노란 꽃도 놓고 무지개 깃발도 걸고 환대한다는 취지의 안내 문구도 걸어두고요."

<탈가부장:례식> 기획단을 꾸린 뀨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탈가부장:례식> 작업을 돌아보며 
기획단장 뀨뀨 인터뷰
자기소개를 해달라.
언니네트워크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뀨뀨라고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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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고 싶나요?
ㅇ 당신에게 영향을 준 죽음이 있나요?
○단한 순간만을 남겨야 한다면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싶나요?
ㅇ당신에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나요?

관람객들은 저마다의 답을 포스트잇에 적어 질문 옆에 붙였다.

"어차피 겪을 일을 겪고 있는 거예요. 제 인생에서 바꾸고 싶은건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요."
"제가 인생에서 겪은 큰일 중의 하나는, 아버지의 죽음인 것 같아요. 많이 아파하셨고 지금의 저처럼 병원 신세를 졌어요.

집착을 버리면 자유로워진다는 것. 또 그 누구의 기대도 충족시킬 필요는 없지만, 스스로 기대는 충족시켜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 인생에서 딱 하나 바로잡고 싶은, 후회되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건 저 혼자만 간직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들으면 제가 왜 말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거예요."

"제 믿음은 가족에게 배운 게 아니라, 인생에서 겪은 일들과 상황을 통해서 만들어진 거예요. 어려운 시기일수록 믿음에 매달리죠."

이건 한주원의 생전장례식에 온 이들에게서 나온 답이 아니다.
<생소한 소생> 전시를 보기 두 해 전, 나는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이들의 이야기를 만난 적이 있다. 
- P187

나도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귀신을 믿으세요?"
조상신이 자손을 보살피는 이치를 설명하던 나이 지긋한 장례지도사에게 제사 기일에 관해 듣던 참이었다. 
요즘은 다 자기들 편한 대로 제사를 지내느라 기일을 제대로 안 챙겨서 조상들이 제삿밥을 못 얻어먹는다고 했다. "헛제사 지내는 거죠." 대화가 안동의 헛제삿밥으로 이어지려는 찰나, 나는 궁금하던 걸 물었다. 조상신 이야기를 하는 장례인들을 볼 때마다 묻고 싶었다.
 ‘귀신을믿으세요?‘ 아니다. 
좀 에둘러 물었다.
"진짜 영혼이 와서 식사한다고 믿으세요?"
그런 거 왜 묻나 싶었겠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에요. 안 믿어요."
안 믿는다니. 살짝 배신감이 든다.
"안 믿지만, 믿고 싶은 거예요. 내 조상이 차려놓은 음식을 와서드시고 갔구나. 마음의 위안이죠. 오기를 바라는 거고. 와서 내가 사는 모습을 둘러보고 ‘돌봐줘야겠네, 보태줘야겠네‘ 이런 마음 가져주었으면 좋겠는 거고. 그래서 제를 지내는 거잖아요."

현재까지 이어온 유교식 장례는 ‘조상신‘ 개념을 기본으로 한다.
고인을 가문의 조상으로 올리고, 장자를 가주로 세우기 위한 3년의 프로젝트였던 것이 삼일장으로 축약됐다. 장례지도사들을 보면, 기독교 교회 집사도 있고 신실한 가톨릭 신자도 있다. 일부 종교에선 조상신 개념이 반가울 리 없다. 그럼에도 거부감 없이 제례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조상신이라는 개념이 가문과 가족을 묶어내는 관습적이자 문화적인 수단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로 남아 있는 거죠.  - P211

장례도 사회보장제도로 보장받아서 누구나 공영장례로 떠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요?
그는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장례를 말하고 있다. 자신이 운명할 때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 공영장래를 치르길 바란다. 

‘장례복지‘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그가 다른 인터뷰에서 한 말을 가져온다.
"무상 의료라는 말은 저희한테 익숙하잖아요. 그런데 무상 장레라는 말은 아직은 낯선 개념인 거죠. 4대 보험이라는 게 질병,
실업, 산재, 노령화 때문에 생긴 문제를 사회가 대응하겠다는 개념인 건데, 요즘에는 치매 같은 것도 국가가 사회보장적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바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죽음과 장례에서도 국가가 사회보장이라는 측면에서 공영장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래야지만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애도가 보장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노인장기요양보험처럼 장례 또한 사회보장제도로 국가지원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낯선 주장이지만, 달리 생각해본다면 장례를 관장하는 단위가 ‘보건복지부‘라고 했을 때 (장례지도사 자격은 보건복지부에서 인증한다), 나 또한 복지라는 단어를 먼* 공영장례란 "장례 의식 없이 시신이 ‘처리‘되지 않도록 공공(公)이 무연고 사망자 및 저소득 시민에게 검소한 장례 의식을 직접 제공하거나, 또는 이리한 장례 의식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고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유가족과 지인 등이 고인을 애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례"를 뜻한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 2월 배포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표준안‘에 따르면, 공영장례 대상은 무연고 사망자 외에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장제 급여수급자로서 연고자가 미성년, 중증 장애인, 75세 이상 고령으로 장례를 치르기 어려운 이들을 포함한다. - P-1

장례는 살아가는 일의 한 영역이니까. 하지만 장례가 보건복지부 소속이 된 까닭은 ‘시신 처리‘의 위생 관리에 있었다. 보건의 영역이라고 했다.
숨이 멈췄으니 시신이 맞긴 하다. 그렇지만 나는 죽은 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문화권에서 자라온 사람이다. 숨이 멈춘 상태에서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권리가 나에게 있다고 믿어왔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주검에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을 테니, ‘요람에서 영안실‘까지가 아니라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건 그런 의미가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한 영화도 장례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스틸 라이프>(2013).
주인공 존 메이는 홀로 죽음을 맞이했거나 장례를 치러줄 이가 없는 사람들의 장례를 치르는 일을 한다. 부고를 알리고 장례식에 고인을 아는 이를 초대한다. 

나눔과나눔 활동가 박진옥, 그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
존은 런던 케닝턴 구청 소속 공무원이나, 박진옥은 서울시와 업무 협약을 맺은 비영리단체 활동가이다. 나눔과 나눔은 상근자들의 월급을 비롯한 활동비를 서울시가 아닌 단체 회원들의 후원으로 충당하고 있다. 

서울시가 책임지는 것은 장례의 물품과 장례업체와 용역을 맺은 염습 및 시신 처리 비용 등이다. 그러니까 지자체가 지원하는 장례 비용(93만 원 상당, 2024년 기준)에 국한한다.
장례의 제반 사항을 챙기고, 부고를 알리고, 자원봉사자 모집과 사별자를 맞는 일에 대한 비용적 책임은 지지 않는다. 
국내 어느지자체나 마찬가지다. 공영장례 조레조차 갖추지 못한 시와 구단위가 적지 않다.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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