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법에서 외국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혼혈아동은 한국 국척을 가질 수가 없었다. 1948년 제정된 국적법은 부계혈통주의를 채택해서, 아버지가 한국인이어야 자식이 한국인이 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불분명하면 모계혈통으로 국적을 취득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혼혈아동의 경우 아버지가 외국인인 것이 분명한이상 그러기도 어려웠다." 부 또는 모 중 한명만 한국인이어도국적을 취득하게 부모양계혈통주의로 바뀐 건 약 50년이 지난1998년 6월이다." 당시 신분등록체계가 호주제를 따랐다는 점도 문제였다. 호주제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의 출생.혼인 사망 등의신분변동을 기록"15 하는 제도였다. 호주는 남성이어야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호주와의 관계에 따라 신분이 등록된다. 가령 여성이 결혼을 하면 남편이 호주로 있는 호적에 입적되고 아버지가 호주로 있는 호적에서는 삭제된다. 자식은 아버지의 호적에입적되고, 호주가 사망하면 아들이 우선적으로 호주를 계승한다. 이렇게 부계혈통주의를 따르는 호주제에서 아버지가 외국인이면 곤란에 처한다. 자식은 부의 성과 본을 따라 신분등록이 되는데, 혼혈아동은 부의 호적에 입적할 수 없었다. 한국인 어머니가 자녀를 외가 친척의 호적에 입적시켜 국적을 갖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아동은 아예 호적이 없었다고 한다."
법이 해외입양일 수밖에 없었을까. 당시 대통령인 이승만은 반공과 통일을 목표로 단일민족의혈통과 공동운명을 강조하는 ‘일민주의 이념을 세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대통령 자신의 부인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여성이었다. 부계혈통 가부장제에서 아내가 외국인인 것은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국적법에서 ‘대한민국의국민의 처가 된 자‘는 자동적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혼혈‘을 모두 해외로 보내려고 할 정도로 ‘순혈‘을 강조하면서도남성의 피만을 고려하는 부조화가 그때 한국사회에서는 이상하지 않았나보다. 하필 해외입양이란 방법을 찾은 것도 가부장제 질서에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보아서였을 것이다. 모든 것이 남성을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에서 남편 없는 여성이 자식을 키우며 살아갈 방법이 거의 없다는 걸 국가도 잘 알고 있었다. 남편 없이도 여성이 독립적으로 일하면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바꾸거나, 아니면 국가가 비용을 감당해서 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동을 해외로 내보낼 수 있다면 고민을일거에 해결할 수 있었다. 가부장제 질서를 건드리지 않고, 사회보장 비용을 들이지도 않으면서, 심지어 입양을 통한 외화수익도 얻었다.
경우가 대부분일 테다. 아이가 불행한 인생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면 부모가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는 게 ‘이기적‘이라고 여기게되는 거다. 근데 이런 표현은 장애인 부모가 아니라도 종종 듣는다. 비혼 여성이 자녀를 출산하겠다고 말하면, 아빠 없이 자랄 아이를 생각하라며 사람들이 말리는 소리를 듣지 않던가. 여기서권리를 내세우면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가난한 처지에 자녀를여럿 낳아도 자녀를 생각지 않는 이기적인 결정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다. 즉, 어떤 상황에서 출산은 종종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사회적으로 평가받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기적이지 않은 출산을 할 수 있을까? 앞에 언급한 몇가지 비난을 바탕으로 역으로 유추해보자. 일단 비장애인이어야 하고, 남녀가 결혼을 한 상태여야 하며, 돈이 어느정도 있는 환경에서, 적정한 수의 자녀를 낳아야 한다. 적정한 자녀수를 인구대체율(현 인구 수준을 유지하는 합계출산율)인 2.1명을고려해 대략 정리해보자면, ‘중산층 이상의 결혼한 비장애 이성부부와 자녀 2명으로 구성된 가족‘ 정도면 이기적이라는 비난을받지 않을 것 같다. 말하자면 ‘출산의 자격‘이랄까, 한국사회에 암묵적으로 이런 식의 ‘출산의 자격‘이 있다는 건 익숙하지만 이상하기도 하다. 2장에서도 언급했지만, 출산은 분명 아이를 낳고 키우는 양육자의 일이고 사생활의 영역인데,
것임을 기정사실화한다. 그리하여 실제로 닥치는 불행은 오롯이 출산을 ‘선택‘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결국 그렇게 차별을 보존하고 전승하며 어떤 집단의 미래를 영구적으로 불행하게 만드는 행위에 (의도치 않게 ‘가담‘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어떤사람들을 이 땅에 오지 못하게 막는 행위는 얼마나 폭력적인가? 뒤집어 생각하면, 아동의 인생을 생각해 부모가 출산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은, 사회가 변화를 도모하지는 않겠다는 변명일수 있다. 반대로, 부모가 출산에 대한 결정을 자유롭게 내릴 수있는 사회는 이미 아동에게도 좋은 사회일 것이다. 태어나는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사회라면, 이미 불합리한차별이 없는 세상이란 뜻일 테니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출산을 막을 것이 아니라 출생으로 등장하는 예측 불가한 구성원을위해 변화하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임신·출산이 국가적 ‘수단‘이 아니라 국가가 보장해야할 개인의 ‘권리‘임을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 개인은 임신·출산에 관해 자유롭고 책임 있게 결정할 권리를 지니며, 국가는 모든 사람이 이 권리를 향유하고 건강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할 의무가 있다. 이를 ‘재생산 권리‘ reproductive rights 라고 한다. 1994년 카이로에서 열린 ‘유엔 인구 및 개발에 관한 국제회의‘UNICPD에서채택된 행동강령은 재생산 권리를 이렇게 정의한다.
재생산 권리는) 모든 커플과 개인이 자유롭고 책임 있게자녀의 수와 터울을 결정하고 이를 위한 정보와 수단을 이용할 기본적인 권리와, 최상의 성과 재생산 건강을 유지할 권리를 인정하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 또한, (…) 차별, 강요, 폭력없이 재생산에 관련된 의사결정을 내릴 권리를 포함한다. 50재생산 권리가 단순히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국가의 강압이 없더라도 개인이 내린 선택의 결과가 여전히 차별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산전검사를 통해 태아에게 장애를 발견한 경우의 선택에 대해 생각해보자. 누군가 태아의 장애를 이유로 임신중지를 결정할 때, 그 ‘선택‘을 하기까지 주변으로부터가족이 짊어질 고통에 관해 얼마나 많은 ‘조언‘을 듣는지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은 현실의 차별과 불평등을 고려해 재생산에관해 조언하고 결정을 내릴 뿐이겠지만, 우생학적 질서가 그러한 ‘선택‘을 통해 유지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까? 2017년 2월 대법원은 강제적인 불임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의피해를 입은 한센인들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내렸다. 본인이 원하지 않은 수술을 국가가 강제해 개인의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고 이로써 가족을 구
성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했다고 아래와 같이인정했다. (한센인들에게 시행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한센인들의 임신과 출산을 사실상 금지함으로써 자손을 낳고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물론이거니와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및 자기결정권,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52당시 정부 측은 한센인들이 수술에 동의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동의‘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동의는 "자유롭고 진정한 의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사회적 편견과차별, 열악한 사회·교육·경제적 여건 등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동의는 사실상 공권력에 의한 강제라고 보았다. 해외에서는 과거의 트랜스젠더 강제불임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소식이 들려온다. 얼마 전 스웨덴 의회는 1972년부터 2013년까지 원치 않게 불임수술을 받아야 했던 트랜스젠더약 600~700명에게 국가가 배상하도록 결정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1985년부터 2014년까지 공문서상의 성별정정을 위해 강제불임을 요구했던 과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피해를
더 낮게 집계된다. 그래서 2022년 기준 세계 99위였다." 경제적 격차는 임금격차로 더욱 명료하게 나타난다. OECD가발표하는 성별임금격차 Gender Wage Gap에서 한국은 1996년 OECD가입 이래 27년째 1위다. 그런데 순위만큼이나 임금격차의 수준이 독보적이다. 최근 OECD 자료를 보면, 회원국 44개국 중벨기에, 콜롬비아, 노르웨이 등 5개국의 성별임금격차가 5퍼센트미만이다. 이어 아르헨티나, 스웨덴, 뉴질랜드 등 16개국이 10퍼센트 미만, 프랑스, 멕시코, 미국 등 18개국이 10퍼센트대 그리고 일본, 이스라엘 등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4개국이 20퍼센트대 중반 이하다.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31.2퍼센트였다(2022년기준) 33한국의 성별임금격차의 원인으로는, 결혼·출산·양육 등으로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이 주요하게 지적되어왔다. 통계적으로 보면 여성의 고용률이 20대 후반에는 OECD 평균보다도 높은데, 30대에 경력단절로 급격하게 하락했다가, 40대에 반등하는 M ‘자형 곡선‘을 그린다. 게다가 여성의 일은 남성보다 비정규직과저임금노동이 많다. 2021년 기준으로 여성 노동자 중 비정규직비율은 50퍼센트에 가깝고(여성 47.4퍼센트, 남성 31.0퍼센트), 저임금노동자 비율도 높았다(여성 22.1퍼센트, 남성 11.1퍼센트), 여성 비직종과율이 높은 직종의 노동가치가 저평가되기도 하고, 같은
스웨덴의 성교육은 성을 죄악시하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감정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했다. 성을 둘러싼 긴장을 없애야 상대방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성을 피해야 할 위험한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삶의 요소로 보고 접근했다. 모든 개인에게성은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고 여겼다. 성을 결혼과 결부시키지않은 스웨덴 모델을 두고 누군가는 비도덕적이고 문란하다고 했다. 하지만 스웨덴 모델에서 생각하는 ‘도덕‘은 달랐다. 스웨덴모델은 결혼 전 성관계에 낙인찍지 않는 것, 성적 행동을 특정한틀에 맞추도록 강요하지 않는 것, 성을 개인의 권리로서 보장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12한국 정부도 스웨덴 모델을 소개하려고 시도한 일이 있다. 2019년 여성가족부는 ‘나다움어린이책‘ 사업을 통해 성교육을위한 도서 134종을 선정해 일부 초등학교에 배포했다. 그중에는 1971년 덴마크에서 발간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Sudan farman et barnm와 2001년 스웨덴에서 발간된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Karleckboken 이란 책이 포함되어 있었다. 각각 덴마크 문화부 아동도서상과 스웨덴의 아동문학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 등을 수상한 책으로, 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사랑은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며, 세상에는 다양한 사랑과 삶의 양식이 있다고 알려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13
어대사전』에 따르면 풍기"란 "풍속이나 풍습에 대한 기율" 로서, "특히 남녀가 교제할 때의 절도"라고 한다. 여기서 ‘풍속‘. 은 "옛날부터 그 사회에 전해오는 생활 전반에 걸친 습관 따위를이르는 말이고, ‘풍습‘은 풍속과 습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며, ‘기율‘이란 "도덕상으로 여러 사람에게 행위의 표준이 될 만한 질서"로 정의된다. 대략 정리하면, ‘옛날부터 전해오는 생활습관에 대한 도덕적 표준 질서‘를 ‘풍기‘라고 할 수 있겠다. 왜 학교가 ‘옛날부터 전해오는 생활 습관에 대한 도덕적 표준 질서‘를 지켜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지켜야 하는 질서란 것이 가족질서를 지키기 위한 성규범과 겹치는 점도 희한하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성적 교제를 삼가고 얌전하게 옷차림을 갖추며 행실을 조신하게 해야 한다는 가족윤리가 학교에서도적용된다. 학생이 이 규범을 어기면 학교의 위신이 떨어지고 명예가 훼손된다는 논리도, 그래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결론까지같다. 이상한 일이다. 학교는 학생의 결혼 가능성이나 가족의 위신과 이해관계가 없다. 학교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기술을 배우고, 개인의 재능을 발견하고 잠재력을 개발하며, 공동체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민주시민의 소양을 갖도록 학생을 교육하는 기관이 아니던가. 그런데 왜 학교는 가족윤리를 수호하
각본을 벗어난 삶은 망신으로 귀결된다는 공포를 성교육을 통해 심어주면서, 민주화의 역사적 격동 속에서도 ‘전통적 가족제도를 유지해왔다. 유네스코는 성교육의 국제적 표준으로 ‘포괄적 성교육‘comprehensive sexuality oducation을 제시한다. 포괄적 성교육도 ‘가족‘ 을 다루지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기존의 가족질서를 따르라고 압박하는 대신, "다양한 연애, 결혼, 양육"이 "사회, 종교, 문화, 법률에 의해 형성되는 맥락을 교육한다. 고정된 성역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역할과 성규범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지 이해하게 한다. 이념의 주입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를 촉진하는 것을목적으로 하는 학술적 접근이다. 학교가 이런 성교육을 실천하는 일이 어렵다면, 학교의 목적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온도를 중심으로써,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안전한 완충지대가생기게끔 장치를 설계한 것이다. 국가가 앞장서서 사회보장제도를 만들면서, 가족끼리 책임지고 알아서 생존하라는 의미로 부과하던 부양의무의 범위도 줄였다. 영국의 경우 1601년부터 3백번넘게 친족 간 부양의무를 규정하고 있었는데, 복지국가를 구하면서 1948년부터는 부양의 범위를 배우자와 16세 미만자반면 한국은 복지국가를 표방하면서도 가족에 대한 의존도를이라는 노력에 인색했다. 경제적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운 사람에게 기초적인 수준의 생활을 지원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운영하면서도, 국가는 가족의 부양의무를 우선해왔다. 즉, 소위 "가족부양 우선의 원칙"이라고 하여, 우선적으로 부양의무자‘로 정해진 가족의 보호를 받고, 부양의무자의 보호를 받을 수없을 때 기초생활보장급여를 받도록 규정한다. 다만 이때의 ‘부양의무자‘를 민법보다는 좁혀 "1촌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 즉부모, 자식, 며느리, 사위 등으로 정했다." 이런 제도가 가족 간 불평등을 얼마나 해소할 수 있을까? 가족부양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 안에서 국가의 지원을 받는 일은, 마치 가족의 실패를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는 것과같다. 가족이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끊임없이 증명해
야 국가의 지원을 받을 자격을 얻기 때문이다." ‘가족의 실패‘가사회보장의 전제요건이 되면서, 사회복지제도는 마치 가족이 없는 자들을 위한 낙오된 세계인 것처럼 만들어졌다. 한국전쟁 후의 ‘고아‘와 ‘미망인 ‘부터 오늘날의 장애인, 노숙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복지시설에서 집단적으로 생활한다. 이들은 가족이없다는 이유로 시설에 오고, 또 시설에 있기에 자유로이 가족을형성할 수 없는 덫에 빠진다.28 ‘있는 자‘가 가족제도를 통해 계층을 세습하는 동안, ‘없는자‘는 가족생활 자체가 어려운 상태가 된다. 누가 자신의 삶과무관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사회가 급변하고 가족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시대에, 축적된 재산이 얼마나 많아야 가족이라는 ‘소박한 행복‘을 꿈꿀 수 있을까? 그래서 더더욱 누군가는 좋은 스펙의 결혼을 쫓아 자구책을 찾기도 하겠지만, 그러는 동안 가족 불평등은 더 심각해진다. 어떤 상품에 이정도의 중대한 결함이 있다면, 불매운동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은 것 아닌가? 나의 가족은 누구인가2013년 10월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여성 은하(가명)씨
와 어머니를 달리 보지 않는다. 그나마 이 사건은 대중의 주목을받아서인지 법원이 아버지의 기여분을 인정해 각각 60 대 40의비율로 부와 모에게 재산상속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와 같이 기여분을 인정하는 건 드문 일이다. 34은하씨와 해주씨처럼 혈족이 아닌 관계는 이들이 아무리 서로를 돌보며 공동생활을 했다 해도 법에서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다. 한국에서 혈족이 아닌 사람이 법적으로 가족이 되는 방법은 결혼과 입양뿐인데, 이런 사이에서 입양으로 부모-자식 관계를 맺기도 애매하고 동성결혼은 인정되지 않는다. 기사 내용만으로 두 사람이 레즈비언커플이었는지 여부를 알 수도 없다. 설령 두 사람 사이에 로맨틱한 감정이 있었는지 영영 알 수 없더라도, 함께 보낸 40년의 세월이 무의미하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가족‘이란 관계를 실제의 공동생활과 무관하게 법이 기계적으로 정해놓아도 되는 걸까? 혈족이 아닌 사람들이 가족이 되는 다른 제도적 방안을 고안할 수는 없을까? 하필 ‘결혼‘이 사회적으로 뜨거운 쟁점이 되는 이유는, 혈족이아닌 사람들이 만나 가족을 이룰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제도이기때문이다. 모든 낭만을 빼고 건조하게 말하면, 결혼은 당사자들사이의 계약이자 사회가 공동생활 단위라고 인정하고 존중하는법적 관계다. 물론 관습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훨씬 많은 욕망이
170결혼에 붙어 있기는 하다.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것, 자손을 낳아 가문을 잇는 것, 집안일을 할 사람을 얻는 것, 결혼 배의 성적 행동을 규제하는 것 등 앞장들에서 보아온 무수한 욕망이 결혼이라는 제도 뒤에 숨어 있다. 하지만 이런 겹겹의 욕망을벗기고 나면, 가장 본질적인 결혼의 의미로서, 계약당사자들이인생의 동반자가 되는 연대체라는 관계가 남는다. 결혼으로 가족이 ‘된다‘는 건, 그 당사자들 사이에 권리와 의무가 생긴다는 뜻이다. 동거하며 서로를 부양하고 협조해야 한다. 서로를 대신해 공동생활에 관한 일을 처리할 수 있고(일상가사대리권), 이로 인해 생긴 채무에 대한 책임도 공동으로 진다(일상가사채무 연대책임)." 결혼 중에 협력해 모은 재산은 명의와 상관없이 공동재산이 되어 둘이 헤어질 때 나누어야 하며, 이때가사노동을 분담한 기여도 인정된다" 서로에게 수술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 등 의료적인 결정을 내리는 보호자 역할도 하고, 배우자로서 사회보장급여를 받고 상대방이 사망하면 유족으로서장례를 치른다." 이런 법적 보호를 위해 동성 간 관계도 결혼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확한 파악은 어렵지만 이미 한국사회에는 파트너와 동거 중인 성소수자가 많다. 2021년 청년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연구에 참여
라고 보면 어떤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한 돌봄의 공동체를 국가와 사회가존중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일까? 혈족 안에서 사람의 순서를 매기고 부양의 의무를 부과해 생존을 담보해온 지금까지의 가족은 사람을 타고난 운명에 순응케 하며 권위적인 통제에 의지해체제를 유지한 경직된 ‘질서‘였다. 하지만 이제 자유와 평등을근본적 가치로 지향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에게 더 어울리는 가족의 이상은 자율적이고 평등한 공동체가 아닐까. 우리가 인권을 쟁취한 모든 순간을 통해 경험하였듯이, 강요된 의무와 위계적 압박이 사라질 때 사람들은 더 행복하게 서로를 돌보는 길을 찾아갈 것임을 믿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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