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견고한 각본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각본에 따라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딸 또는 아들로서의 역할을 기대받고, 성인이 되면서 아내와 남편, 어머니와 아버지, 며느리와 사위 등의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가족각본은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우리는 정해진 각본대로 따르는 걸 평범한 삶이라고 여기고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익숙하고 당연하게, 때때로 버겁게 정해진역할을 수행하느라 가족각본이 어떻게 쓰여 있는지 살피지 못한다. 다만 간혹 혼란을 경유해 가족각본의 실체가 감지된다. 가령 ‘성소수자‘ 혹은 ‘퀴어‘quest라고 불리는 인물이 무대에 등장하는 거다. 이 낯선 인물의 등장이 가족각본에 당연하게 정해져있는 역할을 꼬이게‘ 만든다. 그때

동성애로 고통받지 않고 타락하지 않은 일류 국가를만들자"는 ‘한국적인 반대‘가 제기된 것이었다"
실제로 동성애에 대한 한국의 수용도는 다른 소위 선진국과비교해 매우 낮다. 세계 각국의 동성애 수용도를 1점(절대 정당화될 수 없음)부터 10점 (언제나 정당화될 수 있음)으로 주기적으로 측정하는 조사가 있다. 최근의 조사 결과(2017~22년)에서 한국의동성애 수용도는 3.2점이었다. 2001년 3점이었는데 20여년 동안 겨우 0.2점 증가했다. 이에 비해 네덜란드는 9점으로 거의 완전 수용에 가깝고, 덴마크 8.8점, 영국 7.9점, 프랑스 6.8점, 미국6.2점 등이었다. 일본은 2000년에 4점이었던 데서 6.7점으로 상승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의 평균은 6점으로, 한국은 이 중 30위다.
OECD 평균이 한국에 비해 높기는 하지만 아직 10점의 절반을 조금 넘긴 것을 보면, 동성애를 낯설고 불편하게 느끼는 감정이 한국사회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의 광장에서 등장한 ‘며느리‘로 시작하는 이 구호는 상당히 독특하고 괴이한 측면이 있다. 동성애를 반대하며 내세울 수 있었던 구호 중왜 하필 ‘며느리가 남자라니‘가 선택되었을까? 신문 광고나 사설에서 다른 반대의 이유도 제기되었지만, 가장 크게 각인된 구호는 단연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문구였다.

시부모에게 효도하기, 집안을 화목하게 이끌기, 친척들을 아끼고 섬기기, 집안 제사 받들기, 정성을 다해 손님 대접하기, 가사노동에 힘쓰기, 살림살이에 근검절약하기 등, 집안밖의 사람을 만족스럽게 대접하고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며 행사를 주관하면서도 비용을 절약해야 하는 고도의 능력이 필요한역할이다.

이 정도 범위와 강도의 업무를 담당하는 역할이라면 회사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를 가질까? 직원을 관리하면서 고객을 응대하고 예산도 총괄하며 행사도 주최하는 수준이니, 공공기관이나시민단체로 치면 사무처장 정도일 것 같고, 기업으로 치면 전무이사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소규모의 사업장이라면 사장님이거나 적어도 실무 최고관리자가 될 법한 역할이다.

며느리가 가족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중요해서 그런지, 며느리설화를 보면 며느리 때문에 집안 전체가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내용이 많다. 대표적인 며느리 설화로 채집되는 명당을 망친 며느리이야기가 그러하다. 

사위 고르기 설화에서 도전과제는 ‘거짓말 세마디를 성공하기‘
다. 심판자인 아버지는 응시자의 말에 무조건 ‘거짓말이 아니다‘
라며 족족 탈락시킨다. 그러다 한 응시자가 ‘선대에 빌려줬던 돈을 환수하러 왔다"고 말하자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이라고 인정하여 사위를 삼는다.

며느리 고르기 설화의 도전과제는 좀더 무겁고 현실적이다.
‘쌀 서말로 세 식구와 석달을 지내기‘에 성공해야 하는 과제다.
설화에서는 한 응시자가 쌀로 잔뜩 밥과 떡을 해 먹은 후, 남종에게 나무를 하게 시키고 여종과 자신은 길쌈을 하고 나물을 캐어시장에 내다 팔아 재산을 증식해 며느리로 발탁된다. 이 과제를수행하는 기간이 설화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는데, 길게는 일년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예능으로 치면 ‘사위 고르기‘는 단발성 순발력 테스트에 가깝고, 며느리 고르기‘는 장기전인 서바이벌 리얼리티쇼에 가깝다.
설화 속에서 좋은 사윗감은 재치가 있는 사람인 데 비해, 좋은 며느릿감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활능력, 영리함,
리더십, 경제적 수완 등 다방면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니 ‘며느리‘를 ‘아들의 아내‘라고 정의하는 것은 그 의미의 절반도 표현하지 못하는 듯하다. 전통적인 의미의 며느리는단순히 아들의 아내로서의 지위가 아니라 집안 전체에서 특수한

가족제도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가(집‘가‘)제도가 이식되며 호주제로법제화되었고, 호주제는 2005년에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으로 폐지되었다."
 호주제는 호주승계 순위를 
아들딸(미혼)-처-어머니-며느리 순으로 정하는 등 남성을 중심으로 가족구성원을 종속적으로 배열한 가족제도로서, 헌법이 요구하는 평등한 가족관계에 부합하지 않았다. 
정작 한국에 호주제를 도입시킨 일본은 1947년에 이를 폐지했으니, 한국의 호주제는 폐지되기까지 꽤 오랫동안 세계에서 유일한 가족제도였다고 기록된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가족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물론 예전과비교하자면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결혼은 집안의 결합으로 여겨지고, 결혼을 통해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관념도 남아 있는 듯하다. 
아직도 때마다 찾아오는 명절은 가족갈등이 촉발되는 위기가 된다. 수신지 작가의 웹툰 며느라기』(2017) 나 선호빈 감독의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2018)와 같은 작품들이 며느리에 대한 기대를 비판하고 그에 저항하며 호응을 얻는다. 
전통적인 가족질서를 둘러싼 긴장이 곳곳에서 치열하게 격돌하고 있다.
며느리에 대한 기대는 결혼이민자 가족에게서 더욱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듯하다. 결혼이민자 가족에 대한 연구들을 살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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