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라 달동네와 같은 골목과 이야기가 살아 있는 마을이 있다는 것이얼마나 아름다워요. 어느 저명인사가 살았던 집, 누구누구의 생가 터같은 역사책에 나올 법한 집들도 중요하겠지만, 욕쟁이 할머니 집, 떡방앗간 할배 집처럼 친근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골목 집들도 중요합니다. 이런 집들은 조금 지저분하고 거칠지만 그런 것에서편안함을 느끼고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가난하여 집의 안락함을 느끼지 못하고 위생적이지 못한 삶을 산다면 쾌적하게 살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 동네 사람들이 그곳을 떠나지 않고 그 집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갈 수 있게 말이지요. 그것이 그분들을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우리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눈으로 보기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 우리 몸은 이미 역사적 존재라고 말했어요.
역사적 존재에는 긍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몸에는부정적인 측면도 배어 있잖아요.
일제 강점기, 새마을 운동을 거치면서 우리 것은 못나고 없애야 할것이라고 주입받았어요. 각 지방마다 서로 다른 마을의 유래, 샤머니즘적인 설화나 민담, 전설, 풍속, 전래 동요, 입으로 전해 오던 소소한이야기, 사실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은, 활성화되지 않은, 언어 이

화문이나 강남 한복판에 있는 땅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요. 같은 땅이더라도 값어치는 천지 차이입니다. 이처럼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서 천의 얼굴을 가진 것이 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더는 늘릴 수 없고, 수입할 수도 없는 땅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에 대체로 다른 상품에 비해 가격이 비쌉니다.
땅이 없이는 어떤 생명체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늘을나는 새가 있다고 합시다. 계속 날아다닐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잠시나마 어딘가에 머물러야 하고, 어딘가에 둥지를 틀어야 합니다. 그곳이 나무 꼭대기라 하더라도 결국은 땅을 딛고 서는 것이지요. 나무역시 땅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이처럼 땅은 아주 특수한성질이 있기에 잘 다뤄야 합니다. 잘못 건드리면 많은 생명체가 피곤해질 수 있어요. (웃음)원래 아메리카 대륙에는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지요. 그 땅을 유럽의 백인들이 쳐들어가서 뺏은 거죠. 그렇게 해서 아메리카 합중국이라는 나라가 생기는데, 그때 이야기입니다. 1854년 백인들이 인디언들에게 땅을 팔라고 했습니다. 그때 시애틀이라는 이름의 인디언 추장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당신은 하늘을, 땅의 체온을 사고팔 수가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얘기다. 신선한 공기나 반짝이는 시냇물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단 말인가? 소유하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팔 수 있단말인가? (...)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다. 사람, 말, 큰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

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가족이다."
이 인디언은 땅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 않은 자연 그 자체이기때문에 팔 수가 없다고 한 것이지요. 우리 것이 아닌데 어떻게 팔아넘길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땅은 모든 생명체가 함께 누려야 할 자연의 일부분이지 누가 독점해서 사고팔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치요. 어쩌면 이것은 지구에 인류가 출현한 이래 오랫동안 인간들이땅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땅을 소유해서 사고팔고, 누가 혼자 그 땅을 차지해서 이건 내 땅이니까 들어오지 마라.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 이렇게 된 건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얼마 되지 않은 짧은 시간입니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근대에 들어와서 널리 퍼진 생각이지요. 그전까지는 대다수가 인디언 추장 같은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앞서도 말했지만 그 이유는 땅이 아주 특수한성질을 갖고 있고, 이것 없이는 어떤 생명체도 생존할 수 없는 중요한 자연의 일부이자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땅에 대한 생각을 한번되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그렇다면 부동산의 또 다른 한 축인 집은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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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에 관한 격언과 찬사

정의를 배제한다면 왕국과 강도집단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개인적인 상처·조롱• 증상이 엄습할 때조차 의롭고 올바른 눈이 가진 고귀하고 명료하면서 깊고 부드러운 통찰력 있는 객관성이 흐려지지 않는다면, 정의는 하나의 완성품이며 지상 최고의 걸작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학)

정의는 미덕의 으뜸이다. 정의의 뒷받침 없는 용기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인이 의롭다-아게실라우스 2세(<플루타크 영웅전)에서)

정복자는 정의로울 수 없다. 만일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강한 자는 언제나 정의롭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장자크 루소

정의는 신의 왕국과 같다. 즉 그것은 사실이며 우리 외부에는 없고, 우리 내부에 위대한 동경으로서 존재한다. 정의는 평화보다 더 귀중하다.

지혜 없는 정의란 있을 수 없다.

정의의 대가는 영원한 명성이다.

정의는 완전무결할 때에만 옳다.
-제임스 프루드

-에녹 아놀드 베네트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정의는 느릴지라도 확실하다.
-솔론(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

정의는 모든 것의 위에 있다. 성공은 좋은 것, 부도 역시 좋은 것, 명예는 더욱 좋은 것이다. 그러나 정의는 그들 모두를 능가한다.
D. D. 필드

힘을 갖지 못한 정의는 무력하며 정의가 없는 힘은 폭군적이다. 우리는 정당한 것을 강하게 만들 수가 없어서 강한 것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었다.
-블레즈 파스칼, <팡세)

정의가 지배하는 곳에서의 복종은 자유다.

정의의 지체는 불의다.
-제임스 몽고메리

-월터 새비지 랜더랜도르

오, 하느님 정의가 힘을 지배하게 하소서.

살고 살게 두는 것이 공통정의의 법칙이다.

가장 약한 팔도 정의의 검과 함께라면 강하다.
인간은 부당해도 신은 공정하다. 결국 정의가 승리한다.

정당함은 법률보다 낫다.

-존 웹스터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에반젤린>
-메난더, <카르타고 사람들)
-로저리스트랑주, (이솝우화)

정의를 아끼면 불법이 자란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헨리 4세)

누가 타인의 눈을 망쳐놓으면 사람들이 그의 눈을 망칠 것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정의를 행하는 한 시간은 기도하는 백 시간의 가치가 있다.
-(함무라비 법전)

정의로운 자의 찬란한 행위는 육신의 고향인 흙 속에 묻히지 않고 살아남는다.

정의가 돌아오면 곧 황금시대가 돌아온다.

정의는 그 자체의 빛으로 빛난다.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정의가 행해지게 하라.

극단적 정의는 극단적 불의다.

-이슬람교 금언
-핀다로스
-베르길리우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페르디난트 1세
-라틴 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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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공부의 기초는 무엇일까요? 논리에서는 객관적인 타당성이 중요합니다. 객관적인 타당성이란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생각의 과•정입니다. 이를 철학에서는 논리적 사고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과정을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분야가 바로 논리학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이 어려운 논리학을 모두 공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논리적사고력은 아주 간단한 원리에서 시작합니다. 마치 수학이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이라는 간단한 셈법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논리학은 크게 연역 논리학과 귀납 논리학으로 나눠집니다. 한편, 보통 연역 논리학을 그냥 논리학이라고도 하고 형식 논리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연역 논리학은 형식적 타당성이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형식논리학은 기존의 지식을 정리하는 데 유용합니다. 다른 한편, 귀납 논리학은 확률 또는 개연성(그럴듯함)을 추구합니다. 귀납 논리학은 새로운지식을 발견하는 데 쓰입니다.
슬프게도 현실에서는 연역 논리학이 기존의 선입견과 지식을 정당화하고 귀납 논리학이 기존 패러다임 안에서 문제풀이로만 활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머와 개그에서는 연역 논리학과 귀납 논리학이 기존 생각을전복하고 진부한 결론의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일으키는 데 사용될 수있습니다. 웃음을 통해 형식 논리학의 지루함과 귀납 논리학의 사소함이해체되고, 신선한 통찰을 줄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유쾌한 개그 코너들을 논리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이러한 웃음 코드를 찾아봅시다.

위의 예문도 타당한 (연역) 논증입니다. 전제와 결론을 논리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니까요. 바로 여기에서 많은 학생들이 고개를갸우뚱할 것입니다. 가수 아이유는 눈이 세 개다.‘라는 결론을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이 논증은 타당합니다. 이 논증의 문제점은 결론이 아니라 전제에 있습니다. 가수 아이유는사람이다.‘라는 소전제는 참이지만, ‘모든 사람은 눈이 세 개다라는 대전제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달리 전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확증할 수 없을 때 그 전제는 가정이 됩니다. 위 삼단논법에서 대전제는가정이 아니라 명백히 거짓입니다. 만약 눈이 세 개인 사람이 태어난다면 그대전제는 가정이 아니라 거짓 전제가 됩니다.)그런데 전제가 거짓이어도 타당한 논증일까요? 그렇습니다.
(연역) 논증이란 전제나 결론의 사실관계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논증은 우선 내용의 사실 여부가 아니라 형식을따지는 것입니다. 즉 논증은 전제로부터 결론이 도출되는 형식을다릅니다. 그래서 논리학은 수학처럼 형식적인 학문입니다. 그형식에 담긴 내용을 사실적으로 검토하는 역할은 과학(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이 맡습니다.
과학적으로 그 논증의 전제들이 참일 때 그 논증은 내용적으로도 건전하다고 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어떤 논증이 타당하

다는 것은 형식이 올바르다는 것을 말하고 건전하다는 것은 그내용까지 참임을 의미합니다.
자 그럼, ‘논리적이다‘라는 말을 정의해 볼까요?
"전제와 결론의 형식으로 제시되어야 하며, 그 전제로부터 결론이 필연적으로 나와야 합니다."
개그 속에 논리가 있다?!
자 여러분. 여기까지는 그다지 특별한 내용은 아닙니다. 많은학생들은 이미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을 겁니다. 본 책이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개그를 통해서 논증과 논리적 사고력을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바로,
수많은 개그 코너들이 논증의 구조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또 많은 학생들이 궁금해할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TV에서 보는 「개그콘서트」나 「코미디빅리그」의 개그 코너에는 전제나 결론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논리학 책에서는 논증이 우리에게 익숙한 전제와 결론의 형식으로 등장합니다.

적인 결론이 됩니다. 외모 지상주의라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꼬는내용의 황당한 전제를 통해 황당한 결론들이 이끌어져 나오는 논리적인 상황(필연성)이 웃음을 자아내는 것입니다. <마른인간 연구소)를 논증 구조로 재구성해 볼까요?
이 논증은 이중적으로 복합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제: 현재 지구에는 비만인들만이 살아남았고, 과거에 비만인들과 함께 살았다는 마른인간들은 모두 멸종했다.
(숨은 결론: 인간의 행동과 습관에 대한 상식적 판단의 기준은.
살아남은 다수를 차지하는 우리 비만인들에게 있다.)이 결론이 다시 전제가 됩니다.
(숨은 전제 : 인간의 행동과 습관에 대한 상식적 판단의 기준은살아남은 다수를 차지하는 우리 비만인들에게 있다.)(숨은 전제: 우리 비만인들은 앉아서 다리 꼬기가 불가능하다.)전제 : 마른인간들은 앉아서 다리 꼬기가 가능했다고 한다.
결론: (그러나 이는 우리 비만인들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일이다.

대표적인 삼단논법입니다. ‘모든 사람 안에 소크라테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은 전체를 의미하므로 보편적이라고 부릅니다. 소크라테스는 그 전체의 일부를 뜻하므로 개별적이라고 부릅니다. 보편 속에 이미 개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제 속에 이미 결론이 들어 있어서 전제를 참으로받아들인다면 결론은 자동으로 참이 됩니다.
<스크림>은 바로 연역 논증으로 만들어진 개그입니다. 개그 처음에 등장했던 경고문이 전제가 됩니다. 그리고 "어패류 이름을말하면 죽는다."를 참으로 받아들인 사람이 어패류의 개별적인이름, 예를 들어 가자미나 꼬막을 말하면 자동으로 죽게 됩니다.
어패류 이름이라는 전체 집합 속에 가자미나 도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논증 구조로 정리해 볼까요?
대전제: 모든 사람은 어패류 이름을 말하면 반드시 죽는다.
소전제: 김준호는 "가자미장원"이라고 했다. 가자미라는 어류이름을 말했다.)결론: 그러므로 김준호는 죽는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타당성‘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요.

자, 여기까지의 내용을 연역 논증으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남자2의 입장에서 논증으로 재구성해 보겠습니다.
대전제: 전화 받는 모든 사람은 저 사람에게 죽는다.(동치 명제: 저 사람에게 죽지 않으려는 사람은 전화를 받아서는 안 된다)소전제2: 나는 죽기 싫다. (동치 명제: 나는 저 사람에게 죽기 싫은 사람이다.)결론: 나는 전화를 받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논증적 판단에 근거해서 특단의 행동을 취하게 된다.)특단의 행동: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기 위해) 나는 맥주잔에 전화기를 빠뜨린다.
이러한 논증은 대표적인 연역 논증의 삼단논법입니다. 삼단논법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전제와 소전제 그리고 결론으로 이루어진 논증법이지요. 여기서 동치 (같은 값)라는 말은 어떤 명제A가 참이면 그것을 변형한 명제 B도 참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동물이다."의 동치 명제는 "동물이 아닌 존재자는 사람이 아니다"입니다. 이를 일반화하면 "이면 b이다."의 동치 명제는 "-b이면 -이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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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수천 년 인류의 역사에서 삶의 지혜가 축적된 보고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부딪히는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바로 고전 속에 있습니다. 고전은 때로는 친절하게, 또 때로는 엄격하게 우리들의 생각을일깨우고 성장시킬 것입니다. 그 속에서 진지한 사고의 힘을 배워 스스로가 삶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기를 바랍니다.
-윤구병(전 충북대 철학교수, 변산공동체학교 교장)

어언 20년 가까이 우리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고민해 온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이번에는 인문 교육의 위기, 인문 고전의 위기와 정면으로 맞붙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의기투합하여, 청소년들이 인문 고전과 벗하면서 스스로 인문 정신의한 자락을 맛볼 수 있는 책을 만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독자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삶의 문제와 관련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고뇌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떨리는 마음으로 기원해 봅니다.
자, 이제 인문 고전의 역습이 시작됩니다. 기대하시기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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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한 알에 담긴 위대한 힘,
위기의 지구를 살린다

우리는 먹거리를 비롯하여 생필품과 의약품 등의많은 주요 자원들을 식물에서 얻습니다.
이 모든 식물 자원은 바로 씨앗, 종자에서 출발합니다.
식물 자원을 이용하고 개발하는 종자 산업의 중요성을 알아보며위기의 지구를 살리는 종자의 미래를 함께 생각해 봅니다.

올봄에 틔우는 싹은 가을 수확을 상상하게 하듯이, 현재 주어진 종자는적어도 수십 년 뒤의 우리의 삶을 결정하게 됩니다. 따라서 종자를 연구하는 과학자들과 육종가들은 엄청나게 많은 다양성과 기회를 종자 안에 담아 두어야 하는 사명을 안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꿈꾸는 세상만큼종자 안에도 그 뜻이 담길 것입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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