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방정환 <어린이 찬미>고운 나비의 날개.
비단 같은 꽃잎고운 나비의 날개, 비단 같은 꽃잎, 아니 아니 이 세상이 곱고 보드랍다는 어떤 표현으로도 행상수 없는 이 보드랍고 고운 자는 얼굴을 들여다보라 그 서늘한 두 눈을 가볍게 갚고 이렇게 귀를 기울너야 늘릴 만큼 가는게 코를 하면서 편안히 잠자는 이 좋은 일을 들여다보라 우리가 종래의 자해오던 하느님의 얼굴을 여기서 발견하게 된다.
어린이가 잠을 잔다. 내 무릎 앞에 편안히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다. 별좋은 첫여름조용한 오후이다. 고요하다는 고요한것을 모두 모아서 그중 고요한 것만을 골라가진것이 어린이의자는 얼굴이다. 평화라는 평화 중에 그중 훌륭한 평화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자는 얼굴이다. 아니, 그래도 나는 이고요. 한자는 얼굴을 잘 말하지 못하였다. 이 세상의 고요하다는 고요한것은모두 이 얼굴에서 우리나는듯싶게 어린이의 잠자는 얼굴은 고요하고평화스럽다. 고운 나비의 날개, 비난같은 꽃잎, 아니아니, 이 세상에 곱고보드랍다는 어떤 표현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이 보드랍고고운자는 언굴을 들여다보라. 서늘한 두눈을 가볍게 감고 이렇게 귀를 기울여야들릴 만큼
가늘게 코를 골면서 편안히 잠자는 이 좋은 얼굴을 들여다보라. 우리가종래에 생각해오던 하느님의 얼굴을 여기서 발견하게 된다. 어느 구석에 먼지만큼이나 더러운티가 있느냐. 어느 곳에 우리가 싫어할 한가지반가지나 있느냐, 죄 많은 세상에 나서 죄를 모르고, 부처보다도, 예수보다도 하늘뜻 그대로의산하느님이 아니고 무엇이냐. 아무 죄도 갖지 않는다. 아무 획책도 모른다.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먹어서 부르웃고 즐긴다. 싫으면 찡그리고 아프면 울고, 거기에 무슨꾸밈이 있느나 시퍼런 칼을 들고 핍박하여도 맞아서 아프기까지는 방글방글웃으며 대하는것이다. 이 넓은 세상에 오직 이이가 있을뿐이다.
오오 어린이는 지금 내 무릎 위에서 잠을 잔다. 더할 수 없는 착함과더할수없는 아름다움을 갖추고 그 위에 또 위대한 창조의 힘까지 갖추어가진 어린 하느님이 편안하게 고요한잠을 잔다. 옆에서 보는사람의 마음속까지 생각이 다른 번추(醜)한 것에 미칠 틈을 주지 않고고결하게 순화시켜준다. 사랑스럽고도 부드러운 위임을 가지고 곱게 곱게순화시켜준다. 나는 지금 성당에 들어간 이상의 경건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사람스라운 하느님의 자는 얼굴에 예배하고 있다. 어린이는 복되다! 이때까지 모든 사람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복을 준다고 믿어왔다. 그복은 많이 가져온 이가 어린이다. 그래 그 한없이 많이 가지고 온복을우리에게도 나누어준다. 어린이는 순복덩어리다.
마른 잔디에 새 풀이 나고 나뭇가지에 새움이 돋는다고 제일 먼저기뻐 날뛰는 이도 어린이다. 봄이 왔다고 종달새와 함께 노래하는 이도린이고 꽃이 피었다고 나비와 함께 춤을 추는 이도 어린이다. 별을 보고좋아하고 달을 보고 노래하는 것도 어린이요. 눈 온다고 기뻐 날뛰는이도어린이다. 산을 좋아하고 바다를사랑하고 큰 자연의 모든 것을 골고루좋아하고 진정으로 친애하는 이가 어린이요, 태양과 함께 춤추며 사는이가어린이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기쁨이요. 모든것이 사랑이요, 또모든것이 친한동부다. 자비와 평등과 박애와 환희의 행복과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것만 한없이 많이 가지고사는이가이런이다. 어린이의 살림 그것 내하늘의 뜻이다. 우리에게 주는 하늘의 계시(啓示)이다. 어린이의 살림에 친근할수있는사람, 어린이 살림을 자주 들이다수있는사람? 배울수있는사람은 그만큼 행복을 얻을 것이다. 어린이와 마주 대하고는 우리는 그리는 얼굴, 성낸 얼굴, 슬픈 얼굴음짓게 된다. 아무리 성질 곱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어린이와 얼굴을마주하고는 험한 얼굴을 못 가진 것이다. 어린이와 마주 앉을 때 적어도그 잠깐동안은? 모르는 중에 마음의 세레(禮)를 반고 평상시에가저보지 못하는 미소를 면 부드러운 좋은 얼굴을 갖게 된다. 잠깐인망성그동안 순화되고 깨끗해진다. 어떻게든지 우리는 그동안 순화되는 동만을 자주 갖고 싶다. 하루에도 3천가지 마음. 지저분한 세상에서 우리의 맑고도착하년마
음을 얼마나 쉽게 굽어가려고 하느냐? 그러나 때로는 방울을 흔들면서참됨이 있으라고 일깨워주고 지시해주는 어린이의 소리와 행동은 우리에게 큰구제의 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피곤한 몸으로 일에 절망하고 늘어진 때에 어둠에 빛나는 광명의 빛깔이 우리 가슴에 한줄기 빛을 던지고 새로운 원기와 위안을 주는것도 어린이만이 가진 존귀한 힘이다. 어린이는 슬픔을 모른다. 그리고 음울한 것을 싫어한다. 어느 때 보아도 유쾌하고 마음 편하게 논다. 아무델 건드려도 한없이 가진 기쁨과 행복이 쏟아져 나온다. 기쁨으로살고 기쁨으로 커간다. 뻗어 나가는 힘! 그것이 어린이다. 인류의 진화화향상도 여기에 있는것이다. 어린이에게서 기쁨을 빼앗고, 어린이 얼굴에 슬픈 빛을 지어주는 사람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죄인은 없을 것이다. 어린이의 기쁨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할 권리도 없고, 그리할자격도 없건만…… 무지한 사람들이 어떻게 많이 어린이들의 얼굴에슬픈빛을 지어주었느냐 어린이들의 기쁨을 찾아주어야 한다. 어린이들의 기쁨을 찾아주어야 한다. 어린이는 아래 세가지 세상에서 온통 것을 미화시킨다. 이야기 세상? 노래의 세상? 그림의 세상어린이나라에는 세 가지 예술이 있다. 어린이들은 아무리 엄격한 현실이라도 그것을 이야기로 본다. 그래서 평범한 일도 어린이의 세상에서는 그것이 예술화하여 찬란한 미와 흥미를 더하여 가지고 어린이 머
릿속에 전개된다. 그 때문에 어린이는항상이 세상 모든 것을 아름답게본다어린이들은 또 실제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을 이야기 세상에서 훌륭히 경험한다. 어머니와 할머니 무릎에 앉아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때 그는 아주 이야기에 동화(同化)해 버려서 이야기 세상에 들어가서이야기에 따라 왕자도 되고, 고아도 되고, 또 나비도 되고, 새도 된다. 그렇게해서 어린이들은 자기가 가진 행복을 더 늘려가는 것이다.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본 것, 느낀 것을 그대로 노래하는 시인이다. 고운마음을 가지고, 어여쁜 눈을 가지고 아름답게 보고느낀 그것이 아름다운 말로 힙 밖으로 굴러 나올 때, 나오는 모든 것이 시가 되고가된다. 여름날성한 나무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의 어머니가아들을 보내어 나무를 흔든다고 보는 것도 그대로 시요 오색의 찬란한 무지개를 보고 하느님의 따님이 오르내리는다리라고 하는것도그대로 시다. 개인밤은날의 검은 점을 보고는저기저기 저달속에 계수나무박혔으니 금도끼로 찍어내고옥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질을 짓고 천년만년살고지고고운노래를 높이어 이렇게 노래 부른다. 밝디바은 달님 속에 계수나무를 금도끼 은도끼로 찍어내고 다듬어서 초가삼간집을 짓자는 생각이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이러한 고운노래를 기꺼운 마음으로 소리 높여 부를 때, 그들의 고운넋이 얼마나 아름답게 우쭐우자라갈것이냐? 위의 두가지 노래는 어린이 자신의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고 큰 사람이 지은 것일지도모른다. 그러하나 몇 해 몇십 년 동안 어린이들의 나라에서 불러내어서어린이의 것이 되어 내려온거기에 그 노래에 스며진 어린이의 생각, 어린이의 살림어린이의 넋을볼수있는것이다. 어린이는그림을 좋아한다. 그리고 또 그리기를 좋아한다. 조금도 기가없는 순진한 예술을 낳는다. 어른의 상투를 재미있게 보았을 때 어린이는 몸뚱이보다큰상투를 그려놓는다. 얼마나 솔직한 표현이냐 언마나순진한 예술이냐. 지나간 해 여름이다. 서울친도교당에서 여섯 살 된 어린이에게 이 집교당(내부 전체를 가리키면시)을 그려보라 한 일이 있었다. 어린이는서슴지 않고 종이와붓을 받아들더니 거침없이 네모 반듯한 사각 하나를 큼직하게 그려서 나에게 내밀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 그 어린동무가 그큰집에 들어앉아 그집을 보기는 크고 번듯한 넓은집이라고 밖에 더 달리 복잡하게 보지 아니한 것이었다. 얼마나 순진하고솔직한 표현이냐? 거기에 아직 더럽혀지지 아니한 이윽고 큰 예술을 넣아놓은 무서운 참된 힘이 숨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한 포기 풀을 그린
때 어린 예술가는 연필을 쥐고 거리낌 없이 쭉쭉 풀줄기를 그린다. 그리나그한번에 쭉내어 그은 그선이 얼마나 복잡하고 묘하게 자상한 설명을 주는지 모른다. 위대한 예술을 품고 있는 어린이여! 어떻게도 이렇게 자유로운 행복만을 갖추어 가졌느냐? 어린이다. 어린이는 복되다. 한이 없는 복을 가진 어린이를찬미하는 동시에 나는 어린이 나라에 가깝게 있을 수 있는것을 얼마든지 감사한다.
소파 방정환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어린이‘을 만들고, 처음으로 본격적인 아동문학과 어린이문화 운동을 일으킨 어린이 운동의 칭시자다. 그만큼 그는 어린이를 아끼고 사랑했다. 특히 그는 모든 어린이는 ‘시인‘이라며 예찬했다. 고운 마음으로 보고 느낀 것을 아름다운 말로 재잘거리던 그대로 시가 되고 노래가 되기 때문이다. 또 어린이를 ‘화가‘라며 찬미를 아끼지 않았다. 조금도 기교를 부리지 않는 내신 본것을솔직하게 표현하는 예술가라고 생각한것이다. 간혹 아동학대에 관한 뉴스가 화제가 되곤 한다. 그런 소식을 접할때마다 분노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과연 그들에게 어린이는 어떤 존재일까. 그에게 소파의 다음 말을 들려주고싶다.
"어린이에게서 기쁨을 빼앗고, 어린이 얼굴에 슬픈 빛을 지어주는 사같이 있다 하면 그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죄(중략)힘은 없을 것이다. 어린이의 기쁨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들의 기쁨을 찾아주어야 한다. 어린이들의 기쁨을 찾아주어야한다.‘
#02 방정환, <첫여름> 햇볕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아아. 행복한 아침! 그 신록의 냄새를 맡고, 그 햇볕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새로운 기운과기름이 머릿속, 가슴 속, 핏속까지 가득 생기는 것을 느낀다.
아아, 상쾌하다! 이렇게 상쾌한 아침이 다른 계절에도 있을까? 물에 젖은 은빛 햇볕에향긋한 풀냄새가 떠오르는첫여름의 아침! 어쩌면 이렇게도상쾌할까. 보라! 밤사이에 한층 더 자란 새파란 잎이 해맑은 아침 기운을 토하고있지 않느냐. 바람에 코를 간질이는것이 새파랗고 향긋한 풀냄새가 아니냐. 그리고 그 파란 잎과 그 파란 풀에 거룩하게 비치는 물기 있는 햇볕에서아름다운 새벽 음악이 들려오지 않느냐. 아아, 행복한아침! 그신록의 냄새를 맡고, 그 햇볕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새로운기운과 기쁨이 머릿속, 가슴속, 핏속까지 가득생기는것을느낀다.
참맑은글이다. 되될수록 글이 주는 여운이 깊고 투명하다. 방정환은 가난했지만늘당당했고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또한, 뛰어난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다. 특히 당대 최고 문장가들이 한문 어투로글을 쓴 데 반해, 그의 글은 요즘 작가들의 글처럼 현대적일 뿐만 아니라주제 역시 새로움을 추구했다. 그래서 전혀 낯설지가 않다. 이 글만 해도 1920년대에 쓴 것임에도 주제나 관심사에서 도저히 70여년 전에 쓴 글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는 그가 항상 어린이처럼 순수한 마음과 영혼을 가졌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첫여름은 초여름을 말하는 것으로 5월~6월경을 말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방정환이 활동하던 당시에도초여름의 아침은 매우 상쾌했나보다. 문득, 파란 풀에 거룩하게 비치는 물기 있는 햇볕에서 아름다운 새벽 음악이 들려오는 그 시절의 첫여름이 그립다.
나는 두분께 돈을 갖다드린 일도, 뭘사드린 일도 없습니다. 또한번도 절을 해본 일이 없습니다. 두 분이 내게 운동화를 사주시면, 나는 그것을 신고, 두 분이 모르는 골목길로만 다녀 금방 망가뜨리고 말았습니다. 또 월사금(학교에 매달 내던 수업료)을 주시면 두분이 못알아보는글자만을 골라서 배웠습니다. 그랬건만 단 한 번도 나를 미워한 일이 없습니다. 집을 나갔다가 23년 만에 돌아왔더니, 여전히 가난하게 사실 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내 대님과 허리띠를 접어주셨고, 아버지는 내 모자와 양복저고리를 걸기 위해 못을 박으셨습니다. 동생도 다 자랐고, 막냇누이도 어느새 아가씨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건만 나는 돈을 벌 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수있을까요? 못 법니다. 못 법니다.
내게는 친구도 없습니다. 어른도 없습니다. 버릇도 없습니다. 뚝심(굳세게 버티어 내는 힘)도 없습니다.
손이 뺨을 만집니다. 남의 손처럼 차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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