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요. 집을 짓게 되는 요인은 뛰어난 지능이라든지 사회성 등이 아니라 종족 번식의 필요성 때문입니다.
집을 짓는 모든 동물은 특정한 방식으로만 집을 짓습니다. 상황에따라서 재료가 변할 뿐이에요. 고유한 집 짓기 방식은 절대 변하지않습니다. 제비가 제비집 짓고, 까치가 까치집 짓는 방식과 사람이집 짓는 방식은 똑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초가집과 외국의 벽돌집도모양은 달라도 짓는 방식은 같습니다.
최초에 집은 관목들로 지어졌습니다. 개나리나 진달래처럼 잘 휘어지는 관목들의 가운데를 쳐낸 다음 사람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고서 위를 가지로 막아요. 이렇게 하면 비를 피하거나 잠시 앉아 있을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도 산속에서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하거나 햇빛을 피하고 싶을 때는 이런 방식으로 임시 쉼터를 만들 수가 있지요. 이것이 인류가 지은 최초의 집입니다.
이렇게 지어진 집은 하루 이틀 지나면 없어지기 때문에 유물과 유적으로 남지가 않습니다. 대신 신화라든지 무가 작은 편린과흔적들로 남아 있습니다. 제주 무가에 농사의 여신인 자청비 이야기가 나오는데, 거기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어요. 자청비가 하인과 함께문도령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문 도령이 안 오니까 할 수 없이 밤을 지내려고 움막을 지어요. 무가는 이 장면을 "서쪽으로 뻗은 가지는 동쪽으로 엮어 놓고, 동쪽으로 뻗은 가지는 서쪽으로 엮어 얼렁뚱땅 움막을 지어 하루를 지냈다"고 묘사하고 있어요.
지금도 아프리카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집을 지어요. 우리나라에

서도 아주 시골, 강원도 두메산골에 사는 화전민들이 산속에서 비를맞았을 때 이 방법으로 움막을 지어 비를 피한다고 합니다. 몇만 년전의 집 짓기 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최초의 집은 집이라기보다 빨리, 쉽게 지을 수 있는 일종의 은신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이 집을 짓는 방식- 세울 건과 쌓을 축사람이 집을 짓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가 세울 건建다음이 쌓을 축이에요. 먼저 세우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세우는 방식은 아주 쉬워요. 나뭇가지들을 수직으로 엮어서 공간

청소년 선생님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으세요?

노은주
막상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없지만, 집은 우선 평상복처럼 편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손이많이 가지 않고, 아무 데서나 기댈 수 있고, 바닥에 누울 수도 있고,
무엇보다 집에서 어디서든 책을 꺼내 읽을 수 있고, 가족들이 어디선가 각자의 공간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오는 그런집.
특히 제가 좋아하는 푸르스름한 하늘이 붉은 노을로 물들며 어두워지는 해 질 녘의 풍경을 잘 볼 수 있는 테라스라든가 큰 창이 있는집을 짓고 싶어요. 마당이 넓을 필요는 없고, 넓고 높은 방과 좁고 천장이 낮은 방이 함께 있는, 변화가 있는 공간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서울에 살아왔기 때문에, 전원주택보다는 서울 한복판복잡한 곳에 집을 지어 보고 싶어요. 넓은 땅이 아니어도 좋고, 가령층마다 식구들 방이 하나씩 있어도 재미있을 듯해요. 엘리베이터로각방을 오르내릴 수도 있고요.
제일 좋은 건 일하는 공간이 같이 있는 거에요. 가령 남산에 가면애니메이션센터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만화의 집‘이 있어서 늘 만화를 편하게 볼 수 있어요. 그런 식으로 건축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건축의 집‘을 1층에 두고, 2층은 사무실, 3층은 가정집이 들어서는 거죠.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품삯 한 푼 없이 이런노역에 동원된 겁니다. 바쁜 농사철에도 내 일을 젖혀 놓고 의무적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일본인들에 의해, 아버지는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세대를 이어서. 만약에 노역에 나가지 못할 경우 오히려 하루 일당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길을 닦아놓자 시멘트 회사 사장이 포장을 하고 자기가 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국민의 노동력과 국비로 지원을 받은 회사들이 지금의 대기업으로 성장합니다.

이 장면에서 아들은 "그런데도 데모 같은 거 안 해요?"라고 묻습니다. 부당한데 왜 저항하지 않느냐는 뜻이겠지요. 여기에 대해 아버지는 나라에서 시키니까 으레 그래야 하는 건 줄 알았다고 답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나라에서 시키는 일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따라야 하는 걸까요? 
지금은 아니라고 답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 시기에는 전쟁은 끝난 지 꽤 되었지만 남과 북이 갈렸고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정치적으로도 혼란스러웠어요. 
게다가 가난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따질 여유가 없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주입된 패배 의식과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한 못난 놈이라는 자괴감도 있었고요.
이런 상태에서 강력한 독재 정권이 힘을 발휘한 겁니다. 박정희가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품삯 한 푼 없이 이런노역에 동원된 겁니다. 바쁜 농사철에도 내 일을 젖혀 놓고 의무적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일본인들에 의해, 아버지는 군사 독재 정권에 의해 세대를 이어서. 만약에 노역에 나가지 못할 경우 오히려 하루 일당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길을 닦아놓자 시멘트 회사 사장이 포장을 하고 자기가 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국민의 노동력과 국비로 지원을 받은 회사들이 지금의 대기업으로 성장합니다.
이 장면에서 아들은 "그런데도 데모 같은 거 안 해요?"라고 묻습니다. 부당한데 왜 저항하지 않느냐는 뜻이겠지요. 여기에 대해 아버지는 나라에서 시키니까 으레 그래야 하는 건 줄 알았다고 답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나라에서 시키는 일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따라야 하는 걸까요? 지금은 아니라고 답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 시기에는 전쟁은 끝난 지 꽤 되었지만 남과 북이 갈렸고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정치적으로도 혼란스러웠어요. 게다가가난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따질 여유가 없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주입된 패배 의식과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한 못난 놈이라는 자괴감도 있었고요.
이런 상태에서 강력한 독재 정권이 힘을 발휘한 겁니다. 박정희가

통일벼란 품종을 개량해서 정부에서 보급한 벼를 말해요. 토종 벼는 밥맛이 좋고 키가 커서 초가집 지붕을 엮기에 좋았지만 수확량이적었어요. 반면에 통일벼는 쌀 수확량은 많았지만 밥맛이 없고 키가작아 지붕을 엮기가 어려웠어요. 어머니는 정부에서 지붕을 개량하라고 보조금을 줘도 다른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지붕 개량이 힘들었지요. 다들 새로 집을 바꾸는데 어머니만 낡은 초가에서 살고 싶지는않았을 거예요.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것인데도, 이장도 와서 권하고면에서도 누가 나와 으름장을 놓았다는 것으로 보아 지붕 개량사업을 획일적으로 강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관청에서는 실적을 높이려고 계속 어머니를 설득했던 모양입니다. 당시에는 실적이 좋은군수에게 상을 주기도 했지요.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 초가집은 가난의 상징이었어요.
따라서 부수어 없애 버리거나 바꾸어 버려야 할 대상이었지요. 초가집뿐만 아니라 전통의 생활용품과 살림살이 도구가 모두 그런 취급을 당했어요. 유기, 목기, 도자기, 가구 등이 고물장수에게 헐값으로팔려나가고, 그 대신 스테인리스, 비닐, 플라스틱, 함석 같은 재료로만든 상품이 밀려오던 시기입니다. 불과 30~40여 년만 지나도 그때마구 내다 버린 것이 귀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을, 국가가 나서서 우리 것은 열등하고 낙후한 것이니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고 강제까지 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알게 모르

게 패배적이고 자기 비하적인 의식을 갖게 되었고, 권력으로 통치하기도 쉬워졌지요. 앞서 말했듯 새마을 운동을 벌이면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도 잃어버리게 되었고요.

마음이 불편해서 그랬는지 동생이 저녁 먹은 것을 토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꺽다리 집‘으로 돌아오지만, 오히려 잘됐다고, 춥지만 내 집이 편하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어린 주인공은마음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요?
작가는 어린 주인공의 입을 통해 고백합니다. 애, 어른 할 것 없이온 마을 주민을 동원해서 멀쩡한 집을 부수던 시절, 자기는 새마을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에 저항하지 못했노라고. 비록 어려서그랬다고는 하지만, 표어 짓기, 포스터 그리기, 웅변대회 같은 행사에열심히 참가하여 새마을 운동 정신을 찬양하고 전파하는 데 이용당했던 자기가 부끄럽다고. 어쩌면 작가는 어린 시절의 자화상을 보여 주면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몰라요.
요즘도 밀어붙이기식 개발은 여전하잖아요. 계속되는 재개발로 인해 가난하지만 정겹고 소박하게 살아온 마을과 집을 잃은 서민 계층이 외곽으로, 더 먼 외곽으로 밀려나는 철거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어요. 재개발 지역 주민을 강제로 쫓아내려고 용역 깡패를 동원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용산 참사‘ 같은 비극이 생겼지요. 그렇게 내몰리는 사람들, 그들이 누구일까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이만큼 발전을 이룬 것은 낮은 곡식 가격으로 희생당한 농민과 낮은 임금으로고통받은 노동자 덕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홀대해서는 안 됩니다. 새마을 운동과 재개발 사업, 그리고 지금의 뉴타운은서민을 홀대해 온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어요.
재개발과 뉴타운의 문제는 또 있어요. 동네 자체를 밀어버리고 고

층 아파트를 지으면, 마을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사람들뿐만 아니라동네 곳곳에 녹아 있던 삶의 흔적과 이야기가 함께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온 공간에는 그 마을의 역사와 삶의 온기가 녹아있고 이야기가 살아 숨 쉬고 있는데, 재개발 사업은 그런 이야기를순식간에 파괴해 버립니다. 그 지역과 연고가 없는 낯선 사람들이 입주하여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외딴 섬처럼 살아가요. 마을의 역사와 이야기로부터 단절된 우리네 삶은 정신적으로 공허해지고 척박해집니다. 쓸쓸하고 외로워져요. 사회 전체가 고립감과 외로움으로가득 차게 되지요. 예전에 내가 살던 공간이 그대로 있고 거기에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면, 외로울 때 친구가 있어주는 것처럼 사람들은 안정을 되찾고 마음이 따뜻해지겠지요. 대를이어 한 마을에 공동체를 이루고 산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중요해요.
앞에서 예로 들었던 이청준의 소설 「눈길에서도 노인은 집이 팔려돌아갈 집이 없어도 걱정을 안 하거든요. 다만 "누구네 집 문간방"에살면 된다고 말하지요. 1970년대만 해도 이렇게 공동체가 살아 있었어요.
이렇게 보더라도 이제는 재개발이 아닌 보존이 필요해요. 지금 한옥마을 보존 지구에는 서울시에서 많은 돈을 지원해 주고 있어요. 저는 뉴타운을 만든다고 믿어 버릴 것이 아니라 달동네에도 국가나 지방 자치 단체에서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달동네에 사는사람들은 그 동네의 역사와 삶의 다양한 모습과 그 동네의 이야기를유지해주잖아요. 우리 모두가 한옥이거나 아파트에만 사는 것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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