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 이놈이 얕은 맛이 있어 놔서・・・・・・큼큼・・・….."
점잖은 어른이 생선 가시를 깨끗이 발라 드신 건 체면을 잊은행위다. 어쩌면 혀에 대고 쪽쪽 빨았을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도 불경스럽다. 얕은 맛이란 그렇게 혀에서만 단, 달게 먹고 난후엔 조금 민망해지는 그런 맛이다. 간사해서 사람의 혀를 지배하는 맛이다. 어쩌면 살짝 ‘죄‘의 냄새가 깃든! 식욕이 성욕과도흡사하게 허망하고 말초적인 맛이다.

그러나 깊은 맛은 반대다. 먹고 나서 전혀 죄스럽지 않다. 빈접시가 부끄러울 리도 없다. 양념장이 없으면 아무 맛도 느끼지못하는 그런 종류의 밍밍한 맛이다.

얕은 맛이 혀가 느끼는 맛이라면 ‘깊은 맛은 위가 느끼는 맛이다. 어쩌면 ‘깊은‘과 ‘얕은‘이란 수식은 그것을 느끼는 신체 부위의 심천 때문에 붙여진 것일 수도 있겠다! 

돌연 든 생각에 무릎을 치다 말고 나는 얼른 손을 내린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얕은 맛은 어린아이들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면 깊은 맛은 나이 들어야 제대로 아는 맛이다. 마치 여자들이 아이를낳고 난 후에야 미역국 맛을 제대로 아는 것처럼! 그렇다면 맛의심천이란 신체 부위의 심천이 아니라 연륜의 심천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배추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이들은 처녀들을 빼고는 모두 외로움에 사무쳐본 적이 있는 이들이었다.

여섯 살인 나도 몰래 삼키는 외로움이 엄연한데 염치만 다락같이 높고 곡간은 텅 빈 어매 아배를 가진 스무나믄 살 처녀들이 아픔을 모를 리야!

아픔은 사람을 사무치게 만든다. 그리고 사무침은 사람을 의연하게 만든다. 그래서 임하의 아이들은 열 살만 넘으면 대개 의젓해졌다. 그 의젓함은 특히 여자들이 더했다.

어른 중에도 간혹 자발없고 참을성 없는 이들이 있긴 했다.
 누가 무슨 일에 울고 짜고 요란을 떨면
"쯔쯔! 생이라 그렇지!"라며 바야흐로 속이 익어가는 과정을 가엾게 여겼다. 

생속이란 아픔에 대한 내성이 부족하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생속의 반대말은 썩은속이었다. 속이 썩어야 세상에 관대해질수 있었다. 산다는 건 결국 속이 썩는 것이고 얼마간 세상을 살고난 후엔 절로 속이 썩어 내성이 생기면서 의젓해지는 법이라고배추적을 먹는 사람들은 의심 없이 믿었던 것 같다.
그렇게 조금씩 속이 썩은 사람들끼리 둘러앉아 먹는 것이 배추적이었다.

날것일 땐 달았던 배추도 밀가루를 묻혀 구워놓으면 밍밍하고 싱거워졌다. 생속을 가진 사람은 배추적의 맛을 몰랐다. 
배추적을 입에 넣어 "에이 뭔 맛이 이래? 싱겁고 물맛만 나네!" 하면 자기 속이 생속이라는 고백이었다. 곱게 자란 처녀들이 그랬고 남자들도 대개는 그랬다. 
하긴 남자들 상엔 배추적 같은허드렛 음식은 아예 올리지도 않았다.


이번엔 썰 차례다. 엄마가 어느새 부엌에서 칼을 가져왔던가.

칼은 시커멓다. 자루로는 마늘을 다지고 칼등으로는 견과류의 껍질을 으깨고 손잡이 쪽 날로는 무 껍질을 긁고 가운데 날로는 채소를 자르며 날 끝으로는 깡통을 따는, 가히 만 가지 기능을 가진 칼인데 겉모양은 그저 음전하고 덤덤하다.
우리집 일꾼 황씨가 담배건조실에 불 때면서 날을 야물게 벼려준 칼이다. 

며칠 전나는 저 칼로 객구물을 받아먹었다. 그래서 저 칼날의 맛을 안다.

칼날은 선뜩하고 비리고 아렸다. 곡식과 소재와 길짐승과 날짐승과 갯것들의 맛을 나는 모른다고 할 수 없다. 엄마젖을 떼고 암죽을 먹고 쌀미음을 먹고 조금씩 밥알을 씹을 줄 알게 되면서 내가맛본음식의 가짓수는 아마 백을 훌쩍 넘을 것이다.

그러나 칼 맛은 그 어느 것과도 달랐다. 왜 사람이 금속류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를 나는 절로 납득했고 왜 칼이 사람에게 두려움을 주는지를 스스로 터득했다. 

그건 지구 깊숙이 숨은 금지된 광석의 맛이었다. 뜨겁지 않았지만 혀가 델 듯 아렸고 갯것이 아니지만 구토가 솟을 듯 비렸다.

엄마가 그 칼을 들어 접힌 밀가루 반죽 위에 올려놓는다. 나는반사적으로 숨을 죽인다. 훌륭한 숙수가 써는 국수발은 가늘고길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칼 땀이 고르고 촘촘해야 한다. 아니촘촘하게 썰어야만 발이 가늘어진다.

부엌을 내려다보는 것을 실은 나는 꽤 좋아하고 있다.
큰 솥과 동솥이 걸린 기다란 부뚜막과 그 아래 불길이 비쳐 나오는 깊은 아궁이와 큰 솥 곁에 묻힌 열 말들이 물두멍과 물두멍위의 조왕단지와 쌓아놓은 땔나무 더미와 천정 아래 용 이빨처럼뚫린 살칭(광창)까지를 한눈에 조망하는 시점은 날 묘하게 매혹한다. 

두렵고도 벅차고, 불안하고 또 설렌다. 남이 모르는 것을 나만 내려다보고 있다는 은밀함이 있다. 현재가 아닌 오래고 먼 시간, 이 부엌에서 지은 밥을 먹고살던 조상들이 줄줄이 뒷산으로돌아가 묻혔던 시간, 일년에 한 번씩 생전에 먹던 그 밥을 먹으러 뒷산에서 사당을 거쳐 제상 위에 올라가 슬그머니 앉던 시간,
내가 다시 그리로 돌아가 누울 먼먼 미래의 시간, 지금 내가 보는풍경 안에 그것들이 서로 겹쳐지고 있는 것을 나는 느낀다.

밖은 하마 어스름이 깔린다. 커다란 발을 가진 밤이 성큼성큼걸어올 때가 됐나 보다 밤은 푸르고 깊다. 낮에 움직이던 것들은 다 잠이 들고 대신 밤에 움직이는 것들이 슬금슬금 잠을 깨는 시간이다. 

두렵고 놀라워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려 하지만 나는 낮에 깨어있는 족속이다. 그래서 밤이 큰 발로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하면 도무지 무거운 눈꺼풀을 이길 수가 없다.

엄마가 동솥 뚜껑을 연다. 그러자 희뿌연 김이 갑자기 솟아 눈앞에 있던 풍경이 모조리 지워져버린다. 엄마 모습도 김 속에 감춰져 사라져버린다. 나는 깜짝 놀라 "엄마"를 외친다. 

그 순간
생에 감사했다

맛은 추억이다. 맛은 현재의 나를 돌연 다른 시점으로 공간 이동하게 만든다. 

귀로 듣는 음악이 그렇고 코로 맡는 향기가 그렇듯!

혀 또한 지금 그 위에 오른 것만 감각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은 순간순간 시공간의 다른 차원과 층위를 경험할 수 있게 디자인되어 있다. 

감관을 예민하게 열어놓기만 하면 그런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신기하고 황홀한 일이다.

그 황홀은 ‘진달래꽃 화전‘ 같은 자그만 부침개 위에서 일쑤 화르르 피어난다. 
진달래는 봄에 맨 처음 피는 꽃이다. 

납작 엎드린 냉이의 뿌리는 길고 굵다. 제 몸의 대여섯 배 이상땅속으로 깊이 뿌리박은 그놈을 많이는 말고 열댓 뿌리만 캔다.
뿌리가 상치 않게 조심해야 한다・・・・・・.

나는 지금 냉이 뿌리 내음을 뭐라고 말할지 적절한 말을 찾지를 못하겠다. 분명 향기는 향기인데 꽃이나 과일향과는 다르다.
꽃향이 코로 맡는 종류라면 냉이향은 피부로 맡는 종류다. 꽃향이 뇌에서 작동하는 감각이라면 냉이향은 몸에서 작동한다. 꽃향이 가볍게 공중을 떠돈다면 냉이향은 무게를 지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캐는 중에 이미 냉이는 자기를 캐는 존재를 행복감에 휩싸이게 만든다. 땅의 정기를 물질화한 것이 바로 냉이다. 냉이의 향은대지의 비밀스런 뜻이고 본질이다. 

어린 나는 미처 그걸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알지 못한 채로도 꼬챙이를 땅속 깊이 쑤셔 넣으면서 등에 내리쬐는 입춘을 앞둔 봄볕 속에서 지상과 천상이 바로이어지는 듯한 완벽한 순간을 맛봤다. 

그 충일과 자족은 순전히 냉이향이 전해준 화학작용이고 신비 체험이었다.

캐온 냉이로 국을 끓이는 건 엄마다. 엄마는 냉잇국에 된장을풀지 않는다. 된장이 냉이향을 지우는 걸 용납할 수 없어서였다.
대신 날콩가루를 쓴다. 열댓 뿌리 냉이에 콩가루를 다박다박 무친다. 그걸 동솥 한켠에 담고 그것만으로는 양이 적으니까 채 썬무를 곁들인다. 

엎드려 비로소 몹시 우셨다. 아이가 죽었을 때도 남편이 사라졌을 때도 경황이 없어 울지 못했던 울음을 비로소 마음껏 우셨다.

아침저녁 빈소에 상식상을 지어 바치는 시어른 삼년상이 끝나고 여든이 됐을 때 고모는 내게 말하셨다. "야야 살아보니 인생이참 허쁘다." 살아보니 인생이 참 허쁘다, 라고 토로하신 후 고모는 다시 십 년쯤을 더 사셨다. 

그 나머지 십 년은 오롯이 나를 위한 세월이었다. 시어른 밥상을 차리는 대신 철따라 끊임없이 생겨나는 나물을, 곡식을, 양념을, 장아찌를, 김치를, 젓갈을, 부각을, 정과를, 다식을 모조리 내게로 보내고 또 보내셨다. 돌아가신다음까지 냉동실에 굴러다니는 묵나물 덩이가 서른 개도 넘을 만큼. 나는 이걸 녹여 입안에 넣을 수 있을까. 입에 넣어 먹지 않으면 그럼 이걸 어떻게 하나.

냉동실 문 앞에 하염없이 서 있다. 

허쁘다는 말은 기쁘다와 슬프다와 고프다와 아프다를 다 녹여 비벼놓은 말이다. 삶이 ‘삶은 나물‘보다 못할 리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다 사라져버렸을 리야.

냉동실 문을 잡고 삶과 죽음의 어처구니없음을 생각하는 날,
민들레 꽃씨는 휭휭 날고 뭔 새는 줄곧 쪼롱쪼롱 울고 줄에 넌 빨래는 바람에 화르륵 화르륵 뒤집힌다. 나는 오늘 저 시래기를 녹여 멸치를 대가리 채 부숴 넣고 시래기국을 한 솥 끓여볼까.
해 지고 난 후 고개 숙이고 후루룩거리며 마셔볼까. 서울이라면친구들 몇 불러 독한 술을 함께 하련만. 
ㅜㅜ

고요한 시간겸허한 마음으로

사래 긴 콩밭 위로 이제 막 아침볕이 쏟아질 때, 수염이 마르는 옥수수를 골라 꺾을 때,

푸른 겉치마를 벗기고 얇은 속치마를 살짝 열어젖힐 때, 속살이 여물었는지를 확인하며 실없이 설렐 때 털털하고 허우룩하게 거기 서 있던 옥수수 한그루, 아무렇지도 않던그가 문득 미덥고 정다워질 때.

늙은오이를 아름 가득 묵직하게 안고 올 때, 오이에서 노각으로 생명의 차원을 바꿔버린 열매를 목격할 때, 노각의 몸통을 훑고 지나간 굵고 우아한 주름을 발견할 때 그게슬쩍 눈물겨워 콧등을 문지를때.

가지의 가짓빛을 곰곰이 들여다볼 때, 보라라고 단정할 수 없는 깊은 어둠에 괄목할 때,
가짓빛 치마 가짓빛 새벽 가짓빛 머리카락 잊었던 관형어들이 새삼 그립게 떠오를 때.

물섬에서 늙어가는 청둥호박을 두어 덩이 발견할 때, 줄기에 돋은 가시가 손등을 쓰라리게 할 때, 꼭지에서 피 같은 푸른 진이 주르륵 흘러내려 내 상처를 덮을 때, 불볕 아래 토마토가 익어갈 때, 눈부신 빛깔에 진저리칠 때.

바지랑대 끝에서 빨래가 말라갈때, 못견디게 휘날리다 이윽고 아우성을 멈출때.
이럴 때가 고요한 시간이랍니다. 이럴 때가 고요한 시간이랍니다.

개결한 명태 보푸름에서 슴슴한 무익지까지깊은 단맛 ‘난젓‘ ・・・ 새근한 ‘중편‘...
...

온순하고 착한 ‘호박 뭉개미‘
우리 시대 문장가가고담하면서도 발랄한 글로 되살려낸슬쩍 서러운 고향의 맛.

웅숭깊고 영롱한 삶의 향기

좋은 문장이 고플 땐 김서령을 읽곤 했다. 그녀가 문득, 지상에서 사라진 지금도 그렇다. 불면증 등여러 이유로 4, 50대 15 년간 매일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그 기간 동안 시집을 제외하고 좋은 문장이 고파서 되풀이 읽은 산문은 대개는 김서령이었다. 내밀한 끌림이 있었고 읽으면 단정해지고 맑아졌다. 문장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글의 모든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김서령을 통해 알았다.

당대의 문장가란 수식을 넘어서는 치유적 힘이 그녀에겐 있었다. 탁월한 문장가 중에서 문장보다 실제 사람이 더 끌렸던 이는 내겐 김서령이 유일하다. 
이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김서령 선생에게 자발적 추천 독후감을 쓰겠다 청탁하려 했다. 
제목도 정해놨다. 잃어버린 우리의 문장을 찾아서 ‘잃어버린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시리즈에 사람들이 질화로처럼 기댔던 건 
거기 ‘우리‘가 있어서였다. 
나는 김서령의 문장이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로 그 청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녀의 영원한 부재 후 처음 나오는 책. 그녀가 여기 있든 없든 그녀의 문장이 주는 치유적 힘은 여전하다. 
사람은 가고 문장만 남았는데 그 문장 속에 김서령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한국의 문장가‘로 평가받은 자신의 문장보다 아름다웠던 여인, 서령 씨, 잘 가요, 후 체험처럼 이 책으로 당신의 아름다움을 만끽합니다. 당신의 문장과 한 세월을 공유할 수 있어서 고마웠고 행복했습니다. 
당신을 자주 펼치는 것으로 다정하게 추억할게요.
- 이명수(심리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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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마드는 생각에 잠긴 채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절대 잊을 수 없을 한마디를 했다.

"우리의 혁명은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건설을 위한것입니다."

보복에 대한 우려로, 이 책 박물관은 계속 비밀에 부쳐질것이다. 이름을 붙이지도, 어떤 표시를 하지도 않을 것이다.
은밀한 공간, 레이더와 포탄으로부터 안전한 곳, 남녀노소 독자들이 만나는 곳. 독서는 피난처와 같다. 모든 문이잠겼을 때,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책의 책장들.
부단한 탐색 끝에, 이 친구들은 어느 건물의 지하를 어렵사리 찾아냈다. 거주민이 떠나고 없는 그 건물은 전장의가장자리에 있어서, 저격수들에게서는 거리가 멀지 않지만, 로켓의 사정권에서는 꽤 떨어진 곳이었다. 서둘러 나무 널빤지를 재단했다. 벽에는 페인트를 머금은 붓이 몇번 지나갔다. 두세 개의 소파를 모았다. 밖에는 창문 앞에모래주머니 몇 개를 쌓아 올리고, 끊어진 전기를 대신할 발전기 세트를 들었다. 
며칠 동안 책전달자들은 종이로 된 유산들의 먼지를 털고, 찢어진 곳을 붙이고, 종류를 분류하고, 목록을 작성하여 책장에 꽂아 정리했다. 빈틈없이

"책은 지배하지 않습니다. 책은 무언가를 선사해주죠.
책은 거세하지 않습니다. 책은 성숙하게 합니다."

아부에게 특히 어떤 분야의 책이 영향을 주었는지 물었다. 아부는 사실 거의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그의 독서 취향은 그 범위가 매우 넓어서, 이슬람 정치에서부터 아랍의 시와 심리학까지 그 관심 분야가 다양했다.

그는 미국의 앤서니 로빈스(Anthony Robbins)의 책을 예로 언급했다. 책 제목은 잊었지만 개인의 성장과 발전, 자아 성찰, 견고한 자기정체성 확립 등의 문제를 다룬 책이라고 했다. 
아부가 아사드정권에서 경험했던 삶과 전혀 다른것이었다. 아랍어로 번역된 그 작품은 다라야에 버려진 어느 저택의 폐허에서 어렵사리 찾아낸 것이었다.
"그 책을 읽은 것이 제가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부정적인 생각은 몰아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특히 필요한 것이죠."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 이 도서관을 자주 찾는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을까? 어떤 주제에 관심을 기울일까? 
아부 엘에즈는 나에게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초반에는 각자 자기기준을 세워 책을 택했습니다. 한 권 한 권의 책이 마치 처음 맞닥뜨린 귀중한 성자의 유물과도 같았죠. 강한 인상을

이 모든 책은 전장에서 구해낸 것으로, 새로 꾸려진 도서관 책장의 선반에서 우연히 집어 든 것이었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이 책들은 세상의 끝에 고립된 듯한 다라야에서 밖을 향해 조금 열린 창문과 같았다. 
나는 멀리서울리는 총성과 함께 이들의 목소리가 흩어지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책이 자신들에게는새로운 성벽과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읽었던 책의 구절들을 얼마나 잘 기억하는지. 혁명 전에는 책의 단 한 줄도 제대로 인용할 줄 몰랐던 이들이었다. 시리아를 피로 물들인이 분쟁이 역설적으로 책을 더 가까이하게 한 것이다.

직접 만들어낸 자유의 공간에서 독서는 새로운 토대였다. 이들은 그동안 은폐되었던 과거를 되짚어보고자 책을읽었다. 또한 배우려고 책을 읽었다. 때로는 정신착란을피하고자, 때로는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읽었다. 책은 하나의 배출구였다. 폭탄을 동원한 일방적 강요에 맞선 언어의선율이었다. 독서라는 이 소박한 인간적 행위는 평화를 침이 마르게 칭송했다.

모든 단어, 즉 폭탄에 저항하는 지혜와 희망 그리고 과학과 철학의 언어로 전율했다. 책장 선반 위의 완벽하게분류된 언어들은 견고하고 꿋꿋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강인하고, 용맹하며, 믿을 만하고, 진실이 깃들어 있었다. 이문장들은 성찰의 궤적과 수많은 사상, 해방을 위한 이야기들을 전해주었다. 온 세상이 손안에 있었다.
책을 통한 이들의 저항은 매력적이었다. 이 저항을 보자 나는 15년 전 테헤란의 서민 지역인 남부에서 만났던 이란의 한 미용사가 떠올랐다. 

그 미용사는 자기 미용실을 여성을 위한 독서 공간으로 바꾸었다. 어느 날 카이로의 교통 체증 속에서 마주쳤던 ‘책 자전거도 생각났다. 그것들은모두 독서를 통해 교육의 수준을 끌어올리려는 열망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책은 속박에 저항하는 기억의 산물이었다. 또한 시간과 굴복과 무지에 대항하는 퇴적물이었다.

이들의 책을 통한 항전이 책에 탐닉하던 시절의 나를떠올리게 해주었다. 책에 푹 빠졌던 내가 여러 번 무너지고 화재로 타버린 적이 있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Library ofAlexandria)을 처음 방문했을 때 느꼈던 떨림을 기억한다. 모로코 페스(Fes)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이 최근 새롭게 개장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모로코 여행을 꿈

나는 소설 『화씨 451(Fahrenheit 451)』을 떠올렸다. 책에 불을 지른 미친 소방수들. 1953년 출간된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의 이 소설에서 책 읽기는 금지된 일이었다.
이를 위반한 자들을 벌하고자 거리를 누비고 다니던 특별부대를 생각했다.
그중에서 비티 대장이 한 말이 떠올랐다.
책은 옆집에 장전된 무기다. 불태우자. 무장을 해제하자,
인간의 정신에 포격을 가하자. 누가 교양 있는 인간의 목표가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책은 독재자를 두려워하게 하는 대중 교육의 무기다.
언젠가 아흐마드와 20세기의 이 소설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흐마드의 긴 작품 목록에 포함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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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워라

안타까워라
자기가 땀 흘린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거두는 사람은

애처로워라
자기가 이룬 선업보다
더 높은 평판을 받는 사람은

가련하여라
자기가 살아낸 진리보다
더 넘치는 말을 하는 사람은

불안하여라
자기가 받은 사랑보다
더 적게 사랑하는 사람은

불길하여라
자기가 흘려준 눈물보다
더 크게 웃고 있는 사람은

젊음은, 조심하라

젊음은, 조심하라
젊음은 무관의 권력이어서
그 자체로 인류의 절정이며
너무 짧은 아름다움이어서
그대 가는 곳마다
유혹이 따르기 마련

젊은 너의 마음을 얻으려
온갖 위로와 재미를 바치며
화려한 유행의 분방함으로
고귀한 젊음을 탕진케 하리니

젊음은, 조심하라
시선의 눈총에 구멍 난 영혼으로
우울하거나 휩쓸리거나
과시하거나 열폭하거나
자기중심의 얼음성에 갇혀
온기 없이 시들어 가리니

자기 자신을 잃지 말며
자기 안에 갇히지 말라
그것은 서서히 자신을
죽여가는 것과 같으니
젊음은, 조심하라

경계警戒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 것

오늘이 미래를 잡아먹지 말 것

미래를 위해 오늘을 유보하지 말 것

인간은 서로에게 외계인이다

인간은 서로에게 외계인이지
각자 다른 행성에서 여기 와
지구 인간의 모습을 입고 조우한,
서로가 서로에게 외계인이지
말속의 어휘도 심정도 감각도
의식도 마음도 서로 소통되기가
두 행성만큼이나 아득하지
너와 나는 다른 차원과 밀도의
은하에서 파송되어 지구에서의
짧은 한 생을 살다 가는 거지

그러니 사람과 사람에게 있어
모든 이해란 실상은 오해일 뿐이지
모든 사랑은 절정의 착각일 뿐이지
그렇게 각자 살지
그래도 함께 살지
그러니 사랑하지
서로가 서로에게 외계인인 우리는

맞춰가면 밟히리라

민중을 거스르면
민중의 손에 죽으리라
대중에 맞춰가면
대중의 발길에 밟히리라

유행을 따라가면
유행의 파도에 쓸려가리라
젊음에 편승하면
젊은 이빨이 씹다 뱉으리라

누구의 것인가

길은
길을 걷는 자의 것이다

젊음은
젊음을 불사르는 자의 것이다

사랑은
사랑을 바쳐주는 자의 것이다

창조는
과거를 다 삼켜 시대의 높이에 선 자의 것이다

계절은
계절 속을 걸으며 향유하는 자의 것이다

하늘은
속셈 없이 간구하고 헌신하는 자의 것이다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을

더 후회할 것이다.

그러니 마음껏 탐험하고,

꿈꾸고, 발견하라.


마크 트웨인

아이들의 진실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이 가르치는 것보다
많은 걸 알고 있다
금지된 것들을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많은 걸 배반한다
강요된 것들을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이 믿는 것보다
훨씬 더 영악하다
이 악해진 사회만큼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견뎌낸다
스스로 하게만 둔다면

다시 꿋꿋이 살아가는 법

일단 꼬박꼬박 밥 먹고 힘내기
깨끗이 잘 차려 입고 자주 웃기
슬프면 참지 말고 실컷 울기
햇살 좋은 나무 사이로 많이 걷기
고요에 잠겨 묵직한 책을 읽기
좋은 벗들과 좋은 말을 나누기
곧은 걸음으로 다시 새길을 나서기

길 잃은 희망

우리가 길을 잃어버린 것은
길이 사라져 버려서가 아니다
너무 많은 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어둠이 깊어져서가 아니다
너무 현란한 빛에 눈멀어서이다

우리가 지금 희망이 없는 것은
희망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다
너무 헛된 희망을 놓지 못해서이다

한번 멈춰야 한다
한번 놓아야 한다
온 우주에 나는 단 하나뿐이듯

진정한 나만의 길은 하나뿐이니
수많은 길을 기웃기웃해도
결정적인 한 걸음이 없다면
다들 달려가는 그 길로 사라지리니

안 되면 안 한다

나에게는 믿음이 있어
꼭 해야만 할 일이 있어
생을 건 그 하나가 있어

안 되면 안 한다
되는대로 한다
꼭 필요하면 될 것이다

우리 인생의 가장 위대한 계획자는 하늘이니부끄러운 것은 그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이니

될 일은 반드시 될 것이다
올 것은 반드시 올 것이다
다시 시련이 온다
시련 속에서 계시가 온다
그러니 담대하라
그래 안 되면 안 한다
지금 되는대로 한다
꼭 필요하면 될 것이다

자유는 위험과 함께

새장에 갇힌 새처럼
사육되는 짐승처럼
그렇게 살 순 없어

자유가 위험하다고
죽은 듯이 사는 것은
이미 죽은 삶이니까

자유는 위험과 함께
사랑은 저항과 함께
인생은 만남과 함께

그럴 수 없다면,
살아있어도 우린
산 것이 아니니까

아이가 온다

애는 아무 생각 없이 태어나지
아빠가 누구건 엄마가 어떻든
어려운 시기건 앞날이 어쨌든그냥 세상에 첫울음을 질러버리지

어쩌라고, 어쩔 거야
내가 태어났다니까
내가 등장했다니까
이런 세상에 너 어떻게 살 거냐고
날 겁주지 말라니까

이거 배우고 저거 잘하고
남을 밟고 싸워 이기라고
날 떠밀지 말라니까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인생
내가 찾아서 간다니까, 내 길

부딪히고 쓰러지고 일어서고
내가 해낸 게 진짜 나라니까
애는 아무 생각 없이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아무 생각 없이 아닌데, 싫은데, 반항하고
아무 생각 없이 자기만의 길로 튕겨 가버리지

애는 울음이건 침묵이건 재잘대건
아무 생각 없이 미래의 목소리를 질러버리지아무 생각 없이 세상을 바꿔나가버리지

애는 아무 생각 없이 태어나지
애는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지
애는 아무 생각 없이 승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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