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 이놈이 얕은 맛이 있어 놔서・・・・・・큼큼・・・….." 점잖은 어른이 생선 가시를 깨끗이 발라 드신 건 체면을 잊은행위다. 어쩌면 혀에 대고 쪽쪽 빨았을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도 불경스럽다. 얕은 맛이란 그렇게 혀에서만 단, 달게 먹고 난후엔 조금 민망해지는 그런 맛이다. 간사해서 사람의 혀를 지배하는 맛이다. 어쩌면 살짝 ‘죄‘의 냄새가 깃든! 식욕이 성욕과도흡사하게 허망하고 말초적인 맛이다.
그러나 깊은 맛은 반대다. 먹고 나서 전혀 죄스럽지 않다. 빈접시가 부끄러울 리도 없다. 양념장이 없으면 아무 맛도 느끼지못하는 그런 종류의 밍밍한 맛이다.
얕은 맛이 혀가 느끼는 맛이라면 ‘깊은 맛은 위가 느끼는 맛이다. 어쩌면 ‘깊은‘과 ‘얕은‘이란 수식은 그것을 느끼는 신체 부위의 심천 때문에 붙여진 것일 수도 있겠다!
돌연 든 생각에 무릎을 치다 말고 나는 얼른 손을 내린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얕은 맛은 어린아이들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면 깊은 맛은 나이 들어야 제대로 아는 맛이다. 마치 여자들이 아이를낳고 난 후에야 미역국 맛을 제대로 아는 것처럼! 그렇다면 맛의심천이란 신체 부위의 심천이 아니라 연륜의 심천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배추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이들은 처녀들을 빼고는 모두 외로움에 사무쳐본 적이 있는 이들이었다.
여섯 살인 나도 몰래 삼키는 외로움이 엄연한데 염치만 다락같이 높고 곡간은 텅 빈 어매 아배를 가진 스무나믄 살 처녀들이 아픔을 모를 리야!
아픔은 사람을 사무치게 만든다. 그리고 사무침은 사람을 의연하게 만든다. 그래서 임하의 아이들은 열 살만 넘으면 대개 의젓해졌다. 그 의젓함은 특히 여자들이 더했다.
어른 중에도 간혹 자발없고 참을성 없는 이들이 있긴 했다. 누가 무슨 일에 울고 짜고 요란을 떨면 "쯔쯔! 생이라 그렇지!"라며 바야흐로 속이 익어가는 과정을 가엾게 여겼다.
생속이란 아픔에 대한 내성이 부족하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생속의 반대말은 썩은속이었다. 속이 썩어야 세상에 관대해질수 있었다. 산다는 건 결국 속이 썩는 것이고 얼마간 세상을 살고난 후엔 절로 속이 썩어 내성이 생기면서 의젓해지는 법이라고배추적을 먹는 사람들은 의심 없이 믿었던 것 같다. 그렇게 조금씩 속이 썩은 사람들끼리 둘러앉아 먹는 것이 배추적이었다.
날것일 땐 달았던 배추도 밀가루를 묻혀 구워놓으면 밍밍하고 싱거워졌다. 생속을 가진 사람은 배추적의 맛을 몰랐다. 배추적을 입에 넣어 "에이 뭔 맛이 이래? 싱겁고 물맛만 나네!" 하면 자기 속이 생속이라는 고백이었다. 곱게 자란 처녀들이 그랬고 남자들도 대개는 그랬다. 하긴 남자들 상엔 배추적 같은허드렛 음식은 아예 올리지도 않았다.
이번엔 썰 차례다. 엄마가 어느새 부엌에서 칼을 가져왔던가.
칼은 시커멓다. 자루로는 마늘을 다지고 칼등으로는 견과류의 껍질을 으깨고 손잡이 쪽 날로는 무 껍질을 긁고 가운데 날로는 채소를 자르며 날 끝으로는 깡통을 따는, 가히 만 가지 기능을 가진 칼인데 겉모양은 그저 음전하고 덤덤하다. 우리집 일꾼 황씨가 담배건조실에 불 때면서 날을 야물게 벼려준 칼이다.
며칠 전나는 저 칼로 객구물을 받아먹었다. 그래서 저 칼날의 맛을 안다.
칼날은 선뜩하고 비리고 아렸다. 곡식과 소재와 길짐승과 날짐승과 갯것들의 맛을 나는 모른다고 할 수 없다. 엄마젖을 떼고 암죽을 먹고 쌀미음을 먹고 조금씩 밥알을 씹을 줄 알게 되면서 내가맛본음식의 가짓수는 아마 백을 훌쩍 넘을 것이다.
그러나 칼 맛은 그 어느 것과도 달랐다. 왜 사람이 금속류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를 나는 절로 납득했고 왜 칼이 사람에게 두려움을 주는지를 스스로 터득했다.
그건 지구 깊숙이 숨은 금지된 광석의 맛이었다. 뜨겁지 않았지만 혀가 델 듯 아렸고 갯것이 아니지만 구토가 솟을 듯 비렸다.
엄마가 그 칼을 들어 접힌 밀가루 반죽 위에 올려놓는다. 나는반사적으로 숨을 죽인다. 훌륭한 숙수가 써는 국수발은 가늘고길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칼 땀이 고르고 촘촘해야 한다. 아니촘촘하게 썰어야만 발이 가늘어진다.
부엌을 내려다보는 것을 실은 나는 꽤 좋아하고 있다. 큰 솥과 동솥이 걸린 기다란 부뚜막과 그 아래 불길이 비쳐 나오는 깊은 아궁이와 큰 솥 곁에 묻힌 열 말들이 물두멍과 물두멍위의 조왕단지와 쌓아놓은 땔나무 더미와 천정 아래 용 이빨처럼뚫린 살칭(광창)까지를 한눈에 조망하는 시점은 날 묘하게 매혹한다.
두렵고도 벅차고, 불안하고 또 설렌다. 남이 모르는 것을 나만 내려다보고 있다는 은밀함이 있다. 현재가 아닌 오래고 먼 시간, 이 부엌에서 지은 밥을 먹고살던 조상들이 줄줄이 뒷산으로돌아가 묻혔던 시간, 일년에 한 번씩 생전에 먹던 그 밥을 먹으러 뒷산에서 사당을 거쳐 제상 위에 올라가 슬그머니 앉던 시간, 내가 다시 그리로 돌아가 누울 먼먼 미래의 시간, 지금 내가 보는풍경 안에 그것들이 서로 겹쳐지고 있는 것을 나는 느낀다.
밖은 하마 어스름이 깔린다. 커다란 발을 가진 밤이 성큼성큼걸어올 때가 됐나 보다 밤은 푸르고 깊다. 낮에 움직이던 것들은 다 잠이 들고 대신 밤에 움직이는 것들이 슬금슬금 잠을 깨는 시간이다.
두렵고 놀라워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려 하지만 나는 낮에 깨어있는 족속이다. 그래서 밤이 큰 발로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하면 도무지 무거운 눈꺼풀을 이길 수가 없다.
엄마가 동솥 뚜껑을 연다. 그러자 희뿌연 김이 갑자기 솟아 눈앞에 있던 풍경이 모조리 지워져버린다. 엄마 모습도 김 속에 감춰져 사라져버린다. 나는 깜짝 놀라 "엄마"를 외친다.
그 순간 생에 감사했다
맛은 추억이다. 맛은 현재의 나를 돌연 다른 시점으로 공간 이동하게 만든다.
귀로 듣는 음악이 그렇고 코로 맡는 향기가 그렇듯!
혀 또한 지금 그 위에 오른 것만 감각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은 순간순간 시공간의 다른 차원과 층위를 경험할 수 있게 디자인되어 있다.
감관을 예민하게 열어놓기만 하면 그런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신기하고 황홀한 일이다.
그 황홀은 ‘진달래꽃 화전‘ 같은 자그만 부침개 위에서 일쑤 화르르 피어난다. 진달래는 봄에 맨 처음 피는 꽃이다.
납작 엎드린 냉이의 뿌리는 길고 굵다. 제 몸의 대여섯 배 이상땅속으로 깊이 뿌리박은 그놈을 많이는 말고 열댓 뿌리만 캔다. 뿌리가 상치 않게 조심해야 한다・・・・・・.
나는 지금 냉이 뿌리 내음을 뭐라고 말할지 적절한 말을 찾지를 못하겠다. 분명 향기는 향기인데 꽃이나 과일향과는 다르다. 꽃향이 코로 맡는 종류라면 냉이향은 피부로 맡는 종류다. 꽃향이 뇌에서 작동하는 감각이라면 냉이향은 몸에서 작동한다. 꽃향이 가볍게 공중을 떠돈다면 냉이향은 무게를 지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캐는 중에 이미 냉이는 자기를 캐는 존재를 행복감에 휩싸이게 만든다. 땅의 정기를 물질화한 것이 바로 냉이다. 냉이의 향은대지의 비밀스런 뜻이고 본질이다.
어린 나는 미처 그걸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알지 못한 채로도 꼬챙이를 땅속 깊이 쑤셔 넣으면서 등에 내리쬐는 입춘을 앞둔 봄볕 속에서 지상과 천상이 바로이어지는 듯한 완벽한 순간을 맛봤다.
그 충일과 자족은 순전히 냉이향이 전해준 화학작용이고 신비 체험이었다.
캐온 냉이로 국을 끓이는 건 엄마다. 엄마는 냉잇국에 된장을풀지 않는다. 된장이 냉이향을 지우는 걸 용납할 수 없어서였다. 대신 날콩가루를 쓴다. 열댓 뿌리 냉이에 콩가루를 다박다박 무친다. 그걸 동솥 한켠에 담고 그것만으로는 양이 적으니까 채 썬무를 곁들인다.
엎드려 비로소 몹시 우셨다. 아이가 죽었을 때도 남편이 사라졌을 때도 경황이 없어 울지 못했던 울음을 비로소 마음껏 우셨다.
아침저녁 빈소에 상식상을 지어 바치는 시어른 삼년상이 끝나고 여든이 됐을 때 고모는 내게 말하셨다. "야야 살아보니 인생이참 허쁘다." 살아보니 인생이 참 허쁘다, 라고 토로하신 후 고모는 다시 십 년쯤을 더 사셨다.
그 나머지 십 년은 오롯이 나를 위한 세월이었다. 시어른 밥상을 차리는 대신 철따라 끊임없이 생겨나는 나물을, 곡식을, 양념을, 장아찌를, 김치를, 젓갈을, 부각을, 정과를, 다식을 모조리 내게로 보내고 또 보내셨다. 돌아가신다음까지 냉동실에 굴러다니는 묵나물 덩이가 서른 개도 넘을 만큼. 나는 이걸 녹여 입안에 넣을 수 있을까. 입에 넣어 먹지 않으면 그럼 이걸 어떻게 하나.
냉동실 문 앞에 하염없이 서 있다.
허쁘다는 말은 기쁘다와 슬프다와 고프다와 아프다를 다 녹여 비벼놓은 말이다. 삶이 ‘삶은 나물‘보다 못할 리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다 사라져버렸을 리야.
냉동실 문을 잡고 삶과 죽음의 어처구니없음을 생각하는 날, 민들레 꽃씨는 휭휭 날고 뭔 새는 줄곧 쪼롱쪼롱 울고 줄에 넌 빨래는 바람에 화르륵 화르륵 뒤집힌다. 나는 오늘 저 시래기를 녹여 멸치를 대가리 채 부숴 넣고 시래기국을 한 솥 끓여볼까. 해 지고 난 후 고개 숙이고 후루룩거리며 마셔볼까. 서울이라면친구들 몇 불러 독한 술을 함께 하련만. ㅜㅜ
고요한 시간겸허한 마음으로
사래 긴 콩밭 위로 이제 막 아침볕이 쏟아질 때, 수염이 마르는 옥수수를 골라 꺾을 때,
푸른 겉치마를 벗기고 얇은 속치마를 살짝 열어젖힐 때, 속살이 여물었는지를 확인하며 실없이 설렐 때 털털하고 허우룩하게 거기 서 있던 옥수수 한그루, 아무렇지도 않던그가 문득 미덥고 정다워질 때.
늙은오이를 아름 가득 묵직하게 안고 올 때, 오이에서 노각으로 생명의 차원을 바꿔버린 열매를 목격할 때, 노각의 몸통을 훑고 지나간 굵고 우아한 주름을 발견할 때 그게슬쩍 눈물겨워 콧등을 문지를때.
가지의 가짓빛을 곰곰이 들여다볼 때, 보라라고 단정할 수 없는 깊은 어둠에 괄목할 때, 가짓빛 치마 가짓빛 새벽 가짓빛 머리카락 잊었던 관형어들이 새삼 그립게 떠오를 때.
물섬에서 늙어가는 청둥호박을 두어 덩이 발견할 때, 줄기에 돋은 가시가 손등을 쓰라리게 할 때, 꼭지에서 피 같은 푸른 진이 주르륵 흘러내려 내 상처를 덮을 때, 불볕 아래 토마토가 익어갈 때, 눈부신 빛깔에 진저리칠 때.
바지랑대 끝에서 빨래가 말라갈때, 못견디게 휘날리다 이윽고 아우성을 멈출때. 이럴 때가 고요한 시간이랍니다. 이럴 때가 고요한 시간이랍니다.
개결한 명태 보푸름에서 슴슴한 무익지까지깊은 단맛 ‘난젓‘ ・・・ 새근한 ‘중편‘... ...
온순하고 착한 ‘호박 뭉개미‘ 우리 시대 문장가가고담하면서도 발랄한 글로 되살려낸슬쩍 서러운 고향의 맛.
웅숭깊고 영롱한 삶의 향기
좋은 문장이 고플 땐 김서령을 읽곤 했다. 그녀가 문득, 지상에서 사라진 지금도 그렇다. 불면증 등여러 이유로 4, 50대 15 년간 매일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그 기간 동안 시집을 제외하고 좋은 문장이 고파서 되풀이 읽은 산문은 대개는 김서령이었다. 내밀한 끌림이 있었고 읽으면 단정해지고 맑아졌다. 문장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글의 모든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김서령을 통해 알았다.
당대의 문장가란 수식을 넘어서는 치유적 힘이 그녀에겐 있었다. 탁월한 문장가 중에서 문장보다 실제 사람이 더 끌렸던 이는 내겐 김서령이 유일하다. 이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김서령 선생에게 자발적 추천 독후감을 쓰겠다 청탁하려 했다. 제목도 정해놨다. 잃어버린 우리의 문장을 찾아서 ‘잃어버린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시리즈에 사람들이 질화로처럼 기댔던 건 거기 ‘우리‘가 있어서였다. 나는 김서령의 문장이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로 그 청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녀의 영원한 부재 후 처음 나오는 책. 그녀가 여기 있든 없든 그녀의 문장이 주는 치유적 힘은 여전하다. 사람은 가고 문장만 남았는데 그 문장 속에 김서령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한국의 문장가‘로 평가받은 자신의 문장보다 아름다웠던 여인, 서령 씨, 잘 가요, 후 체험처럼 이 책으로 당신의 아름다움을 만끽합니다. 당신의 문장과 한 세월을 공유할 수 있어서 고마웠고 행복했습니다. 당신을 자주 펼치는 것으로 다정하게 추억할게요. - 이명수(심리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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