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삶이란 용기와 인내, 끈기, 공감, 열린 마음, 그리고 거절당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기꺼이 혼자 있겠다는 의지도 필요하다. 자신에게 상냥해야 하고, 가리개 없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고, 사람들이 보는 것을 관찰하고 버텨야 하고, 절제하는 동시에 위험을 감수해야한다. 그리고 기꺼이 실패해야 한다. 한 번만이 아니라 자꾸만, 평생을."

*소설쓰기는 숙련되지 않는 작업이고 백지 앞에서 나는 언제나 초심자가 된다. 
새로운 소설을 시작할 때면 예전에 어떻게 소설을 썼는지 의아해지곤 한다. 나는 그저 나의 무력함을 이해하고 인내한다. 내가 인물과 그 인물의 세계를 만들 수 없음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 P-1

나는 이십대에 부모님의 집에서 독립했다. 내가 아빠를 가•까이에서 본 건 그러니까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내가 이십대고 아빠가 오십대였을 때, 둘 다 젊었을 때였다. 
그때의 나는 삶이란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무한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은 한도가 없고 비용도 청구하지 않는 신용카드 같은 것이었다. 그때의 나의 미래에는 미워해야 할 젊은 아빠가 영원히 존재했다. 그 점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다.

암환자용 휴게실에 칠십대의 아빠와 사십대의 내가 앉아 있었다. 이제 내게 아빠는 미워해야 할 젊은 아빠가 아니었고 아빠에게 나는 고삐 풀려 날뛰는 망아지가 아니었다. 우리의 눈앞에는 삶의 유한함과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존재했다. 어린아이들이 한 해 한 해가 다르게 자라나듯이, 일흔이 지난 아빠 또한 매해 달라질 것을 나는 알았다. 아빠는 노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 P-1

내복 위에 두꺼운 니트와 롱 패딩을 입었다. 반면 아빠는 경량숏 패딩에 야구 모자 차림이었다. "이렇게 입고도 안 추워?"
하고 물으니 아빠는 하나도 안 춥다고 했다. "머리를 따뜻하게 해야지." 내 말에 아빠는 야구 모자로도 충분하다고 답했다.

나이가 들면서 놀라는 점은 껍데기만 늙어간다는 사실이다.
마음은 어릴 때와 다를 바가 없는데 거울 속에는 나이든 사람이 보인다. 아빠도 그렇겠지. 또래에 비해 체력이 좋고 운동능력도 좋은 사람이니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어떻든 물리적인 나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언젠가부터 아빠의 건강이 염려되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듯이 아빠 또한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아서였다. 스트레스를받을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아빠에게도 어려움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일흔셋의 연세에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내 걱정에 한몫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수능을 보기 두 달 전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당뇨병 합병증에 따른 심장마비가 원인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누구보다도 젊게 사셨다. 네 분의 조부모 중에서 가장 활력이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할아버지를 노인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직도 할아버지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생각난다. 할아버지는 작은 도시에서 살며 택시 운전 일을 했다. 
팔뚝에는 ‘일心‘ - P-1

이라는 초록빛 문신이 새겨져 있었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호남형이었다. 머리칼을 진한 까만색으로 염색하곤 했고 작은 소파에 앉아서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홍이 많은 분이었다. 어느 유원지의 무대에 올라서 마이크를 잡고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어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울고 있었는지 눈과 얼굴이 붉었다. 아빠도 울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내게는 낯설게 다가왔다. 아빠와 할아버지가 그렇게 친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랑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걸 그때의 나는 몰랐던 것 같다. 더구나 할아버지가 너무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아빠는 할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아주 짧게라도 마지막 인사를 나눈 이별과 그럴 기회조차 없었던 이별은 전혀 다르다는 걸 그때의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사랑하는 존재와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영영 헤어진다는 건 한 사람으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가혹한 일이라는 것도.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제는 아빠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나이에 다다르고 있었다. 암 병동에 환자로 앉아 있는 사람이 나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지 알면서도 그랬다. - P-1

잊어버려도 괜찮단다. 그가 말했다. 또 그러는 편이 좋아.
사실 우리는 때로 잊어야 하지. 잊는 건 중요한 일이란다. 일부러라도 그래야 해. 그래야 좀 쉴 수 있거든. 듣고 있니? 우리는 잊어야 해. 그러지 않으면 영영 잠을 잘 수 없게 될 거야.
엘리자베스는 훨씬 어린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울음이 날씨처럼 그녀에게서 나왔다.
대니얼이 그녀의 등에 손바닥을 얹었다.
기억나지 않는 게 있어 괴로울 때 내가 뭘 하냐면 말이다.
듣고 있니?
네. 엘리자베스가 울면서 대답했다.
무얼 잊어버렸든 그게 가까운 곳에서 새처럼 날개를 접고 잠들어 있다고 상상한단다.
어떤 종류의 새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들새. 대니얼이 말했다. 종류는 상관없어. 그런 일이 일어나면 저절로 알게 될 거야. 그러면 나는 그것을 너무 세지 않게 살며시 감싸안고 재우지. 그러면 돼." - P-1

괜찮은 게 아니었고 이타적인 게 아니었다. 나는 훼손되고 화나고 절망하는 사람, 겉으로는 깨끗해 보이는 나의 집 같은 사람이었다. 냉장고에서는 채소와 반찬이 썩어가고 싱크대 배수구에는 오물이 고여 있으며 서랍을 열면 아무렇게나 쑤셔넣은 물건들로 어지러운 나의 집 같은 모습, 그게 내 속이었다.

내가 분노를 억눌렀기에 병에 걸렸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단지 병에 걸린 후, 그제야 나의 아픔에 눈길이 갔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개인의 성격이나 생활 습관 같은 게 병의 원인이라는 식의 일반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믿음은 아픈 사람을 다시금 아프게 하는 폭력이라고 생각하니까. 아서 프랭크는 분노를 표현하지 않고 참는 것이 ‘암을 부르는 성격‘이라는 가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아픈 사람에게 원인을 돌리면서 쉽게 균열을 봉합한다. 아픈 사람에게 암을 부르는 성격이 있다고 믿을 때, 아픈 사람 이외의 모두에게 세계는 덜 취약하고 덜 위험해진다. 
아픈 사람조차 병이 그냥 생겼다기보다는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해서 생겼다고 믿기도 한다. 
불확실성보다는 죄책감이 더 편할 수도 있는 것이다." - P-1

"불확실성보다는 죄책감이 더 편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진단을 받고 나는 내가 병에 걸린 이유를 생각해봤다. 
몇 달간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먼저 떠올랐다. 이어서 몇 년 전에 받은 충격도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분노를 참고 억눌러야만 미래의 내가 안전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고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게 정말 건강한 선택이었을까. 소화할 수 없는 감정을 억지로 삼키는 건 스스로에게 너무 강압적이고 잔인한 일 아니었나.

내 생활 습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나는 고민이 있으면 잠으로 도피하는 경향이 있어서 길게 자곤 했다. 음주도 안 좋은 영향을 줬을 거라고 생각했다. 삼 년 전에 완전히 단주하긴 했지만 술을 습관적으로 마시던 시간이 길었다. 나는 이어서 생각했다. ‘술을 끊어서 다행이다. 아직도 마시고 있었다면 떳떳하지 못했을 거야.‘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내게 물었다. ‘뭐가 떳떳하지 못했을 거란 거야? 너는 네가 죄를 지어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아마도.‘ 그렇게 대답하고 나는 가만히 응시했다. 내가 잘못 살아서,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해서, 죄를 지어서 이런 결과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아서 프랭크의 말대로 그런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것이 ‘불확실성‘ 속에 빠지는 것보다는 더 편안하 - P-1

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병의 이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깝다. 

그저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미래의 불확실성을 양팔 벌려 맞아들이는 일과 같았다. 나는 두려웠다. 암이 전신 질환이며, 몸의 다른 곳에서 다시 발병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갑상선암에 걸렸다고 해서 다른암에 더 잘 걸리는 것은 아니다‘라는 연구 결과를 읽으면서도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언제쯤 삶은 결코 통제할 수 없으며 삶의 사건들은 인과관계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제쯤 모든 규칙을 깨고 펼쳐지는 삶의 불규칙성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연약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을까. 언제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이 모든 일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운전해서 외래를 가는 길에 라디오 뉴스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폭우가 내리는 날이었다. 어쩐지 마음이 아팠고 그에 관한 한 장면이 떠올랐다.
2022년 이탈리아 로마의 스페인광장을 찾은 그는 세계 평 - P-1

화를 위해 기도를 올리던 중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대목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몸을 떨며 눈물을 흘렸다. 모두가 돈과 힘의 관점에서 그 전쟁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고통을 자신 안에 아프게 새기고 있었다.
전쟁과 학살을 중단하라는 자신의 말이 엄연한 현실 앞에서 시시각각 부서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그의 우는 얼굴은 내게 삶의 전부를 살아내는 사람, 그것이 무엇이든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보였다. 

삶은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의 모습은 그것이 삶을 부정하는 근거가 아니라 도리어 삶을 끌어안아야 하는 이유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나는그 장면을 되새기며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가까워질수록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졌다. 채혈실에가서 피를 뽑고 병원 일층 카페에 앉아 책을 펼쳤다.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하며 세 시간 정도를 기다려서야 내 차례가 되었다. 간호사가 상처에 붙어 있는 테이프를 제거한 뒤 이제는 방수밴드 없이도 샤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는 적나라하게 드러난 내 상처를 거울로 바라봤다. 기다랗고 진한 갈색 절개선이 가로로 목을 가르고 있었다.
주치의는 상처가 잘 아물고 있다고 말했다. 수술이 잘 끝났으며 조직 검사 결과는 역시 암이었다고 전했다. 나는 신지로 - P-1

이드를 처방받았다. 외출할 때는 불투명한 실리콘 반창고를 상처에 붙여서 자외선을 차단해야 한다고도 했다. 간호사가 반창고를 오려 내 목에 붙였다. 
외래가 끝나고 주치의에게 내책 한 권을 선물로 드렸다. 그는 책 선물을 가장 좋아한다고말하면서 갑상선암에 관한 자신의 저서를 내게 건넸다.

다음 외래는 반년 뒤에 있었다. 그때쯤이면 목소리 내는 일이 지금보다 나아지고 상처도 흐려질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빠르게 흐르니까... 나는 빗길을 운전하면서 시간의 자비로움을 떠올렸다. 

시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가능하게 한다. 축적된 경험으로 나를 일깨우기도 하고 지난 일로부터 거리감을 확보하여 전체를 조망하게 하기도 한다.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을 수용하게도 하고 망각이라는 진통제를 주입해주는 관대한 존재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시간을 거스르면서 억지를 부리는 일이 어리석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시간이 필요한 일이 있다. 

같은 병을 앓고 같은 수술을 받더라도 저마다의 회복 속도가 다르듯이 사람마다 어떤 경험을 소화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다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나는 부정적인 경험을 깊이 되새김질하지 말라는 충고를 듣곤 했다. 빨리 잊고 빨리 회복하여 빨리 진창에서 헤어 나와야 한다는 말이었다. - P-1

•도움을 요청할 친척이나 친구, 이웃이 있는지‘를 묻는 공동체 연대성Quality of Support Network에 관한 질문에서 한국은 OECD 국가 41개국 중 38위에 올랐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사회의 공동체 부재와 연대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한국사회는 돌봄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상당 부분 가족 구성원에게 부담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 가족‘이 부재하거나 가족의 존재가 도리어 위협이 되는 사람은 삶의 안전을 보장받기 쉽지 않다.

한국 사람들의 얼굴에서 미소를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 사람 사이의 기본적인 신뢰가 붕괴된 이유는 개개인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불안정한 노동환경, 과도한 경쟁, 긴 노동시간,
쉽게 판단하고 서로 비교하는 문화, 사람을 급으로 나누는 사회적인 분위기, 실패를 만회하기 힘든 구조・・・・・・ 우리는 이 사회에 생존하고 적응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지치고 외롭고 두렵게 되었지만.

공동체의 부재가 한국사회의 문제라면서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 명절에 다 같이 모여서 음식을 하고 성묘를가며 ‘하나가 되는‘ 경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지나친 ‘개인주의‘가 문제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건강한 공동체는 개개인을 존중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한국의 옛 ‘공동체‘가 얼마나 많은 소수자를 배제하고 여성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기능했는지 생각해본다면 알 수 있 - P-1

는 일이다. 누군가의 희생과 침묵을 영양분으로 삼는 집단주의적 공동체는 오래가지 못할 기만에 뿌리를 뒀다.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만 상호적이지 않은 관계는 누군가의 살을 취해 배를 불리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나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그런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사회적 안전망을 꾸려나가야 할까. 개인에 대한 돌봄을 혈연 가족에게 떠맡기는 가족주의적 법과 제도는 이제 그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가족의 형태가 분화하고 확장함으로써 ‘정상 가족‘ 테두리에 속하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가족‘ 개념으로는 그 바깥의 현실을 감당할 수 없다.

2023년 4월 26일, 국회 최초로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다. 이어 같은 해 5월 31일에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가족구성권 3법을 대표 발의했다. 가족구성권3법은 동성혼을 법제화하는 ‘혼인평등법(민법 일부 개정 법률안)‘, 비혼 출산을 지원하는 ‘비혼산지원법 (모자보건법 일부개정 법률안)‘, 혼인. 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주거와 생계를 공유하는 성인 일인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으로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자신이 의지하는 동반자를 ‘연대인‘으로 - P-1

지정하여 실질적인 보호자로 인정하는 ‘연대인 제도‘를 마련할 것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가족구성권 연구소의 주장에따르면 연대인에게는 의료결정권, 연명치료결정권, 가족돌봄휴가, 강제입원이나 강제수용 등의 상황에서 법원에 구제 신청할 수 있는 권리,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등의 권리가 보장된다. 연대인에게는 또한 세대를 구성할 권리와 공공주택 정책에 지원할 수 있는 권리, 임대차보호법에서 시민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지금의 가족제도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동반자 관계의 실질적인 권리를 보장받게 되는것이다. **삶의 고비마다 법적으로 지지해줄 수 있는 생활동반자나 연대인이 있다면 삶의 불확실성이 위험으로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수술 동의서를 써야 할 때처럼 법적 보호자가 필요한 순간, 나의 동반자가 법적 권리를 갖지 못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있어서는 안 된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살림의료 - P-1

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조합)이라는 이름의 의료협동조합이 있다. 
여성주의 건강관을 기반으로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조직한 협동조합으로, 의료·복지·돌봄 기관을 만들어 운영한다. 2025년 7월 기준으로 조합원은 4,960명이며 일반 의원, 치과, 정신과, 산부인과, 한의원, 데이케어 센터, 방문 요양. 재택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살림조합은 의료 조합일 뿐만 아니라 지역공동체이기도 하다. 다양한 자원 활동, 취미활동, 운동과 외국어를 배우는 모임이 있으며 신입 조합원 교육과 환영 파티를 열고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를 넓히려고 노력한다.
살림조합의 공동 창립자 추혜인은 대학교 1학년 때 성폭력상담소에서 자원 활동을 하다가 "성폭력 피해자의 입장에서 진료해줄 의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진로를 변경하여 의과대학에 진학한다. 대학 시절 여성주의 운동에 몸담으며 여성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의료협동조합을 계획하고 2012년 실행에 옮긴다. 그 과정에 대한 가슴 뭉클한 이야기는 그녀의 책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에서 읽을수 있다.

그녀는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혹시 나의 진료를 마음에 들어했다면, 그것은 내가 페미니스트 주치의이기때문입니다. 살림의 조합원들이 자주 하는 말마따나, 페미니 - P-1

즘만으로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힘들지만 페미니즘 없이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차별과 혐오가 얼마나 건강을 해치는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살림조합은 조합의 지향을 담은 ‘살림 10원칙‘을 만들어 배포했는데, 선포문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우리는 건강할때 건강을 지키고 아플 때 기꺼이 돌봄을 주고 받으며 삶과 죽음이 존엄할 수 있는 평등, 평화, 협동의 건강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 모였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건강할 수 없고 이웃이 함께 건강할 때 우리 역시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건강하고 존엄하게 살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스스로 돕는 힘, 이웃을 도우려는 마음, 경쟁 사회에서도 협동과 호혜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변화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건강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돌보고 서로 돌보는 사회, 의료복지가 전문적이고도 인간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는 가능합니다.** - P-1


오빠에게 맞을 때 무슨 기분이 드냐는 영지 선생님의 질문에 은희는 말한다.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기다려요. 대들면 더 때려요." 
은희라고 맞서지 않았을까. 적극적으로 자신을 방어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은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저 맞으며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용기를 내어 부모에게 얘기해도 부모는 오빠를 꾸짖기는커녕 "싸우지 좀 마"
라고 말하며 일방적인 폭력을 사소한 수준의 갈등으로 축소한다. 

폭력을 휘두르는 오빠를 혼내는 어른이 은희에게는 없다.
그런 은희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는 얼마나 힘든 일일까.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범람하는 세상이지만, 자신에 - P-1

대한 태도는 많은 경우 자신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를 닮기 마련이다. 부당한 이유로 폭력을 당했더라도 그 폭력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분명하게 언어화되는 모습을 봤다면,
‘많이 아팠니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었니?‘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른들이 있었다면 은희 또한 자신이 존중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은희의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목소리가 지워진 사람,
공감받을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을 존중하고 심지어 사랑하기까지 할 수 있을까. 자신은 함부로 다루어져도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게 될 것이다.

‘그건 당한 사람도 잘못이야.‘ ‘피해자도 이해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야.‘ 
피해자들에 대한 의심 섞인 시선과 비난은 피해자의 입을 막고 폭력 속에 주저앉히는 사회적 힘이었다. 
‘왜 맞서 싸우지 않았어?‘ 
‘왜 도망치지 않았어?‘ 
폭력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질문들. 미심쩍은 피해자가 되느니 그저 참고 체념하는 편을 선택한 피해자들의 가려진 이야기를 생각한다. 
입만 열지 않는다면, 그저 참고 체념하고 ‘착하게 굴면 어느 정도는 적응하며 살 수 있으리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른들은 은희에게 말한다. 
착하게 행동해, 날라리가 되지마.
 나는 남자아이에게 ‘
착함‘이라는 가치가 여자아이에게만 - P-1

큼 요구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이스케키‘라는 이름으로, 
‘브라자 튕기기‘라는 이름으로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남자아이에게 베풀어졌던 숱한 ‘관용‘이 기억날 뿐이다.
 남자애들이 다 그렇지. 
남자애들은 원래 그런 거야. 
다 장난이야. 
어른들은 남자아이의 아주 심각한 수준의 가학성 행동도 용인하면서, 여자아이의 경우에는 스스로의 의견을 정정당당하게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성격이 이상한 애‘라고 규정짓곤 했다.

돌아보면 ‘착하다‘는 평가는 내가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칭찬이었다. 타인의 인정에 중독된 어린 나는 ‘착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 나 자신을 교정해나갔다. 
속에서 울컥 치받치는 일이 있어도 말하지 않고,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척하고, 갖고 싶으면서도 갖고 싶지 않다고 하고, 타인의 감정을 빠르게 읽어내어 그에 맞춰 반응하고,
어떤 순간에도 결코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하면 나는 ‘착하다‘는 인정을 보상으로 받아낼 수 있었다.
그게 나 자신을 싼값에 팔아 버리는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서였다.

은희와 내가 요구받았던 착함은 수동성이었던 것 같다. 
누가 때려도, 부당하게 대해도, 맞서지 말고 싸우지 말고 참고 삭이며 감정이나 생각을 ‘거칠게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착함‘이라는 일종의 규율로 여자아이들에게 강요됐다. - P-1

너 참 예쁘다. 너 참 착하다. 
여자아이를 향한 이런 칭찬은 결국 여자아이를 수동적인 대상으로 고정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넌 네 의견을 잘 표현하는구나, 
부당한 일에 맞서 싸울 줄이는 용기가 있구나. 
네 감정에 솔직해서 좋다. 같은 칭찬을 받아본 여자아이가 몇이나 될까.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예쁘다. 착하다 같은 말 대신 우리 자신이 그대로 수용되는 경험을하고, 우리의 개성을 개성 그대로 인정받았다면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나는 영지 선생님이 은희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고, 나에게 집중해주는 사람의 눈빛을 어린 내가 얼마나 목말라했었는지 깨달았다. 
나를 좀 봐줘. 은희 시절의 나는 간절하게 마음으로 말했다. 내게 관심을 좀 줘. 
그러나 나는 예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다. 
높은 도수의 안경을 쓰고 언젠가 키가 커질 때를 대비해 헐렁하고 큰 교복을 입고 다니던, 주머니에 손을 넣고 늘 땅바닥을 보고 다니던 내게 관심을 기울여주던 사람은 없었다.

가끔 발작처럼 화를 내거나 눈물을 터뜨리기라도 하면 ‘쟤는 성격이 왜 저럴까, 앞으로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어른들의 근심 섞인 충고만을 들었을 뿐이다. 
겨우겨우 참았던 감정이 내 통제를 벗어나 그렇게 분출되고 난 뒤에 - P-1

는 언제나처럼 자기혐오가 밀려왔다. 아무도 제대로 받아주지 않는 감정은 항상 추하게 느껴졌으니까. 

그럴 때 영지 선생님 같은 누군가가 다가와 
은희를 바라보듯 나를 그저 잠시라도
바라봐 주었다면, 내 이름을 그렇게 다정하게 불러주었다면 나는 그 사람을 영원히 잊지 못했을 것이다.

고통은 언제 고통이 되나. 누군가의 시선으로, 공감으로 고통은 고통이 된다.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는데도 
"싸우지 좀다"라는 말을 들어야 할 때, 
은희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철없는 칭얼거림이 된다.

 ‘싸우지 좀 마‘라는 말에는 ‘오빠라면 여동생을 때릴 수 있다‘는 승인이 ‘여자애는 남자가 때려도 참아야 한다‘는 주문이 들어 있다. 

이런 사회에서 자란 많은 여성은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진위를 의심한다. 
아파도 자신이 아픈 것이 맞는지 검열하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자신이 ‘예민해서‘가 아닌지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여성의 고통을 고통이라고 언어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고통받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이해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영지 선생님의 눈빛을 통해서 은희의 고통은 비로소 고통으로 이해받는다.
 "은희야. 너 이제 맞지 마." 지금껏 은희에게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없었다. 
맞지 말라는 그 단순한 한마디가 왜 이렇게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걸까. ‘맞지 마‘라는 말은 ‘넌 맞아도 돼‘라는 무신경하고 잔인한 어른들의 세계를 돌 - P-1

아보게 한다. 그 말은 은희의 시절을 통과한 여자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나는 은희에게 그 말을 하는 영지 선생님의 표정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며 
그 말이 영지 선생님 자신의 다짐이기도 하다고 느꼈다. 
은희에게는 한없이 커 보이지만 그녀 또한 이십대의 젊은 여성이다. 나는 그녀를 보며 그녀가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했을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1990년대가 좋았다는 향수 어린 회고에 나는 별다른 공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 시절을 미화하여 그려낸 이야기들에 진심으로 감정이입을 하기 어려웠다. 

<벌새>를 보는 건 고통스러웠는데, 이 이야기가 허구가 아니라 진짜라는 감각 때문이었다.

은희의 엄마, 언니, 단짝 친구...... 이 영화에 나오는 여성들은 내가 자라오며 만났던 ‘평범한 여자들‘의 모습을 닮았다.

남자 형제의 진학을 위해서 학업을 포기하고 어린 시절부터 일해야 했던 여자들, 
남편과 똑같이 경제 활동을 하면서도 가사노동과 육아는 온전히 혼자 소화해야 하는 여자들, 
남자 가족 구성원에게 학대 당하며 살아가는 여자들, 
"나는 아무 것도잘하는 게 없어"라고 속삭이며 자신의 가치를 회의하는 여자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공감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삶에 지친 여자들. 
이런 사회의 여성들이 자신을 좋아할 수 있을까. - P-1

미소지니의 세계를 사는 여성에게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격언은 너무도 무겁고 어렵게 다가온다. 한순간이라도 나 자신을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건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처럼 느껴진다.

언제부터 나는 내가 부족하다고 느꼈을까. 언제부터 나를 싫어하기 시작했을까. 
내 존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존재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어떤 식으로든 희생해야 한다고 믿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고통을 겪으면 그 고통이야말로 내가 삶에서 치러야 하는 마땅한 비용이라고 나를 설득한건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싫어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나를 싫어할 이유는 도처에 널려 있었고, 나는 진심으로 갖가지 이유를 들어 나를 싫어하는 내 마음을 정당화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살고 있다고 믿었다.

첫 책이 나오고 어느 북토크에 게스트로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다. 북토크는 세 시간 정도 이어졌는데 나는 그 자리가 불편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 시간에 그날 일을 이야기하면 - P-1

서 나는 호스트가 너무 친절하게 대해 줘서, 나를 너무 존중해줘서 
불편했다고 말했다.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생각인지 말을 뱉고서 바로 이해했다.

"보통 사람들은 존중받지 못했을 때 불편함을 느껴요." 상담사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오래도록 내가 존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깊이 믿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그 믿음의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 내게는 상담 치료의 과정이었다.

"최은영씨는 아주 못된 사람이에요." 
어느 날 상담사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매 순간 그런 미움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본인이 지금 본인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 
잠에서 깨어날 때, 술을 마실 때, 밥을 먹고 친구와 이야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루를, 지난 시간을 복기할때, 나의 미래를 그릴 때, 누구보다도 앞서서 나를 비난하고 빈정댔던 내 모습을 돌아봤다. 
그런 습관적인 자기 학대 속에서 편안해지던 마음까지도.

"자기가 싫어진 적이 있으세요?"라는 은희의 질문에 영지선생님은 "응. 아주 많아"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좋은 대학에 다니시는데도요?"라고 다시 묻는 은희에게 
영지 선생님은 이렇게 답한다. 
"자기를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아. 나는 내가 싫어질 때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해. 아, - P-1

이런 마음들이 있구나.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영지 선생님이 자기 자신이 싫었던 때가 아주 많았다고 말하는 순간, 은희는 진심어린 공감을 받게 된다. 사람은 자신을 싫어할 수 있으며, 그건 단죄하거나 혐오할 일이 아니라고. 그건 그저 자연스러운 마음일 뿐이라고. 그러니 그래도 된다고.
진심어린 공감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따져 묻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함께 느껴주는 행동은 아픈 사람을 자신만의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한다. 

마음은 단죄의 대상이 아니다. 
비록 그늘지고 아픈 마음이더라도 그 마음을 억누를 필요도, 부정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되지 않는데 억지로 자신을 사랑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된다.

‘나를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대해 주자.‘ 
작가가 되기 전, 어느 수도원에서 봉사자로 지내면서 나는 그렇게 썼다. 나를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대해주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적은 것이다. 그 작은 결심으로부터 많은 일이 시작됐다. 

여전히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날이라면, 
마지막까지도 자기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외면만 당한 채로 죽는 건 너무 슬프고 가혹한 일이 아닐까 하고. 
세상 어느 누구도 그런 슬픔을 겪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 P-1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데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영지 선생님은 은희에게 힘들고 우울한 순간들과 맞서 싸우라고, 긍정적으로 살라고 함부로 충고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다고,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을 때가 있다고 고백할 뿐이다. 

영화에서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영지 선생님 또한 깊이 상처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표정을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영지 선생님이 깊이 상처받은 사람이어서 은희의 상처를 볼 수 있었던 걸까. 그러나 나는 상처받은 사람만이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고 위로할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인간은 신기한 존재여서 같은 상처를 받은 사람이 오히려 타인의 상처에 무감하고 더 잔인해질 수도 있는 법이니까.
나는 은희가 부모의 무관심과 오빠의 폭행 ‘때문에‘ 성장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는 상처를 미화하는 문화가 있다. 
어떤 영웅 서사처럼 상처 받은 사람이 그 상처를 ‘극복‘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상처는 언제나 사람에게 좋은가. 사람으로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받을 수밖에 없는 상처가 있겠지만, 받지 않아도 될 상처는 최대한 받지 않는 편이 더 좋지 않나. 상처를 미 - P-1

화하는 문화는 가해자에게 언제나 얼마간의 정당성을 주는 것같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야. 정말 그런가.

 인간은 상처가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 성장한다. 사랑은 상처를 상처로만 남게 하지 않고, 인간을 상처 속에 매몰되어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무감한 사람으로 변화하게 하지 않는다. 

은희는 영지선생님과의 만남을 통과하며 성장했다. 
함부로 대우받아 성장한 것이 아니라.

영지 선생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은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외로울 때 제 만화를 보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나도 고등학생 시절 은희와 같은 생각을 했다. 외로운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덜 외로워졌으면 좋겠다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장편소설『내이름은 루시 바턴 정연희 옮김, 문학동네, 2017에서 어린 루시도 그런 다짐을 한다. 자신은 앞으로 책을 쓸 것이고, 자신의 책을 읽는 사람들이 덜 외로워졌으면 좋겠다고. 

우리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모두 외로운 어린 여자아이였던 우리는 왜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서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고자 했을까.

영지 선생님도 은희를 그런 마음으로 마주했을 것이다. 은희가 덜 외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 

영지 선생님이 눈빛으로,
함께 있어주는 시간으로, 자신의 마음을 먼저 여는 방식으로 - P-1

은희에게 다가갔던 것처럼, 그 빛을 받은 은희 또한 영지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위로받고 싶었던 사람들이 위로하는 것처럼, 외로웠던 사람들이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나는 언제나 소설쓰기가 깊은 애도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처리하지 못했던 슬픔을 다시 한번 깊이 느끼며 소화하는 일이라고. 그리고 그 과정이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 속 기억을 끌어내 어떤 애도를 가능하게 할지도 모르리라 희망했다. 

<벌새>는 내게 그런 영화였다. 
붕괴된 성수대교의 모습을 찾아가 두눈으로 바라보는 은희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은희와 동시대를 살아갔던 그때의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애도할 수 있는 영화를 비로소 만났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은희에게 이 영화는 결코 잊힐 수 없는 애도의 기억이 될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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