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는 일본인만의 것인가?
소설가 호시노 도모유키는 현실 세계에서 미미와 같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세계 문학을 통해 오히려 이들이 ‘보통‘의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가운데 아이들」은 세계 표준 문학이고 지금 바로 세계 각지에서 읽혀야 하는 일본 문학의 필두라는 호시노의 말에 공감한다. 문제는 현실 세계에 호시노와 같은 이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이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을 때 심사위원이자 저명한 소설가인 미야모토 데루는 "일본인 독자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 "남의 얘기가 끝없이 계속되는 소설이 지루했다"는 심사평을 발표했다.
작가 온유주는트위터(지금의 X)를 통해 "너무나 화가 난다. 일본도 일본어도, 자신=일본인만의 것이라 믿기 때문에 가능한 반응이다"라고 반박했다. 미디어는 온유주의 소설과 미야모토 데루의 심사평 내용보다 대가에게 맞짱을 뜬 신인 소설가라는 프레임으로 요란스럽게 다뤘다. 두 사람 발언 - P-1
에 주목하는 기사들조차 비당사자(미야모토 데루)와 당사자(온유주)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온유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사자‘ 말이라서 설득력이 있다고 하신다. 대충 말을 해도 ‘당사자‘ 말이니 새겨듣겠다는 분들도 있다. 조심스럽다. ‘당사자‘라 하더라도 모든 것을 바르게 판단하는 건 결코 아니다. ‘비당사자‘이기에 오히려 문제의 중요한 측면을 알아채기도 한다. 적어도 나는 당사자, 비당사자라는 대립 구조에 갇히고 싶지 않다. 세상의 구별 짓기, 선•긋기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당사자 말을 경청하는 비당사자라는 구도는 미야모토 데루가 심사평에 쓴 일본인(비당사자)과 상관없는 남(당사자)의 얘기라는 의식의 선한 버전일지 모른다. 강의시간에 이런 말을 하면 당연히 이런 질문이 나온다. "그럼 어떻게 해요?" 그럴 때 나는 출석 퀴즈로 온유주가쓴 ‘선의‘가 물어뜯는 마음」(아카하타신문, 2022년 9월 18일)을 읽고 간단히 감상을 적어보라고 말한다. - P-1
이 나라는 일본인뿐이라서 저는 단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마이너리티로 여겨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중략) 작가가 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제 책을 읽었다는 어느 독자가 "일본이 이런 나라여서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는데 심정이 아주 복잡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달라는 얘기에 부응하기 위해 저는 그 사람에게 오히려 "당신을 괴롭게 해서 저야말로 죄송해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에게 ‘용서받은‘ 상대는 위안을 얻은 것 같았지만, 저는 계속 뭔가에 물어뜯긴 심정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마이너리티 편이라고 스스로를 자부하는 메이저리티일수록, 실은 자신의 ‘선의‘에 숨어 있는 무의식적 차별을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선의에 숨어 있는 무의식적 차별은 뭘까? 이 글을 읽고 학생들이 쓴 일본어 감상을 일부 번역해 보았다.
A: 블랙 외국인에게 고향은 덥습니까? 달리기 잘하시겠어요.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무의식적인 차별은 내자신이 의식하기 힘들다. - P-1
B: 마이너리티에게 친절을 베푸는 행위가 때때로 그들을 나보다 열등하다 또는 약자라고 규정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마이너리티를 특별시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예컨대 같이 알바를 하는 외국인에게 필요 이상으로 가르치려 들거나 간섭하는 것도 자신은 ‘친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상대는 무능한 인간 취급을 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C: 자신이 마이너리티 편이라고 자부하는 메이저리티 태도를 보면 "당신이 차별당하는 일은 필연적이지만 난 달라요"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관과 자세로 상대를 대하는 것은 상대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켜주지 않으면" 또는 "상대가 마이너리티라서 차별받기 때문에 불쌍하다"라며 메이저리티가 우월하다는 태도를 보이는 행위야말로 차별이다.
그 밖에도 비슷한 의견이 많았다. 특히 유학 경험을 가진 학생들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독자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떨까? 궁금하다. 나는 이 글을 읽었을 때, 주인 의식이라는 단어가 떠 - P-1
올랐다. 이 나라의 주인은 ‘나‘라는 의식이 강하게 깔린 사과였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을 대표해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온유주는 지금 마흔다섯 살, 세살 때 일본에 와서 일본 공교육을 받았다. 인생 경험을 거의 일본에서 했음에도 너는 손님이라는 대접을 정중하게 받았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나 역시 친절한 손님대접을 한국과 일본에서 톡톡히 받는 신세니..... 좋으면서도 씁쓸하다. - P-1
문은 열릴지니 부모 없는 아이에게 다리 잃은 병사에게 갈 데 없는 노파에게 명랑한 남녀 추니에게 분노에 찬 야생 곰에게 슬픈 눈을 가진 남양 코끼리에게 저것은 화성으로 향하는 로켓에 올라타는 비행사들불을 피우고 둘러앉는 법을 터득한 고대인들그것은 꿈꾸는 자들의 낙원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곳
굳게 닫혔던 역사의 문, 그 ‘문은 열릴지니‘로 소설의 마지막이 ‘시작‘된다. 여기서 귀환병 오빠와 어린 기와코는 다시 만난다. 그들의 만남은 도서관 이야기의 마지막 정리 번호 ‘25‘라 쓰이고 ‘국립국회도서관 지부 우에노도서관 앞‘으로 명명된다. 도서관 안과 밖, 두 개의 이야기가 평행하게 진행되던 소설이 결합되는 순간이다. 독 - P-1
☆ 마른하늘에 날벼락!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을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난 이렇게 대답하리라. 마른하늘에날벼락. 사망자와 실종자가 2만 명이 넘는 대참사였다.
도쿄 피해는 동북 지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ㅈ당시 방사능에 관한 정보가 통제된 상태에서 느낀 극심한 불안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전날인 3월 10일 시카고 대학에서 열린 국제 회의에 참석했다가 귀국한 터라 이날은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일본은 4월 1일에 새 학기를 맞이하므로 중학교 졸업을 앞둔 아이는 방학이었다. 지진이 난 순간 나 - P-1
는 너무나 놀라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아이 이름만 크게 불렀다. 그런데 아이는 대답하는 둥 마는 둥 바쁘게 집 안을 돌아다니며 뭔가를 하더니만 내 손을 잡아끌어 현관 쪽 복도에 앉혔다.
나중에 물어보니 가스불을 먼저 확인했고 베란다 창문과 현관문을 살짝 열어 대피로를 확보했다고 한다. 강진이 이어지면 창문이 휘어서 문이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비상식량과 전등, 라디오를 챙겨서 현관에 놓고 몸이 완전히 굳어 꼼짝달싹 못하던 어미를 물건이 떨어질 염려가 없는 복도에 앉힌 것이다. 이어 조용히 자신도 내 옆에 앉았다.
어릴 때부터 도쿄에서 지진 대비 훈련을 받은 덕분일까. 무척 침착하고 담담하게 움직여서 감탄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이가 허등대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 P-1
폭발의 충격이 컸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후 하늘에서 재가 많이 내렸다. 그것을 재미 삼아 잡으려고 한 사람은 ‘죽음의 재다. 만지지 마라‘는 핀잔을 들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을 만큼 좋은 냄새가 났다고. 어떤 냄새가 났느냐고 묻자, 무엇에 비유할 수 없을 만큼 하지만 잊히지 않는 냄새가 주변에 충만했다고 ‘비유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나는 느꼈다. 이 나라는 무섭구나. 그러나 잠시 숨을 고르고 그분이 말해주신 그 감촉 그 자체를 시에 담을 수밖에 없다고소름이 돋았다 지금도 찾고 있다. - P-1
놀랍게도 그해 7월 3일 열린 ‘접속의 정치학‘ 워크숍에는 학자 외에도 많은 시민이 참가했다. 여섯 시간 가까이 청중과 뜨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나도 모르게 나는 변하고 있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까지 다양한 회의를 기획했다. 여러 전공, 여러 나라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를 제공하고 싶었기에 참가자를 학자로 한정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 연구자들과 식민지 검열에 관한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었는데, 방사능 유출 이후 일본 미디어의 자기 검열에 따른 심각한 폐해를 보며 ‘검열‘ 연구가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알았다.
일본 근현대 문학이라는 좁은 세상에 사는 오타쿠에 불과했던 나는 3.11을 통해 현실 삶에 눈을 뜨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다. 여전히 조금만 방심하면 ‘방콕‘ 인간이 되어버리지만 문을 걸어 잠그고 소통을 거부하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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