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그렇게 된 것은 상당 부분은 부모의 책임이며, 나머지는 당사자의 타고난 천성입니다.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현상 중 하나입니다. 뭐가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는말할 수 없습니다.
불평하더라도, 원망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깝습니다.
자녀의 불효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그때그때 밝고 즐거운 기분이 드는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며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살다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므로 일일이 놀라서는 안 됩니다. 다만 증오심을 최대한 억제하고, 되도록 잊고 사는 방법을 생각해 내야 겠지요.
이 세상은 조금 체념하고, 깊게 고민하지 말고, 바라보는 각도를 약간 바꿔 보는 것만으로 환한 빛과 시원한 바람을 아낌없이 베풀어 줍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자녀가 좋은 소식을 알려왔을 때는 잘됐구나, 하고 기뻐해 줍니다. 만에 하나 자녀가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되면 출소한 날 저녁에 대문을 열어 맞아주고, 목욕물을 데워주고, 밥을 지어 먹입니다. 자녀가 어떻게 행동하든 이를 받아주는 게 부모의 책임입니다. - P-1
관혼상제는 ‘우리식‘ 대로
돈의 사용 방법도, 관혼상제도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실천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알리지않고 조용히 넘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어머니와 시부모님 장례식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무심코 이야기했다간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들까지 소노 씨네 문상엔 가봐야 되는 거 아닐까, 하고 고민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은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날 아침 일곱 시부터 당시 총리였던 나카소네 씨와 대담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녹화가 있었습니다. 내가 아침 일찍 총리관저로 출발한 사이에 남편과 아들이 화장터로 관을 옮겼습니다. 녹화를 마치고 총리 관저 입구의 경비실에서 상복으로 - P-1
갈아입은 후 화장터로 달려갔습니다. 남편에게 "집에서 관이 나올 때 누가 보지 않았죠? 하고 묻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완전 범죄도 가능하겠지."라고 대답합니다.
그 말에 "듣고 보니 그렇네요." 하고 둘이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 외가쪽 사촌 형제들과 임종까지 시중해준 가정부 등 20명이 우리 집에 모여 오후 네 시부터 장례식을 시작했습니다.
밤샘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촌들이 "이모님이 돌아가셔서."라는 사유로 회사에 조퇴계를 제출하기에는 그 정도시간이 딱 알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복은 일절 거절했습니다. 사촌 여동생과는 이런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까만 옷을 입고 오면 안 돼. 우린 비밀 장례식을 할 거니까." "그럼 뭘 입고 가요?"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무슨 옷을 입고 우리 집에 올 거야?" "지난번 세일 때 산 와인색 슈트를 보여 드리고 싶었어요." "그럼 이번에 보여드려." 조의금도, 화환도 모두 거절하고 싶었지만 다른 분들이 신경 쓰이는 눈치여서 학급 회의 때처럼 전원에게서 2000엔씩 거둬 꽃을 준비했습니다.
장례미사가 끝나고 근처 중국 음식점에서 성대하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어머니에 관한 험담을 서로 질세라 떠들면서 먹고 마셨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내년에도 또 모였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는 분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어머니도 무척 기쁘셨을 겁니다. - P-1
시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의리 때문에 문상하러 오는분이 없도록 외부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팔십, 구십까지 장수하시고 집에서 노환으로 편히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사회적으로 화려한 장례식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을 쓰기보다는 고인이 생전에 마음으로부터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더없이 따뜻한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더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이 모든 게 ‘우리식‘ 대로 밀고 나갔기에 가능했습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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