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에 묘지로 들어서면서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고 생각하는 순간 한 가족이 보였다. 
부부와 딸이었다.
다들 허리를 굽혀 묘석을 닦고 주변 꽃들에 물을 주면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딸은 열두 살쯤 되어 보였다. 나는 아이가 부모에게 품은 고요한 애정 같은 걸 알아차렸다. 
아이의 태도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제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요. 제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어서 기뻐요‘ 순식간에 간파한 것들이었다.

그들을 보자마자 왠지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제라드 맨리 홉킨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내눈을 단속해야 할 듯했다. 잠시 앉아서 새소리를 들으려고 눈에 띄지 않게 계곡을 훤히 볼 수 있는 비밀 벤치 쪽으로 향하면서 그 가족이 묘지 없는 애도자인 나를 보지 못했기를 빌었다. 
그제야 나는 시에나에 그림을 보러 온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홀로 애도하러, 새로운 지형을 살피며 여기서부터 앞으로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할지 알아내러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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