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친절이 만연해 있다는 선입견의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도시의얼굴은 그게 다가 아니다. 
파리 시청사 앞에 새겨진 ‘자유, 평등, 박애‘라는 문구가 상징하는 바가 있다. 대혁명을 겪은 이 나라는 자유만큼 평등과 박애를 중히 여긴다. 개인도 중요하지만, 공동체를 위해 개인이희생할 수 있다고도 여긴다.

2023년 프랑스는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 기차로 두 시간 반을 넘지 않는 거리에 있는 지역 간 여객기 운항을 금지시켰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서울과 부산 등에서 제주도를 오가는 노선을 제외한 나머지 국내 운행 여객기의 모든 운행을 중단한 것이다. 
한국에서 불가능한 일들이 프랑스에서는 가능하다.

우리 사회에서 폐점을 선언한 뒤 다시 문을 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파리에서는 가능했다.
 한 나라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을 때 그 사회가 작은 책방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살핀다. 동네의 작은 책방이 살아 있다면 다른 것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4만 5,000명에서 7만 5,000명으로 증가했고 팬데믹 이전 책방 매출의4.5퍼센트를 차지했던 온라인 매출도 15퍼센트까지 상승했다.

토핑‘과 ‘몰라‘처럼 우리 곁에 있는 공간의 아름다움이 남다른 책방, 전통을 이어가되 변화를 선도하는 책방을 마음속으로 꼽아본다. 

구미 ‘삼일문고‘, 부산 ‘책과 아이들‘, 안산 ‘대동서적‘, 진주 ‘진주문고‘ 등이 우선 떠오른다. 또 어디가 있을까. 
도시의 중형 서점은 하나의 브랜드다. 
이는 곧 멋진 책방이 아름다운 도시를 만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가 책을 발견하고 경험하는 곳이다. 

특히 ‘토핑‘은 디지털이 줄 수 없는 뜻밖의 환대를 선사하는 책방이다. ‘토핑‘에서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으면 직원이 다가와 차를 권한다. 처음 들른 에든버러 지점에서는 돈을 내라고 할까봐 필요 없다고 서둘러 거절했다. 알고 보니 독자에게 차와 쿠키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기본 서비스였다. 
파란 물방울무늬 찻주전자와 찻잔에 담긴 차나 커피를 마시며 책방에 한동안 머물렀던 독자가 이곳을 좋아하지 않을 수는 없다. 

지하층에서 2층 갤러리까지 천천히 둘러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덧 해는 완전히 떨어지고 책방의 불빛이 요크 스트리트를 밝히고 있었다. 바스의 ‘토핑‘은 책방의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책방이 사랑하는 도시가 있다. 역사가 깊고 아름다운 옛 건물이 남아 있으며 문학적 전통이살아 있는 곳이다. 책방을 나와 숙소를 향해 걸으며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멋진 책방이 있다면 그 도시는 아름다운 게 맞구나.‘

미스터 비는 세심하게 기획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책을 주제로
"다양한 경험을 만든다. 책은 탈출구이자 모험이며 즐거운 경험이다.
그러려면 마법이 피어날 듯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바스에는 개성 있는 책방이 여럿 있는데, 그중 다소 긴 이름을 지닌 

작가가 쓴 책을 소재로 노래를 만들어 이 행사에서 선보인다. 밴드가유명해 순회 공연도 다닌다. 이매지나리움에서는 밴드가 발표한 음반도 만날 수 있다.

미스터 비는 책을 주제로 다양한 경험을 만든다. 북클럽도 일반적이지 않다. 스타워즈 제국의 습격을 패러디한 ‘엠포리움의 반격‘EmporiumSukes Back이나 ‘걷기 북클럽The Paperback Ramblers처럼 특별한 걸 만든다. 다다른 축구팀‘, ‘풋볼 로맨스‘, 등산 독서모임 ‘산타‘ 등 다른 책방에서 볼수 없는 북클럽을 운영하는 대전의 나다르다‘가 떠올랐다. 영국인의 축구사랑이 유별나니 나중에 바스와 대전의 책방이 연합으로 풋볼 북클럽을 한 번 해봐도 좋겠다.

미스터 비‘의 어린이책 코너는 정말 꼭 봐야 한다. 닉은 책을 경험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독자가 어린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지겨운 게아니라 탈출구이자 모험이며 즐거운 경험이다. 그렇다면 어린이 코너는 어때야 할까. 재미있고, 마법이 피어날 듯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2019년 닉은 일러스트레이터 루카스 앤틱스에게 리딩 트리와 공간 구성을 의뢰한다. 그 결과 지금 어린이 코너에는 목재로 만든 보라색 줄기의 나무가 있다. 나무 위에는 여러 동물이 매달려 있고, 둘레에 어린이가 앉을 자리도 있다. 어린이 매장의 서가 위, 아래 혹은 여기저기에카피바라, 나무늘보, 여우, 다양한 곤충과 벌레 캐릭터가 숨은 듯 아닌듯 보인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다. 왜 이책방이 ‘미스터 비스 엠포리엄 오브 리딩 딜라이트‘라는 긴 이름을 갖고있는지 짐작 가능하다. 이 책방은 독자를 위한 기쁨의 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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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 말고 ‘바티북스‘에는 유명한 게 또 있다.
 Keep Calm andCamyon‘이라고 쓴 포스터다. 우리말로는 침착하게 계속 나아가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 문구가 새겨진 머그잔이나 열쇠고리는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 시작이 이곳이다.

영국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1939년 국민 의식 고취를위해 세 종류의 포스터를 준비했다. 
초록색 바탕에 영국 왕실을 상징하는 왕관 이미지 아래 결연한 고딕체로 쓴 첫 번째 포스터의 문구는Freedom is in peril. Defend it with all your might. "(자유가 위기에처했다. 전력을 다해 방어하자.)였다. 
빨간 바탕에 역시 문구를 담은 두 번째포스터에는 "Your courage, your cheerfullness, your resolutionwill bring us victory. "(너의 용기, 너의 활기, 너의 결심이 우리의 승리를 낳는다.)였다. 

이렇게 두 개의 포스터를 배포하고, 혹시라도 전쟁 중 국민의 의지가 꺾였을 때를 대비해 세 번째 포스터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세번째까지는 배포되지 않았고 기억에서 잊혔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신임 총리로 임기를 시작한 윈스턴 처칠을 다룬 <다키스트 아워 Darkest Hour 같은 영화를 보면 왜 포스터가 필요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전시 상황이 급박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위급한 상황을 웨일스의 최대 도시 카디프에서도 느낀 적이 있다.
카디프 성을 돌아보다 내부에 방공호가 있다는 걸 알았다. 전쟁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존한 방공호에도 여기저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2000년 바터북스‘의 주인인 스튜어트와 메리 부부는 헌책이 담긴상자를 경매를 통해 사들였다. 거기서 "Keep Calm and Carry on" 포236

을 하다 에버펠디로 자리를 옮긴 책방 주인 부부는 카페와 갤러리까지열었다. 스코틀랜드의 중심 도시인 글래스고나 에든버러에서 이곳까지1시간 30분 정도면 올 수 있다. 나들이 삼아 오기 딱 좋은 거리다.

우리 역시 비슷한 사례가 많다. 강화의 ‘조양방직 공장은 카페가되었고, 서울 경복궁역 근처 체부동 교회는 생활문화지원센터가 되었다. 하지만 책방이 넘볼 수 있는 건물은 한옥을 제외하고는 별로 없다.

투자 대비 이익률을 따진다면 답이 없기 때문일 테다. 책방은 다른 상업 시설보다 공간 안에 과거의 역사를 그대로 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책과 독자가 만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 수도 있다. 디지털 변혁기에 가장 중요하다는 공간 감수성을 오롯이 간직한 영국의 책방들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다. 안위크의 ‘바터북스‘처럼 잊혀져가는 마을을 살리는 기적을 만들기도 한다.
스코틀랜드 북쪽, 인버네스까지 간 건 스카이 섬을 가기 위해서였다. 스카이 섬에는 기차가 가지 않는다. 차를 빌릴 엄두야 못 냈지만비네스에서 출발하는 버스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아침 일찍 올라탄 관광버스에서 인솔자는 인버네스와 스카이 섬 자랑을 끝없이 해댔다. 그와중에 인버네스의 ‘리키즈북‘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리키즈 북숍‘은 이 작은 마을을 빛내는 명소였다. ‘워터밀‘도 마찬가지다. 이책방들이 있기에 독자는 오지와 다름없는 그곳에 갈 이유가 생긴다. 작은마을 공동체도 그 덕에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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