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게의 서문 중에서***
시는 나무나 강이 무엇인지를 말하려고 시도할 수있는 인간 언어다. 즉, 인간의 능력으로 그 대상에 ‘대해서‘ 말하는 동시에 그 대상을 위해서 말한다는뜻이다. 시는 개별 인간의 관계를 어떤 대상(돌멩이든 강이든 나무든)과 관련지음으로써 그렇게 할 수도있고, 아니면 그저 대상을 최대한 진실하게 묘사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과학은 외부에서 정확하게 묘사하고, 시는 내부에서 정확하게 묘사한다. 과학은 밖으로 풀어내어 해설하고, 시는 안으로 풀어내어 함축한다. 둘 다 묘사 대상을 기린다.
우리의 무지나 무책임을 알려주지 못하는 ‘정보‘만 끝없이 쌓지 않으려면 우리에게는 과학의 언어와 시의 언어 둘 다 필요하다.
「어둠의 왼손에서 어슐러는 "어떤 질문이 대답할 수 없는 것인지 배우고, 그런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압박과 어둠의 사절에 꼭 필요한 기술이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세이. 문학비평 강연에서-과학과 환경에 대해서든, 구글과 아마존에 대해서든. 페미니즘과 문학의 정전에 대해서든 자신의 관점을 전달하는 이 영역에서 어슐러는 목소리가 없는 이들을 변호하고, 모든 예술가, 아니모든 사람의 내면에 있는 답 없는 존재를 대변해 말하는 것 같다.
논픽션에 대한 이 대화를 끝내면서 나는 소설, 시, 논픽션이라는 세 장르 모두에 이렇게 깊은 역사를 지닌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드문 일인지 말했다.
지금까지의 여정이 얼마나 특별했는지도. 사실은 달리 누구와 이런 일을 또 할 수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 대화를 책으로 만들어야겠는데요!" 어슐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하여 이 책이 나왔다.
어슐러 K. 르 귄의 사색이 우리의 현실이 되고, 세상에 나온 오브제가 되어 우리 손안에 펼쳐졌다.
맥코이 크리크에서의 사색
단어 안의 의미를 찾다가, 나는 추측했다:그곳 그 성스러운 장소 안에신전이 있음을 온전히 목격하고, 따라서 목격된 바의 제단이 된 신전, 개울 옆 그늘 속에서 나는 사색한다이번 초여름 높은 곳에서 흘러온 큰물이어떻게 물길을 바꿨는지에 대해. 개울 속 커다란 바위 네 개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버드나무들은 무성하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범람한 물속에 뿌리를 내리기도 하고 뿌리 뽑히기도 했다. 계곡 위 환한 빛 속에서는까마귀 한 마리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한다그림자 날개가 까마귀처럼 고요히벼랑 끝 바위를 가로지른다. 사색은나에게 불연속이라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책안을 보았을 때 나는 발견했다.
시간이란 관측되고 구별된 신전시간 자체와 공간이라는 것을—네 개로 나뉜 하늘, 벽에 둘러싸인 땅에성스러운 장소를 만들기 위한 신전연속성에 합류하기 위해, 마음은물을 따라가고, 새들을 좇고, 움직이지 않은 바위를, 절묘한 비행을 관찰한다. 느리게, 침묵 속에서, 말없이, 장소와 시간의 제단이 올라간다. 자아는 사라져, 찬미를 위한 제물이 되고, 찬미 자체도 적막 속에 빠져든다.
게다가 우리 모두가 아마 선거 이후에는 당연히더 강해졌을 텐데, 시대가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죠. 그 변화는 아주 예측하기 어렵고, 상당히 무섭기도 해요. 나쁜 시절에 예술에 일어나는 일은, 특히 언어에술에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든 무척 중요해질 수 있어요. 나쁜시절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가 정말 중요하니까요. 전 그동안제게 아주 중요했던 책, 노자의 도덕경』을 떠올려봐요. 그책은 중국에서 아주 힘든 시절에 나온 산물이에요. 아마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텐데요. 내전과 침략이 계속되던 시절이었죠. 그리고 노자는 사실 고국에서 추방된 신세였어요. 노자에 관한 신화에서는 그래서 그 책을 썼다고 해요. ‘바깥 세계‘ 로 넘어가기 전에, 국경선에 있는 어느 여관에서 하루인가 이틀 밤을 들여 이 책을 썼다는 거예요. 그래서 전 생각했죠. 그래, 모든 게 나빠지고 있을 때는 그에 대한 증언을 하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제가 정말, 정말 말하고 싶은게 뭔지 알아내야 했죠.
네이먼 그리고 아직 모르는 분이 있으시다면 말이지만, 그 연설은 입소문을 타고 전 세계에서 큰 뉴스거리가 됐습니다.
르 귄 그래요. 그게 제가 잠시 누린 명성이죠. 정말이지 깜짝 놀랐어요. 그 방에 있던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듣지 않을 줄 알았거든요. 그 방에 있던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언론인이고, 이야깃거리를 들으면 알아본다는 사실을 잊었던 거죠.
「사용 설명서」 중에서
시인이 대사로 지명됩니다. 극작가가 대통령으로선출됩니다. 새로 나온 소설을 사려고 건설노동자들이 사무장들과 같이 줄을 섭니다. 어른들이 전사원숭이들, 애꾸눈 거인들, 그리고 풍차와 싸우는 미친 기사들의 이야기 속에서 길잡이와 지적인 도전을 찾습니다. 문해력은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여겨집니다. 글쎄요. 어디 다른 나라라면 그럴지도 모르지요. 이 나라에서는 아닙니다. 미국에서 상상력이란 보통 TV가 고장 났을 때나 쓸모 있을지 모르는 뭔가로 간주되거든요. 시와 희곡은 실제 정치와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소설은 학생과 주부, 그리고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읽는 겁니다. 판타지는 어린아이와 모자란 사람들이나 보는 것이고요. 문해력이란 사용 설명서를 읽을 수 있다는 거랍니다! 저는상상력이 인류가 가진 가장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마주 보는 엄지의 유용성을 넘어설 정도죠. 저는 엄지손가락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지만, 상상력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책 속의 짐승」 중에서
왜 대부분의 아이와 많은 어른은 진짜 동물과 동물에 대한 이야기 양쪽에 반응하고, 우리의 지배 종교와 윤리들은 인간이 이용할 대상이라고만 보는 존재들에게 매혹되고 또 그들과 스스로를 동일시할까요. 산업사회에서는 예전처럼 우리와 일하지도 않고, 그저 우리 식량의 원재료나 우리에게 이득이 될과학 실험 대상, 동물원과 TV 속 자연 프로그램에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진기한 존재들, 우리의 심리 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두는 애완물일 뿐인데? 어쩌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동물 이야기를 주고 동물에 대한 관심을 북돋아주는 건, 우리가 아이들을온전한 인간이 아니라 열등한 존재로, 정신적인 ‘원시‘인으로 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린 애완동물과 동물원과 동물 이야기들을 어린이가어른으로, 배타적인 인류로 발전하는 길의 ‘자연‘스러운 단계로 보는 거죠. 지성도 없고 무력한 아기에서 시작해서 지적인 성숙과 지배의 영광을 획득하기까지 거쳐야 할 사다리쯤으로요. 존재의 대 사슬만물이 가장 낮은 무생물부터 가장 높은 신까지 계층적으로 연결되어질서를 이룬다는 개념이라는 계통 발생의 단계를 반복하
는 개체 발생이랄까요. 하지만 그 아이가 찾는 건 뭘까요. 아기 고양이를보고 흥분하는 아기, 피터 래빗」을 또박또박 읽는여섯 살짜리, 『블랙 뷰티』를 읽으면서 우는 열두 살짜리라면? 문화 전체가 부정하는데 그 아이는 알아차리는 게 무엇일까요?
「사라지는 할머니들 중에서
예외남자의 소설을 논하면서 저자의 성별을 언급하는경우는 몹시 드물다. 여자의 소설은 저자의 성별과 함께 논의되는 경우가 아주 잦다. 표준은 남성이다. 여성은 표준의 예외, 표준에서 배제된 존재다. 비평에서나 서평에서나 이 예외와 배제를 실천한다. 예를 들어 버지니아 울프가 위대한 영국 소설가라는 점을 인정해야 하는 비평가는 애써 그녀가 예외임을 보여줄 수 있다. 멋진 요행이라고 말이다. 예외와 배제의 수법은 다양하다. 여자 작가는 소설의 ‘주류‘에 속하지 않음이 드러난다. 그 작가의 글은 ‘독특하며 후대 작가들에게 아무 영향을 미치지않는다. 어떠한 ‘컬트‘의 대상이다. 그녀는 (매력적이고, 우아하며, 마음을 저미고, 감성적인) 연약한 온실의 꽃이며 그러니 남성 소설가의 강력하고, 선이 굵고, 대가다운) 활력과 경쟁한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제임스 조이스는 거의 나오자마자 정전에 올랐다. 버지니아 울프는 정전에서 배제되거나 마지못해 받아들여졌으며 그러고도 수십 년간 의구심을 샀다. 정교하고 효과적인 서술 기법과 장치를 갖춘 『등대
로」가 기념비적으로 막다른 길인 『율리시스』보다후대의 소설 쓰기에 미친 영향이 훨씬 크다는 주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침묵, 유배, 교묘함‘을 선택하고 은둔 생활을 한 제임스 조이스는 스스로의 글과 경력 외에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 나라에서 지적, 성적, 정치적으로활발한 사람들이 이루는 비범한 집단으로 꽉 찬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른이 된 후 내내 다른 작가들을 읽고, 서평을 쓰고, 출간했다. 제임스 조이스가 연약한 쪽이고, 버지니아 울프가 굳센 쪽이다. 조이스가 컬트의 대상이고 우연이며, 울프는 20세기 소설의 중심에서 지속적으로 풍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정전주의자들은 결코 여자에게 중심을 부여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반드시 주변에 남겨져야한다. 어떤 여자 소설가가 1급 예술가라는 사실이 인정되더라도, 배제 수법은 여전히 작동한다. 제인 오스틴은 존경을 많이 받지만, 그래도 어떤 본보기로 여겨지기보다는 독특하고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운 우연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실종될 순 없어도, 완전히포함되지도 않는다. 작가의 생존기에 일어나는 폄하, 누락, 예외는 작가의 죽음 이후 일어나는 실종의 준비 작업이다.
진지한 문학에 대하여
밤중에 뭔가가 그녀를 깨웠다.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젖은 운동화를 신고 아주 천천히 게단을 오르는...... 그런데 누구지? 왜 신발이 젖었지? 비는 오지 않았는데, 저기, 다시 그 무겁고 젖은 발소리다. 하지만 몇 주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았는데, 폭염만 계속됐는데, 갑갑한 공기와 곰팡이 냄새, 아니 썩은 내인가, 아주 오래된 살라미 아니면 초록색이 되어버린 간 소시지에서 나는 것 같은 달콤한 썩은 내. 아, 또다. 빽빽 소리가 나는 느린 발걸음, 그리고 썩은 냄새가 더 강해졌다. 뭔가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문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썩어가는 살을 뚫고 나온 발꿈치뼈가 부딪치는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그게 뭔지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건 죽었는데, 죽었단 말이야! 저주받을 셰이본. 다른 진지한 작가들과 힘을 합쳐 그것의 오염된 손길에서 진지한 문학을 구하기 위해 묻어놓았더니 그걸 무덤에서 끌고 나왔어. 그텅빈 데다 뾰루지투성이인 얼굴, 썩어가는 눈동자의 무감각하고무의미한 눈길이 얼마나 무서운지! 셰이본 그 바보는 뭘 한다고 생각한 거야? 진지한 작가들과 진지
한 비평의 끝없는 의식들에 관심도 안 둔 거야? 공식적인 추방 의식들에 반복된 저주, 심장을 관통하고 또 관통한 말뚝들, 신랄한 비웃음, 무덤 위에서끝도 없이 춘 엄숙한 춤들에 하나도 관심을 안됬어? 그 작자는 야도Yinddo, 뉴욕의 예술가 커뮤니티의 순결을 보존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사이파이와 반리얼리즘 소설을 구별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도못 한 거야? 코맥 매카시는 비록 터무니없이 애매한 어휘를 훌륭하게 사용해대는 걸 빼면, 그의 책에있는 모든 것이 홀로코스트 이후에 나라를 가로지르는 사람들을 다룬 많고 많은 초기 SF 작품들과 놀랍도록 흡사하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결코 어떤 상황에서도 사이파이 작가라곤 할 수 없다는 걸, 코맥매카시는 진지한 작가고 그러니까 정의상 장르를 쓴다는 품위 떨어지는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단 말이야? 셰이본은 어떤 미친 멍청이들이 퓰리처상을 줬다는 이유만으로 ‘주류‘라는 말의성스러운 가치를 잊어버렸단 말이야? 아니다, 그녀는 빽빽 젖은 발소리를 내며 침실까지 들어와서 이제는 그녀를 굽어보는 그 물건을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로켓 연료와 크립토나이트슈퍼맨의 고향 크립톤에서 온 물질로, 슈퍼맨의 힘을 약화한다의 악취가 풍기고, 세찬바람 속 황야의 낡은 저택처럼 삐걱거리며, 뇌는 과일처럼 속에서부터 썩어가고, 두 귀에서 작은 회색
세포들을 뚝뚝 흘리는 그 물건을. 하지만 그녀의 주목을 요구하는 그 물건의 힘은 강력하고, 그 물건이손을 뻗자 그녀는 반쯤 썩은 손가락 하나에 낀 타는 듯한 금반지를 보았다. 그녀는 신음했다. 어떻게그 물건을 그렇게 얕은 무덤에 묻고는, 버려두고 그냥 걸어올 수가 있었을까? "더 깊이 파요, 더 깊이파!" 그렇게 외쳤건만, 그자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않았다. 그래서 이제 그자들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녀에게 꼭 필요한 다른 진지한 작가와 평론가들은 지금 어디 있나? 그녀의 『율리시스』 책은 어디있을까? 침대 옆 협탁 위에는 독서등을 받치는 데쓴 필립 로스 소설책 한 권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얇은 책을 들어 끔찍한 골렘히브리 신화에서 사람의 형상을하고 움직이는 존재. 현대 판타지에서는 종종 마법의 힘으로 움직이는흙 인형이나 괴물을 가리킨다 앞으로 들어 올렸다. 그러나그걸로는 부족했다. 필립 로스도 그녀를 구할 순 없었다. 괴물이 비늘 덮힌 손을 그녀에게 얹자 반지가타는 석탄처럼 그녀를 지켰다. 장르가 그녀의 얼굴에 시체의 입김을 불어넣자 그녀는 지고 말았다. 그녀는 더럽혀졌다. 죽는 편이 나을지 몰랐다. 그녀는이제 결코 문예지 집필 의뢰를 받지 못할 것이다.
환상 속 세계의 리듬부터 현실의 깊은 울림까지그만의 상상력으로 우리 행성을 기렸던어슐러 K. 르 귄의 마지막 목소리
지구에서 소멸하고 있는 ‘인간‘ ‘상상력‘ ‘여성의 글쓰기‘를 바라보는 어슐러 K. 르 권의 시각은 그 자체만으로도 다분히 SF적이다. 세상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SF를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이 담대하고 유쾌한 인터뷰가 SF에 대한 겁근으로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의 접근으로 모두에게 읽히기를 소망한다. -천선란 소설가
작가 인생의 마지막에 데이비드 네이먼과 주고받은 이 대화를 번역하다 보니 오래전에 부친 편지의 답장이 아주 늦게 도착한 것 같은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인터뷰 전체가 글쓰기에 집중하고는 있지만, 짧은 답변에서도 켜켜이 묵은 고목 같은 작가의 삶 전체가 배어나기 때문이었다. 「옮긴이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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