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도 치매에 걸린사람 중 많은 이들은 때때로 오랜 과거의 일들을 선명하게 기억해 내는 마술 같은 힘을 얻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두루봉이 하르방이 치매 때문에 이 모든 기억을 쏟아내게 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가기 바빴던 그 시절의 아버지에겐 기억이 머무를 공간이 없었다. 하물며 하르방은 많은 제주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상처받은 그 시절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모두에게 상처가 될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을 터이다. 

제주출신 소설가 김석범이 4.3을 두고 ‘공포에 질린 섬사람들이 자신 스스로 기억을 망각으로 들이쳐서 죽이는 기억의 자살‘이라고 표현한 것과 같이.


하지만 하르방의 기억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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