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에서 사노 요코는
할머니에서 아주머니로, 아가씨로, 학생으로 자꾸만 나이를거꾸로 먹는다. 그러나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안타까워해봤자 별수 없는 일이다. 남겨진 나는 책을 통해 그의 삶을 되감았다 빨리 감았다 하며, 거기에 붙어 있는 반짝이는 것들을 가만히 손으로 쓸어보기나 하는 수밖에 없다.
사노 요코는 1938년 베이징에서 태어나 아홉 살까지 그곳에 살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함에 따라 가족들과 함께 야마나시현으로 돌아왔다.
중국에서는 어린 남동생을 생후 33일 만에 잃었고,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는 다른 남동생과 오빠가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
어린 나이에 죽음을 수차례 겪었기 때문일까. 이번 책에서도 사노 요코는 자기 인생의 큰 사건에 대해 감상적으로 말하는 법이 없다.
이를테면 아버지의 죽음을 묘사하는 문장은
‘피리 같은 소리를 내며 마지막 숨을 들이쉬고 아버지는 죽었다. 섣달 그믐날 늦은 밤이었고 이미 설날이 되어 있었다‘였다.
거액의 부동산 사기를 당했을 때 친구에게 한 말은 "몸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지겠지"였다.
이런저런 사건을 겪어서 본인이 슬펐다거나 기뻤다는 감정 묘사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을 때면, 그 서걱거리는 문장 뒤에 숨어 있을 감정에 대해 더 많이 상상하고 추측해보게 된다.
"내일이 괜찮으면
어제의 상처는 다 재미있는 추억일 뿐이야!"
자기 자신에겐 시니컬하지만 타인은 속수무책으로 믿는 작가 사노 요코가
일상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추억을 그만의 고유한 입담으로 그려냈다!
때론 웃기고 때론 눈물 나는 개성 만점 걸작 에세이집
고생이든 가난이든 겪으면 된다.
하지만 있어줬으면 한다.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살아올 수 있었다.
가장 어려울 때 나를 구해준 것은 돈이 아니었다.
"괜찮아"라는,
그 집 마루에서 당신이 해준 말이었다.
"괜찮아"가 1천만, 1억 엔의 저금보다 우리를 살려왔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