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서평을 읽으면 여전히 그 작품 안에 머무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나에게 서평 또는 리뷰 읽기란 떠나고 싶지 않은 오래 기억하고 싶은 세계를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거기서 천천히 멀어져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계속 이 안에머물 수는 없더라도 언제든 이 기억을 돌려 볼 수 있게 정제하는 독후 활동이라고 할까.
그렇지만 서평은 때로 호불호의 관점, 작품에 대한 느낌과감상을 매끈하게 정리하는 것을 넘어선다. 나는 요즘 서평의진가는 책을 ‘맥락화‘하는 것에 있음을 깨달아가고 있다. 좋은 서평은 책의 내용을 다시 생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책이놓여 있는 맥락을 다시 보게 한다.
최근에 강렬한 빨간색 양장본의 『철학책 독서 모임이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책은 철학책 편집자인 저자가 동료 편집자들과 독서 모임을하며 함께 읽은 동시대 철학책들을 소개하는 책으로, 인문 도서로 분류되어 있지만 일종의 서평집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책이 고전보다는 지금 읽을 만한 오늘의 철학책이 무엇인지궁금해하는 독자들을 위해 쓰였다고 밝히며, 읽지 않은 사람들도 책을 둘러싼 논의를 이해할 수 있게끔 책의 내용을 충실
하지만 그런 책들의 서평에서도 이 책이 SF 팬들에게 왜 높은 평가를 받는지, 어떤 아이디어를 도입하고 어떻게 활용했는지 등을 읽을 수 있었다.
서평을 먼저 읽으면 책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미리 파악하고 들어가니 독서의 ‘타율‘을높일 수 있었다.
마침 내가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기에
한국일보에서 「SE,미래에서 온 이야기」라는 서평이 연재되고 있었는데
(지금은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로 정식 출간되었다)
SF 장르에 큰 영향을 미친 거장 작가들의 생애와 당시의 사회상, 대표작들이 쓰인 맥락, 각 작품의 내용을 소개하는 서평이었다.
SF를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혼란스럽던 나에게 한국어로 그런 서평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SF 번역서에 붙은 옮긴이의 말도 꼼꼼히 따라 읽었다. SF 번역가들 중에는 이 장르의 오랜 마니아가 많다. 그 덕분인지 SF 번역서에 붙은 옮긴이의 말은 때로 충실한 해설이 된다. 작품을 장르의 전체 맥락 속에서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들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