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처럼 네 일 내 일 따질 것도 없는, 우리 가정의 소중한 자식인데
어찌 아빠가 아이를 키울 수 없겠는가? 나이가 어리든 많든, 남자든 여자든 내가 키워야 할 자식이라 받아들이면 잠이 부족해도,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려도, 시간에 쫓기듯 살아도 아이를 키울 수 있다.
부부싸움,
다름의 근원을 발견하는 길
둘째가 여덟 살 즈음이었을까? 늦은 밤 우리 부부는 유리컵에 우윳빛 막걸리를 따라 마셨다. 남편과 내가 동시에 "참시원하다!" 하며 잔을 비웠다. 두어 잔 마셨을까?
TV에서는 아마존의 사라져가는 부족 이야기가 잔잔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독교 재단에서 부족들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에 교회와 학교를 짓는 모습이었다. 원주민 여인의 얼굴이 화면 가득 채워졌다. 목이 길게 늘어나고 군데군데 올이 터져 실밥이 이리저리 풀린 티를 입고 나온 여인은 힘이 없어 보였다. 얼굴 가득 주름이 일렁였는데, 체념과 불행이 새겨진 듯했다. 힘없는 말소리와 불안한 눈빛!
색바랜 늘어난 티와 함께 나타난 여인은 묘하게도 일시에 컬러 화면을 흑백 화면으로 만들었다. 평화롭던 마을이, 아이들의 해맑던 웃음이 사라진 지 오래라 말하던 아주 짧은 순간, 그녀는 분노와 원망이 한데 뒤엉킨 눈빛을 카메라 너머로 보냈다. 마을 주민은 흩어졌고, 아이들은 모두 타지로 돈을 벌러갔으며, 아직 부모 손이 필요한 어린 아이들만, 인터뷰를 하는 동안 까만 눈을 반짝이며 그녀 주변을 어슬렁댔다.
내레이션을 하는 유명 연예인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질문했다. "누구를 위한 개발일까요?" 밀림의 파괴를 획일화된 개발을, 작은 부족의 해체를, 교회와 학교의 건설을 담담하게 말하며,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라고 물었다. 나에게 묻는 것인지, 자신에게 묻는 것인지, 종교 단체에게 묻는 것인지, 아마존 부족에게 묻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목소리는 잔잔했다.
나는 혼잣말처럼 "더 배우면 더 행복해지나? 제도권 교육과 종교가 행복의 잣대인가?" 했다. 그냥 던진 내 말에 남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행복에도 단계가 있어. 절대적 행복이 아닌 상대적 행복 말이야. 10의 행복을 기준으로 그들이 2의 행복만 알아서 2가 만족됐다고 100퍼센트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어?" 했다.
나는 막걸리 잔을 비우며 "상대적 행복? 그건 누가 정하는데? 내가 행복하고 만족하면 그만이
지. 남과의 비교를 통해 내 행복을 평하겠다는 발상은 뭐지?" 했다.
다큐멘터리는 끝이 났지만 우린 서로 씩씩거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부부는 좀처럼 싸우지 않는다. 아이들 교육이든 시댁 문제든 친정 문제든 직장 문제든 모두 그 나름의 이유가 있겠거니 하니 싸울 일이 없었다(정치 문제만 예외로 하고).
그런데 행복에 대한 생각의 다름을 확인하곤,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결혼하여 13년을 살았는데 무엇이 다른지 처음 알았다. 생각의 저 깊숙한 곳, 세상을 바라보는 눈, 행복을 바라보는 차이를 발견하였으니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궁금했다. 왜 이런근본적인 시각의 차이가 발생하는지, 그 근본에 숨어 있을 철학적 논리가 무엇인지 말이다.
2016년, 도올 김용옥의 《중용, 인간의 맛>을 읽기 전까지, 늘 남편과 생각의 다름이 부딪히면 가시가 목에 걸린 듯 불편했다. 그래서였을까? 책을 읽으며 기뻤다. 내 손으로 가시를 뺄 수 있을 듯해서 말이다. 성당에서 결혼하고자 2주 속성 교리 공부 후 세례를 받았던 남편은 예수님의 황금률에 입각해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태복음 7:12:누가복음 6:31)"는 말씀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공자가 말한 "자기 자신에게 베풀어 보아 원치 아니하는 것은 또한 남에게도 베풀지 말라(시저기이불원施諸己而不, 역물시인施)는 시각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과 내가 살아온 시대는 온갖 종류의 종교, 사상, 철학,문화가 마구 뒤엉켜 있어 우리가 무엇을 근간으로 생각하고행동하는지 우리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노자가 이리 말했다. ‘사랑하지 마라! 사랑을 하기만 하면 반드시 만들고, 세우고, 베풀고, 감화를 주고, 은혜가 있고, 함이 있다. 만들고, 세우고, 베풀고, 감화를 주면, 원래 스스로 자기를 잘 가꾸어 나가는 만물의 참모습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 은혜가 있고, 함이 있으면, 사물들이 치우치게 되어 공존의 미덕을 상실한다.‘ 정말 놀랍지 않아? 몇 년 전 막걸리 마시다 내가 한 말을 기원전 500여 년 사람이 했다니 말이야" 하니 남편은 흥미로워했다.
차를 마시며 우리 부부는 생각의 출발과 지향이 다름을 인정했다. 남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낮은 목소리로 "부모가 있는데 자식이 죽어간다고 생각해봐. 당연히 살리고자 최선을 다하겠지. 그렇지만 돈도 병원도 없다면 사랑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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