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 없는 아버지 앞에서 한동안 눈물을흘리다 내가 깨달은 것은 늦었더라도 아버지께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물려준 독한 고집도 감사하고, 
하겠다고 작심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는 용기와 자신감을 주신 것도 감사해요. 
아버지가 저를 사랑해서 혹여 다칠까 걱정으로 저를 보호하려 했던 걸 잘 알아요. 
그리고 그 선을 넘다가 넘어지고 아파도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는 힘을 주신 게 아버지란 걸 알아요. 
용기와 열정을 제가 태어나면서부터 품게 해준 것이 아버지란 걸 알거든요. 
아버지는 아버지가 주어야 할 가장 소중한 걸 이미 저에게 다 주셔서 저는 감사해요. 
너무 사랑해요.
지금껏 사랑한다고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저는 지금처럼 살 수 없었을 거예요."
엄마는 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듣고 있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속에 있던 말이 불쑥 내뱉어졌다.
"그런데 아버지! 저는 딸이어서 너무 서운했어요. 지금도 서운하네요. 제가 딸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닌데. 아버지는 늘 딸이어서 마음을 접는 게 서운했어요. 너무 많은걸 제게 주셔서 기대해도 됐고 바래도 됐는데. 
아버지는 늘 결혼한 딸들을 힘들게 하면 안 된다 하며 거리를 두셔서 서운

했어요."

귀국 첫날 아버지를 뵙고 딸이어서 서운했단 말을 하고 난 후, 그날 저녁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내입을 거쳐 툭 내뱉어졌을 때, 내 안의 큰 슬픔이 함께 떨어진듯 했다. 
비록 불효한 말이었지만, 솔직한 내 심정을 토로할 수있어서,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내 가슴속에 쌓여 있던 서운한 말을 들어주고, 나 스스로 서운함을 풀어낼 수 있도록 해주심에 감사했다. 
2박 3일 일정으로 일시 귀국을 한 터라 다음 날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뵈었다. 
설을 사흘 남겨둔 날이었다. 
아버지를 보며 다시 말씀드렸다.

"아버지, 정말 사랑해요. 살면서 아버지 눈을 보며 사랑한다 말하지 못해 죄송해요. 
그리고 저 어렸을 때 아버지 속상하게 한 것도 죄송해요. 그래도 그런 시간이 없었으면 제가 아니잖아요. 늘 사랑으로 저를 감싸주시고 걱정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딸이어서 서운했던 건 사실인데 이젠 안 서운해요. 
제가 아버지 딸이어서 좋았어요. 아버지 딸로 살게 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아버지 딸이어서 행복했어요. 저 이제 미국 다시 들어가요. 이틀 지나면 설이에요. 설 지나고 봄이 오면 얼른 일어나 미국 오세요. 아버지가 그리 예뻐하던 손녀딸 보러 오세요. 사랑해요. 아버지!"

그렇게 아버지 볼과 이마에 내 기억에는 처음으로 입을 맞추고 작별 인사를 했다.
아버지는 내가 출국하고 미국 집에 도착한 날 돌아가셨다.

다음 날 새벽, 가족과 함께 다시 비행기를 탔다. 중환자실에서 내가 눈물을 흘리며 그냥 사랑한다는 말만, 얼른 일어나시란 말만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며 솔직한 속마음을 말하고 싶었다.

부모는 자식이 모르는 선물을 한가득 주고 떠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선물 꾸러미에 무엇이 있는지 그건 나만 알고 있고, 나만 꺼내 볼 수 있는 것이어서 

부모는 선물을 줘놓고도 그 선물이 어찌 열릴지 바라보는 존재가 아닌가 한다. 
살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일들과 소소한 불화들이 우리 인생에 모래알처럼 깔려도 결국 선물 꾸러미를 열어 키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존재는 
나 이외에는 없음을 아버지는 마지막 가시는 길에 내게 알려줬다. 
요즘도 아버지가 그립다. 

단호한 목소리로 "딸들이 시부모께 효를 행하기도 어려운데 친정부모까지 챙기려면 얼마나 힘드냐" 하던, 딸아이를 가져 임신 6개월에 부른 배로 친정에 가니 마당의 체리 나무에서 체리를 한 바구니 따놓고 "네가 잘 먹어서 미리 따놨

다. 달고 맛있구나. 실컷 먹어라 하며 환하게 웃던 아버지가그립다.

딸이어서 서운했다는 말이 다 지나간 말이었으면 한다. 
어떤 아이도 본인이 원해 
딸로, 아들로 선택하여 태어난 사람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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