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 가족 안에서의 넘어섬이 없다면 과연 다른 울타리에서 무엇을 넘어설 수 있을까 생각한다.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 아니라면 한 인간의 자유와 선택을 제약할 근거는 누구에게도 없다.
오냐, 뭐가 나오냐? 내가 평생 벌어다 준 돈을 네 엄마가 그리 허망하게 쓰고 맨날 성당 간다 쪼르륵 나가고. 아니, 평생 죽도록 돈 벌어 먹여줬으면 나를 챙겨야지, 뭔 성당 청소며 레지오며......." 내가 큰 소리로 따박따박 아버지께 말했다. "아버지, 이혼당하려고 그래요? 아버지 재산 그거 딱 반은 엄마 거예요. 거기에 종교적 핍박으로 위자료도 받아낼 수 있어요. 그러지 말아요. 왜 늙어서 엄마를, 하느님 믿는 순한 엄마를 핍박해요. 이젠 편하게 기도하게 해줘요."
그간 그렇게 바른 말 하는 내가 시끄러웠다던 엄마는 거실에 앉아 내가 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언니들이 말렸다. "야, 그만해. 아버지가 엄마 없이 혼자 밥 드시는 것 서운해서 그렇지. 엄마를 사랑해서 말이야."
"알지, 아버지가 엄마 사랑하는 건 나도 알지. 그러니까,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걸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헤아려야지, 왜 엄마를 핍박하냐고. 종교의 자유는 법으로 보장된 거야. 아버지 조상이 다시 살아나 엄마에게 성당 가지 마라 해도 엄마가 가고 싶으면 가는 게 종교의 자유인데, 왜 아버지가 엄마 영혼을 구할 수도 없으면서 가지 마라 하느냐고"
아버지는 헛헛하게 웃었다. 내가 말을 이었다. "아버지! 생각해봐요. 내 남편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저를 이리 핍박하면 제가 참고 살아야 돼요? 제가 일이 있어 나가야 된다고 하는데, 남편이란 사람이 내 밥 차려야 하니 못나간다 하면 옳다구나 하고 제가 그러고 살아야 돼요?
그런소릴 듣고 제가 살고 있다면 아버지 마음이 좋겠어요? 평생 순종한 엄마도 남의 집 귀한 딸이었어요. 그렇게 아빠 편한 대로 하시면 안 되죠. 그러지 마세요. 엄마가 아버지를 너무 사랑하니까 이제까지 참고 산 거예요. 너무 사랑해서 그걸 몰라요?
"하긴 그렇지. 엄마가 아버지를 너무 사랑하지." 듣고 있던 언니들도 맞장구를 쳤다.
엄마는 늘 아버지에게 순종했다. 시부모님을 공경하며, 평생 머리를 낮추고 공손히 시부모를 모셨으니 말이다. 아버지가 타지에 나가 힘들게 벌어온 돈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 엄마는 늘 변변한 옷 한 벌 사 입지 못하고,
우리 다섯 형제자매 대학 교육을 시키고, 근검절약을 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거스른 단 한 가지는 신앙생활이었다. 결혼 초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의 "아편 같은 종교라
는 독한 말을 듣고서도 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멈춘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신앙 안에서 힘든 현실의 고통을 하느님과 함께 견뎌왔다.
엄마에게 신앙생활은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외할머니와 단둘이 오손도손 살던 엄마가 선을 넘어 새롭게 들어온 바닷속 같은 시집 생활에서 유일하게 숨을 쉬는 시간이 일요일 오전미사였던 것인데, 그마저도 아버지는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엄마는 삶에서 타협할 것과 타협할 수 없는 것을 보여줬다.
어떤 이에게는 종교일 수도, 일일 수도, 생각의 자유일 수도있는 고유한 무엇은 절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생을 걸고 내게 보여줬다. 아버지는 엄마의 종교를 없애고 싶어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내 도리를 다하고 인내하고 검소하게 사는데, 일주일에 몇시간 주님을 못 만나게 하는 게 사람이야?"라며 엄마가 아버지께 하던 말이 떠오른다. 엄마는 유교 문화의 선을 넘지 못한ㅈ채 시부모와 남편에게 순종했지만 자신의 종교는 끝까지 지켰다.
육지에서 살다 바다로 들어간 고래 같은 삶을 산 엄마를 생각하면 숨이 차다. 그렇지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삶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결코 포기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살다 보면 고래 숨쉬기 같은 시간이 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서는 그런 시간들이 있고, 그런 시간들을 견뎌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엄마는 삶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내며, 원하는 바를 쟁취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엄마는 고래같이 크고 단단했다. 못 배운엄마가, 순한 외할머니와 뜨개질하고, 봄이면 산나물 캐기를 좋아해 이산저산 나물 바구니를 들고 다니던 소녀가 고래처럼 깊은 숨을 쉬며 우리들은 편안히 선을 밟고 넘고 살게 해주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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