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일을 시작한 지 넉 달이 되어갈 무렵 고대 이집트 전시관 뒤편에 있는 옷장이라 해도 믿을 만한 크기의 노동조합 사무실로 소환됐다. 허튼짓은 용납하지 않는 조합장 카터 씨가 들어오라 손짓하며 드물게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나를 부른다.
"축하하네, 어, 음, 패트릭" 그가 말한다. "수습기간이 끝났으니까 이제 자네는 정식으로 DC37 (뉴욕에서 가장 큰 공무원 노조-옮긴이), 1503지부의 회원이 됐네. 이 양식을 작성해주게. 좋아, 좋아. 새로운 병가와 연차 수당 기준은 바로 반영될 거고 급여는1년간 근속을 해야 인상될 거야. 내년 봄쯤 첫 휴가 일정을 잡을 무렵에 자네를 다시 부를 텐데, 휴가는 그다음 겨울, 2월 정도로 계획하고 있으면 될 거야. 휴가 주간은 선임자가 무조건 우선 선택권을 가지니까 후임들에게 돌아가는 건 보통 그 정도야. 하지만 이제 배치 사무실이 자네를 온갖 구역으로 보낼 테니 최소한 그런 식으로라도 여행을 다닐 수 있겠군... 좋아. 아주 좋아.
혹시라도 주소가 변경되면 우리에게 알려주고, 조합원 카드는 우편으로 받게 될 거야.
근무복 제작실에서 신발을 찾으러 오라니
까 이제 그쪽으로 가보게.
아, 그리고 다음 월급을 받으면 첫 양말수당이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해봐. 매년 80달러씩이니까."
"감사합니다. 조합장님." 명세서의 어디를 봐야 양말 수당이라고 적힌 것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평범한 아침이면 이스트 82번가를 따라 장엄한 보자르 Beaux-Arts 양식(19세기 중후반 프랑스에서 유행한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옮긴이)으로 지어진 건물과 기둥 그리고 우아하게 펼쳐진 치맛자락 같은 대리석 계단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미술관으로 향한다.
물론 경비원은 대리석 계단 같은 건 오르지 않는다. 대신 나는 84번가에 있는 경비 초소로 방향을 틀어 미술관 외관 구석구석을 벤치 삼아 델리에서 산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담배를 피우고, 명상을 하고, 《타임스》와 《데일리뉴스>를 읽고 있는 일찍 도착한 동료들을 지나친다.
M1 버스 한 대가 맨해튼 북부에서 통근하는 경비원 몇을 내려주자 누군가 "차 좀 잡아줘!"라고 소리치고, 야간 근무조 경비원들이 집으로 향하는 그 버스를 타려고 내가 가던 길을 전속력으로 가로지른다.
초소에 가까워지자 흰색 트럭 하나가 하역장 출입 심사를 통과하는 모습이 보인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대여한 예술품을 싣고 있는지 아니면 키즈밀에 들어갈 핫도그 빵을 나르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이윽고두 번째 부스로 가서 출입증을 대자 모니터에 내 얼굴이 번쩍거리며 나타난다. "좋은 아침이야." 이제 얼굴만 봐도 나를 알아보는 고참 동료가 부스 안에서 인사를 건넨다.
메트는 매년 거의 7백만 명의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이건 양키스, 메츠, 자이언츠, 제츠, 닉스 그리고 네츠의 관중을 모두 합친것보다 더 많은 수다. 자유의 여신상이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방문객보다도 많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중국 국립 박물관
보다는 덜하지만 박물관 중에서는 3위다. 방문객의 절반 정도는 해외에서 오고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내국인 방문객 중 다시 절반은 뉴욕시 밖에서 온다. 메트는 원하는 만큼 내라는 입장료 방침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돈 걱정할 필요 없이 공원에 소풍을 온 기분으로 미술관에서 하루를 보낸다(슬프게도, 2018년 이후 이 방침은 뉴욕주 거주자에게만 해당한다).
전반적으로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 이름에 걸맞은 관중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채로운 이유로 이 위대한 도시를 찾아온 다양한 사람들이 뉴욕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소 중 하나로 모여들고 있으니 말이다.
이곳 출신이 아닌 뉴요커인 나는 다른 곳과 비교할 수조차 없는 차원의 사람 구경을 처음으로 경험하던 때를 기억한다. 서민들과 멋쟁이들과 동네 괴짜들이 같은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고그 누구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아무도 두려워 보이지 않았다. 기분 상해 보이거나 피곤해 보이거나 짜증나 보이는 사람은 있어도 아무도 스스로를 너무 의식하거나 움츠러들거나 소심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남의 이목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이런 군중 속에 홀로 있는 듯한 모습이야말로 사람 구경의대상이 되기에 이상적인 뉴요커들의 특성이다. 대학교 때는 이따금 메트의 돌계단에 앉아서 5번가를 따라 끝없이 흐르는 행렬을 관찰하면서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다 싫증이 나면 뒤로 돌아 메트의 커다란 입구로 들어가 내가 관찰하
던것만큼 빽빽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군중에 합류했다. 혼자였다가 섞여들었다가, 혼자였다가 섞여들었다가 하는도시인의 호흡.
경비 근무 중 나는 내 옆을 지나가는 군중 속으로 섞여들지않는다. 가구에 녹아들지언정 절대 군중에는 그럴 수 없다.
이 화려한 퍼레이드에서 관객의 자리를 지킬 뿐이다. 공원 벤치에 한두 시간동안 앉아 있는 것과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낯선 사람들과 고요한 공간을 공유하며 매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손에 든 은쟁반 말고는 눈에 띄지 않도록 존재감을 숨기는 집사들에겐 익숙한 일일 테지만, 나는 눈과 귀만 가진 존재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것이 내 주된 임무다.
방문객들이 미술관을 관람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몇 가지 대표적인 유형은 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사람구경도 할수록 는다. 이러한 ‘기예‘에 통달하기로 마음먹은 나는매일 보는 수천 명의 사람 중에서 선형적인 인물들을 골라내는법을 터득했다. 첫 번째는 ‘관광객‘ 유형이다. 대개 사는 지역 고등학교의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카메라를 목에 건 채 무조건 가장 유명한 작품을 찾아다니는 아버지들이다. 이들은 예술에 특별한 관심은 없지만 보는 눈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옛 거장전시관의 솜씨들을 관람하며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뭐, 액자를 본 것만으로도!" 그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가세계사 시간에 배운 내용을 작품에 접목할 때면 열심히 귀를 기
시선을 사로잡는 보기 드문 사람들도 있다. 한 노인이 감상에지쳐서 보행기에 몸을 엎드리면 그의 아내는 고개를 숙여 그의귀에 속삭인다. 몇 분 동안 그녀는 그가 체력이 모자라 놓치게될 중세의 유물들을 자세히 묘사해준다. 설명이 끝나면 그녀는그를 일으켜 세우고 그들은 다시 조금씩 나아간다.
아메리카 전시관의 분수대 앞에서 한 어머니가 아이에게 동전 두닢을 건네며 말한다.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이런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나는 듣자마자 언젠가 내 아이들에게 똑같이 말해주리라 결심한다.
머리가 하얗게 센 두 나이 든 숙녀가 똑같은 차림을 하고 있어서 자세히 보니 일란성 쌍둥이다. 더욱 자세히 살펴보면 한가지 차이점이 있다. 한 사람은 나비넥타이를 착용하고 다른 사람은 착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들을 몇 분간 바라보고 있다 보면 묘한 일이 일어날때도 있다. 갑자기 방향을 튼 그 관람객이 이쪽으로 걸어와 나에게 질문을 건네는 것이다.
내가 갈팡질팡하며 설명하는 동안 남자는 그런 이야기에 굶주린 듯 귀를 기울인다. 보기 드문 사람이다. 아는 척을 하거나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수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들의 충돌을 반기는 사람.
나는 온종일 감탄했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남자의 개방적인 태도에 더 탄복한다. 남자는 나에게 감사를 표한 후 떠났고 그때부터 나는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습관이 생겼다.
그는 듣는 사람이었다.
대부분은 말하는 사람들이다.
간혹 말을 하면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를 향해 엄청나게 천천히독백을 하는 한 여자가 있었는데 노력이 하도 정성스럽고 진지해서 그 마법의 힘이 풀릴까 두려워 감히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이 재능 있는 예술가들..." 그녀는 <안데스의 오지 Heart of theAnales>(프레더릭 에드윈 처치Frederic Edwin Church의 대형 풍경화. 1857년
어의 의미는 ‘분리되어 있는‘이었다) 지루하고 평범한 세속의 영역을 분리하는 액자가 둘러져 있다. 때때로 우리에게는 멈춰 서서무언가를 흠모할 명분이 필요하다. 예술 작품은 바로 그것을 허락한다.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한 관람객이 미동도 하지 않는 조지아의 얼굴 사진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카메라를 갖다 대고 있다.
목격하는 순간에는 이것이 초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지지만, 왜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카메라 뒤의 남자는 그가현실을 더 꽉 움켜쥐고 있는 기분이 들 것이다. 손 틈새로 금세빠져나가버릴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우리는 소유, 이를테면 주머니에 넣어갈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것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 소유할 수 있다면? 이런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전시실 안의 낯선 사람들이 엄청나게 아름다워 보인다. 선한 얼굴, 매끄러운 걸음걸이, 감정의높낮이, 생생한 표정들. 그들은 어머니의 과거를 닮은 딸이고, 아들의 미래를 닮은 아버지다. 그들은 어리고, 늙고, 청춘이고, 시들어가고, 모든 면에서 실존한다. 나는 눈을 관찰 도구로 삼기위해 부릅뜬다. 눈이 연필이고 마음은 공책이다. 이런 일에 그다지 능숙하지 않다는 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사람들이 입고 돌아다니는 옷과, 남자친구나 여자친구와 손을 잡거나 혹은 잡지 않는 몸짓에서, 머리를 다듬고, 면도를 하고, 내 눈
을 마주하거나 피하고, 얼굴과 자세에서 기쁨이나 조급함, 지루힘이나 산만함을 보이는 방식들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내가 보는 대부분의 것에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확실한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저 이 장면에 깃든 눈부심과 반짝임을 바라보며 기쁨을 만끽한다.
하루가 끝난 후 86번가에서 지하철을 탄 나는 우물처럼 샘솟는 연민의 마음으로 동승자들을 둘러본다. 평범한 날이면 낯선사람들을 힐끗 보며 그들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들이 나만큼이나 실존적이고 승리하고 또 고통받았으며 나처럼 힘들고 풍요롭고 짧은 삶에 몰두해 있다는 사실을. 입원해 있는 톰을 방문한 후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던때를 기억한다. 누구라도 심술을 부리거나, 실수로 부딪힌 다른승객에게 쏘아붙이면 그게 그렇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편협하고 무지해 보였다. 우리 모두 그럴 때가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밤은 운이 좋다. 낯선 사람들의 피곤하거나 어떤 생각에 빠져 있는 얼굴들을 애정을 갖고 바라볼 수 있다. 반 시간이 지나고 유니언 스퀘어에서 환승한 후, 내가 탄 전철은 맨해튼 다리를 건너 브루클린으로 빨려 들어간다. 지금 내가향하고 있는 사람을 떠올리며, 더 큰 사랑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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