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에는 1년 내내 사과가 떨어지는 법이 없다. 본가의 냉장고에 언제나 사과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는 사과를 정말 유난할 정도로 사랑하시는데, 아버지의 사과 사랑은 아버지가 지닌 성실함을 잘 보여주는 증거다. 매사에 쉽게 싫증내고 게으름을 피우는 나와 달리, 아버지는 무엇이든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두는 법이 별로 없고, 정해진 일들을매일같이 규칙적으로 하는 습관이 몸에 밴 분이다. 매일사과 한 알을 먹으면 의사가 망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아버지가 들으신 것이 언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기억의 시작점에서부터 지금까지 단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에 사과 한 알을 드시고 하루를 시작하셨는데, 그 때문이겠지만 나와 여동생에게 사과란지긋지긋한 과일이 되어버렸다. 언제나 손만 뻗으면 닿는 가까운 곳에 있어 특별하지도, 간절하지도 않은 과일.
가장 가까이 있지만 또 그래서 멀어지게 되는 가족처럼말이다.
가족이란 대체 뭘까?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영영이해할 수 없고, 서로를 가장 견딜 수 없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가장 친밀한 공동체인 가족 가족이 무엇인지에 대

내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은 줌파 라히리의 소설들 덕분이다. 그중에서도 하나를 꼽자면 그녀의 두 번째소설집인 『그저 좋은 사람』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줌파라히리의 소설들은 대부분 그녀처럼 미국으로 이민 온인도인의 삶을 다룬다. 그저 좋은 사람』에 실린 소설 속주인공들도 모두 인도계 미국인이다. 그리고 이 인물들은 종종 가족들 간의 문제를 안고 있다. 표제작인 「그저좋은 사람」의 주인공 수드하는 동생에 대해 잘 알고 있고그에게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고 믿지만, 사실은 동생이 어째서 알코올중독자가 되어버렸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소설집 맨 앞에 실린 「길들지 않은땅」의 주인공인 루마는 어머니가 죽은 이후 홀로 남은 아버지가 자신과 같이 살기를 원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아버지는 새로운 사랑과 삶을 꿈꾸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줌파 라히리 소설의 경우 주인공들이 모두 이민자이기 때문에 1세대와 2세대 간의 갈등이 더욱 두드러지긴 하지만, 그들이 겪는 문제들은 사실 모든 가족이 겪는일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인물들이 느끼는 고독에 공감하며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우리가 겪는 일상 속의

가장 가까워 보이는 관계 속에서조차 존재하는사람과 사람 사이의 몰이해 때문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결국 가족이란 이 같은 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인간관계의 축소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소설 속의 인물들이 상처를 주고받고 후회를 거듭하는데도 책을 덮고 나면 마음이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그것은 가족이기 때문에 무조건 이해하고 있고, 이해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사랑에 한 걸음 더 다가갈수 있음을, 주인공들의 실패를 통해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또 다른 딸인 린다를 더 편애하며 진정한 딸로 여기고 셜리를 골칫덩어리로만 생각하는 걸 엿볼 수 있는 대목들. 하지만 이제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이런 대목들이다. 어쩌면 셜리가 우연히라도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자신이 자주 찾는 공원에 왔을지도 모른다며 엄마가 조심스럽게 추측하는 대목같은 것 말이다. 그러니까, 엄마와 딸이 주저하면서도 서로 이해하려고 애쓰는 마음을 보여주는 문장들.
어렸을 때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일이라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에 당연한것은 없다는 걸 안다. 어떤 관계가 잘 유지된다면 그것은각자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느 주말, 직장에 다니느라 피곤했을 엄마가 믹스를 사다가 만들어주던 도넛처럼 달콤하고 아련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떤 기억들은 겨우내 잠들었다 계절이 돌아오면 움트는 장미 꽃봉오리를 닮아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피었다 지기를 되풀이한다. 그때로부터 나는 얼마나 멀리 와 있는 걸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청신한 바람을 타고 자꾸만 날아오는 꽃향기 속을 걸으며아득한 거리를 가늠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좁은 문을 다시 읽었을때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알리사의 신앙심보다는 소설도처에서 언급되는 불안이었다. 두 주인공이 불안에 떠는 이유는 사랑하는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랑을 받아달라고 상대에게 강요하는 제롬이나 문제를 회피하기만 하는 알리사는 서로 다른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상대의 의중을 알 수 없다는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만사랑을 완성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같은 인물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결국 비극적인 방식으로 끝난다.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열정이나 도취를 쉽게 떠올리지만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청춘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한 게 아닐까 가만히생각해본다. 넘치는 건 젊음뿐, 상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릴 여유는 조금도 갖지 못해 서로를 오독하는시기를 지나야 우리는 사랑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해볼수 있는지도 모른다고도. 공고한 ‘나‘의 성을 허물고 타인에게 자리를 내어줄 때, 마침내 사랑은 그 눈부신 폐허에서 시작할 테니까.

사랑이란 뜻의 한자[]를 중국인 관광객에게 배운다. 그러고 난 후 어머니의 편지 위에 사랑이란 한자를 무수히 덧쓰는 잭.

흔히들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종이 동물원」을 읽으며 어쩌면 켄 리우는 표현하는 행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랑에 가닿을수 있다면 그것은 알맞은 때에,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있는 방식의 표현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임을 보여주고있는 거라고. 이토록이나 슬프고도 아름다운 방식으로말이다.

그렇게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일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어질 때, 갓 구운 호밀빵 샌드위치를 싸들고 숲으로 소풍을 가는 기분을 내기 위해 꺼내보는 책이 있다. 나무수업이 바로 그것이다.
『나무수업』을 지은 사람은 독일인 산림 전문가 페터볼레벤이다. 평생 숲속에서 나무들과 함께 살아온 저자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생명이 얼마나 신비로운지 번번이 놀라곤 한다. 너도밤나무들이 서로 우정을 나눌 줄 알뿐만 아니라 심지어 허약한 구성원에게는 영양분도 분배해주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같은 숲에 심어진 너도밤나무라도 뿌리를 내린 곳의 일조량이나 토양의 비옥한 정도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환경이 다르다면 그에 따라 성장 속도나 목질, 그리고 나무가만들어내는 당분의 양이 달라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일 같다.
하지만 『나무수업에 따르면 너도밤나무들의 경우,

그들이 생산하는 당의 양은 거의 비슷하다. 같은 숲의 너도밤나무들끼리 뿌리를 통해 영양소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나무들은 서로가 비슷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이 가진 나무가 허약한 나무에 양분을 공급해준다. 

허약한 구성원을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결국 모두에게 이롭다는삶의 지혜를 너도밤나무는 알고 있는 것이다. 만일 경쟁에 뒤처진 너도밤나무가 죽어버린다면 숲에는 빈자리가 생겨버릴 것이고, 숲의 기후나 일조량, 습도는 엉망이 되어버릴 거라는 진실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크고 우람한 너도밤나무를 키우기 위해 볼품없는 나무들을 베어버리고 간격을 벌려준다고 한다. 그렇게 인간이 ‘경쟁자‘
를 제거해준 숲에 홀로 남은 너도밤나무가 다른 나무들보다 건강하고 더욱 잘 자라는 듯 보이지만 결국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좋은 책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읽고 난후 세상을 보는 시선을 바꿔주는 책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무수업』은 나에게 좋은 책이다. 이책을 읽은 이후 두 번 다시 나무를 그 전과 같은 눈으로볼 수 없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길을 걷다가 만나는 가로수, 창밖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뒷산의 나무를 보면 그들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중에는 ‘난민이 뭐예요?』라는작품이 있다. 이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후안, 로사, 페드로 등 서로 사촌인 아이들은 어느 날 할머니의 집에 모여 즐겁게 대화를 나눈다. 그러던 중 길에서 본 난민들이자연스럽게 화제에 오르고 아이들은 ‘난민‘이 누구인지,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우쳐간다. 비교적 간결한 이 이야기에는 작은 반전이 숨어 있다. 아이들은 몰랐지만 할머니 역시 난민 출신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준비해준 스페인식 바게트 샌드위치를나눠 먹으며 할머니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사람은 누구나 난민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할머니와 아이들이 밤에 찾아올지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이불을 준비하는 마지막 장면이 아름다운 것은 그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행동임을 느낄 수있기 때문에.
난민들을 둘러싸고 현재 빚는 갈등은 우리 사회가얼마나 이런 문제에 준비되어 있지 않은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갈등은 우리가 난민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게 되리라는 것을 분명히 예고하고도 있다. 나는 ‘난민이 뭐예요?』를 쓰고 그린

이들이 각기 다른 국가 출신의 유럽인들인 것이 우연일리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글을 쓴 호세 캄파나리는 이민자의 자식으로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스페인 사람이고, 그림을 그린 에블린 다비디는 아프리카 난민들이 유럽에 들어가는 관문인 이탈리아 출신이다. 이 두 사람이 함께 만든 그림책이, 국가나 인종 혹은 종교처럼 서로를 배척하게 만드는 견고한 장벽을 넘어설 때 우리가 아름다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수는 없을까?
일상을 살아가는 연약한 개인들은 불안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우리의 마음속에 타인을 위해 이불 한채를 더 마련할 만큼의 온기가 존재한다고 믿고 싶다. 당장은 두렵더라도, 배척하는 것만이 이 두려움을 해소해줄 유일한 방법은 아닐 거라고 믿는 나와 당신이 있다고.
비틀거리더라도, 뒷걸음질을 치더라도, 우리는 결국 연대의 가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밤이 온다. 길고 긴 겨울밤의 시작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작은희망을 촛불처럼, 위안처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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