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 ‘기간제 교장‘ 짱구쌤의 티타임
이장규 용방초등학교 교장
"왜? 오늘 표정이 안 좋네. 숙제 안 했니? 걱정하지마, 담임선생님이 설마 어떻게 하겠냐? 얼굴 펴, 급식이 마라탕이래!" 아침 교문맞이, 기간제 교장이 하루 일을 시작한다. 첫 통학차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클래식 음악이흘러나오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 교문에서 아이들을 기다린다. 요즘 같은 추운 날엔 눈만 빼꼼한 중무장에 쉼 없이 제자리 걷기를 반복하며 체온을 유지하는게 상책이다. 70여명 아이가 모두 등교할 때까지 손바닥을 마주치며 매일 아침맞이를 하는 것은, 학교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즐거운 곳이어야 한다는 오랜바람의 실천이다. 나는 전남 구례에서 일하는 3년 차 내부형 공모교
장이다. 공모를 통해 교사에서 바로 교장이 된, 이른바 ‘무자격 교장‘이다.
기존 승진 체제(교사 교감 교장)에 변화를 주기 위해 도입된 내부형 공모 교장제는 새로운리더십을 구축해 민주적인 학교문화를 형성했다는 평가와 함께 승진 구조 와해, 특정 교원단체의 전유물 등비판도 받아가며 벌써 10여년째 이어지고 있다. 전남•전체 학교의 2퍼센트 정도가 시행 중이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나를 ‘짱구쌤‘이라 부른다. 그렇게 부르면 교장의 권위는 사라지고 아이들은 버릇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그런 기우는 접으시라. 아이들은누구보다 사리분별을 잘한다. 내 이름과 외모에서 나온 ‘짱구쌤‘ 별명은 아이들과 거리를 가깝게 하는 마법의 힘이 있다. 2교시를 마치면 ‘누구나 교장실에서 예약한 아이들과 우아하게 차를 마신다. 남자친구, 케이팝, 수업 이야기 등이 끝없이 이어지는 동안, 난 그냥함께 차를 마시며 웃어주면 된다. "짱구쌤, 오늘은 무슨 차예요. 김칫국물 맛이 나네요." "보이차야." "그럼남자만 마셔요?" 일주일에 네시간 정도 수업을 한다. 30년간 해오던 일이니 교장이 됐다고 관둘 이유는 없었다. 담임들과 교과와 시간을 협의해 체육, 국어, 실과, 창체(창의적체험활동) 등 다양한 수업을 진행한다. 놀이, 실내화 빨
기, 서시천 산책하기, 그림책 읽어주기, 자전거 타기등 재미와 의미를 함께 추구한다. 지난해 가을에는 우리 학교 대표 교육활동 중 하나인 ‘섬진강 자전거 마라톤‘에서 1학년 아이들의 완주를 지도했다. 아이들과 함께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달리던 순간이 지금도 선명하다. 수업을 통해 내가 배우며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또 교실과 학생들을 가장 잘이해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하고, 교사들의 어려움도잊지 않게 된다. 제주도의 그림책 작가 니카는 "해녀는 페미니스트다. 그것을 증명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누구보다 강인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짱구쌤은 이렇게 말하고싶다. "교사는 휴머니스트다. 그들은 아이들의 오늘과내일을 믿는다. 그것은 증명할 필요가 없다."사실 평교사 시절, 내가 휴머니스트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너무 많은 에너지를 썼다. 교장이 교실의 교육력을 믿고 전적으로 지원하면 아이들과 교사는 배움과 열정으로 화답한다. 학교 안에 있는 어른은 모두 선생님이다. 수업하는 교사뿐 아니라 교무실과 행정실, 급식과 안전을 담당하는 모든 교직원은 아이들의 선생님이다. 그래서우리는 성장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모든 교직원과 전
문적 학습공동체를 만들어 학교 건축, 생태교육을 공부하며 함께 성장해나간다. 정기적인 수업 공개(나눔)를 통해 자기 수업과 교실을 열고, 교사의 교수법을 넘어 아이들의 배움을 이야기한다. 교장은 꼼꼼하게 아이들을 관찰해 어려운 부분을 지원해주면 된다. 우리가 세운 목표를 다 이룰 수 없다고 해도 어제보다 더나은 사람은 될 수 있다. 운동장 너머에 노고단이 보이고 울타리를 따라 섬진강 지류인 서시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은 행운이다. 2년 뒤에는 그 풍경에 딱 어울리는 세상에 하나뿐인 학교가 다시 지어진다. 긴 복도와 사각형 교실에서 벗어나, 천창과 거실, 툇마루가 있는 목조 지붕의 아늑한 학교가 탄생한다. 지난 30년 교사로 살면서 꿈꿨던 학교 건축에 관해 동료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 2년 동안 모든 용방 가족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설계했다. 어떤 뛰어난 개인도 집단지성을 넘어설 수는 없다는 믿음으로. 10년 전, 열일곱명의 폐교 위기에서 지금에 이르렀듯, 우리 학교는 소멸의 위기를 넘어 계속 나아갈 것이다. 훌륭한 교사가 훌륭한 교장이 된다고 믿는다. 여러 평가 속에서도 교사에게 공모 교장의 기회를 주는제도가 존속돼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격증에 기
대지 않은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기대이다. 우리는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닫는 글을 대신하여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
노회찬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서울 구로구 가로수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두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이 버스는 새벽 네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새벽 네시에 출발하는 그 버스와 네시 5분경에 출발하는 두번째 버스는 출발한 지 15분 만에 신도림과 구로시장을 거칠 때쯤이면 좌석은 만석이되고 버스 안 복도길까지 사람들이 한명 한명 바닥에다 앉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집니다. 새로운 사람이 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매일 같은 사람이 탑니다. 그래서 시내버스인데도 마치 고정석이 있는 것처럼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타고 강남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내리는지 거의 다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입니다. 이 버스 타시는 분들은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새벽 다섯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탑니다. 한명이 어쩌다 결근을 하면 누가 어디서 안 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흘러서 아침 출근시간이 되고낮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퇴근길에도이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새벽 네시와 네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5~60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이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에 새벽 다섯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분들입니다. 지금 현대자동차 그 고압선 철탑위에 올
라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물세명씩 죽어나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용산에서 지금은 몇년째 허허벌판으로 방치되고 있는 저 남일당 그 건물에서 사라져간 다섯분도 투명인간입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들은 아홉시 뉴스도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유시민을 모르고 심상정을 모르고 이노회찬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 있었습니까. 그들 눈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그 누구 탓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만들어가는 이 진보정의당,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위해 존재할 때 그 일말의 의의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그동안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
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강물은 아래로 흘러갈수록 그 폭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우리의 대중정당은 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실현될 것입니다. 진보정의당의 공동대표로 이 부족한 사람을 선출해주신 데대해서 무거운 마음으로 수락하고자 합니다. 저는 진보정의당이 존재하는 그 시간까지, 그리고 제가 대표를 맡고 있는 동안 저의 모든 것을 바쳐서 심상정 후보를 앞장세운 진보적 정권교체에 성공하고,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모든 투명인간들의 당으로 이 진보정의당을 세우는데 제가 가진 모든 것을 털어 넣겠습니다.
2012년 10월 21일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수락연설
사람들은 지금도 말한다. "노회찬이라면 이럴 때 뭐라고 얘기할까?" 그와의 알량한 인연을 앞세워 내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아니, 사실은 굳이 답을 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 글쓴이들은그 삶 속에서 이미 노회찬의 대답을 듣고 있다. 하나하나의 글들 속에서 노회찬을 발견한다. 글쓴이들이 모두 노회찬이다. 손석희 언론인
노회찬의 은유적 언변에 담긴 해학은 누구도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평생 민중을 가까이 들여다보고 이해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거침없는 표현을 품위를 담아 우아하게 사용할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정치인 노회찬이 응시해온 ‘존재하되 우리가 그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직접 쓴 이야기를 통해 정치가 바라봐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함께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정우성 배우
나는 소설을 쓰는 노동자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노동에 기대어 하루를 살아간다. 농민의 노동으로 밥을 먹고, 유튜브 크리에이터의노동으로 정보를 얻고, 택배노동자의 노동으로 편안하게 집에서 물건을 받는다. 여기, 나를 살게 하는 수많은 노동자가 묻는다. 대체 나의노동은 얼마짜리입니까? 노회찬은 말했다. 같이 살자고, 같이 잘 살자고! 주 52시간 노동이 흔들리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지워지는시대를 살고 있지만 나는 믿고 싶다. 노회찬의 절절한 꿈이 우리 모두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용암처럼 솟구칠 그날을 기다리며 들끓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노회찬은 아직도 우리 안에 살아 있는 거라고. 정지아 소설가
명절을 맞아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하려고 아파트 현관 청소하시는분께 여쭤봤다. "한 동에 모두 몇분이 일하세요?" 어머니뻘인 그분이답하신다. "나 혼자 네 동 담당하는데요." 아무 말도 못한 채 현관을 나와 길을 걸으며 가슴이 미어졌다. 이 책은 우리 곁에 살아가지만 잘보이지 않는 그런 사람들의 기록이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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