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코치님은 손가락을 편 상태에서 옆 부분을 이용해 먼저 내 허리 각도를 조정해줬다. 너무 드러눕듯 누워 있던 걸 살짝 앞쪽으로 옮겨준 것이다. 이어서 지렁이처럼 바닥에 붙어 꿈틀꿈틀대던 다리가 문제였는지 역시또 손가락으로 무릎 뒤쪽을 위로 밀어줬다. 무릎을 더 가슴쪽으로 끌어당기라고 하면서.
코치님은 교정된 자세로 다시 해보라고 했다. 나는 아까보다 선 허리로, 아까보다 높아진 무릎으로 복근운동을 재개했다. 어쩐지 아까보다 움직임이 더 편해진 듯도 했는데,
어쩐지 아까보다 더 빨리 몸 여기저기에서 불이 나는 듯도했다. 교정된 자세로 배를 부르르 떨며 운동하는 내 모습을본 코치님은 말없이 일어나 다른 회원에게로 갔다. 그리고나는 지금까지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이곳 체육관을 다니며 서서히 마음을 놓았던 이유를 그날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코치님이 저 말을 하기 전, 다른 코치님들은 저 말 없이 내 몸을 말 그대로 ‘터치‘하기도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분들 역시 늘 저 말을 한 것 같은 태도로 그랬다. 약간의 거리. 늘 거리를 둔 태도였다. 내가 당신을 터치하는 건 당신의 자세를 교정해주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 확고히 자리 잡은 거리감 있는 태도.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를 이쪽에서 확실히 보장해주겠다는 태도.

코치님들은 매일 뭔가를 물었고, 그 물음 속에는 사생활에 해당하는 것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런 물음에 불쾌하지 않았던 것 역시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 덕분이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으면 금방 수긍한 뒤 더는 묻지 않으려는듯한 태도 위의 물음이었다. 

대답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이 내게 있는 물음이었고, 내가 거리를 조정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물음이었다. 

모든 코치님이 다 이런 거리 조정에 신경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이곳 체육관 나름의 교육 시스템이있는 듯하다.

억지로 밀어붙여 친밀함을 조작하는 대신 거리를 존중하려는 태도, 이 태도를 지켜나가려는 노력. 
이 체육관을 마음 편히 드나들 공간으로 생각하는데 이 정도면 충분했다.

"원, 투, 원, 투, 잽잽, 투! 요거 요거 재미있다.
내가 제대로만 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발을 바꿔 찼다. 탕. 또 찼다. 탕. 나는 내가 신이 났다는 걸 느꼈다. 통쾌했다. 내 몸의 일부를 이렇듯 다른 대상을 향해 최대한의 힘으로 밀어붙인 적은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향해 주먹을 뻗고 발을 찬다는 건 그간은 상상할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내가 상상할 수 없던 일을 하러 이곳에 왔고, 상상을넘어 직접 몸을 움직였다. 몸을 움직이자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내보지 못한 소리가 났다. 탕. 이 소리는 쾌감 그 자체였다. 탕. 이 소리가 좋아서라도계속 발차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흔들리고 상처받아 주저앉고 싶어질 때마다근육의 힘으로 거뜬히 일어나기 위해나는 오늘도 체육관에 갑니다.
: 본문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