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위에 쓰인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이단지 한 번의 입김이고 전율일 뿐이라는 것값지고 황홀한 것이잠깐의 우아함이라는 것구름, 꽃, 비눗방울,
불꽃놀이, 아이들의 웃음,
유리 거울 속 여자의 시선그리고 많은 경이로운 것들그것들은 발견되자마자 사라진다는 것단지 한순간 지속될 뿐이라는 것그저 향기이며 바람의 흩날림일 뿐이라는 것아, 슬프게도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멈춰 있는 것은우리에게 그다지 소중하지 않다.
서늘한 불을 품은 보석,
형형히 빛나는 황금 타래 같은 것은.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조차멀리 있고 서먹하다. 별들은덧없는 것들만 못하다.
영혼 가장 깊은 곳에 닿지 못한다.
그래, 지고의 아름다움은사랑스러움은 쇠락하는 것에 끌린다.
가장 값진 것은언제든 부서질 수 있다.
음악의 소리, 생겨남과 동시에이미 떠나가고 사라지는 음악의 소리는그저 흩날리고 흘러가고 뒤늦게 따라가면서나직한 애도의 기운에 싸여 있다.
음악은 심장 한 번 박동하는 순간의 시간 중에도사로잡을 수 없는 것이기에.
한음 한음 부딪쳐 나는가 싶으면이미 사라지고 흘러가버린다.
우리의 심장은 스쳐지나가고흘러가버리며 살아 있는 것에친히 충성을 바친다.
단단한 것, 계속해서 유용한 것을 믿는 대신.
고여 있는 것은 우리를 금방 지치게 한다.

바위와 별의 세계와 보석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
우리를 변화로 끝없이 몰고 가는 것은바람과 비눗방울처럼 순식간에 터져버리는 영혼시간과 하나 된 것들, 지속을 모르는 것들이다.
그런 우리에게는 장미 이파리의 이슬이한 마리 새의 구애가구름이 희롱하는 죽음이흰 눈의 반짝임과 무지개가이미 날아가버린 나비가터져나온 웃음소리가지나는 길에 우리를 잠시 스친 그 소리가환희를 선사하고고통을 주나니. 우리는 사랑한다,
우리와 하나인 것을. 우리는 이해한다,
바람이 모래 위에 써놓은 것을.

인간을 양심으로 이끄는 길은 어렵다. 대부분이 이 양심을 거슬러 살며 뺀대다 갈수록 무겁게 짓눌리고, 질식한 양심으로 인해 파멸한다. 그러나 매 순간 누구에게나괴로움과 절망의 저편에 인생을 현명하게 이끌어주고 죽음을 수월하게 해주는 고요한 길이 열려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양심에 맞서 날뛰고 죄를 짓지 않고는 못 배겨서지옥이란 지옥을 다 겪어보고 별의별 소스라치는 것으로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뒤에야 한탄하고 잘못을 느끼며변화의 시간을 체험한다. 어떤 사람들은 양심과 좋은 친구로 지낸다. 행복하고 성스러운 소수의 사람들로, 무슨일이 닥치든 일은 그들 바깥만 건드릴 뿐 결코 심장을 가격하는 법은 없다. 그들은 언제나 해맑고 미소가 가시지않는다.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에 나오는] 므이쉬킨 공작이 그런 사람이다.
이 두 목소리와 가르침을 나는 도스토옙스키에게서 들었다. 그의 책을 좋아했던 시절, 좌절과 아픔으로 그에게이끌렸을 때, 어느 예술가의 음악을 들으며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 음악가는 내가 도스토옙스키를 아무 때나 읽을 수 없듯이 아무 때나 좋아하고 들을 수 없다. 베토벤이다. 그는 행복과 지혜와 조화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그러나 행복, 지혜, 조화는 평탄한 길에서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며 늪가의 길에서나 빛날 뿐이다. 미소 지으면

서가 아니라 눈물과 고통으로 지쳐야 딸 수 있는 열매다.
그의 교향곡과 사중주곡에는 너무나 비참하고 고립된 나머지 한없이 감동적으로 환히 아이처럼 애틋하게 빛나는대목들이 있다. 의미의 예감, 구원의 지각. 이런 대목들을나는 도스토옙스키에게서 다시 발견한다.
(1919년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에 관한 사색」에서)나는 바로 이날, 내 다채로운 생애의 한 페이지에 단어하나를 적고 싶다. ‘세계‘나 ‘태양‘ 같은, 마법과 울림과풍요로 가득한 단어를 가득한 것보다 더 가득하고 풍성한 것보다 더 풍성하며 완전한 실현과 지식의 의미를 지닌 단어를단어가 떠오른다. 이날을 위한 마법의 단어가 나는 종이에 커다랗게 쓴다. 모차르트. 세계에는 하나의 의미가 있고 이 의미는 음악이라는 비유 안에서 감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1920년 11월 무렵 메모)당신은 개혁의 놀라운 원천을 음악에서도 발견한 겁니다! 음악을 사랑하고 마음 깊이 이해하게 된 사람의 눈에세계는 마을 하나가, 아니 차원 하나가 더 생긴 셈이지요!
모차르트를 으뜸으로 하는 음악은 제게 색채와 더불어 최

첫 음이 울리는 꿈의 한순간
멀리서 다가오는 아름다운 예감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애호가는 많지만 헤세만큼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누가 쇼팽을 이토록 내밀하고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리라. 헤세에게 음악은 찬란하게 펼쳐진 그림이고 영롱한 소리로 쓴 문학이었다. 이 책으로 그는 우리에게 시공을 뛰어넘어 그 감동적인 체험을 전한다."
민은기(서울대 음대 교수, 음악과 페미니즘』 『난처한 클래식 수업』 저자)

"작가는 아름다운 언어를 찾아 헤매는 영원한 방랑자다. 그런 작가들도 언어의 미로 속에서 헤매는 것에 지칠 때가 있다. 그럴 때 최고의 위로는 음악이다. 언어 없이도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음악의 힘에 압도당하는 것 자체가 영혼의 휴식이 되기 때문이다. 
헤세는 바로 그런 음악의 마법을 뼛속 깊이 이해했다. 그는 수많은 음악 속에 숨은 영감의 빛과 구원의 목소리를 온몸으로 느꼈고, 바로 그 음악의 감동을 다시 문학의 언어로 변신시키는 능수능란한 마법사였다. 
헤세가 사랑한 모든 멜로디와 리듬은 에세이라는 아름다운 형식 속에서 또 하나의 음악으로 부활한다.

헤세는 모든 문장을 악보처럼 연주하여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더욱 찬란한 구원의 메시지로 변신시킨다. 
헤세 앞에서는그 모든 음악이 또 다른 시가 되고 소설이 되어 싱그럽고 눈부신 언어로 울려 퍼진다."
정여울(작가, 『헤세』『끝까지 쓰는 용기」 「마지막 왈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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