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 사람 한 사람은 스스로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여기지만, 대개는 어떤 패턴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는 게 아닐까? 예를 들어 영화 어바웃 타임」이 개봉했을 때, 주변의 편집자 친구들이 레이철 매캐덤스의 앞머리와 옷과 가방을 보고 화들짝 놀랐었다. 너무나 편집자스럽다고, 전 세계의 편집자들은 취향이 그렇게나 겹치는 거냐고 깔깔 서로를 놀렸던 것이다. 특별한 것 같지만 아무도 특별하지않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고 비슷한 공동체에 속하면 비슷해진다. 그런 패턴을 확인할 때 스스로가 작아지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뉴욕에서 방문한 미술관들의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리스트를 짜는 데는 ‘뉴욕의 특별한 미술관 (권이선·이수형 지음, 아트북스, 2012)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아트 앤드 디자인 뮤지엄 모건 도서관 / 미술관 휘트니 뮤지엄 구겐하임 뮤지엄 프릭 컬렉션 메트로폴리탄 모마 뉴욕 도서관 부속 갤러리 첼시의 갤러리들 모마나 메트로폴리탄같이 거대한 전시관도 좋지만, 다니면 다닐수록 두 시간 안쪽으로 볼 수 있는 적당한 규모의 공간들이 매력 있
그 바람은 2018년쯤부터 이루어져서 지금껏 시각예술 전시에 텍스트 작업으로 서너 번 참여하게 되었는데 겉으로는 프로페셔널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내내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작품과 상호작용하며 의미를 생산하는 짧은 소설들을 쓰며 소원이 생각보다 일찍 이루어진 것을 벅차했다. 생뚱맞은 소원인 줄알았는데 오래 품고 마음을 기울이고 있으면 가닿고 싶은 대상 쪽에도 신호가 가나 보다. 다른 영역의 아티스트들을 사랑한다. 책은 남의 책, 예술도 남의 예술이 최고…………. 생산자인 것도 좋지만 향유자일때 백배 행복하다. 향유라는 단어 자체가 입 안에서 향기롭다.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것은, 그러나 어쩌면 매우 환경과 훈련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지구에서 한아뿐』의 헌사에 ‘아무리 해도 로또가 되지 않는 건 이미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났기 때문이에요‘라고 쓴 것은 아부나 효도가 아니라 사실 진술에 가까웠다. 나의 부모님은 1950년대 중반에 태어나 가난과 싸우며 고학했고, 결국 교육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났다. 경영대 캠퍼스 커플이었는데, 엄마는 과의유일한 여성이었다니 1970년대 중반은 대체 어떤 세상이었는지……….
그러니 사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최악을 각오하고 여행하는지도 모른다. 예민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조금 더 신경이 굵은 사람들은 무의식 깊이 묻어놓았겠지만, 아름다운 해변에도 맹독성 해파리들이 있고, 환한 잔디밭에서도 흉기가 칼집에서 빠져나온다. 세계는, 인류는, 문명은 순식간에 백 년씩 거꾸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럴 때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견뎌야만 한다. 같은 장소에서 언제나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지금이 그리 좋지 않은 시대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어디선가 다정한 대화들이 계속되고 있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버릴 수가 없다.
여러 성별의 친구들이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내 소설 속에 있으면 좋겠다. 악하고 폭력적인 사람만 아니면 아무도 배제되지 않는세계를 그리고 싶다. 줄곧 관심이 있는 것은 미디어와 현실 사이의 되먹임 관계다. 시민으로 기능하는 남성들은 혐오의 시대에 남성을 대표하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미디어에서도 지나치게 다뤄지지 않는데, 되먹임이 쌓이면 그 점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왔다. 미디어에는 범죄자에 가까운 남성들의 이미지만 넘쳐난다. 언론에서도 신이 나서 확성기를 들이대고, 온갖 이야기 매체에서도 마찬가지다. 가학적이고 위법적인 인물들이 우리 공동체에 굉장히 낮은 기준선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선을 좀 끌어올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예 끔찍한 범죄자들은 바뀔 리 없고 그저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하겠지만, 시간에따라 생각이 변화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건 돼‘ ‘저건 안 돼‘ 용인
있을지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다른 전략을 써야겠지만, 세상을 바꾸는 데는 늘 찌르는 전략과 녹이는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리고 나는 녹이는 걸 잘하기에, 자꾸 친구들의 좋아하는 면을 소설 속에 녹인다. 참혹한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다음을 상상하기 위해서. S도 피프티 피플』에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이름이 들어가 있다. 물론 직업도 배경도 다 다르고 그저 큰 눈으로 잘 울면서 묘하게 꼿꼿한 데가 있는 성격만 빌렸지만 말이다. S는 당시 카우치 서핑으로 여행하고 있었다. 카우치 서핑은 대화나 문화 교류 등 비영리적 목적으로 호스트가 게스트에게 무료로 숙박 공간을 제공하는 일종의 친교 활동이다.
찾아간 게 아니라 나타난 거라서 흥분하고 말았다. 화려한 전광판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타임스스퀘어가 ‘여러 겹‘을 가진 공간이라서 벅찼던 것 같다. 지금 눈에 보이는 한 겹뿐 아니라 그동안 매체에서 접해왔던 겹들이 있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마차를 탔던 시대까지 가도 타임스스퀘어는 언제나 타임스스퀘어였기에 형성된 겹겹 말이다. 여러 겹을 겹쳐 만드는 인쇄용 필름처럼, 접었다 펼쳤다 할 수 있는 부채처럼 겹겹………. 나만 흥분한 게 아니어서 사방에서 탄성이 들렸다. 그 흥분을 모르는 사람들과 나누기도 했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두 여성과 신나게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여행 계획을 물어보고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공간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냥 전광판들 사이의 길쭉한 광장일 뿐인데도, 월리를 찾아서』의 한 장처럼 구석구석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학생이 친구들과 함께 ‘나랑 졸업 무도회에같이 가주겠니?"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한 사람은 꼭 거꾸로 든다)다른 학생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흔쾌한 승낙이 이어졌고 청춘영화인 줄 알았다.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어린 연인이 깜찍한 키스를 했다. 갑자기 터져 나오는 음악과 함께 춤을 추기도 하고, 신선한 캠페인이 벌어지다가 누군가 텀블링을 했다.
를 흘리듯 잃어버린 것, 쓰고 버린 것에 다 적용했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아주 제멋대로, 주관적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매일의 산책에서도, 여행지에서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런 물건들을 만날 수 있었고 기뻐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제 3백 장 정도를 가지고 있다. 따로폴더를 만들어두고 며칠에 한 번씩 열어본다. 그 가지각색의 사진들로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목표가 없어야 취미가 즐거운 것 같다. 찍을 때의 원칙은 하나, 절대로 물건에 손대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예뻐도 가져오지 않는 건 물론이고, 연출을 위해 건드리지도 않는다. (딱 한 번 떨어져 있는 트럼프 카드의 앞면이 궁금해서 뒤집어본 적은 있다.) 꼭필요한 원칙이라기보단 재미를 위해서다. 3백여 장이 모이니,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에다 무언가를두고 가는 사람들은 대개 어린이거나 술에 취한 사람인 것 같다. 온갖 동물 인형들, 스티커, 종이접기 작품, 가제 수건은 아이들 솜씨다.
도시라 음식 문화가 풍부한 것도 분명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맛있었던 곳은 뉴욕대학교 근처맥두걸 스트리트 114번지에 위치한 사이공 쉑(Saigon shack)의 반미샌드위치였다. 구글 지도에 검색해보니 여전히 있어서 더 가고 싶어지는데, 일단 가게에서 직접 굽는 바게트 빵이 탁월했고 안에 들어가는 재료들도 신선하기 그지없었다. 그 맛을 잊지 못해서 돌아와서내내 ‘반미‘를 검색하는 바람에 CIA 요주의 인물처럼 되어버렸었는데 요새는 반미가 대중적인 음식이 되어 행복하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던 루바브 파이와 체리파이도 오래 그리워했다. 덕분에 뉴욕에서 돌아오고 6개월쯤 되었을 때, 엄마와 아
제대로 기억하지 않으면 나아가지 못한다. 공동체가 죽음을 똑바로 애도하고 기억하고 전하지 않으면...……. 죽은 자들을 모욕하지 않는 방향으로 기억을 단단히 굳히지 못하는공동체는 결국 망가지고 만다. 역사교육을 전공하며 공부한 자세한내용들은 많이 잊었지만 그것 하나는 배운 것 같다. 배운 것을 자꾸현실과 비교해보며 다급함에 종종거릴 때가 있다.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자리에는 아래로 끊임없이 물이 떨어지는분수대가 있었다. 분수대를 둘러서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정확한 사망자 추산이 불가능했으니 누락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거기 모르는 사람의 이름 위에 손을 얹고 잠시 서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부정하는 이들을 언제까지고 두려워할 것이다. "그놈들 머리에 폭탄이 떨어지면 좋겠어!"라든가 "그놈들 발밑에지진이 나면 좋겠어!"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을 말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가장 순정한 사람들이 희생된다는 것을 외면하는
"나는 나의 최대 가능성을 원해" 최대 가능성이라는 압축적인 다섯 글자로 머릿속이 정리되었다. 이 불완전하고 가혹한 세계에서,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성장해보고 싶다고 스스로의 욕망에 이름을 붙였다. 아시아인은 어릴 때부터 겸손과 중용을 교육받으며 자라기 때문에 한 사람의 최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시아 여성은 더더욱・・・・・・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에 다른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그날부터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것이 최대 가능성을 향하는지 아닌지를 기준으로삼을 수 있었다. 외부로부터, 사회로부터 주입되지 않은 종류의 욕망을 가진다는 것은 사람에게 힘찬 엔진이 되기 마련이기에 우리는 욕망에 대해 더 이야기해야 한다. 굳이 뉴욕까지, 하이라인파크까지 가지 않고서도 이런저런 답에다다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가끔 뇌에는 그런 자극이 필요하기도한 모양이다. 다른 풍경, 다른 공기, 다른 문화에 감각을 노출시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위해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여행하는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리고 또 좋았던 것들반려 장미를 위해 열어둔 창문. 수제 애플사이다. 안개가 심한 날 빌딩들의 꼭대기가 보이지 않던 것. 번지는 조명들도. 친구들과 음식점 냅킨에 하던 낙서들. 크고 작은 서점들, 그중 한 곳에서 L과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양장본을 한 권씩 살인 것시나몬 가루가 뿌려진 라이스 푸딩. 차이나타운에서 엘리자베스 스트리트로 이어지는 길. 뉴욕에서걸었던 어느 길보다도 아름다웠다. "여기가 어디야? 어딘데 이렇게예뻐?" 하고 물으니 "반은 소호, 반은 이스트빌리지"라고 대답해주던 L의 목소리.
그런데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슈타델 미술관은 규모가 아주 크지 않아도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보티첼리부터 시작해 루벤스, 모네, 르누아르, 페르메이르를 거쳐 현대의 거장들까지 눈에 익은 작품들과 동시대적인 작품들이 근사한 흐름을 이루며 갖춰져 있었다. 관람객이 아직 많지 않은 복도를 천천히 걷자 피로로 무뎌져 있었던 감각이 깨어났다. 괴테의 가장 유명한 초상화 앞에,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베티」앞에 오래 서 있었다. 언제고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이후 몇 년간 출장 등으로 프랑크푸르트에 가는 사람들에게 꼭 방문해보라고 추천했었다. 뉴욕에서 갔던 모마나, 후에 가게될 런던의 테이트만큼 슈타델이 좋았다.
"가장 좋았던 건 해양생물관의 거대한 고래였다. 물론 모형이지만 너무나 크고 푸르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그 고래 아래, 시원한
돌바닥에 누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거기 누워 있으니 30분쯤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지구는 45억 년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은 결국 항성과 행성의 수명이 다하면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을텐데, 우리는 짧은 수명으로 온갖 경이를 목격하다가 가는구나 싶었다.
경이를 경이로 인식할 수만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특별해질 것이다. 덧없이 사라진다 해도 완벽하게 근사한 순간들은 분명히 있다. 자연사 박물관에 갔던 날이 나에게 그랬다.
어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했고, 이에 깊이 동의한다. 과학의 자리에 과학이 아닌 것이 들어와서는 곤란하다.
몇몇 친구들에게 흐르던 지지의 마음은, 이제 퀴어 독자분들에게도 향한다. 출판 행사에 찾아와 마음을 전하고, 농담을 나누고, 가끔 같이 조금 울기도 하는 독자분들은 한층 넓은 의미의 친구일 것이다. 그리고 퀴어 독자들의 존재가 이야기들을 얼마나 풍성하게 해
"드라이란덴푼트(Drielandenpunt)?" 영어로 치면 스리 랜드 포인트인 것 같았다. B와 S가 나를 끌고경계석으로 향했다. 무엇의 경계인가 했더니 독일과 네덜란드, 벨기에 세 나라의 국경이 한 점에서 만나는 꼭짓점을 표시하고 있었다. 나는 흥분하고 말았다.
그 전날, 유연한 국경이 재밌다고 말한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야말로 가장 유연한 곳에 데려다준 것이었다. 네 살, 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경계석 근처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한 걸음 딛을 때마다 발밑의 나라가 바뀌었다. 뒤로 국기가 셋 꽂혀 있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았다. 군인이 없었다. 어느 나라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공원이었다.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로 신이 난 채 어린이들과 경계석을 빙빙 돌았다. 내 격한 반응에 B 자매는 만족한 듯했다. 한 걸음마다 벨기에였다가 네덜란드, 네덜란드였다가 독일, 독일이었다가 벨기에…………. 뭐라 할 수 없이 멋진 경험이었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평범한 랄프 로렌 셔츠와 나이키 운동화 차림이었다. 색색의 평상복 사이에서 혼자 눈만 남기고 검은 천으로 휘감은 모습은 둔중하게 다가왔다. 어디까지가 당사자의 선택이고 어디서부터가 집단적 압력의 결과일지, 존중에서 비롯된 문화상대주의가 폭력에 대한 방관으로 변질되기 시작하는 지점을 어떻게 짚어낼지 항상 어렵게 느껴진다. 세계가 이렇게망가지고 무너져가는 것은, 이 세계를 복원하고 개선할 가능성을 가진 여성들이 교육과 사회 활동의 기회를 얻지 못해서가 아닐까 두려워하며 추측하기도 한다. 그 여성들이 잃은 가능성은 결국 인류가잃은 가능성이 될 확률이 높아 조급해지지만, 여성이 극도로 억압받는 지역에서도 의미 있는 움직임들이 보이고 먼 곳에서도 지지를 보내기 예전보다 쉬워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희망이다. 모여서 강해지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인권 단체에 기부를 하고 오지은의 작은 자유를 들으며 마음을 다진다. 써야 하는 글이 있어서 숙소에 머물 때는 CNN을 틀어놓곤 했다.
몸에 성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문화가 더건강한 문화가 아닐까 싶었다. 독일은 나체주의의 역사가 긴 나라라고 한다. 벗은 몸이 그저 벗은 몸일 뿐인 사회가 가능할까? 그날 그온천에서 탈의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든 것은 아니지만, 몇 년 후 하와이에 갔을 때 가벼운 반바지만 입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보고선매우 부러웠었다. 등으로 가슴으로 가득 햇빛을 받으면 기분 좋을
상식 없음 때문이었다. 4년 후의 곤란한 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기에 가뿐한 마음으로 남아 있는 장벽의 벽화를 구경하고,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열기구도 탔다. 굵은 케이블로 땅에 연결되어 있는 열기구였지만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멋진 풍광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고소공포증을 느끼고 말았다. 그래도 베를린을 한눈에 볼 수 있었던 것은 근사했다. 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건물이 있어 가보았는데, 알고 보니 SS 친위대 건물을 보존해둔 것이었다. 그런 역사를 그렇게 커다랗게 남겨놓는 것은 대단한 신념이지 않을까 한다. 부끄러운 역사일수록 지우고 싶었을 텐데, 남겨놓는 시늉만 하고 싶었을 텐데, 그 방향으로는 가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다.
액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베를린 중앙역을 갔고, 유대인 박물관과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소리 나지 않게 걸었고, 브란덴부르크문을 보았고, 포츠담 광장을 가로질렀고, 벼룩시장에서 비를 맞았다.
이틀뿐이었지만 베를린에 대한 K의 자부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베를린에는 독특한 미완결성이 있었다. 유럽의 다른 도시들은 이미 촘촘하게 완성되어 있는 느낌, 딱딱하게 틀이 잡힌 느낌, 남아 있는 변화의 여지가 적은 느낌인데 반해 베를린은 다 빚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반쯤은 액체처럼 출렁거리고, 품고 있는 불안과 혼란까지도 어떤 기대감을 주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끝을 듣기 위해 기다리
결혼식의 목표는 식 중에 긴장해서 토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그러지 않았다. 평소 존경해 마지않는 소설가 K 선생님이 주례를 맡아주셨는데, 아폴로 11호가 달에 갔을 때 닐 암스트롱과 버즈올드린을 위해 사령선 파일럿으로 남아 있었던 마이클 콜린스처럼 서로 중요한 역할을 번갈아 맡으며 살아가라고 말씀해주셔서 어떤 마음으로 주례사를 쓰셨을지 알 것 같아 눈물이 났다. 실천하고 있느냐 하면 제가 계속 암스트롱 역할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집니다만....…. 0 시인의 축시도 해마다 꺼내본다. 책 제목들을 다 껴안은 사랑스러운 시였다. 와주신 분들이 즐거워하셨던 것 같아 후회가 없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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