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는 스무 살 무렵 목멱산(남산) 아래 자신의 집에 ‘구서재(書齋)‘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재에 책을 아끼는 아홉가지 생각을 담았다. 구서(九書)란 첫째 독서(讀書), 둘째간서(書), 셋째 장서(藏書), 넷째 초서(書), 다섯째 교(校書), 여섯째 평서(書), 일곱째 저서(著書), 여덟째 차서(借書), 아홉째 폭서(書)를 말한다. 책을 읽는 것, 보는 것,
간직하는 것, 내용을 뽑아 베껴 쓰는 것, 내용을 바로잡아 고치는 것, 비평하는 것, 저술하는 것. 빌리는 것, 책을 볕에 쬐고 바람에 쐬는 것 등이다. 책을 좋아하더라도 ‘독서‘라는 두글자에서만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독서의 네 가지 이로움을 알았다. 그러나 어떻게 독서해야할지는 잘 모를 때 참고할 만한 글이 있다. 류성룡(柳成龍)은 박학(博學), 심문(問), 신사(愼思), 명(明), 독행(行)의 다섯 가지 독서 방법을 말하면서, 모두 ‘생각하는 것‘
을 중심으로 독서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정약용은 이다섯 가지 독서 방법을 구체적으로 밝혀 놓았다. 첫째 박학(博學)은 "두루 넓게 배운다"는 말이다. 둘째 심문(審問)은
"자세히 묻는다"는 말이다. 셋째 신사(愼)는 "신중하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넷째 변(辯)은 "명백하게 분별한다"
는 말이다. 다섯째 독행(行)은 "진실한 마음으로 성실하게실천한다"는 말이다. 출처는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의「오학론(五學論)」이다.

저절로 독서할 마음이 생길 때만약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굶주리지도 않고 배부르지도 않고, 마음은 화평하고 기쁘며 몸은 건강하고 편안하고, 게다가등불은 밝아 창이 환하고 책이 보기 좋게 정돈되어 있고 책상과 자리가 정결하면 독서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 낼 재간이 없다. 하물며 뜻이 높고 재주가 막힘없이 환히 통하고 젊은 나이에 건장한 기운까지 겸비한 사람이 독서하지 않는다면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무릇 나와 뜻이 같은 사람은 힘쓰고 또 힘써야할 것이다.
如其不暖不寒不飢不飽 心地和悅 體幹康安 加之以燈紅恕白 書軼精覈几席明潔 則可不勝其讀矣 况乘之以志高才達 年少氣健之子 不讀復何爲哉 凡吾同志勉之勉之- 이목구심서 30중국 위(魏)나라 사람 동우(遇)는 <삼여지설(三餘之說)》에서 ‘밤‘과 ‘비 오는 날‘과 ‘겨울철‘. 이 세 가지 여분의 시간

이야말로 마음을 하나로 집중해 독서할 수 있는 좋은 때라고말했다. 맑은 날 밤 고요하게 앉아 등불을 켜고 차를 달이면온 세상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간혹 종소리만 들려온다. 이때 이 아름답고 고요한 정경에 빠져 책을 읽으며 피로를 잊는다. 이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 비바람이 몰아쳐 길을 막으면 문을 잠그고 방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사람의 발길이끊어지고 책만 앞에 가득히 쌓여 있다. 이처럼 그윽한 고요함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낙엽이 떨어진 나무숲에 한 해가저물고 싸락눈이 내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깊게 눈이 쌓여 있다. 바람이 마른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가고, 겨울새가 들녘에서 울음 운다. 방 안에 난로를 끼고 앉아 있노라면 차향기에 달콤한 술이 익어 간다. 이러한 때 시와 글을 모아서 엮고 있으면 좋은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마냥 즐겁다. 이것이세 번째 즐거움이다. 허균이 옛사람들의 글을 모아 엮은 『한정록(閑靑錄)』 「정업(業)」편에 나오는 말이다.

"글이란 반드시 불온해야 하고 마땅히 시대와 불화해야 한다"고 그것은 일찍이 시인 김수영이 주장했던 ‘문학의 불온성과 맥락을 같이 한다. 필자는 20세기 대한민국의 문인과 지식인 중 가장 위대한 말과 문장을 남긴 사람은 다름 아닌 김수영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김수영,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 자유>, 김수영 전집 2 (산문)』, 민음사, 2003, 221쏙)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있는가? 마치 이학규가 망상을 예찬한 뜻과 같지 않은가? 불온하고 망상하고 상상할 때에야우리는 비로소 권력의 족쇄와 시대의 굴레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유로운 인간일 수 있다.

신선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다. 만약 사람들이 붐비는 저잣거리 한복판에 있더라도 잠시라도 그 마음에 걸리거나 얽매이는 것이 없다면 바로 그 순간 신선이 된다. 산속 깊숙이 몸을 숨기고 세상을 멀리 등진 채 사는 사람이 신선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비록 그윽한 산속에 거처하면서 세상을 가까이하지 않는다고 해도 마음에 걸리거나 얽매이는 것이 있다면범인(凡人)에 불과하다. 세상에 나도는 온갖 종류의 종교 서적 가운데 볼만한 글을 찾기란 쉽지 않지만, 유독 불교의 원시 경전인 숫타니파타(Sutta Nipata)』에 나오는 이런 말만은세상 그 어떤 것보다 좋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법정 옮김, 숫타니파타 이레, 2008,34쪽)만약 이러한 순간이 짧든 길든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한다면,
그때만큼은 신선이 아니라 부처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글을 쓰는 것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떤 때는 하루에 이백 자원고지 백 장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랄 만큼 글을 쓸 수 있다가도, 어떤 때는 하루가 아니라 일 년이 다 지나가도록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마음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을 때는 애써 쓰려고 하

지 않아도 술술 글이 나오지만, 마음속 한 귀퉁이일망정 걸리거나 읽어매는 것이 있으면 단 한 글자도 쓰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사람들을 만나 어떻게 글을 쓰는지에 대해 말할 때면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는 한다.
"숙제하듯이 쓰는 글이 가장 나쁘다. 숙제는 내가 하고 싶은공부가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꾸중을 듣지 않을까 무서워 마지못해 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대개 참고서 모범답안 따위를 그대로 옮겨 적는 경우가 다반사다. 내가 한 것이지만 사실상 내가 한 것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숙제다. 또한 목적이 따로 있거나 남을 위해 쓰는 글이 가장 좋지않다. 십중팔구 자신이 정말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남이 원하는 형태의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글은 진실로 내가 쓴 글‘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을 때 쓴 글이 가장 좋다. 단지 정말로 쓰고 싶다는마음 외에 아무런 다른 목적도 이유도 없이 써야 비로소 좋은 글을 얻을 수 있다."

고전연구가 한정주의 번역과 해석으로 읽는
이덕무 소품문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

가장 빛나는 것들은 언제나 일상 속에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