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즐겁다아무 일이 없을 때에도 지극한 즐거움이 있다. 다만 사람들이스스로 알지 못할 뿐이다. 훗날 반드시 문득 깨치는 날이 있다. 면 바로 근심하고 걱정하는 때일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어느 관청의 수령이 평온하고 조용한 성품을 갖춰서 이렇다 할일을 하지 않아 백성들에게 베푼 혜택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그 후임으로 온 수령이 몹시 사납고 잔혹했다. 그때서야 백성들은 비로소 예전 수령을 한없이 생각하며 그리워했다. 無事時至樂存焉 但人自不知耳 後必有忽爾而覺 為此憂患時也 如前官恬靜 別無施惠於民 及其後官稍猛鶯民 始思前官不已也- 이목구심서 2무위도식(無爲徒食)‘과 ‘무위지치(無爲之治)‘라는 말이 있다. 모두 무위를 말하지만, 전자는 무위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나쁜 행위라고 하는 반면 후자는 무위야말로 인간이 도달해야 할 궁극의 진리라고 한다. 같은 말을 갖고 어찌 이리도
다르게 사용한단 말인가?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말까지 제멋대로 써먹고 있기 때문이다. 천하를 다스리는권력을 쥐고 있는 자신들의 무위는 지극히 높고 바른 것이지만 자신들을 위해 피땀 흘려 일해야 할 자들의 무위는 결코용납되어서는 안 될 천하의 몹쓸 짓으로 만들어 놓은 셈이다. 이러한 까닭에 무위지치는 최선의 용어가 된 반면 무위도식은 최악의 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만약 무위지치가 최선이라면 무위도식 역시 최선이며, 무위도식이 최악이라면 무위자치 역시 최악이다. 어째서누구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에서 지극한 즐거움을 누리고, 누구는 피땀 흘려 일하는 것에서 지극한 즐거움을 누려야 한단 말인가? 사람은 누구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에서지극한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이익과 명예와 권세와 출세를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사위이기도 한 폴 라파르그(Paul Lafargue)의 말처럼, 인간에게는 천부적으로 ‘게으름 권리‘가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이 하고싶지 않은 일이나 좋아하지 않는 일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기계처럼 일하다 폐기되는 것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권력의 도구가 되어 뼈 빠지게 일하다가 버
려지는 것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거부의 전략이 무엇인가? 그게 바로 무위도식이다. 흔히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것을 사람들은 무위도식한다. 고 오해하지만 그렇지 않다. 누군가 일하지 않고도 돈을 벌어 온다면, 세상 누구도 그를 무위도식한다고 비난하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열심히 일하는 데도 돈을 벌어 오지못하면, 세상 사람들은 그를 무위도식한다고 손가락질하고비난하며 조롱한다. 사실은 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돈을 벌어 오느냐 벌어 오지 않느냐에 따라 다른 평가를내리는 것이다. 뭐 이따위 용어가 있단 말인가? 돈과 권력을위해 일하지 말라. 그저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을 위해 일하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무위의 지극한 즐거움이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향유하려면 오히려 무위도식하는 삶을 긍정하고 창조해야 한다.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
얼굴에 은근하게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과는 더불어 고상하고 우아한 운치를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의 가슴속에는 재물을 탐하는 속물근성이 없다. 眉宇間 隱然帶出澹沱水平遠山氣色 方可與語雅致 而貿中無錢癖- 선귤당농소」얼굴에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지금까지 만나고 살펴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지만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재물을 탐하는 속물의 티를 벗은 사람은 어떠한가? 이삼십 대 때에는 그러한 사람을만났던 것도 같다. 그렇지만 마흔 이후로는 그와 비슷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속물티를 벗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속물에 가까워지지 않나 하는 걱정이 든다. 필자의 경우만 해도 이십 대 시절이 가장 뜻이 맑고 기상이 높았다. 삼십대 때는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
소인의 마음과 대인의 마음
간사한 소인(小人)의 흉중에는 마름쇠 한 곡)이 들어 있다. 속된 사람의 흉중에는 티끌 한 곡이 들어 있다. 맑은 선비의 흉중에는 얼음 한 곡이 들어 있다. 강개한 선비의 가슴속은 온전히 가을빛 속 눈물이다. 기이한 선비의 흉중에는 심폐가 갈라지고 뒤엉켜서 모두 대나무와 돌을 이루고 있다. 대인(大人)의가슴속은 평탄해 아무런 물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壬人智中 有鐵蒺藜一斛 俗人訇中 有垢一斛 清士简中 有氷一斛 慷慨士國中 都是秋色裡淚 奇士胃中 心肺槎枒盡成竹石 大人智中 坦然無物- 선귤당농소」마음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뜻은 애써참으려고 해도 표현하게 되어 있다.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떻게든지. 마음을 도저히 감출 수 없고, 뜻을 도저히 참을 수없을 때 나오는 말과 글이 바로 진실한 말이고 참된 글이다.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
망령된 사람과 더불어 시비나 진위나 선악을 분별하느니 차라리 얼음물 한 사발을 마시는 것이 낫다. 與妄人辨 不如喫冰水一碗- 선귤당농소」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사람을 해치는 전갈과 같은 사악한자를 만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예를 들어 보자. 사막을 건너다가 우연히 전갈을 만났다고 하자.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죽느냐 전갈이 죽느냐 생사의 결판을 내야 하는가? 아니다. 전갈은 그냥 무시하고 갈 길을 가면 된다. 사악한자도 전갈과 다르지 않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일을 하려는 사람
만약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일을 갖고 생계를 도모하지 않는 사람은 버려진 백성이다. 그러나 능력과 계획이 서로 들어맞지 않는다면,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어떻게 할 길이 없다. 불가능한 일을 억지로 애써 하려고 하면 범죄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적다. 이것이 바로 공교롭게 하려다가 졸렬해지는 경우다. 하늘의 뜻에 따르고 운명을 편안히 여기는 것만 못하다. 若有可爲之路 而不資生者 棄民也 然力與謀不相入 顧無如何矣 勉強其所不能爲 則其不犯胖者小 是欲巧而拙也 不如聽天安命而已- 이목구심서 3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을 나는 능히 한다. 사람들이 능히 하는일을 나는 하지 않는다. 이것은 지나치게 고집이 세거나 과격해서가 아니라 선(善)을 선택한 것일 따름이다. 사람들이 하지않는 일을 나 또한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능히 하는 일을 나또한 능히 한다. 이것은 시비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사람들을따르는 것이 아니라 옳은 것에 나아갈 따름이다. 이러한 까닭
에 군자(子)는 안다는 것을 귀중하게 여긴다. 人之所不爲我則能之人之所爲 我則不爲之非橋也 擇善而已人之所不爲 我亦不爲之 人之所能爲 我亦能爲之 非詭隨也就是而已君子- 이목구심서 3.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자신의 당호(堂號)인 여유당(與猶堂)에 붙인 기문(記文)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고 싶지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은 그만둘 수 없다. 하고싶지만 다른 사람이 알까 두려워서 하지 않는 일은 그만둘수 있다. 그만둘 수 없는 일이란 항상 그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내켜 하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중단된다. 반면 하고 싶은 일이란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알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또한 때때로 그만둔다. 이렇다면 참으로 세상천지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을 것이다." 거리낌도 없고 막힘도 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생각이 움직이는 대로 산다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모략과 비방
마음을 화평하고 기뻐하며 온화하고 평온하게 가져서 거역함이 없이 순리에 따르는 것이 바로 인생의 큰 복력(力)이다. 마음을 관대하고 평안하며 고요하게 지니면 추울 때도 더울 때도 나를 침범하지 못한다. 옛사람이 불길에 뛰어들어도 타지않고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는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천하의 가장 상서롭지 못한 일은 아무 근거도 없이 다른 사람을 비방해 잘못을 덧씌우는 짓이다. 그러나 아무 근거도 없는 비방은 결국 곧바로 탄로 나는 법이다. 이때 비방을 듣는 사람이 만약 떠들썩하고 어지럽게 자신의 결백을 변명하기라도 하면 역시 시끄럽고 복잡하게 될 뿐이다. 비방의 경중을 가려서 더욱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挡心和悅溫平 無拂逆其順適 是人生大福力 持心要寬平安靜 寒暑有時乎不 古之人火不焦 天水不濡云者 指此也 天下之最不祥 以無根之誘 橫加於人也 然其所謗 畢竟即綻 聞謗者若紛紛辨白 亦系燥擾也且有輕重 尤候- 이목구심서 3
남이 모략한들 어떻고 비방한들 어떤가?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가야 할 길을 갈 뿐이다. 필자는 백호 윤휴(白湖 尹鏞)의 "천하의 진리는 한사람이 모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만약 누군가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옛사람의 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차라리 세상과 어울리지못하고 홀로 쓸쓸하게 살아갈망정 끝내 ‘이 세상에 나왔으니 이 세상에서 하라는 대로 하고 이 세상이 좋아하는 대로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머리를 숙이거나 마음을 낮추려고 하지 않았다." 서계박세당(西溪 朴世堂)이 스스로 지은 묘지명에 남긴 말이다.
하나의 수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쉼 없이 돌아간다. 어제와오늘과 내일 역시 수없이 교대하며 굴러가지만 항상 새롭다. 결코 같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를 고찰함으로써 오늘을 통찰하고 내일을 예측한다. 오늘을 통찰함으로써 어제를 고찰하고 내일을 예측한다. 내일을 예측함으로써 어제를 고찰하고 오늘을 통찰한다. 어제와오늘과 내일을 역사의 수레바퀴에 넣으면 바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된다.
다. L94재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노자(老子)가 말하기를 알면서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상이고, 알지 못하면서도 안다고 하는 것은 병(病)이다"라고했다. 알지 못하면서도 안다고 말하는 것이 병이라고 한다면, 알면서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 또한 바로 잘못이 아니겠는가. 공자가 말하기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와 같은 말들은 공평하고 명백해 후대에도 폐단이 없다. 가히 만세)의 법으로 삼을 만하다. 老子曰 知不知上 不知知病 不知而知 儘是病也 知而曰不知 無乃曲平 孔子曰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平白無後弊 可爲萬世之法- 이목구심서 6사람의 삶은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지(知)‘와 ‘무지(無知)‘ 사이를 오고 가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안다고 해서 다
이는 것이 아니고, 알지 못한다고 해서 모두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보면 알지 못하는 것이고, 알지 못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보면 아는 것이다. 아는 것 가운데 모르는 것이 있고, 모르는 것 가운데 아는 것이 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끝없이 돌고 도는 수레바퀴와 같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찌감치 ‘지‘에 도달할 수 없고 ‘무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임을 깨닫고 받아들여야한다.
280만약 세상 모든 일을 놀이처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지극한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놀이를 억지로 애써 하는 사람은 없다. 놀이를 마지못해 하는 사람도 없다. 놀이란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고 재미있고 즐겁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이덕무는 서이수(修)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들이 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소꿈놀이와 너무도 흡사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지극한 즐거움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덕무의 말에서 우리는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 하고 싶은 것을 추구했던 18세기 지식인의 새로운 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 만약 여기에 이름을 붙인다면 그것은 유희의 철학이자 놀이의 철학이 될 것이다. 이덕무에게 학문과 지식, 독서와 글쓰기는 단지 유희이자 놀이였을 따름이다. 이때 해야만 하는 것이 도학(성리학)과 과거 시험용 학문과지식이라면, 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학문과 지식 밖의 것 즉박물학이다. 그래서였을까? 조선 최초의 백과사전인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대해 남창 김현성( "공(公)成)은의 뜻은 처음부터 저술에 있지 않고 유희 삼아 적어둔 것을책으로 엮었다"고 했다. 또 다른 백과사전인 『성호사설』을지은 이익은 스스로 "이 저서는 성호의 희필)이다"
라고 밝혔다. 억지로 힘쓰고 애써 꾸며 저술하지 않고 평생토록 놀이 삼아 써놓은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 ‘지봉유설」과『성호사설』이라는 이야기다. 특별한 목적이나 아무런 뜻 없이 글을 썼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이 두 저서는 오늘날까지 전해 오는 어떤 서적보다 특별한 문헌이자 희귀한 기록이 되었다. 해야만 하는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과 하고 싶은일을 하는 사람 중 누가 더 현명하고 깨달은 사람인가? 깊게생각해 볼 일이다.
|